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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어미 개를 간호한 선비, 개가 물어온 서책으로 장원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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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백일기도의 마지막 밤, 문을 열면 십 년 공부가 물거품이 되거늘…!" 평생을 바친 과거 시험을 앞두고 산사에 오른 선비. 백일기도가 끝나는 99일째 밤, 문밖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어미 개를 발견합니다. 출세냐, 생명이냐. 절체절명의 순간 선비가 내린 단 한 번의 바보 같은 선택이, 훗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엄청난 기적으로 돌아옵니다. 하늘을 감동시킨 선비의 위대한 선택, 지금 시작합니다.

    ※ 1: 벼랑 끝에 선 가문

    하늘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짙은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던 어느 유난히도 춥고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첩첩산중 험준하기로 이름난 태백산맥의 한 자락, 칼바람이 불어대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짚신 신은 발자국이 외롭게 눈밭 위에 찍히고 있었다. 얼어붙은 눈길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내, 그의 이름은 윤 서생이었다. 낡고 해진 무명 도포 자락 사이로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파고들었지만, 그의 깡마른 어깨에 짊어진 보이지 않는 숙명의 무게에 비하면 이깟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윤 서생의 가문은 본래 한양 도성에서도 내로라하는 뼈대 있는 명문가였다. 그러나 십여 년 전, 할아버지 대에 억울하고 참혹한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집안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가문의 기둥이었던 아버지는 그 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하루아침에 역적의 핏줄로 몰린 가문은 사람들의 멸시와 지독한 가난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홀로 남은 늙은 어머니는 오직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장손인 윤 서생 하나만을 바라보며 모진 세월을 견뎌내셨다. 매서운 한겨울에도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남의 집 허드렛일과 삯바느질을 도맡아 하셨고, 바늘에 찔려 피가 나는 손가락을 헝겊으로 동여매면서도 아들의 글공부를 위해 밤을 새우셨다. 윤 서생의 눈앞에는 자신이 과거 길에 오르던 날 아침, 찬물에 손을 담가가며 지어주신 따뜻한 쌀밥 한 그릇과, 아들의 무사 급제를 기원하며 서낭당 앞에서 두 손을 비비시던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생생하게 아른거렸다.

    '어머니, 불초한 자식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이번 대과(大科) 시험에서 기필코 장원급제하지 못한다면, 어찌 그 크고 깊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겠사옵니까. 제 목숨을 깎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한을 풀고 어머니의 굽은 허리를 펴게 해드릴 것이옵니다.'

    윤 서생이 굳은 결의를 다지며 도착한 곳은 산 중턱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낡은 암자, '백련암'이었다. 이곳 백련암의 산신각은 예로부터 영험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목숨을 걸고 백일기도를 올리면 천지신명과 산신령이 감복하여 반드시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대가로 지켜야 할 금기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만큼 가혹했다. 백 일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산신각 밖으로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되며, 살생을 절대 금하고, 짐승의 피나 오물을 가까이해서도 안 되었다. 먹을 것이라곤 하루에 단 한 번, 동자승이 문틈으로 넣어주는 생쌀 한 줌과 맑은 계곡물 한 그릇이 전부였다. 만약 이 엄격한 금기 중 단 하나라도 어긴다면, 기도는 그 즉시 부정을 타 효력을 잃게 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고 전해졌다.

    암자에 도착한 윤 서생을 맞이한 노(老) 주지 스님은 그의 퀭한 눈빛에 서린 독기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서생이여, 출세를 향한 뜻은 가상하나 백일기도는 인간의 욕망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고행 중의 고행이오. 수많은 유생과 무사들이 이 산신각에 들었으나,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고독이 만들어내는 마귀의 환상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서 뛰쳐나가거나 목숨을 잃었소이다. 진정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단 말이오?"

    윤 서생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노스님을 향해 깊이 삼배를 올렸다. "제 목숨은 이미 십 년 전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때 버린 것과 다름없사옵니다. 육신이 바스러져 흙이 될지언정, 뜻을 이루기 전에는 결단코 저 문밖을 살아서 나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주지 스님의 묵인하에 낡고 비좁은 산신각으로 들어선 윤 서생. 그곳은 문풍지 구멍 사이로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사정없이 들이치는 얼음장 같은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오직 희미한 촛불 하나와 향냄새만이 이곳이 기도 도량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윤 서생은 차가운 나무 널빤지 위에 무릎을 꿇고, 평생을 품고 살아온 낡은 사서삼경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간절한 기도를 시작했다.

    하루, 이틀, 열흘, 그리고 한 달. 시간은 마치 영겁의 늪에 빠진 것처럼 더디고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생쌀을 씹어 삼키며 주린 배를 달랬지만, 날이 갈수록 위장은 쪼그라들고 사지의 근육은 말라비틀어져 갔다. 몰려오는 수마(睡魔)를 쫓기 위해 윤 서생은 자신의 허벅지를 날카로운 바늘로 수없이 찔러가며 버텼다. 살을 에는 듯한 지독한 추위에 손발은 퉁퉁 붓고 동창이 걸려 진물이 흘렀지만, 그는 단 한 번의 신음조차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오직 한양에 계신 어머니의 눈물과, 억울하게 눈을 감으신 아버지의 유언만을 되새기며 매일같이 삼천 배를 올리고 또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산신령이시여! 부디 이 어리석고 가여운 선비의 피맺힌 소망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권세를 탐하여 남을 짓밟으려는 욕심이 아니옵니다. 억울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가난한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올곧고 청렴한 관리가 되겠나이다. 부디 제게 세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와, 이번 과거 시험에서 시제를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윤 서생의 목소리는 이미 갈라지고 쉬어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변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결기만큼은 시퍼렇게 날이 선 명검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백일기도를 올리는 산신각 주변으로는 인적이 뚝 끊겼고, 무서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가끔 암자의 어린 동자승만이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문밖에서 조심스레 생쌀 한 줌과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밀어 넣어 주고 도망치듯 사라질 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윤 서생의 몰골은 뼈만 남은 앙상한 해골처럼 흉측하게 변해갔다.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가슴까지 내려왔고, 두 눈은 해골처럼 깊게 함몰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깊은 눈동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만큼은 오히려 밤하늘의 샛별처럼 초롱초롱하고 무섭도록 맑게 빛나고 있었다.

    세속의 모든 욕망과 잡념이 떨어져 나가고, 오직 학문에 대한 숭고한 열정과 가문을 향한 처절한 책임감만이 그의 핏속에서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백련암에 머무는 다른 승려들과 과거를 준비하러 온 양반가 유생들조차, 처음에는 그를 미치광이 취급하며 비웃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멀리서 윤 서생이 머무는 산신각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의 지독한 인내심과 맹목적인 효심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토록 멀고도 험난했던 백 일의 끝이 비로소 눈앞에 보인다. 이 지독한 인고의 정성이 하늘에 닿는다면, 내년 봄에 있을 대과 시험에서는 반드시 붓끝에 신령이 서린 듯 명문장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버티자.'

    윤 서생은 꽁꽁 얼어붙어 감각조차 사라진 두 손을 비비며 다시금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문밖에서는 겨울 산의 굶주린 짐승들이 울부짖듯 매서운 산바람이 산신각을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로 윙윙거리며 불어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알량한 의지를 마지막으로 시험하려는 거대한 대자연의 잔혹한 시련과도 같았다. 그러나 윤 서생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흔들림 없이 목탁 소리와 같은 규칙적인 호흡으로 경전을 외우며 기도를 이어나갔다. 그의 굽은 등 뒤로,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낸 자만이 맞이할 수 있는 거룩하고도 무거운 백일기도의 겨울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 2: 백일기도의 아흔아홉 번째 밤

    인간의 피와 살을 깎아내는 듯했던 가혹한 고행의 시간. 마침내 백일기도의 대미를 장식할 아흔아홉 번째 밤이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찾아왔다. 오늘 밤 자정을 넘기고 내일 아침 동이 틀 때 첫 햇살을 맞이하며 저 문을 나서게 된다면, 윤 서생의 지독하고도 험난했던 백 일간의 기도는 완벽한 결실을 맺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인간의 간절함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해가 서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흉포한 눈보라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미친 듯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꺾일 듯 굉음을 내며 비틀거렸고, 낡은 산신각의 문풍지는 금방이라도 찢겨 나갈 것처럼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윤 서생은 이미 극한에 다다른 육체적 피로와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반쯤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백 일 가까이 이어진 단식과 수면 부족은 사내의 기력과 이성을 바닥까지 긁어낸 지 오래였다. 눈을 감으면 과거 시험장의 웅장한 풍경이 펼쳐지다가도, 이내 자신을 부르며 통곡하는 늙은 어머니의 환영이 나타났고, 때로는 억울하게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아버지의 환청이 귓가를 맴돌며 그를 괴롭혔다. 그것은 기도가 완성되기 직전, 인간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찾아온다는 끔찍한 마장(魔障)의 환상이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 마지막 고비에서 환상에 굴복하여 쓰러진다면, 지금껏 흘린 나의 피눈물과 어머니의 땀방울이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사특한 마귀의 유혹과 나약한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도(道)와 하늘의 지혜에 이를 수 있다. 흔들리지 마라, 내 영혼아!'

    그는 피가 맺히도록 허벅지를 강하게 꼬집고 입술을 깨물며 흐려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다잡았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를 토해내듯 사서삼경의 구절들을 소리 내어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낭독 소리가 거센 바람 소리에 묻혀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흩어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끼으응… 낑… 낑…… 끄으응…."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바람 소리 사이로, 무언가 짐승이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하는 소리가 미세하게 새어 들어왔다. 처음에는 바람이 찢어진 문틈을 스치며 내는 기괴한 소리이거니 여겼다. 아니면 자신의 나약한 정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마귀의 환청일 것이라 애써 무시하려 했다. 윤 서생은 들리지 않는 척 고개를 거칠게 내젓고는 더욱 큰 소리로 성현의 가르침을 읊조렸다. 그러나 신음소리는 멎기는커녕, 점점 더 애절하고 비통한 울음소리로 변하여 윤 서생의 고막을 날카롭게 후벼 파기 시작했다.

    "끼이잉… 컹… 끄응… 낑낑……."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필시 자신이 앉아 있는 문지방 바로 밖,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거대한 야생의 폭력 앞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짐승이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씨를 쥐어짜 내며 토해내는, 너무도 처절하고 애처로운 구조의 외침이었다. 굳게 감겨 있던 윤 서생의 두 눈썹이 미세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백 일 동안 산신각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내디뎌서는 안 되며, 짐승의 피나 부정한 생명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백일기도의 절대적인 금기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 된다. 결단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저 얇은 문 하나 밖에는 살을 도려내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고 있다. 야생의 미물이 짐승에게 뜯기거나 추위에 얼어 생을 다하는 것은 그저 무심한 대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내가 만약 지금 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여는 순간, 나와 내 가문의 목숨줄이 걸린 이 위대한 백 일간의 기도는 그 즉시 부정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모른 척해야 한다. 나는 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귀를 닫고 눈을 감아라!'

    윤 서생은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꽉 틀어막으며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의 귓가에는 이제 상처 입은 한 마리 어미 짐승의 신음소리만이 아니라, 갓 태어난 듯 핏덩이 같은 짐승 새끼들이 어미의 식어가는 품을 파고들며 꼬물거리는 갸냘픈 울음소리까지 선명하게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어미 짐승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제 새끼들만은 살려보려 눈밭 위를 발버둥 치는 비참하고 참혹한 정경이 얇은 문풍지 너머로 투명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게다가 문틈 사이로 훅 하고 밀려 들어온 매서운 밤바람 속에는, 비릿하고 진득한 짐승의 피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윤 서생의 호흡이 미친 듯이 거칠어졌다. 틀어막은 두 손 사이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십수 년 넘게 닳고 해지도록 읽어왔던 성현들의 가르침, 그가 숭상해 마지않던 공맹의 도리가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집어놓기 시작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라 하였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고 차마 그대로 두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 가르쳤거늘. 눈앞에서 얼어 죽어가는 가여운 생명들을 나의 출세와 기도를 핑계로 철저히 외면하고서, 내가 어찌 세상을 구하는 거룩한 학문을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만백성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훌륭한 목민관이 되겠다고 이 산신각에 들어와 목숨을 건 백일기도를 올리면서, 당장 저 문밖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미물 하나 내 품에 안아 구하지 못한다면… 훗날 내 어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 할 수 있겠는가!'

    무너져 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거대한 대의명분과, 지금 당장 죽어가는 생명이라도 살려내야 한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 사이에서 윤 서생의 맑은 영혼은 처절하게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만약 이 아흔아홉 번째 밤에 문을 연다면, 당장 내일 아침 동이 틀 때 암자의 스님들과 유생들에게 온갖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자명했다. 무엇보다, 밤낮으로 서낭당에 정화수를 떠놓고 아들의 급제만을 기원하며 기도하고 계실 늙은 홀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를 저지르는 꼴이 될 것이었다.

    "끼으응… 끄응……."

    바깥의 신음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고 잦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곧 어미 짐승의 심장 박동이 얼어붙어가고 있으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었다. 그 애처로운 소리가 눈보라 속으로 완전히 묻혀 끊어지려는 찰나, 꽉 감겨 있던 윤 서생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함몰된 그의 퀭한 두 눈동자에는 더 이상 갈등이나 망설임, 그리고 출세를 향한 집착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거룩하고 단호한 인간애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출세의 영광이 천금 같고 가문의 부흥이 태산 같다 한들, 지금 내 눈앞에서 차갑게 꺼져가는 이 가여운 생명의 무게보다 무거울 수는 없다. 이것으로 나의 기도가 부정을 타고 하늘이 나를 버리신다면, 내 기꺼이 이 모든 업보와 불효의 죄를 짐어지겠다!"

    윤 서생은 꽁꽁 얼어붙어 감각조차 없는 무릎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문 앞으로 다가간 그는, 백 일 동안 단 한 번도 만지지 않아 먼지가 쌓인 산신각의 차가운 쇠 문고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 치의 주저함이나 후회 없이, 그 낡고 무거운 나무 문을 좌우로 거칠게 밀어 젖혔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살을 베어내는 듯한 거센 눈보라와 함께 짙고 역겨운 피비린내가 훅 하고 윤 서생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덮쳐왔다. 기도의 금기가 완벽하게 깨어지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얄궂은 운명의 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 3: 금기를 깨고 문을 열다

    문이 열리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윤 서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지방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처박혀 있는 끔찍하고도 참혹한 형상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자비한 사냥꾼의 덫에 걸린 것인지 아니면 거대한 산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인지, 뒷다리가 형체도 없이 참혹하게 으스러진 커다란 누렁이 한 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눈 더미 속에 쓰러져 있었다. 새하얀 눈밭은 이미 어미 개가 흘린 검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어 끔찍하게 얼어붙어 가고 있었다.

    놀랍고도 가슴 아픈 것은 그 어미 개의 행동이었다. 어미 개는 자신의 뒷다리가 잘려 나가고 내장이 파열되어 숨이 끊어지는 극심한 고통의 와중에도, 갓 눈을 뜬 듯한 주먹만 한 핏덩이 강아지 세 마리를 자신의 배 밑 가장 따뜻한 곳에 품어 모진 찬 바람을 필사적으로 막아주고 있었다. 새끼 강아지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죽음의 그림자도 모른 채, 그저 차갑게 식어가는 어미의 품으로 파고들며 살려달라고 애처롭게 낑낑거리고 있었다. 어미 개는 덜컹거리며 문을 열고 나온 윤 서생을 발견하고는, 야생의 본능으로 경계하거나 짖기는커녕 눈물이 가득 고인 맑고 슬픈 눈망울로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제 가여운 새끼들만이라도 거두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세상 그 어떤 인간의 기도보다도 절절하고 비통한 어미의 눈빛이었다.

    "오호라… 가여운 것, 참으로 가여운 것아. 어찌 이 험하고 척박한 산속에서 이리 참혹하고 끔찍한 꼴을 당하였느냐. 걱정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거라. 내 다행히 아주 늦지는 않았으니,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너희 어미와 새끼들을 모두 살려낼 것이다."

    윤 서생은 영하의 맹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피투성이 눈밭으로 몸을 던졌다. 부정을 탄다며 백 일 동안 먼지 한 톨 묻히지 않고 고이 간직했던 자신의 하얀 무명 도포 자락을 거침없이 찢어냈다. 그리고는 어미 개의 뼈가 드러난 다리와 상처를 찢어진 도포 자락으로 단단히 동여맸다. 윤 서생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묵직한 어미 개와 세 마리의 새끼들을 한꺼번에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고는, 백일기도를 드리던 그 신성하고도 좁은 산신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고요하고 거룩해야 할 산신각 나무 바닥 위로 검붉고 끈적한 짐승의 피가 뚝뚝 떨어져 얼룩을 만들었다. 맑은 향냄새로 가득했던 신성한 공간은 순식간에 비릿한 피 냄새와 짐승의 악취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윤 서생은 백 일 동안 자신이 절을 올리던 가장 깨끗한 자리에 평소 덮고 자던 볏짚과 낡은 옷가지를 모두 끌어모아 깔고는 조심스럽게 개들을 눕혔다. 그리고는 산신각 한구석에 꺼져가던 화로의 불씨를 입으로 불어 살려내고,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짐승들의 몸을 밤새도록 녹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피로에 지쳐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어미 개의 곪은 상처를 자신의 입으로 직접 빨아내고 언 손으로 몸을 문질러가며 사투를 벌였다. 인간의 영달을 위한 백일기도를 올리던 신성한 전각이, 버림받은 짐승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구휼소로 완벽하게 변해버린 숭고한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광란의 춤을 추던 눈보라가 멎고 찬란한 겨울 햇살과 함께 동이 텄다. 백일기도를 훌륭하게 마친 윤 서생을 축하하고 그 경이로운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주지 스님과 암자에 머물던 수많은 유생이 산신각 문 앞으로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문은 바람에 반쯤 열려 덜컹거리고 있었고, 문 앞 눈밭에는 선혈이 낭자한 짐승의 핏자국과 어지러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불길하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주지 스님과 사람들이 경악하며 황급히 산신각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 이 무슨 해괴망측하고 천인공노할 짓이오!"

    주지 스님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팡이를 바닥에 구르며 소리쳤다. 산신각 한가운데, 피 묻은 누더기를 걸치고 상투가 반쯤 풀린 윤 서생이 커다란 어미 개와 새끼들을 제 품에 꼭 안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과 산신령을 모신 거룩한 제단 밑은 짐승의 피와 오물, 그리고 찢어진 옷가지로 형편없이 더럽혀져 있었다. 함께 온 양반가 유생들은 코를 틀어막고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대기 시작했다.

    "쯧쯧쯧! 양반의 체면에 어찌 이리 미련하고 융통성 없는 어리석은 위인이란 말이오! 단 하루, 아니 하룻밤만 참으면 될 것을. 그깟 하찮은 미물 새끼 몇 마리를 살리겠다고 이 신성한 기도를 송두리째 망치다니. 그깟 짐승의 목숨이 당신 가문의 명운과 당신 어머니의 피눈물보다 중요하단 말이오?"

    "백 일의 정성이 한순간에 짐승의 피로 부정을 탔으니, 부처님도 대노하시고 산신령도 노하셨을 겝니다. 기도가 깨졌으니 윤 서생의 이번 대과 시험은 보나 마나 비참한 낙방이오. 하늘이 가상히 여겨 내리려던 큰 복을 제 발로 걷어차고 시궁창에 처박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불효막심한 위인이로다!"

    사람들의 거친 질타와 경멸 어린 비웃음이 뾰족한 비수처럼 윤 서생을 향해 쏟아졌다. 윤 서생이 죽음을 불사하며 피땀 흘려 쌓아 올렸던 99일간의 위대한 정성이, 한순간에 '짐승을 끌어들인 부정한 짓'으로 매도되며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는 비참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란에 천천히 눈을 뜬 윤 서생의 표정은, 놀랍게도 깊은 산속의 맑은 호수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삿대질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품에 안겨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며 잠든 어미 개의 머리를 다정하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는 굳어버린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지 스님과 분노한 사람들을 향해 정중하고도 기품 있게 고개를 숙였다.

    "이 신성한 기도 전각을 짐승의 피로 더럽힌 죄는 백 번 천 번 비난받아 마땅하오나, 제 마음에는 단 한 점의 후회나 부끄러움이 없사옵니다. 제 눈앞에서 피 흘리며 얼어 죽어가는 가여운 생명을 외면하고 얻은 알량한 영광으로, 제가 어찌 세상의 이치를 논하고 고통받는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백 일의 기도가 깨어져 저의 과거가 낙방하고 평생을 가난 속에 썩는다 해도, 그것은 모두 저의 학문이 얕고 덕이 부족한 탓이니 하늘의 뜻으로 달게 받겠습니다."

    윤 서생의 기개 넘치고 꼿꼿한, 그러면서도 생명을 향한 숭고한 대답에 유생들은 말문이 막혀 얼굴을 붉히다 이내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떨치고 돌아섰다. 주지 스님만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미타불… 어리석은 중생인지, 아니면 생불(生佛)인지 내 눈으로는 알 도리가 없구나."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윤 서생은 피비린내 나는 자신의 해진 봇짐을 조용히 챙기고, 다리를 크게 다쳐 걷지 못하는 어미 개를 자신의 지게에 조심스럽게 실어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강아지들은 찬 바람을 맞지 않도록 찢어진 도포 품속 깊숙이 안은 채, 아무런 미련이나 회한 없이 산신각을 나섰다. 장원급제의 화려한 금의환향을 꿈꾸며 결연히 올랐던 험준한 산길. 그러나 백 일 뒤, 사람들의 온갖 비웃음을 등지고 짐승의 피를 뒤집어쓴 채 눈길을 헤치며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패배자의 몰골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품속에서는 어미 개의 따뜻하고 묵직한 심장 박동과 새끼들의 새근거리는 숨결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백 일 동안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윤 서생의 가슴을 세상 그 무엇보다 뜨겁게 덥혀주는, 세상 그 어떤 위대한 경전의 글귀보다도 묵직하고 가치 있는 생명의 온기였다.

    ※ 4: 비웃음을 등지고 하산하는 길

    모진 눈보라가 휩쓸고 간 백련암의 겨울 아침은 시리도록 맑고 차가웠다. 백 일 동안 갇혀 지내던 산신각을 등지고 험준한 산길을 내려가는 윤 서생의 발걸음은, 마치 천근만근의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고 더뎠다. 그의 마른 어깨에는 낡은 지게가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어미 개가 묶여 있었다. 윤 서생의 찢어진 도포 품속에서는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 세 마리가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꼬물거리며 희미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굶주림과 철야 기도로 이미 극한의 한계에 다달았던 윤 서생의 두 다리는 눈길 위에서 수없이 미끄러지고 꺾였지만, 그는 품속의 어린 생명들이 다칠까 봐 넘어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말아 바닥에 뒹굴었다.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의 깊고 고요한 두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한 한 점의 후회도 없는, 티 없이 맑고 숭고한 영혼의 빛이었다.

    반나절을 꼬박 걸어 마침내 윤 서생이 익숙한 고향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물가에 모여 있던 동네 사람들과 서당에서 함께 글을 읽던 동기 유생들이, 피투성이 누더기 차림으로 지게를 진 윤 서생의 기괴한 몰골을 발견하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산사에서 내려온 소식을 이미 전한 모양인지, 그들의 시선에는 경멸과 조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허, 저기 보게나. 가문을 살리겠다며 그 무서운 백일기도를 드리러 짐을 싸서 떠나던 윤 서생이 아니신가. 그런데 꼴이 저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부처님의 혜안을 얻어 오기는커녕, 어디서 다 죽어가는 똥개 새끼들을 주워 담은 개 장수가 되어 돌아왔구먼!"

    "쯧쯧, 내 일찍이 그럴 줄 알았지. 평소에도 사서삼경만 파고들며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없더니만, 과거 시험을 코앞에 두고 저리도 어리석은 짓을 자초하다니. 짐승 새끼 살리겠다고 신성한 기도를 더럽혀 부정을 탔으니, 하늘이 노하여 윤씨 가문도 이제 완전히 끝장이로세. 불쌍한 건 평생 삯바느질로 저 등신 같은 아들을 뒷바라지한 저 집 늙은 노모뿐이지, 암."

    사람들의 날 선 조롱과 비수 같은 비웃음이 귓가를 무자비하게 때렸지만, 윤 서생은 그저 묵묵히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마침내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아들의 무사 귀환만을 손꼽아 애타게 기다리던 늙은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내 아들아! 험한 산속에서 무사히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것이냐. 헌데… 네 몰골이 어찌 이리 험하게 상하고, 그 지게에 메고 온 피투성이 짐승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윤 서생은 지게를 조심스럽게 마당에 내려놓고, 어머니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산사에서 있었던 아흔아홉 번째 밤의 참혹했던 일들과, 자신의 손으로 기도의 금기를 깨버린 사실을 눈물로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다.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할 장손이, 고작 짐승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알량한 동정심 때문에 백일기도의 공든 탑을 제 손으로 철저히 무너뜨렸다는 뼈아픈 고백이었다. 윤 서생은 어머니가 대성통곡하며 크게 실망하여 자신을 매섭게 꾸짖을 것이라 예상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윤 서생의 뺨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거친 손길은 한없이 따뜻했고, 주름진 눈가에는 맑고 다정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잘하였다. 참으로 장하고 잘하였다, 내 아들아. 세상 사람들은 널 어리석다 비웃을지언정, 어미는 네가 너무도 자랑스럽구나. 그깟 벼슬과 출세가 다 무엇이더냐. 사람의 근본적인 도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남의 생명을 짓밟으며 얻은 벼슬자리는, 필시 모래 위에 지은 누각과 같아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법이다. 네가 죽어가는 짐승의 목숨을 이리도 귀히 여겼으니, 하늘인들 어찌 네 그 고운 심성을 몰라주겠느냐. 과거의 당락은 온전히 하늘의 뜻에 맡기고, 우선 이 불쌍하고 가여운 생명들부터 어서 방으로 들여 정성껏 돌보자꾸나."

    어머니의 자애롭고 지혜로운 위로에, 윤 서생은 그제야 참고 있던 서러운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부터 윤 서생네 모자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미 개와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거두어 먹였다. 자신들의 끼니를 절반으로 줄여가며 따뜻한 멀건 죽을 쑤어 어미 개의 입에 떠 넣어 주었고, 윤 서생은 글공부를 하는 틈틈이 험한 뒷산에 올라 지혈에 좋다는 약초를 캐와 돌로 짓이겨 어미 개의 찢어진 다리에 발라주었다.

    하늘도 그들의 지극한 보살핌에 감동한 덕분이었을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 같던 어미 개는 기적적으로 기력을 회복하며 생명의 끈을 부여잡았다. 비록 으스러진 뒷다리 하나를 영영 심하게 절게 되었지만, 어미 개는 꼬리를 치며 모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세 마리의 핏덩이 새끼 중 두 마리는 젖을 떼자마자 동네의 심성 착한 이웃들에게 좋은 쌀을 얹어주며 분양을 보냈고, 어미와 가장 빼닮아 유난히 눈망울이 영리해 보이는 수컷 강아지 한 마리만을 집에 남겨두었다. 윤 서생은 이 모자(母子) 개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신에게 큰 복을 안고 찾아왔다는 뜻으로, 어미는 '복순이', 새끼는 '복실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아지 복실이는 그날부터 윤 서생의 껌딱지가 되었다. 윤 서생이 비좁은 서재에 단정히 앉아 사서삼경을 소리 내어 읽으면, 복실이는 가만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평온하게 잠을 청했다. 그가 밤늦게까지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붓글씨를 연습할 때면, 언제나 곁에 엎드려 꼬리를 살랑거리며 가난한 선비의 깊은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때로는 윤 서생이 다가오는 과거 시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과 사람들의 비수 같은 조롱에 지쳐 남몰래 깊은 한숨을 쉴 때면, 복실이는 어김없이 다가가 자신의 작고 거친 혀로 그의 눈물을 핥아주며 위로를 건네곤 했다.

    "그래, 복실아. 네 말이 맞다. 세상 사람들이 날 미련하다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도, 내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내 마음이 떳떳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너희들을 살려낸 그 밤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남은 기간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하여 글을 읽는다면, 하늘도 반드시 이 둔한 머리에 길을 열어주실 게다."

    윤 서생은 복실이의 따뜻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짐승을 선택하여 기도를 망쳤다는 주위의 멸시 어린 시선은, 오히려 윤 서생이 더욱 독하게 학문에 매진하는 강력한 채찍질이 되었다. 가난한 선비의 작은 초가집 서재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현의 가르침을 외우는 카랑카랑한 낭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곁에는 항상 절름발이 복순이와 영리한 복실이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호위무사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5: 다가오는 과거 시험

    어느덧 만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산과 들에 연초록 싹이 돋아나며 소생하는 따뜻한 봄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는 것은, 곧 조선 팔도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유생이 한양 도성에 모여 실력을 겨루는 국가 최대의 행사인 대과(大科) 시험이 열린다는 뜻이었다. 윤 서생의 서재에도 과거 시험을 불과 보름 남짓 앞둔 팽팽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이 무겁게 감돌고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윤 서생은 기름이 아까워 심지를 반으로 줄인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낡아 빠진 기출 문제집들을 뒤적이며 턱을 괸 채 깊고 무거운 상념에 잠겨 있었다. 아무리 책을 파고들고 밤을 새워 글을 써보아도, 이번 시험의 시제(試題, 시험 주제)가 무엇일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최근 조정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북방에서는 오랑캐들의 잦은 국경 도발로 백성들이 피난길에 오르며 국방이 어지럽고, 남쪽 지방은 수년째 이어진 지독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어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전란에 대비하여 군대를 양성하는 병법과 국방을 묻는 시제가 나올 것인가, 아니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휼하고 썩어빠진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잡을 치국평천하의 방도를 묻는 시제가 나올 것인가. 내 학문이 이토록 얕고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아 그 갈피를 잡기 어렵구나. 아아, 만약 그날 밤 백일기도를 무사히 마쳤더라면, 산신령의 영험한 혜안을 빌려 시제를 꿰뚫어 볼 수 있었을까….'

    가문의 명운이 걸린 과거 시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과 초조함이 온몸을 엄습하자, 윤 서생의 마음속에 아주 잠시나마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나약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답답한 마음에 붓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길게 내쉬려던 바로 그때였다.

    쾅!

    갑자기 서재의 낡은 나무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깜짝 놀란 윤 서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어보니, 다름 아닌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복실이였다. 그런데 평소 얌전하고 깔끔을 떨던 복실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에 진흙과 먼지, 끈적한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촉촉해야 할 콧등과 발바닥에는 딱딱한 돌덩이나 나무뿌리를 억지로 파헤치다 심하게 긁힌 듯 피가 맺힌 생채기가 가득했다. 게다가 복실이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입안에는 무언가 묵직한 물건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양 꽉 물고 있었다.

    "아니, 복실아! 네 꼴이 어찌 이리 험악하냐. 발바닥에 피가 다 나고… 한밤중에 대체 산속 어디서 무얼 하다 이리 상해서 돌아온 것이야!"

    윤 서생이 다급히 다가가 강아지를 안아 올리려 하자, 복실이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입에 물고 있던 묵직한 물건을 윤 서생의 발밑 돗자리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것은 두껍고 빳빳한 짐승의 가죽과 겹겹의 기름종이로 꽁꽁 싸여 있는, 흙투성이의 작고 낡은 서책 무더기였다.

    "이…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네가 밤새 험한 산속에서 땅을 미친 듯이 파다 주워온 짐승의 뼈다귀라도 되는 게냐?"

    윤 서생은 의아함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흙이 잔뜩 묻은 기름종이 끈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천 년의 묵은 곰팡내와 짙고 깊은 묵향을 동시에 풍기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아주 오래된 고서(古書)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책의 표지는 헤져서 제목의 글씨가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지만, 윤 서생이 떨리는 손으로 침을 묻혀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의 두 눈이 커다랗게 튀어나올 듯 팽창했다.

    "이… 이것은! 맙소사, 진정 이것이 실존한단 말인가!"

    그 서책은 단순한 글 모음집이나 흔한 경전이 아니었다. 수백 년 전, 고려 시대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난세를 평정하고 태평성대를 이룩했던 전설적인 천재 명재상이 평생의 통치 철학과 백성을 구제하는 비법을 낱낱이 기록해 둔 '절세의 비서(秘書)'였다. 시중에서는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어 오직 소문과 전설로만 구전되던, 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목숨을 걸고 읽어보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책이었다. 특히 책의 한가운데에는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는 곡식 분배의 원리부터,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외적을 물리치는 '치국구민(治國救民)'의 방도가 귀신같은 통찰력과 명쾌한 논리로 적혀 있었다.

    "복실아… 네가, 네가 이 천하의 귀한 보물을 대체 어디서 구해왔단 말이냐! 설마 네가… 며칠 전부터 밤마다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더니, 내 깊은 근심을 눈치채고 나를 위해 이 밤중에 그 험한 산속과 폐사지를 몽땅 헤집고 다녔던 것이냐?"

    복실이는 흙투성이가 된 윤 서생의 놀란 얼굴을 보며, 자신이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기분 좋게 "멍!" 하고 짧게 짖었다. 그러더니 이내 극도의 피로가 몰려온 듯 앞발을 모으고 윤 서생의 발등에 턱을 괴며 스르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복실이의 찢어진 발바닥에서 배어 나온 핏자국을 본 윤 서생의 가슴속에서, 견딜 수 없이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말 못 하는 미물일지라도, 자기를 거두어 준 은혜를 잊지 않고 주인의 깊은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발톱이 빠지도록 언 땅을 파서 이 귀한 비서를 찾아다 바친 것이다.

    "고맙다…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복실아. 네가 핏방울을 흘리며 물어다 준 이 바다와 같은 은혜, 내 평생토록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내게 내린 가장 크고 위대한 복은 산신령의 영험함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의 생명을 살린 그날 밤의 내 선택이었구나."

    윤 서생은 복실이의 흙투성이 머리를 품에 안고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그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복실이가 물어다 준 비서의 내용에 푹 빠져들었다. 책 속에 담긴 깊고 심오한 가르침은, 그동안 윤 서생이 풀지 못했던 학문의 갈증과 세상을 향한 답답한 안목을 거대한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씻어 내려 주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느새 세상을 구원할 명쾌한 논리와 살아 숨 쉬는 철학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 6: 기적이 일어난 과장

    드디어 조선 팔도의 모든 선비가 평생을 바쳐 준비한 운명의 날이 밝았다. 연분홍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한양 도성의 넓은 궐문 앞 광장(과장, 科場)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수천 명의 내로라하는 유생들이 과거를 치르기 위해 구름 떼처럼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최고급 비단 도포를 입고 값비싼 먹과 벼루를 거느린 하인들의 시중을 받는 명문가 자제들 틈에서, 누렇게 빛이 바랜 무명옷을 입고 홀로 낡은 봇짐을 안고 선 윤 서생의 모습은 벼룩 무리 속의 먼지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윤 서생의 고향에서 함께 올라온 유생들은 과장 한가운데서 그를 발견하고는 여전히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쑥덕거리며 비아냥대기 바빴다.

    "어허, 저기 보게나. 백일기도를 망치고 부정을 탔다던 그 융통성 없는 윤 서생이 결국 낯짝도 두껍게 과거장에 나타났구먼. 개를 살리겠다고 산신령의 노여움을 단단히 샀으니, 필시 붓을 들기도 전에 손이 벌벌 떨려 화선지에 시커먼 먹물이나 엎지르고 쫓겨날 게야."

    "보나 마나 시제조차 해석하지 못해 백지로 답안을 낼 테지. 우리 고을의 수치로세, 수치야. 어서 저자 옆자리를 피해 앉세나. 재수가 옴 붙을라."

    하지만 윤 서생은 그들의 조롱 섞인 험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돗자리를 펴고 단정히 무릎을 꿇은 채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속에는 며칠 전 복실이가 발에 피를 흘려가며 물어다 준 비서의 가르침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징소리와 함께 장엄하고도 팽팽한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북소리가 도성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곧이어 광장 한가운데 거대한 족자에 붓글씨로 쓰인 큼지막한 시제(試題)가 내걸렸다.

    수천 명의 유생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고 시제를 확인하고는, 저마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시험의 주제는 평소 유생들이 외우던 뻔한 유교 경전의 문구가 아니었다.

    『최근 수년째 혹독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유랑하며 도적 떼가 창궐하고, 북방의 정세마저 오랑캐의 침입으로 백척간두처럼 위태롭다. 이 미증유의 난국을 타개하고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하며, 무너진 나라의 근본을 다시금 굳건히 할 실질적인 방도를 논하라.』

    그것은 단순히 학문적 지식이나 화려한 문장력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선 조선의 운명을 타개할 실질적이고 비범한 구국의 책략을 요구하는, 극도로 난해하고 거시적인 주제였다. 수많은 유생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빈 벼루만 멍하니 바라보며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오직 단 한 사람, 윤 서생의 두 눈동자만이 강렬한 희열과 벅찬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참으로 기적이옵니다! 복실이가 물어다 준 그 비서의 가르침, 그리고 제가 밤을 새워 통달한 그 구국의 책략이 바로 이 시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사옵니까!'

    윤 서생은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붓을 치켜들었다. 백일기도의 산신각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자신의 그 순수하고 올곧은 선택이, 마침내 오늘 이 치열한 과거장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벼루에 먹을 듬뿍 찍어 거침없이 새하얀 화선지 위로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의 붓끝에서는 복실이가 전해준 고서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윤 서생이 평생 빈민가에서 가난하게 살며 겪고 쌓아온 백성들에 대한 깊은 애민(愛民) 정신이 완벽하게 융합되어, 세상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하고 웅장한 명문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무릇 나라의 근본은 하늘이 아니요 헐벗은 백성이며, 백성의 하늘은 다름 아닌 가득 찬 밥통에 있나이다. 탐관오리들의 닫힌 창고를 과감히 부수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벼랑 끝에 몰린 힘없는 자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 군주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야말로 굳건한 국방의 시작이자 태평성대의 흔들리지 않는 근간이옵니다. 제 눈앞에서 죽어가는 미천한 생명 하나를 불쌍히 여겨 거두지 못하는 관리가, 어찌 천하의 수많은 백성을 구휼하고 오랑캐의 칼날 앞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겠사옵니까…."

    산사에서 피를 흘리던 어미 개와 새끼들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뜨거웠던 온기와 눈물, 그리고 세상을 향한 간절한 호소가 글귀마다 살아서 숨 쉬듯 펄떡였다. 윤 서생의 손놀림은 마치 붓끝에 신령이 깃든 사람처럼 빠르고 정교했으며,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화선지 위로 뚝뚝 떨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날이 점차 어둑해지고 시험의 종료를 알리는 세 번의 징이 크게 울릴 때까지, 윤 서생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자신의 모든 영혼과 철학을 땀방울과 함께 답안지에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시험이 모두 끝나고 광장을 빠져나가는 유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이 쓴 화려한 답안을 자랑하며 뽐낼 때, 윤 서생은 그저 묵묵히 붓을 씻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낡은 봇짐을 챙겼다. 그의 마음은 과거의 당락이라는 속물적인 결과를 떠나, 세상에 자신이 평생 품고 있던 올바른 뜻과 생명에 대한 철학을 남김없이 토해냈다는 후련함과 벅찬 감동으로 이미 꽉 차 있었다.

    ※ 7: 장원급제로 돌아온 짐승의 보은

    대과 시험이 끝난 지 한 달 뒤, 화창하고 눈부신 봄날의 어느 늦은 오후. 늘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던 윤 서생의 고향 마을 어귀가 전에 없던 요란한 징소리와 나팔 소리, 그리고 흥겨운 풍악 소리로 거세게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오색 깃발을 펄럭이며 말을 집어탄 관아의 아전들과 수십 명의 나졸들이, 붉은 바탕에 먹물로 선명하게 글씨가 적힌 커다란 홍패(紅牌, 과거 급제자를 알리는 대자보)를 높이 치켜들고 마을로 요란하게 들이닥친 것이다.

    "에라, 길을 비켜라! 썩 물러가라! 이번 한양에서 치러진 국가 대과 시험에서 당당히 전체 장원으로 급제하신 윤대감 나리의 생가에 임금님의 하사품과 경사를 알리러 왔노라!"

    빨래를 하거나 밭을 매던 동네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혼비백산하여 길가로 몰려들었다.

    "뭐라? 장원급제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짐승 새끼를 살리겠다고 기도를 망쳐서 부정을 단단히 탔다던 그 융통성 없던 샌님 윤 서생이 수천 명을 제치고 장원을 했단 말이냐?"

    "아이고 맙소사, 이게 웬 기적이래! 하늘이 돕고 부처님이 돕지 않고서야 어찌 저 가난한 역적의 집안에서 장원이 나온단 말이냐!"

    평소 윤 서생을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경악과 놀라움, 그리고 경외심으로 붉게 물들었고, 소식을 듣고 하던 삯바느질을 내팽개치고 맨발로 뛰어나온 윤 서생의 늙은 어머니는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우러러보며 엉엉 소리 내어 통곡했다. 평생을 멸시 속에서 뼈가 부서져라 고생하며 흘렸던 피눈물이, 아들의 화려하고 기적적인 장원급제라는 소식 하나로 완벽하게 보상받는 찬란한 순간이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임금은 윤 서생이 낸 답안지를 읽고 또 읽으며 크게 감탄하여 용상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을 쳤다고 했다. "오랜 가뭄 끝에 쏟아지는 단비처럼, 짐승의 생명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애민의 철학이 뚝뚝 묻어나는 천하의 명문장이다! 이토록 맑고 깊은 뜻을 품고 백성의 고통을 아는 자라면, 능히 내 곁에서 무너진 조선을 구제할 훌륭한 정승이 될 재목이로다!"라며, 유례없는 칭찬과 함께 윤 서생을 즉각 암행어사로 발탁하고 파격적인 벼슬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머리에 화려한 어사화를 꽂고 눈부신 붉은 관복을 차려입은 윤 서생이, 위풍당당한 행렬과 함께 금의환향하여 집으로 들어섰다. 엎드려 통곡하는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던 윤 서생.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그의 곁으로 다가온 것은, 다리를 절면서도 꼬리가 떨어져라 반갑게 흔드는 어미 개 복순이와, 껑충껑충 뛰며 윤 서생의 관복 품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핥아대는 강아지 복실이였다. 윤 서생은 양반의 체통도 완전히 잊은 채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마리의 개를 꽉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고맙다… 참으로 고맙구나. 너희들이 나를 살렸고, 너희들이 나를 장원으로 만들었다. 너희들의 그 가여운 생명을 품었던 산신각에서의 그 밤의 선택이, 내 평생 가장 훌륭하고 위대했던 단 하나의 선택이었구나."

    동네 사람들은 모두 윤 서생 앞에 바짝 엎드려 과거 자신들의 어리석은 비난과 멸시를 눈물로 사죄했다. 윤 서생은 화를 내기는커녕 사람들을 너그럽게 한 명 한 명 일으켜 세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출세의 눈이 멀어 짐승의 목숨을 외면하는 매정한 짓을 저질렀다면, 제 어찌 임금의 눈에 든 저런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공명(功名)과 부귀영화는 억지로 좇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귀히 여기고 하늘이 정해준 도리를 다할 때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보너스 같은 것임을 내 이 아이들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그 후 윤 서생은 조정에 나아가 썩은 탐관오리들을 추상같이 벌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조선 제일의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역사에 깊은 이름을 남겼다. 그의 화려하고 넒은 관저 마당에는 언제나 나이가 들어 털이 하얗게 샌 복순이와, 늠름한 대장 견공으로 자란 복실이가 한가롭게 봄볕 아래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노대감이 된 윤 서생은, 따뜻한 툇마루에 앉아 복실이의 후손인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무릎에 앉은 어린 손주들에게 늘 이렇게 껄껄 웃으며 당부하곤 했다.

    "얘들아, 이 할애비의 말을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살아가며 눈앞의 황금이나 화려한 성공의 거대한 유혹이 닥칠 때,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네 양심이 시키는 가장 바보 같고 따뜻한 선택을 하거라. 당장은 세상 모두가 너희를 멍청하다 비웃고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아도, 하늘은 그 착하고 고운 선택을 똑똑히 기억하시어 반드시 천 배, 만 배의 기적 같은 복으로 되돌려 주신단다. 천하를 호령하는 이 할애비가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더냐!"

    넓은 마당에 쏟아지는 따뜻하고 눈부신 봄 햇살 속에서, 생명을 선택하여 가문을 일으킨 위대한 정승과 그를 끝까지 지키는 충직한 개들의 평화롭고 정겨운 웃음소리가 조선 팔도 방방곡곡으로 아름답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한 번의 올바른 선택이 가져다준, 만복야담 사상 가장 벅차고 감동적인 힐링의 해피엔딩이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평생을 건 출세의 길목에서, 얼어 죽어가는 강아지를 선택한 윤 서생의 결단.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때로는 바보 같아 보이는 정직하고 따뜻한 선택이, 훗날 내 삶을 구원하는 가장 큰 기적이 되어 돌아옵니다. 오늘 이야기가 시청자 여러분의 마음에 포근한 위로가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따뜻한 댓글 한 줄 부탁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시고, 내일도 만복이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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