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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대신 사람을 택한 자식 『청구야담』
아버지 묏자리로 천하의 명당을 얻고도, 그 자리에 얽힌 남의 불행을 알고 스스로 포기한 자식.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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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흔히 조상 묏자리를 잘 써야 자손이 대대손손 발복한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만약, 천하의 명당을 찾았으나 그 자리를 쓰면 억울하게 남의 집안이 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묏자리 발복보다 더 크고 무서운 우주 만물의 이치, 바로 '적선(積善)'에 관한 기막힌 사연입니다. 명당을 포기하고 인간의 도리를 택한 자식에게 하늘은 과연 어떤 기상천외한 복을 내렸을까요?
※ 1: 지극한 효자 송생, 부친상을 당하고 명당을 찾아 험로에 오르다
조선 영조 임금 치하, 경상도 안동 땅의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는 송생이라는 젊고 강직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본래 뼈대 있는 사대부 가문의 자손이었으나, 조부 때부터 가세가 크게 기울어 지금은 비가 새는 초가삼간에서 노모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허나 송생의 효심만큼은 안동 고을 전체에 자자하여, 지나가는 이들마다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가 원인 모를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송생은 한겨울 꽁꽁 언 강물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고아 올렸다. 병세가 깊어져 미음조차 넘기지 못할 때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어 피를 먹였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는 부모의 봉양에 자신의 목숨마저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지극한 정성으로도 하늘이 정해놓은 명줄을 억지로 이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모진 병마와 굶주림 속에서 뼈만 남은 아버지는 결국 어느 쓸쓸하고 차가운 늦가을 밤, 눈물짓는 아들의 거친 손을 꼭 쥔 채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버님! 아버님! 이 못난 불효자를 두고 어찌 이리 허망하게 눈을 감으신단 말씀이십니까! 평생 따뜻한 밥 한 그릇, 고운 옷 한 벌 지어 올리지 못했는데 이리 가시면 저는 어찌 살란 말씀이십니까!"
송생의 애끓는 곡소리가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안동 땅의 차가운 가을바람을 타고 슬픔으로 물들였다.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깡마른 시신을 염한 송생은 굳게 결심했다. 살아서 단 하루도 호강시켜 드리지 못한 한 많은 아버지였다. 죽어서라도 따뜻하고 편안히 누우실 수 있도록, 그리고 기울어가는 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 아버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천하에 둘도 없는 으뜸가는 묏자리를 찾아 아버지를 모시겠노라고 피를 토하듯 맹세했다. 그날부터 송생은 집안에 남은 척박한 밭뙈기마저 모조리 팔아치워 노모의 식량과 자신의 여비를 마련한 뒤, 커다란 삿갓을 눌러쓰고 짚신을 둥둥 동여맨 채 이름난 지관을 찾아 전국 팔도의 명산을 떠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살갗을 베일 듯 차가운 한겨울의 소백산맥을 넘고, 산짐승조차 길을 잃는다는 험준하기 짝이 없는 태백의 깊은 골짜기를 홀로 헤매는 고단하고 처절한 여정이었다. 험한 산길에 신발이 다 해져 발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굶주린 늑대의 울음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용하다는 지관이 숨어 산다는 소문만 들리면 이백 리, 삼백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지만, 세상 인심은 야박하기만 했다. 비싼 여비만 챙겨 달아나는 사기꾼들에게 속기도 하고, 엉뚱하고 흉한 자리를 대명당이라 속여 파는 자들에게 번번이 속아 넘어갈 뻔하며 송생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내 정성이 아직 하늘에 닿지 못한 것인가. 아버님의 유해를 아직도 뒷산에 임시로 가매장해 두고 이리 산천만 정처 없이 헤매고 있으니, 나는 천하의 몹쓸 불효자이자 죄인이로구나. 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명당을 찾고야 말리라.'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뼈 시린 겨울이 가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어느 후미진 깊은 산길을 걷던 송생은, 거세지는 비바람과 진눈깨비를 피하려 길가에 쓰러져 가는 버려진 성황당 안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런데 그 어둡고 퀴퀴한 곰팡내가 진동하는 성황당 안에는 이미 먼저 비를 피하고 있는 한 노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온통 기워 입어 원래의 색을 알 수조차 없는 누더기 장삼을 걸치고, 얼굴에는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맞은 듯 깊은 주름이 패인 늙고 파리한 승려였다. 노승은 비에 흠뻑 젖어 지독한 오한이 든 듯 온몸을 덜덜 떨며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마른기침을 쿨럭쿨럭 토해내고 있었다.
"스님, 괘념치 마시고 이리로 오십시오. 날이 몹시 차가우니 제 마른 옷이라도 덮으시지요."
송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봇짐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유일하고 가장 깨끗한 마른 무명옷을 꺼내어 노승의 굽은 어깨 위에 정성껏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품속 깊은 곳에 비상식량으로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딱딱하게 굳어버린 주먹밥 하나를 꺼내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에 조심스레 적셔 부드럽게 만든 뒤 노승의 입에 조금씩 넣어주었다. 자신 역시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해 뱃가죽이 등에 붙고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으나, 병석에 누워 고통받으시던 가여운 아버지가 떠올라 도저히 죽어가는 노인을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 만에 겨우 기운을 차린 노승은 기침을 멈추고,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맑고도 깊은 우물 같은 눈빛으로 송생을 찬찬히 꿰뚫어 보듯 바라보았다.
"젊은이의 관상을 가만히 보아하니 이마에 수심이 가득하게 맺혀 있고, 상복을 입은 품새가 필시 부친상을 당한 모양이로군. 본인도 당장 굶어 죽을 판국에 그토록 귀한 옷과 마지막 식량을 이 보잘것없는 늙은이에게 내어주니, 자네의 지극한 효심과 조건 없는 적선(積善)이 굳게 닫힌 산천의 문을 감동시킬 만하네. 대체 무슨 기막힌 사연으로 이 깊고 험한 산중을 홀로 헤매고 있는 겐가?"
송생은 노승의 맑은 눈망울과 범상치 않은 목소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끼고, 차가운 흙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 가신 아버지를 편히 모실 작은 명당자리 하나를 구하고자,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반년 넘게 조선 팔도를 떠돌고 있다는 피 끓는 사연이었다. 송생의 눈물 어린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노승은 빙그레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땅은 참된 덕을 쌓은 자에게만 그 은밀한 문을 열어주는 법이지. 자네가 오늘 이 늙은이의 목숨을 구했으니, 내 자네의 그 지극한 효심에 보답하여 천하의 맑은 기운이 똘똘 뭉친 비룡승천(飛龍昇天)의 대명당을 하나 점지해 주겠네. 비가 멎는 대로 나를 따라오시게."
※ 2: 기이한 노승과의 인연, 천하에 숨겨진 비룡승천의 명당을 점지받다
노승의 걸음은 늙고 병든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랬다. 비에 젖어 진창이 된 미끄러운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구름을 타는 신선처럼 가볍고 거침이 없었다. 송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젖은 짚신을 질질 끌면서도 노승의 뒤를 놓칠세라 바짝 쫓았다. 험준한 바위 골짜기를 두 개나 넘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낯선 산의 7부 능선쯤에 도달했을 때였다. 빽빽하게 시야를 가리던 소나무 숲을 지나자 거짓말처럼 눈앞이 탁 트이며, 산 중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둥그렇게 푹 파인 아늑하고 포근한 지형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승은 들고 있던 낡은 지팡이로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의 정중앙을 가리켰다.
"자, 저 앞을 자세히 보시게. 좌측으로는 청룡이 살아 꿈틀거리듯 산맥이 겹겹이 두터운 장벽을 에워싸고 있고, 우측으로는 백호가 다소곳이 엎드려 땅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완벽한 형국이네. 앞으로는 안산(案山)이 정중하게 주인을 향해 읍을 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맑은 물이 옥대처럼 굽이쳐 흐르니 천지의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저 한가운데 오롯이 맺히는 자리지. 겉보기엔 평범한 흙 같으나 파보면 흙의 빛깔이 오색으로 찬란할 것이고, 묻힌 자의 뼈를 십 년 안에 황금빛으로 물들일 천하에 둘도 없는 대명당일세. 이곳에 부친을 모시면 자네 가문은 만세토록 영광을 누릴 것이야."
송생은 풍수지리의 깊고 오묘한 이치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노승이 가리킨 그 자리에 서는 순간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뻥 뚫리고 온몸을 감싸는 듯한 따뜻하고도 강렬한 기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산중의 와중에도 신기하게도 그곳만큼은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했고, 꽁꽁 언 땅 사이로 희미하게 봄날의 훈풍 같은 따스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했다. 과연 천하의 명당이라는 노승의 말이 한 치의 허언이 아님을 온몸으로 직감했다.
"스님! 진실로,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백골이 진토 되어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님의 한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생이 감격에 겨워 진흙 바닥에 엎드려 수십 번 절을 올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놀랍게도 그 기이한 노승은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발자국 하나 남겨져 있지 않았다. 마치 산신령이 현신하여 효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복해 자리를 점지해 주고 홀연히 떠난 것만 같았다. 송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지난 반년 동안 겪었던 뼈를 깎는 서러움과 고생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마침내 아버지를 편히 모실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환희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집으로 돌아온 송생은 며칠 후, 가매장해 두었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힘이 좋은 장정 일꾼 서넛을 부르고, 지관의 역할을 대신하여 장례 절차를 이끌어줄 마을 최고령 어르신을 모셔 왔다. 아버지를 모신 낡은 관을 소달구지에 싣고 노승이 점지해 준 산 중턱으로 향하는 송생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눈부시게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길일, 일꾼들이 노승이 가리켰던 혈(穴) 자리에 조심스레 곡괭이를 대기 시작했다.
"아따, 이 땅 참 기가 막히게 부드럽구먼! 겉은 겨울내 얼어붙은 동토인 줄 알았더니 삽이 마치 두부 썰 듯 쑥쑥 들어가. 게다가 땅속에서 무슨 구들장 피워놓은 것처럼 훈훈한 김이 다 올라오네그려. 내 평생 땅을 파봤지만 이런 명당은 처음이여!"
"어허, 이보게들! 조심해서 파게나. 천하의 명당 혈토(穴土)가 다치지 않게 아주 살살 다루란 말일세!"
장정들이 땅을 조심스레 파 내려갈수록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누런 흙이나 시커먼 돌덩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운 비단에 물을 들인 듯 붉고 노랗고 푸른빛이 감도는 오색 찬란한 흙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풍수지리에서 전설로만 전해진다는 오색혈토, 즉 제왕이나 삼 정승이 날 만한 천하의 대명당에서만 나온다는 신령스러운 흙이었다. 일꾼들과 동네 어르신들은 삽질을 멈추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경악했다.
"송서방! 자네 대체 이런 기가 막힌 천하의 자리를 어찌 구했는가! 이 오색 흙이 나오는 자리에 부친을 모시면 자네 가문에서 삼 정승 육 판서가 나오는 것은 떼어 놓은 당상일세! 찢어지게 가난했던 안동 송씨 가문이 이제 하늘로 비상하여 호의호식하겠어!"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과 경탄이 섞인 환호에 송생은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아버님, 이제야, 참으로 이제야 아버님을 편안하고 따뜻한 곳에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디 굽어살피시어 우리 가문의 지독한 한을 풀어주시옵소서.'
그런데, 무덤의 관이 들어갈 광중(壙中)을 거의 다 파내려 가며 바닥을 평평하게 다질 즈음이었다. 삽질을 하던 덩치 큰 일꾼의 삽자루 끝에 둔탁하면서도 묵직한 마찰음이 일었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일꾼의 손목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어? 이게 뭣이여. 산 중턱 깊은 땅속에 웬 반반하고 시커먼 돌덩이가 다 묻혀 있디야?"
일꾼들이 호기심에 주변의 오색 흙을 손으로 걷어내자, 가로세로 두 자 남짓한 아주 평평하고 매끄러운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돌판 하나가 웅크리듯 단단하게 묻혀 있는 것이 그 기괴한 자태를 드러냈다.
※ 3: 땅을 파던 중 기혈에서 쏟아진 오색 흙, 그리고 발견된 섬뜩한 비석
"아니, 이리 깊은 산중의 땅속에서 웬 정교하게 다듬어진 비석 조각이 다 나온단 말인가? 혹시 예전에 뉘 집 조상을 모셨다가 파간 파묘 자리란 말인가? 아니면 묘를 수호하는 지석(誌石)인가?"
마을 어르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혀를 끌끌 차더니, 쭈그려 앉아 비석 위에 덮인 오색 흙을 맨손으로 살살 훔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흙이 걷어지고 드러난 돌의 모양새는 무덤 앞에 세우는 일반적인 묘비석이나 망자의 인적 사항을 적어 묻는 묘지석과는 그 형태가 확연히 달랐다. 깊은 땅속 명당의 혈 바로 아래에 누군가 고의로, 아주 은밀하게 파묻어 둔 듯한 묵직하고 서늘한 돌판이었다. 그리고 그 매끄러운 오석 위에는 사람의 붉은 피로 쓴 듯 선명한 주사(朱砂)로 기이하고도 불길한 한자들이 빼곡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일꾼들이나 마을 어르신은 까막눈이었기에 돌판에 적힌 붉은 글씨가 무슨 뜻인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신기한 물건이 나왔다며 웅성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한자에 능통했던 송생의 눈빛은, 비석의 첫 구절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차지자(此地者)는 천하의 대명당이라...' (이 땅은 천하의 대명당이라...)
송생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두 손으로 무거운 돌판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오색 흙의 훈훈한 온기와는 대조적으로 돌판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글귀는 예언처럼 섬뜩하리만치 단호하고 명확하게 이어졌다.
'이곳에 조상의 뼈를 묻는 자는 십 년 안에 당대 발복하여 가문에 삼 정승 육 판서가 대대로 끊이지 않을 것이며, 천만금의 재물을 얻어 나라 제일의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허나, 세상 이치에 공짜는 없는 법. 이 땅이 품은 거대하고 맹렬한 기운은 그 이치상 필연적으로 주변의 살아있는 양기를 억지로 흡수하여 발복하는 무서운 악혈(惡穴)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고로, 이 자리에 하관을 마치는 즉시, 이 산을 마주 보고 있는 산 아래쪽 십 리 밖 촌락에 원인 모를 끔찍한 역병과 흉년이 들이닥칠 것이다. 수백 명의 죄 없는 양민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나갈 것이요, 가축은 말라죽고 땅은 썩어갈 것이다. 즉, 저들의 무고한 목숨을 제물로 삼아 네 가문의 번영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남의 뼈를 깎아 내 살을 찌우고 남의 피를 마셔 내 목을 축이는 끔찍하고 극악무도한 형국이니, 부디 하늘의 도리를 알고 인간의 덕을 중히 여기는 군자라면 결코 이 저주받은 자리를 탐하지 말고 속히 흙을 덮어 도망칠지어다.'
송생은 돌판을 들여다보던 두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눈앞이 새하얘지는 끔찍한 현기증을 느꼈다. 비석에 새겨진 핏빛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숨이 턱 막혀왔다. 비석이 가리키는 '산 아래 십 리 밖 촌락'이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송생의 늙은 어머니가 계신 집이 있는 마을이자, 지금 당장 이 무덤을 파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도와주고 있는 선량한 일꾼들과 이웃 어르신들이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바로 그 아랫마을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 조상, 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와 평생을 함께 숨 쉬고 살아온 수백 명의 죄 없는 이웃들을 끔찍한 역병의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한단 말인가! 아버님을 이 화려한 오색 명당에 모시는 대가가, 수많은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의 끔찍한 피와 눈물이란 말인가!'
비석을 쥔 송생의 앙상한 두 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떨렸다. 조금 전까지 오색 찬란한 혈토를 보며 가슴 벅차하던 환희와 희망은 순식간에 차갑고 소름 끼치는 공포와 절망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천하의 명당이라는 노승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다만, 그 거대한 명당이 어떤 잔혹한 방식으로 기운을 긁어모아 자손을 발복시키는지에 대한 무서운 이면의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 기이한 노승은 처음부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송생의 그릇과 도덕심을 시험하고자 이 지독하고도 잔인한 운명의 시험대에 그를 올려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송서방! 대체 그 붉은 글씨가 쓰인 돌덩이에 뭣이라 적혀 있기에 그리 멀쩡하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사색이 되었는가? 설마 무덤 자리에 나쁜 액운이라도 끼어 있다는 경고문인가?"
옆에서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이 송생의 기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불안한 눈빛으로 재촉했다. 흙투성이가 된 일꾼들도 삽질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며 송생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만약 이 돌판에 적힌 소름 끼치는 진실을 그대로 입 밖에 낸다면, 당장 마을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관을 내팽개치고 달아날 것이 뻔했다. 아니, 자신들을 죽여 가문을 살리려 했다며 송생을 저주하고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송생은 핏기가 가신 입술을 질근 깨물어 피를 내었다. 머릿속에서는 이승과 저승, 탐욕과 양심을 오가는 두 가지 목소리가 격렬하게 충돌하며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눈 꽉 감고 거짓말을 해라! 그저 옛 무덤의 쓸모없는 돌이라고 속이고 서둘러 하관을 마쳐버려라! 이 지긋지긋하고 비참한 가난의 굴레를 단번에 끊어내고, 네 자식들에게 떵떵거리는 정승 판서의 화려한 비단길을 열어줄 유일무이한 기회가 아니더냐! 평생 고생만 하신 아버님의 피맺힌 한을 풀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다! 부모를 위한다는 알량한 명분으로 수백 명의 죄 없는 이웃을 도살하는 것이 어찌 글을 배운 선비이자 사람의 도리란 말인가! 남의 피눈물과 시체 위에 세운 가문의 영광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서 굽어보시는 아버님께서도 결단코 이런 피비린내 나는 불의한 복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송생은 저주의 비석을 품에 와락 끌어안은 채, 광중을 빙 둘러싼 일꾼들과 어르신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들의 땀 흘리는 선량한 얼굴, 나와 함께 주먹밥을 나누고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주었던 이웃들의 따뜻한 얼굴 위로, 역병에 걸려 검은 피를 토하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끔찍한 환영이 겹쳐 보이며 송생의 이성을 옥죄어왔다.
※ 4: 가문의 발복과 타인의 파멸 사이, 피를 토하는 고뇌 끝에 내린 결단
산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묘터에는 팽팽하고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모든 이의 시선이 돌판을 안고 사시나무 떨듯 떠는 송생의 입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송생은 폐부가 찢어질 듯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침내 벼랑 끝에서 결단을 내린 그의 붉게 충혈된 눈빛에는 헤아릴 수 없는 서글픔과 단호함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옛날 어느 부자의 무덤을 썼을 때 버려진, 망자의 이름 몇 자가 적힌 쓸모없는 비석 조각인 듯합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송생은 지독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품에 안고 있던 비석을 뒤쪽의 덤불숲 바위 뒤로 멀리 던져버렸다. '툭' 하고 돌이 구르는 소리에 일꾼들은 그제야 잔뜩 긴장했던 어깨를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흙 묻은 삽을 고쳐 잡았다.
"에잉, 깜짝 놀랐네! 송서방이 하도 사색이 되길래 무슨 귀신 붙은 불길한 물건인 줄 알았구먼. 자자,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바닥을 다지고 관을 내립시다! 이 천하 명당의 기운이 날아가기 전에 어서 모셔야지!"
일꾼들이 다시 신이 나서 오색 흙을 퍼내며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기 시작했다. 이제 무덤골이 완성되었으니 밧줄로 관을 내리고 저 신비로운 오색 흙을 덮기만 하면, 송생의 가문은 대대로 삼 정승 육 판서를 배출하며 찬란한 부귀영화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가난과 설움의 세월이 끝나는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하관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가 커질수록, 송생의 귓가에는 아까 비석에서 읽었던 섬뜩한 경고문이 수천 마리 굶주린 벌떼의 날갯짓처럼 미친 듯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하관을 마치는 즉시 촌락에 원인 모를 끔찍한 역병이 들이닥칠 것이며... 수백 명이 피를 토하고 죽어갈 것이다...'
밧줄이 관에 묶이고, 일꾼들의 구령 소리에 맞춰 낡은 관이 서서히 오색 명당의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려는 찰나였다. 송생은 관을 덮을 흙을 한 줌 쥐고 준비하던 중,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미치광이처럼 돌연 눈을 까뒤집고 소리를 냅다 질렀다.
"멈추시오! 하관을 멈추고 모두 삽을 당장 내려놓으시오!"
산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날카롭고 갑작스러운 호통에 일꾼들은 밧줄을 쥔 채 어안이 벙벙해져 돌하르방처럼 굳어버렸다.
"송서방? 아니 다 파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러는 겐가? 길일의 하관할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이러다 부정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송생은 들고 있던 흙을 내동댕이치며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피가 나도록 땅을 치며 짐승처럼 통곡하기 시작했다.
"덮으시오... 파낸 흙을 다시 다 무덤에 덮어버리란 말이오! 관을 빼내시오! 이 자리는... 이 무서운 자리는 우리 가엾은 아버님이 누우실 자리가 결코 아닙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미쳤나! 천하의 으뜸가는 비룡승천의 명당이라며, 이 귀한 오색 흙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덮으라니! 대체 갑자기 왜 실성한 짓을 하는 거야!"
마을 어르신이 기가 막혀 지팡이로 땅을 쾅쾅 구르며 호통을 쳤지만, 송생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세차게 젓고 또 저었다.
"진실을... 흑흑, 숨겨왔던 진실을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제가 던져버린 그 붉은 글씨의 비석에는... 이 자리를 쓰면 당대 발복하여 삼 정승이 나오지만, 그 대가로 산 아래 우리 마을에 끔찍한 역병이 돌아 여러분들을 포함해 수백 명이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는 잔혹한 저주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명당이 아니라, 남의 뼈와 살을 갉아먹고 이웃의 피를 빨아 내 가문을 살찌우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악혈(惡穴)이란 말입니다!"
"뭐... 뭣이라! 그, 그게 정녕 사실인가? 역병이라니!"
사람들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여 삽을 내던지고 엉금엉금 뒷걸음질을 쳤다. 송생은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피를 토하듯 오열하며 말을 이었다.
"내 부모를 명당에 편히 모시자고, 내 자식들 비단옷 입혀 출세시켜 보자고, 어찌 평생 동고동락한 여러분들과 죄 없는 핏덩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짐승이나 할 짓이지,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닙니다! 삼 정승이고 천만금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으니, 어서 저 파낸 오색 흙을 다시 메워 이 무서운 혈을 영원히 닫아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그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처절한 절규였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명당, 지독한 가난과 멸시의 굴레를 단숨에 끊어낼 유일한 황금 동아줄을 자기 손으로 직접 끊어내는 바보 같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결단. 허나 그것은 묏자리 발복이라는 땅의 맹목적인 기운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仁)의 도리와 양심을 택한 숭고하고도 눈물겨운 선택이었다.
결국 일꾼들은 반신반의하며 공포에 떨면서도, 송생의 단호하고도 처절한 뜻을 꺾지 못했다. 그들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파내었던 오색 흙을 다시 삽으로 퍼부어 광중을 완전히 메워버렸다. 천하의 대명당이 주인을 잃고 다시 차가운 흙더미 아래로 영원히 모습을 감추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못난 불효자를 부디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이웃의 피가 묻은 금관을 머리에 쓰느니, 차라리 맑은 물에 세수한 가난한 평민으로 평생을 살겠습니다. 그것이 아버님께서 제게 평생 가르치신 선비의 꼿꼿한 도리이자 하늘에 떳떳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송생은 굳게 닫혀버린 빈 땅을 피맺힌 손으로 쓰다듬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슴 한편이 뻥 뚫린 듯 헛헛하고 허탈했지만, 이상하게도 수십 년 묵은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은 듯 머릿속은 맑고 평온해졌다. 이제 아버지를 모실 새로운 자리를 다시 찾아 나서야 했다. 화려한 오색 명당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따뜻한 아침 햇볕이 조금이라도 잘 들고, 찬 물이 고이지 않는 평범하고 소박한 야산이면 족했다. 송생은 관을 싣고 다시 터덜터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슬프고도 고독한 뒷모습을 지켜보는 산봉우리 위로, 쓸쓸하면서도 장엄한 붉은 노을이 세상을 덮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 5: 천하명당을 흙으로 덮고 척박한 야산에 아버지를 모신 바보 자식
천하의 진귀한 대명당을 영원히 어둠 속에 묻어버리고 다시 산을 내려오는 길, 송생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납덩이를 매단 듯 무겁고 참담했다. 하늘은 어느새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핏빛으로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은 마치 송생이 제 손으로 포기해 버린 가문의 찬란한 미래가 허망하게 타들어 가는 듯 처연하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아버지를 모신 낡은 관을 실은 소달구지가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며 덜컹거릴 때마다, 송생의 가슴도 갈기갈기 찢어지듯 덜컹 내려앉았다. 땀과 흙범벅이 된 일꾼들과 동네 어르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송생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굳은 표정에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갈 무서운 역병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낸 송생에 대한 깊은 안도감과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독하고 끔찍한 가난의 굴레를 단번에 벗어던질 수 있었던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린 미련하고 바보 같은 청년에 대한 짙은 안타까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송서방,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자네의 그 갸륵하고 숭고한 심성을 어찌 하늘인들 모르시겠는가. 비록 눈앞의 화려한 명당은 놓쳤다 하나,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린 그 태산 같은 덕은 반드시 먼 훗날 자네와 자네 후손들에게 더 큰 복으로 돌아올 것일세. 낸들 자네의 그 용기 있는 결단에 내 목숨을 빚졌으니,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네."
마을 어르신이 다가와 송생의 축 처진 어깨를 토닥이며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송생은 그저 희미하고 씁쓸한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당장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관 속에 누워계신 가여운 아버지를 모실 새로운 자리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뿐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사방이 캄캄해지고 있었기에, 다시 먼 길을 떠나 용한 지관을 찾거나 명산을 둘러볼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결국 송생이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뒷산, 나무도 몇 그루 자라지 않는 척박하고 평범한 야산의 중턱이었다. 그곳은 흙보다 돌이 많아 풀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메마른 땅이었지만, 그저 아침 햇살이 다른 곳보다 조금 일찍 들고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어떤 풍수지리적 이점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초라한 터였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부디 이곳에 묏자리를 파주십시오. 비록 제왕이 날 천하의 명당은 아닐지라도, 이곳은 우리 아버님께서 평생 피땀 흘려 일구시던 마을의 늙은 들녘과 이웃들의 집이 한눈에 가득 내려다보이는 곳이니 죽어서도 결코 외롭지는 않으실 겁니다."
송생의 간곡한 부탁에 일꾼들이 횃불을 밝혀 들고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 팠던 묏자리, 삽이 두부 썰 듯 부드럽게 들어가며 훈훈한 온기를 내뿜던 오색 흙의 명당과는 확연히 달랐다. 땅은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척박하고 메말라 있었으며, 조금만 파내려 가도 어른 머리통만 한 굵은 돌뿌리와 단단한 암반이 걸려 삽자루가 튕겨 나가며 불꽃이 튀기 일쑤였다.
"아이고, 이놈의 몹쓸 땅덩어리는 어찌 이리 독이 잔뜩 올랐나! 온통 뾰족한 돌투성이라 도무지 파지지가 않네그려. 뼈가 다 부서질 지경이여."
일꾼들이 비지땀을 비 오듯 쏟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생은 죄스러운 마음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무거운 곡괭이를 빼앗아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피물집이 터져 손잡이가 붉게 물들었지만, 송생은 고통조차 잊은 채 미친 듯이 거친 흙과 돌덩이를 파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짐승처럼 땅을 파헤치는 송생의 두 눈에서는 굵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메마른 돌밭을 적셨다.
'아버님,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참으로 못난 자식을 두신 탓에, 그 화려하고 따뜻한 오색 명당을 눈앞에 두고도 이런 차갑고 거친 돌밭에 아버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하오나 아버님, 남의 피눈물로 지은 으리으리한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걸치고 고기를 뜯느니, 차라리 평생 조밥을 먹고 가난할지언정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떳떳한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그것이 아버님께서 제게 물려주신 진정한 가르침이자 사대부의 기개가 아니겠습니까.'
칠흑 같은 밤이 이슥해져서야 간신히 돌을 모두 골라내고 관이 들어갈 만한 비좁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눈물의 하관식이 이어졌다. 송생은 피투성이가 된 두 손으로 흙을 한 줌씩 쥐어 관 위에 흩뿌리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아버지의 맺힌 한을 풀어드리겠다며 집안의 기둥뿌리까지 뽑아 반년 넘게 조선 팔도를 떠돌았던 그 험난했던 여정이, 결국 마을 뒷산의 척박한 돌밭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은 것이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작고 보잘것없는 봉분이 세워졌다. 번듯한 비석을 세울 돈조차 남아있지 않아, 주변의 늙은 소나무 가지를 베어내어 깎아 만든 조촐한 나무 묘표 하나를 머리맡에 꽂아둔 것이 전부였다. 송생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를 홀로 남겨두고 산을 내려오며 수백 번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평생 가난하고 고단했던 아버지의 삶처럼, 척박한 야산에 홀로 남겨진 굽은 봉분이 너무도 쓸쓸하고 초라해 보여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그의 마음 가장 깊은 한구석에는 무거운 쇳덩이를 내려놓은 듯한,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투명하고도 깊은 평온함이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6: 쏟아지는 폭우가 씻어낸 산천의 조화, 그리고 드러난 진정한 명당의 이치
가난하지만 떳떳하게 아버지를 야산에 모신 지 불과 석 달이 지난 어느 한여름 날이었다. 유난히 바람 한 점 없이 무덥고 숨이 턱턱 막히던 끈적거리는 날씨가 저녁 무렵부터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마치 거대한 먹물 통을 통째로 엎질러 놓은 듯 시커먼 먹구름으로 순식간에 뒤덮였고, 멀리서부터 굶주린 맹수의 포효 같은 우레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내 콩알만 한 굵은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밤이 깊어지자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 같은 폭우가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기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벼락이 칠흑 같은 어둠을 무참히 찢을 때마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는 장대비가 마을의 초가지붕들을 사정없이 때리며 부서질 듯한 소음을 냈다. 성난 바람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산속의 아름드리나무를 당장이라도 뿌리째 뽑아버릴 듯 사납게 흔들어댔다. 백 년 만에 처음 본다는 끔찍하고 기괴한 비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 모여 앉아 두려움에 떨며 뜬눈으로 공포의 밤을 지새웠다.
송생 역시 비가 새는 방구석에 앉아 덜덜 떨며 창밖의 어둠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옥죄는 두려움은 집이 무너지거나 비바람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존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아버님의 산소... 아버님의 산소가 위험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뒷산에 홀로 모셔둔 아버지의 초라한 묘 생각뿐이었다. 척박하고 가파른 돌산 중턱에 얕게 파서 거친 흙을 대충 덮어놓은 무덤이었다. 풀뿌리 하나 제대로 내리지 못한 그 연약한 봉분이다. 이렇게 산을 무너뜨릴 듯한 산사태가 날 듯 폭우가 쏟아지면, 틀림없이 묘가 처참하게 파헤쳐지거나 봉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가 아버지의 유골이 흙탕물 속에 나뒹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송생은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아버지를 지키고 싶었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거센 폭풍우에 몸이 튕겨 나갈 지경이라 도저히 칠흑 같은 산에 오를 수가 없었다. 송생은 밤새 흔들리는 문고리를 부여잡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하느님, 천지신명님! 부디 저희 가엾은 아버님을 지켜주십시오. 천하의 대명당도 제 손으로 포기하고, 남의 피눈물을 피하고자 얻은 작고 초라한 자리입니다. 제발 그 가여운 묘만은 비바람에 깎이지 않도록 무사히 지켜주시옵소서! 제 목숨을 거두어 가셔도 좋으니 아버님만은 편히 쉬게 해 주시옵소서!"
영원할 것 같았던 기나긴 공포의 밤이 지나고, 마침내 동이 트면서 세상을 부술 듯하던 비바람이 씻은 듯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아침 햇살이 한 줄기 비치자마자, 송생은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맨발로 뛰쳐나가 미끄러운 뒷산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흙탕에 수십 번 고꾸라지고 부러진 나뭇가지에 살갗이 처참하게 찢겨 나갔지만, 송생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아버지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죄책감에 휩싸여 단숨에 험한 산 중턱까지 뛰어올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마침내 아버지의 묘역이 있던 자리에 도달한 순간, 송생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처참하게 파헤쳐진 무덤의 잔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실로 경악스럽고도 기이한 대자연의 마법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젯밤의 그 끔찍했던 폭우가 척박했던 야산의 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것이다. 산의 한쪽 사면을 무겁고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암반과 쓸모없는 거친 돌무더기들이, 간밤의 거대한 산사태로 모조리 골짜기 아래로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 버렸다. 대신 그 흉물스러운 흙과 돌이 깎여나간 깊은 자리에는, 마치 조물주가 조각칼로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듯 둥글고 아늑하게 솟아오른 새로운 봉우리가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더욱 믿기 힘든 기적은 아버지의 무덤 그 자체였다. 거대한 산사태가 무덤을 무참히 덮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덤 주변의 험악한 돌무더기들만 칼로 도려낸 듯 깨끗하게 쓸어가 버리고, 무덤의 봉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온전하고도 단단하게 오롯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저 살아남은 것만이 아니었다. 비바람에 표면의 거친 겉흙이 씻겨 내려간 무덤의 주변으로는, 반년 전 그 악혈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영롱하고 맑은 금빛을 띠는 오색 혈토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간밤의 무시무시한 폭우는 산을 망가뜨린 재앙이 아니라, 오랜 세월 척박한 돌덩이 아래 깊숙이 숨겨져 있던 '진짜 천하 대명당'의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어 그 찬란하고 신령스러운 속살을 마침내 세상에 드러낸 것이었다.
※ 7: 땅의 기운을 이겨낸 사람의 덕, 하늘이 내린 만복을 누리는 가문의 탄생
송생은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기적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 도저히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흙 위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주변의 산세와 지형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산사태로 절묘하게 무너져 내린 부드러운 흙더미들은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굽이치며 무덤의 좌우를 겹겹이 감싸 안는 완벽한 청룡과 백호의 형상을 이루었고, 산 위에서 쏟아져 내린 맑은 빗물 줄기는 방향을 틀어 무덤 앞을 둥글게 휘감아 도는 거대한 옥대수(玉帶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평생 풍수지리의 '풍'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보아도 그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상서로운 기운이 따뜻하게 응집되는 완벽한 비룡승천의 진혈(眞穴)임이 틀림없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늘이, 하늘이 정녕 이 척박한 땅에 조화를 부리셨단 말인가!"
송생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뜨거운 경이로움의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젖은 낙엽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린 송생의 두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반년 전, 모진 비바람이 치던 깊은 산속 낡은 성황당에서 송생에게 밥을 얻어먹고 첫 번째 명당을 점지해 주었던 그 기이한 노승이 낡은 지팡이를 짚고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던 것이다.
"스, 스님! 스님께서 어찌하여 이곳에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허허허, 간밤의 거친 폭우가 씻어낸 대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장엄하고도 신비롭지 아니한가. 젊은이, 내 다시 한번 축하하네. 자네가 진정으로 천지가 감춘 대명당을 얻었구먼."
노승은 무덤 주변의 찬란한 오색 흙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송생은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노승의 발밑에 납작 엎드려 물었다.
"스님, 저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점지해 주셨던 그 화려한 자리를 제 손으로 버렸습니다. 남의 피눈물을 밟고 올라서는 끔찍한 악혈이었기에 흙을 도로 덮어 도망쳤고, 이 척박하고 쓸모없는 돌덩이 야산에 아버님을 초라하게 모셨습니다. 헌데 어찌 하루아침에 비바람이 불더니 이 척박한 돌산이 천하의 으뜸가는 명당으로 변한단 말씀이십니까?"
노승은 한없이 맑고 깊은 우물 같은 눈으로 송생을 내려다보며, 산천을 울리듯 자애롭고 웅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젊은이, 그대는 진정한 풍수지리의 근본을 아는가? 땅의 기운이라는 것은 고여서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의 덕과 인품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법이라네. 내가 처음 자네에게 점지해 주었던 그 화려한 자리는 사실 자네의 마음그릇을 시험하기 위해 보여준 가짜 혈자리, 즉 인간의 탐욕을 시험하는 무서운 흉지였네. 만약 자네가 재물과 권력에 눈이 멀어 이웃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갈 그 자리를 탐욕스럽게 취했다면, 자네의 가문은 십 년간 잠시 벼락부자가 되어 발복하는 듯하다가, 결국 원혼들의 끔찍한 저주를 받아 흔적조차 없이 멸문지화를 당했을 것이야."
노승의 무서운 진실에 송생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허나, 자네는 어떠했는가.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묏자리의 발복보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와 타인의 생명을 더 귀하고 무겁게 여겼지. 자신의 조상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앞에서도 결코 양심을 팔아넘기지 않은 자네의 그 위대하고도 눈물겨운 적선(積善)이 하늘을 크게 감동시킨 것이야. 하늘은 그 지극한 선행에 보답하고자, 간밤에 무서운 천둥번개와 폭우를 시켜 이 평범한 돌산의 겉껍질을 무참히 깎아내고, 수천 년간 땅속 가장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있던 진짜 진룡(眞龍)의 기운을 끌어올려 자네 아버지의 무덤을 따뜻하게 감싸게 한 것이네. 이보게 젊은이, 땅이 사람을 명당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자네의 맑고 어진 마음이 이 척박한 땅을 천하의 명당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란 말일세!"
그제야 우주 만물과 대자연의 모든 깊은 이치를 깨달은 송생은 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대성통곡을 했다. 자신을 어여삐 여겨주신 하늘에 대한 뜨거운 감사와, 비로소 사랑하는 아버지를 진정한 으뜸 명당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환희의 눈물이었다. 노승은 크게 웃으며 산등성이를 넘어 한 줄기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후로 다시는 송생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놀라운 기적의 날 이후, 송생의 고단했던 삶은 굳게 매듭지어졌던 실타래가 풀리듯 거짓말처럼 순탄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천하의 명당을 포기하고 이웃의 목숨을 살려낸 그의 숭고한 결단과 지극한 효심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팔도로 널리 퍼지면서, 고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양 조정의 대신들까지 송생의 인품을 앞다투어 칭송했다. 송생은 마을 사람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받아 뒤늦게 학문에 매진했고, 불과 몇 년 뒤 치러진 과거시험에서 당당히 장원급제를 하여 높은 벼슬길에 올랐다. 또한 그의 자손들 역시 하나같이 조상을 닮아 뛰어난 인품과 지혜를 갖추어, 대대손손 나라의 기둥이 되는 삼 정승 육 판서가 끊이지 않는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눈부시게 번성하게 되었다. 그것은 남의 억울한 불행을 잔인하게 밟고 얻어낸 거짓된 발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타인을 살려낸 참된 덕이 만들어낸 영원불멸의 축복이었다. 땅이 내뿜는 맹목적인 기운보다 백 배, 천 배 더 강한 것은 결국, 선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꼿꼿한 도리와 그것을 굽어살피는 하늘의 오묘한 이치였던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풍수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는 '덕'과 '양심'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반드시 화가 되어 돌아오고, 남을 배려하고 선을 베풀면 척박한 돌밭도 천하의 명당으로 변한다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 있네요. 오늘 하루, 내 주변에 따뜻한 마음 한 자락 나누어주는 진정한 명당 같은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야기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 '만복 야담'에서 더 재미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