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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가 주운 황금 항아리 [만복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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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400자 이상)
조선시대, 한양 수표교 다리 밑에서 얼어 죽을 날만 기다리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만복. 이름은 만 가지 복인데, 가진 것이라곤 구멍 뚫린 가마니 한 장뿐이었지요. 그런데 이 사내가 어느 날 산속 버려진 사당에서 황금 항아리 하나를 주웠습니다. 평생 구경도 못한 금덩이가 항아리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보통 이야기와 다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 그 돈 들고 도망쳤겠지요. 술 사고 고기 사고 기와집 짓고 떵떵거리며 살았겠지요. 그런데 이 사내, 사흘을 그 자리에서 버텼습니다.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겠다고요. 사흘이 지나 아무도 오지 않자 그제야 산을 내려왔는데, 그 돈으로 한 첫 번째 일이 기가 막힙니다. 비단을 산 것도, 기와집을 산 것도 아닙니다. 목욕을 했습니다. 거지의 때를 벗겨내고 사람이 되겠다고요. 이 사내가 그 황금으로 조선 제일의 거상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결말을 들으시면 가슴이 뜨거워지실 겁니다.
※ 1단계 첫 장면 — 다리 밑의 생명
때는 바야흐로 눈보라가 한양 도성을 하얗게 집어삼키던 어느 혹독한 겨울밤이었다. 화려한 종로 거리의 등불은 부유한 이들의 웃음소리를 실어 나르며 밤하늘을 수놓았지만, 그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수표교 다리 밑에는 죽음보다 차가운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거기 한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만복. 만 가지 복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으나, 이 사내가 태어나서 받아본 복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구멍이 숭숭 뚫려 제 기능을 잃은 낡은 가마니 조각 하나뿐이었다. 만복은 뼈를 깎는 듯한 칼바람을 피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를 악물어도 턱이 덜덜 떨렸고, 손가락 끝은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만복의 주위에는 얼어붙은 흙바닥과 그를 비웃는 듯한 북풍의 울음소리뿐이었다. 멀리서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들려왔다. 인정 지나 통행금지라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지만, 만복에게 통행금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다니지 말라는 명령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딱딱이 소리는 마치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경고처럼 들렸다.
만복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감싸 안았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장이 뛰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갈비뼈 위에 올린 손바닥 아래에서 미약하게, 정말 미약하게 무언가가 뛰고 있었다. 그것이 심장인지 추위에 떠는 몸의 경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송이는 무심하게 그의 어깨 위로 쌓여갔다. 머리카락 위로, 가마니 위로, 이미 감각을 잃은 맨발 위로. 하얀 눈이 만복의 몸을 덮어가고 있었다. 눈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만복은 그것을 알면서도 눈을 털어낼 힘이 없었다.
'이대로 눈이 쌓여 무덤이 되는 것인가. 한 평생 남의 눈칫밥만 먹다가 이렇게 허망하게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만복의 혼잣말은 매서운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다.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이 유일하게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 입김마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종로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느 양반댁 잔치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을 것이다. 풍악 소리, 술잔 부딪히는 소리, 기생의 노랫소리.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수표교 아래까지 기어 들어왔다. 만복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눈을 맞으며, 누구는 술에 취해 웃고, 누구는 추위에 죽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세상이었다. 만복이 태어나서부터 배운 세상의 첫 번째 얼굴이었다.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이상하게도 추위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이것이 죽음인가.' 만복은 그 따뜻함이 반가우면서도 두려웠다. 눈을 감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그냥 잠드는 것이다. 눈 위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그때 멀리서 까마귀 한 마리가 울었다. 까악, 까악. 그 거친 울음소리가 만복의 꺼져가는 의식을 한 번 흔들어 놓았다. 만복은 간신히 눈을 떴다. 까마귀가 다리 난간 위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눈이 번뜩였다. 마치 아직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복은 까마귀를 올려다보며 갈라진 입술을 달싹였다. "이놈아, 나는 까마귀만도 못한 놈이다. 너는 날개라도 있어 추우면 남쪽으로 날아가지만, 나는 이 다리 밑이 세상의 전부란 말이다." 까마귀가 다시 한 번 울고는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만복은 그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다.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 심장이, 이 볼품없는 심장이 아직 뛰고 있으니까.
※ 2단계 주제 제시 — 거지의 기도
'어허, 이놈의 눈은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만복은 가마니를 머리 위로 끌어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이런 밤을 두고 하는 것이리라. 어딘가에서는 따뜻한 온돌방에 배를 깔고 누워 고기반찬에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는 이가 있을 터인데, 이 만복이는 손가락 하나 못 펴고 얼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다.
'누구를 원망하겠나. 다 내 복이 이것뿐인 것을.'
복. 참 우스운 글자였다. 만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 만 가지 복을 받으라고 지어주었다 했다. 그 이름이 이 사내의 전 재산이었다. 만 가지 복은커녕 한 가지 복도 받아본 적 없는 사내에게 만복이라는 이름은 천하에 둘도 없는 농담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추위가 뼈를 파고들수록, 예전에 들었던 어떤 노인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장터에서 어슬렁거리다 들은 말이었다. 이가 빠진 늙은이가 길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던 이야기. 재물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비와 같아서 담을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만 고인다고 했다. 돈이 있으면 밥을 사서 배를 채울 수 있지만, 덕이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얻는다고도 했다.
그때는 웃어넘겼다. 배가 고파 눈이 돌아가는 판에 무슨 덕이냐, 무슨 그릇이냐. 헛소리도 밥 먹고 하라고 속으로 욕했다. 그런데 지금, 정말 죽을 고비에 서니 그 말이 비로소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
'내 몰골을 좀 보라고. 밥 한 톨 얻어먹지 못해 명줄이 간당간당한데, 무슨 놈의 덕을 쌓고 사람을 얻겠나. 내 손에 든 건 이 다 떨어진 가마니뿐인데.'
만복은 가마니를 내려다보았다. 구멍 사이로 눈송이가 스며들어 와 무릎 위에 쌓이고 있었다. 가마니마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만복의 편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다. 담을 그릇이 준비된 자에게만 고인다.
'내가 만약, 아주 만약에 말이야.'
만복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늘이 점지해 주신 큰 복을 받게 된다면, 나는 그 재물을 담을 수 있는 널따란 그릇이 될 수 있을까. 단순히 배를 채우는 거지가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이 다리 밑에서 차갑게 식어있을 몸뚱이가 무슨 그릇을 논한단 말인가. 그래도 만복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발 사이로 별 하나가 보일 리 없었지만, 그래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시여, 정녕 제게 덕을 베풀 기회조차 주지 않으실 작정이십니까. 이 비천한 목숨이라도 어디선가 쓰임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기도라 하기에도 민망한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만복은 진심이었다. 평생 제대로 빌어본 적도 없는 사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하늘에 말을 건넨 것이다. 눈이 그의 입술 위에 내려앉아 녹았다. 그 물방울이 기도를 적셔주는 것인지, 하늘이 보내는 눈물인지, 만복은 알 수 없었다.
※ 3단계 설정 — 등신과 벽창호
날이 밝았다. 만복은 죽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죽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웠지만,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칠성이의 얼굴이었다.
"야, 만복아! 아직 안 뒤졌냐? 이놈의 인상 좀 봐라,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어."
칠성이가 만복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칠성은 만복과 같은 다리 밑 거지였다. 나이는 만복보다 서너 살 위였고, 입이 거칠고 손이 빠른 사내였다.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데는 한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이었지만, 유독 만복에게만은 이상하게 정이 있었다. 칠성이 남들이 먹다 버린 숭늉이라도 마시라며 깨진 사발을 내밀었다. 미지근한 물에 쌀알 몇 톨이 떠다니는, 숭늉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이었지만 만복에게는 생명수였다.
"고맙다, 칠성아.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진즉에 죽었을 거야."
"고맙긴 뭘 고마워하냐. 인마, 고마우면 좀 욕심을 부리란 말이야."
칠성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만복을 내려다보았다. 지난번 일을 또 들먹이려는 참이었다.
"지난번 잔칫집에서 떡 서 되를 받았으면서, 왜 옆집 꼬마한테 다 줬냐 이 등신아. 그 떡이면 우리가 이틀은 먹었어."
만복은 쓴웃음을 지었다. 옆집 꼬마라 함은, 다리 밑 한 칸 건너에 사는 어린 남매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비가 돌림병으로 죽고 어미마저 떠나버린, 만복보다 더 가련한 아이들이었다. 떡을 받은 날, 만복은 그 아이들의 쪼그라든 얼굴을 보자 차마 제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떡을 받아들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그 표정이, 떡 서 되보다 훨씬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칠성아, 그 아이들 얼굴을 보니 내가 다 배가 불렀어."
"아이고, 이 벽창호 같은 놈아. 착한 놈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가는 세상인 거 몰라? 덕이니 나눔이니 하는 건 배부른 양반들이나 할 소리야. 우리 같은 거지가 뭔 덕을 쌓어. 눈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쳐묵쳐묵 먹는 거지."
칠성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착한 것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은 죽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리 밑에서 배운 생존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만복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나는 말이야, 칠성아. 비록 몸은 누더기를 걸치고 다리 밑에서 살아도, 마음까지 쓰레기처럼 버리고 싶지는 않아. 밥은 굶어도 사람 대접은 받고 싶은 거야.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칠성은 혀를 차며 장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창호. 진짜 벽창호야." 그 말을 남기고 칠성의 등이 멀어져 갔다. 만복은 칠성이 건네준 숭늉을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사람 대접.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밥 한 그릇, 따뜻한 방 한 칸, 그리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사람 대접이 아닌가. 만복은 빈 사발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고 있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 간절한 소망 하나가 만복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는 숯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 4단계 사건 발생 — 황금 항아리
살을 에던 추위가 조금 누그러진 어느 새벽이었다. 만복은 마지막 힘을 내어 산속으로 향했다. 배고픔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만복이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은 마지막 선이었다. 산속 버려진 사당 근처에 산나물이나 나무뿌리라도 캘 수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로 산길을 올랐다. 맨발에 돌이 박히고, 가시덤불에 살이 긁혔지만 멈추지 않았다.
사당은 오래전에 버려진 곳이었다. 지붕은 반쯤 무너져 내렸고, 기둥에는 이끼가 두텁게 끼어 있었다. 사당 뒤편의 땅이 다른 곳보다 부드러워 보였다. 만복은 무릎을 꿇고 언 땅을 손으로 긁기 시작했다. 손톱 밑에 흙이 끼고, 손가락 끝이 갈라졌다. 피가 배어났지만, 뿌리 하나라도 캐야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툭.
무언가 딱딱한 것이 손끝에 걸렸다. 만복은 그저 커다란 돌덩이겠거니 생각하며 주변의 흙을 헤치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파고 또 팠다. 돌이 아니었다. 동그란 형태가 드러났다. 흙을 더 걷어내자, 단단하게 봉인된 커다란 옹기 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항아리 입구는 밀랍으로 꼼꼼하게 봉해져 있었고, 그 위에 기름종이가 덮여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숨겨놓은 것이 분명했다.
만복의 심장이 빨라졌다. 떨리는 손으로 밀랍을 뜯어내고 기름종이를 걷어냈다. 뚜껑에 손을 대었다. 차가운 옹기의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힘을 주어 뚜껑을 비틀었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새벽 어스름을 뚫고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만복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항아리 안에는 누런 황금 엽전과 묵직한 금괴가 가득 차 있었다. 금빛이 만복의 얼굴을 비추었다. 평생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막대한 양의 황금이었다. 금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묵직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 그 무게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듯 손목이 축 처졌다. 진짜였다. 꿈이 아니었다.
'내 눈이 드디어 멀어버린 것인가? 헛것이 보이는 게냐?'
만복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여전히 금이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 금이었다.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현실이었다. 항아리 깊숙한 곳까지 빈틈없이 금이 채워져 있었다. 하나, 둘, 셋... 셀 수도 없었다. 이 항아리 하나면 한양 땅의 기와집 열 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복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두 손이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거지가 되어 수십 년, 눈물이라는 것이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려 금괴 위에 떨어졌다.
'하늘이시여, 정녕 제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까? 이 엄청난 보물을 제게 주신 것입니까? 아니면 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만복은 금괴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이상하게도 뜨겁게 느껴졌다. 손끝에서부터 팔로, 팔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온몸으로 열기가 퍼져나갔다. '꿈이라면 제발 깨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니, 꿈이라도 좋으니 이 순간만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믿고 싶다.' 만복은 항아리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새벽 산속에서, 아무도 없는 버려진 사당 앞에서, 거지 한 명이 황금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 5단계 고민 — 삼일의 맹세
눈물이 마른 뒤, 만복의 머릿속은 폭풍처럼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황금을 앞에 두고 기쁨은 순간이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이 돈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만복은 항아리 앞에 쪼그려 앉아 이마를 짚었다. 당장 이 금덩이 하나만 들고 장터에 나가면 평생 먹을 고기와 술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을 지어 떵떵거리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수표교 다리 밑에서 얼어 죽을 걱정은 영영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한 글자가 발목을 잡았다. 만약 이 돈을 쓰는 순간 포졸들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되는가. 거지놈이 어디서 이런 금덩이를 구했느냐며 당장 포박할 것이 뻔했다. 장물로 몰려 곤장을 맞고, 옥에 갇히고, 운이 나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거지가 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선에서는 죄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이 항아리에 본래 주인이 있다면? 누군가 전란을 피해 묻어둔 것일 수도 있고, 가문의 비상금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이라면, 만복이 이것을 가져가는 순간 만복은 도둑이 되는 것이었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겠다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데, 그 자존심마저 버릴 수는 없었다.
'칠성이가 알면 당장 가져가자고 난리를 치겠지.'
칠성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놈이라면 고민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항아리 째로 들고 산을 내려가 장터에서 당장 금을 팔아치울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었고, 거지의 생존법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 무언가가 자꾸만 멈추라고 하는구나.'
만복은 항아리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횡재는 재앙의 씨앗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분에 넘치는 복을 탐하면 화를 부른다고. 만복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 결심했다. 삼일이다.'
만복은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딱 사흘 동안만 여기서 이 항아리를 지키며 기다리겠다고. 만약 사흘 안에 주인이 나타난다면 돌려줄 것이요,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귀하게 쓰겠다고. 이 돈으로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만드는 데 쓰겠다고. 내가 꿈꾸던 그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쓰겠다고.
만복은 항아리 뚜껑을 다시 덮고 흙을 덮었다. 그 위에 앉았다. 엉덩이 밑에서 황금의 무게가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이상하게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산짐승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해가 기울 때까지, 버려진 사당에는 만복 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만복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섰다. 흙을 걷어내고 항아리를 꺼내 들었다. 무거웠다. 그러나 그 무게가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느껴졌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이 보물을 허투루 쓰지 않겠습니다. 제 선택이 틀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만복은 항아리를 안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고, 만복의 긴 그림자가 산길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 6단계 2막 진입 — 거지의 때를 벗다
약속했던 사흘이 지났지만 아무도 사당을 찾지 않았다. 만복은 그것을 하늘이 내린 기회로 받아들였다. 항아리에서 황금 몇 닢만을 조심스럽게 꺼내 품에 안고, 나머지는 다시 흙 속에 묻어두었다. 한꺼번에 들고 나가면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거지가 금덩이를 들고 한양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포졸을 불러 모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복이 산을 내려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주막도, 비단 상점도, 포목점도 아니었다. 성 밖 냇가의 목욕터였다. 돈을 쓰기 전에,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수년 동안 켜켜이 쌓인 때를 벗겨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몸의 때가 아니었다. 거지라는 이름이 붙여준 냄새, 다리 밑이 새겨놓은 굴종의 흔적,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았던 비굴함의 찌꺼기. 그 모든 것을 씻어내야 했다.
냇물은 차가웠다. 살을 에는 것 같았다. 만복은 이를 악물고 물속에 몸을 담갔다. 온몸이 저렸다. 거친 비누 덩어리로 팔을 문질렀다. 때가 새까맣게 밀려 나왔다. 목을 문지르고, 가슴을 문지르고, 다리를 문지르고, 발바닥을 문질렀다. 피부가 벌겋게 익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물에 헹구고 또 헹구었다. 때가 벗겨질 때마다 거지 만복이가 한 겹씩 벗겨지는 것 같았다.
물에서 나왔을 때, 만복은 한참 동안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거칠고 갈라진 손이었지만, 때가 벗겨지니 손등이 햇살 아래에서 깨끗하게 빛났다. '이것이 내 손이었구나.' 수년 만에 제 피부를 제대로 본 것이었다.
만복은 장터로 나가 옷을 샀다. 가장 수수하지만 정갈한 무명옷이었다. 비단을 살 수도 있었지만, 거지가 하루아침에 비단을 입으면 도둑으로 몰릴 터였다. 무명이면 충분했다. 깨끗한 옷이면 충분했다. 옷을 입고 허리끈을 매고, 머리를 빗어 넘기고, 장터에서 가장 싼 갓을 샀다. 갓을 쓰고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보아라. 이 물 위의 사내는 더 이상 다리 밑의 거지가 아니로다.'
만복은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어색했다.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웃음이 났다. 물웅덩이 속의 사내도 함께 웃고 있었다. 비록 비단은 아니었으나, 비록 양반의 풍채는 아니었으나, 그 사내의 눈빛에는 예전의 비굴함 대신 당당한 기개가 서려 있었다.
'이름은 만복이나, 이제는 만복이라는 그 이름값에 걸맞은 삶을 살 것이야. 이 옷 한 벌이 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만복은 한양 도심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걸었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걸었다. 종로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었다. 아무도 그를 거지로 보지 않았다. 아무도 코를 막거나 길을 비키지 않았다. 만복은 그 평범한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이것이 사람 대접이구나. 깨끗한 옷 하나에 갓 하나면, 이 세상은 나를 사람으로 봐주는구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어깨 위에는 묵직한 책임감이 올라와 있었다. 돈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들 하지만, 만복은 달라지고 싶지 않았다. 다리 밑에서 떡을 나눠주던 그 마음,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남의 것은 훔치지 않겠다던 그 고집, 사람답게 살고 싶다던 그 소망. 그것을 잃지 않는 한, 황금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될 것이라고 만복은 믿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내가 가진 이 황금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씨앗이 되게 하리라. 거지 만복이가 아니라, 만복 행수로서 말이다.'
만복은 종로 거리를 가로질러 남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장사를 시작할 터를 봐야 했다. 해가 높이 떠 있었고, 만복의 그림자가 길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는 더 이상 웅크린 거지의 것이 아니었다.
※ 7단계 B 이야기 — 국밥 한 그릇의 인연
장사를 시작하기 전, 만복은 먼저 배를 채워야 했다. 며칠째 뿌리 몇 개로 연명한 터라 다리에 힘이 없었다. 남대문 안쪽 골목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 허름하지만 깨끗한 곳이었다. 만복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국밥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따뜻한 밥 냄새. 고기가 들어간 국물 냄새. 사람이 먹는 음식의 냄새.
주막 안에서 한 여인이 상을 닦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만복을 보더니 잠깐 멈칫했다.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얼굴이 수수하지만 눈이 맑았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몸이었다. 만복은 그 여인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손님, 들어오세요. 국밥 드시게요?"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만복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럴 만했다. 만복이 마지막으로 이 여인을 본 것은 삼 년 전이었고, 그때 만복은 다리 밑에서 떨고 있던 거지였으니까.
그때 이 여인이 만복에게 국밥 한 그릇을 건네주었다. 장사가 파할 때쯤, 남은 국밥을 들고 수표교 다리 밑을 찾아와 떨고 있는 거지들에게 나눠주던 여인. 이름은 연화. 만복은 그 이름을 잊은 적이 없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건네받은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의 온기를. 국물을 마실 때 눈물이 국밥 안에 떨어졌던 것을. 그리고 웃으며 천천히 드세요 하던 그 목소리를.
만복은 상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혹시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연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만복은 쓴웃음을 지었다. "삼 년 전, 수표교 다리 밑에서 떨고 있던 거지에게 국밥을 건네주셨지요. 그때 그 거지가 접니다."
연화의 눈이 커졌다. 입을 가리고 한참을 만복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고, 정말... 정말 그때 그분이세요? 세상에, 이렇게 달라지실 수가."
만복은 고개를 숙였다. "귀인을 만나 장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아가씨가 주신 국밥 한 그릇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연화는 손사래를 쳤다. "은혜라니요. 남은 국밥 한 그릇 드린 것뿐인데요." 그러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만복은 연화의 표정에서 피로를 읽었다. 주막이 예전보다 허름해져 있었고, 연화의 손이 예전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아가씨, 혹시 장사가 어려우십니까."
연화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었다고 했다. 빚이 쌓여 이 주막마저 지키기 힘든 형편이라 했다. 말을 하면서도 애써 밝은 표정을 유지하려는 연화의 모습에 만복의 가슴이 쓰렸다. 남에게 국밥을 나눠주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돕겠습니다."
만복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연화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만복은 말을 이었다. "단순히 보답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씨처럼 고운 마음을 가진 분이 세상의 풍파에 꺾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장사를 시작할 작정입니다. 장사 기술은 제가 익히면 됩니다. 다만 곁에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지켜봐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연화는 한참 동안 만복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거지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은 눈이었다. 깨끗한 옷을 입고 갓을 쓰고 있었지만, 그 눈은 삼 년 전 다리 밑에서 국밥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리던 그때와 똑같았다. 연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믿어보겠습니다."
만복은 웃었다. 연화도 웃었다. 주막 안에 국밥 냄새가 가득했고,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한 무언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만복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다. 다만 가슴이 뜨거웠다. 황금을 발견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뜨거움이었다. 금보다 귀한 것.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만복은 그것을 처음 배우고 있었다.
※ 8단계 재미 구간 — 만복 행수의 탄생
만복의 장사는 기발했다. 머리가 비상해서가 아니었다. 거지 시절, 길바닥에서 수년을 굴러본 경험이 장사의 밑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리 밑에서 보고 들은 것들, 장터를 어슬렁거리며 익힌 물가의 흐름, 양반들의 행차를 구경하며 눈치 챈 유행의 변화. 거지의 눈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넓은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만복이 가장 먼저 만들어 판 것은 신발이었다. 보통 신발이 아니었다. 발바닥에 솜을 두텁게 덧대어 겨울에도 발이 시리지 않는 신발, 이름하여 만복신이었다. 거지 시절 맨발로 얼어붙은 땅을 걸으며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발바닥의 추위였다. 그 경험이 상품이 된 것이다.
만복은 시장 한복판에 좌판을 펼치고 직접 만복신을 신고 서서 외쳤다. "이리 오십시오, 이리 오십시오! 이 신 한 켤레면 한겨울 눈길도 봄길처럼 따뜻합니다! 돈이 없으시다고요? 괜찮습니다! 헌 옷가지나 약초와도 바꿔 드립니다!" 돈 없는 백성들도 물건을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만복의 정보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지 시절 다리 밑에서 떠도는 소문을 주워 담던 습관이 장사에서 빛을 발했다. 어느 고을에 가뭄이 들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미리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풀었고, 겨울이 유난히 길 것이라는 산골 노인의 예감을 들으면 솜옷을 대량으로 준비해 시세보다 싸게 풀었다.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이윤에 많은 사람에게 파는 것이 만복의 장사 철학이었다. 백성들은 만복의 물건을 사면서 사람 대접을 받는다고 느꼈고, 그것이 만복 상단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어느 날, 옛 친구 칠성이가 찾아왔다. 여전히 거지 행색이었지만, 눈빛만은 예전과 달랐다. 날카롭고 굶주린 눈이 아니라,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눈이었다.
"야, 만복아. 아니, 만복 행수님. 나도 좀 일 시켜줘라. 나도 이제 거지 생활은 지겹다고."
만복은 칠성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 사내가 예전에 남의 주머니를 터는 데 선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받아들이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리 밑에서 숭늉 한 사발 건네주던 칠성의 손을 잊을 수 없었다.
"좋다, 칠성아. 단, 조건이 있어. 남을 속이지 않는다.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네 자리는 있어."
칠성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네가 언제 이렇게 큰 사람이 됐냐. 거지 시절에는 떡도 못 지키던 놈이."
만복은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그저 우리가 다리 밑에서 한탄하던 그 마음을 잊지 않았을 뿐이야. 배고프면 밥을 나눠 먹고, 추우면 이불을 나눠 덮고. 그때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것을 좀 더 큰 규모로 하는 것뿐이야."
정직한 가격과 확실한 품질,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이 세 가지를 앞세운 만복 상단은 팔도에 이름을 떨쳤다. 사람들은 만복을 의로운 상인이라 부르며 칭송하기 시작했고, 만복의 창고에는 재물이 쌓였으며, 상단은 날로 번창해갔다. 그리고 만복의 곁에는 늘 연화가 있었다. 장부를 정리하고, 손님을 맞고, 만복이 흔들릴 때마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마세요 하고 다독여주는 연화가.
※ 9단계 중간 전환점 — 높이 오른 자리
어느덧 몇 해가 흘렀다. 만복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거상이 되어 있었다. 만복 상단은 팔도 강산을 누비며 물자를 조달했고, 만복이 한마디 하면 시장의 물가가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커져 있었다. 수표교 다리 밑의 거지가 종로의 거상이 되기까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했고, 만복은 그것을 하늘의 은혜라 했다.
오늘은 만복이 한양 상인 연합의 수장으로 추대되는 잔칫날이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 마당에는 고관대작들부터 평범한 상인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풍악이 울리고, 산해진미가 차려지고, 사방에서 만세 소리가 울렸다. 만복은 상석에 앉아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몇 년 전 다리 밑에서 올려다보던 그 잔치의 소리가, 이제는 자신의 잔치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만복이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귀빈 여러분, 오늘 저를 이 자리에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수백 명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는 한때 다리 밑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미천한 거지였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하늘의 도움과 여러분의 믿음 덕분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개인의 영달을 넘어, 한양의 모든 상인이 상생하고 굶주리는 백성이 없는 세상을 위해 제 재산을 쓰겠습니다!"
만세 소리가 마당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만복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환호 속에서 만복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마당 한구석, 관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술잔을 기울이며 만복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가늘었고, 입꼬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조 대감이었다. 한양 권력의 실세. 만복 상단의 성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인물이었다.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물러간 뒤, 연화가 만복의 곁에 다가왔다. 어깨를 가만히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여보, 너무 높은 곳에 오르면 바람이 거센 법이에요. 조 대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요."
만복과 연화는 어느새 부부가 되어 있었다. 장사를 함께하며 쌓인 신뢰와 정이 사랑으로 변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날밤, 연화가 만복의 손을 잡으며 이 손이 다리 밑에서 떨던 그 손 맞지요 하고 웃었을 때, 만복은 그 손을 놓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연화의 손은 따뜻했다. 국밥을 끓이고, 장부를 적고, 만복의 등을 쓸어주던 그 손. 황금보다 귀한 손이었다.
만복은 연화의 어깨를 감싸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내 그릇이 튼튼하다면 어떤 비바람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오." 연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에서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만복은 그 눈을 보며 미소 지었지만, 가슴 한켠에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높이 오른 자리는 바람이 매서운 법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곧 태풍이 되어 만복의 세계를 뒤흔들 터였다.
※ 10단계 위기 압박 — 배신의 칼
조 대감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수는 만복의 가장 가까운 곳을 치는 것이었다. 칠성이였다. 조 대감의 하인이 은밀하게 칠성을 불러내어 술을 먹이고, 황금을 앞에 펼쳐놓으며 속삭였다. 만복이 그 황금을 어디서 구했는지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느냐고. 네가 증언 하나만 해주면 이 금이 네 것이라고.
칠성은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만복은 자신의 친구였고, 자신에게 기회를 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황금이 눈앞에 쌓이기 시작하자 칠성의 눈이 흔들렸다. 욕심이라는 것이 가슴에서 올라왔다. 만복이는 다리 밑에서 같이 굶던 놈인데, 왜 저놈만 거상이 되고 나는 여전히 저놈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거냐. 같은 거지였는데, 왜 저놈만. 그 생각이 독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칠성은 결국 입을 열었다. 만복이가 산속 사당에서 왕실의 비상금을 파낸 것을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
거짓이었다. 왕실의 비상금이라는 것은 조 대감이 꾸며낸 이야기였다. 그러나 칠성의 증언은 그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조 대감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나라의 보물을 훔친 대역죄라는 명분을 만들어, 즉각 포졸들을 만복 상단에 들이닥치게 했다.
그날 아침, 만복은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연화가 옆에서 차를 우려 건네주고 있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때 대문이 벌컥 열리며 포졸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상단의 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포졸들은 장부를 압수하고 창고를 봉쇄했다. 만복은 영문도 모른 채 포박당해 끌려갔다.
조 대감이 관아 대청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서슬 퍼런 눈으로 만복을 내려다보며 호통을 쳤다. "이놈 만복! 선대왕께서 숨겨두신 국고를 훔쳐 부를 쌓고, 그 돈으로 백성을 현혹하여 사리사욕을 채웠으니 그 죄가 하늘에 닿는도다!"
만복은 억울함에 이를 악물었다. "대감, 이것은 누명입니다! 그 항아리는 버려진 사당에서 발견한 유물이었습니다. 왕실의 비상금이라니, 저는 그런 것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때 포졸이 칠성을 데려왔다. 칠성은 고개를 숙인 채 만복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만복이가 산속 사당에서 왕실의 금을 파내는 것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만복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칠성아. 칠성아, 네가 이럴 수 있느냐. 네가 정녕..."
칠성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 대감이 차갑게 웃었다. "증인의 자백이 있으니, 이놈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상단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라." 조 대감의 눈이 연화에게 향했다. "그 여인도 결탁한 죄로 잡아들여라."
만복이 소리쳤다. "연화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연화만은 제발!" 그러나 포졸들이 만복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연화의 얼굴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그러나 울지 않는 눈. 그 눈이 만복에게 말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마세요. 만복은 그 눈빛을 가슴에 새기며 어둠 속으로 끌려갔다.
※ 11 – 옥중의 맹세
만복은 차가운 옥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의 거미줄을 바라보았다. 거미 한 마리가 줄을 타고 내려오다 바람에 흔들려 다시 올라갔다. '저놈도 살겠다고 버둥거리는구나.' 손목에 감겼던 포승줄 자국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욱신거렸지만, 진짜 아픈 것은 살갗이 아니라 가슴 한복판이었다. 연화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옥졸 입에서 들은 순간, 만복은 처음으로 벽에 이마를 찧었다. 피가 흘러 눈꺼풀 위로 번졌지만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욕심을 부려 장사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조대감의 눈에 들지 않았더라면, 연화는 지금 주막에서 웃고 있었을 것이다.' 옥졸이 나무 쟁반에 찬밥 한 덩이와 소금물 한 사발을 밀어 넣고 갔다. 만복은 찬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맛이 없었다. 밥알이 아니라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밥덩이 밑에 작은 종이쪽지가 접혀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펼치니 칠성이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형, 내가 거짓 증언한 것 후회하고 있소. 조대감이 내 노모를 볼모로 잡았소. 하지만 내가 바로잡겠소. 사흘만 버티시오." 만복은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글자가 번져 보이는 것은 소금물 때문이 아니라 눈물 때문이었다. '칠성아, 네가 배신한 줄 알았을 때 세상이 무너졌다. 수표교 다리 밑에서 네가 건넨 숭늉 한 사발이 거짓이었나 싶어 원망했다. 하지만 너도 피해자였구나. 네 등 뒤에도 칼이 겨눠져 있었구나.' 만복은 쪽지를 가슴 깊이 품었다. 종이의 모서리가 살갗에 닿았고, 그 작은 감촉이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 차가운 옥방에 한 줄기 바람이 창살 틈으로 스며들었다. 만복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연화야, 반드시 살아서 나가마. 내가 네 곁으로 돌아가마."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옥벽에 부딪혀 울림이 되었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한 장의 쪽지, 삐뚤빼뚤한 글씨 몇 자가 죽음을 향해 기울던 저울을 삶 쪽으로 되돌려 놓았다. 만복은 찬바닥 위에서 잠들지 않았다. 눈을 뜨고 새벽을 기다렸다. 살아남아야 했다. 연화를 위해, 칠성을 위해, 그리고 수표교 다리 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빌었던 자기 자신을 위해.
※ 12 – 칠성의 고백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관아 마당에 찬 이슬이 내려앉아 있었다. 칠성이가 관아 정문을 지나 마당 한복판까지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사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것이었다. 눈 밑이 검게 내려앉았고, 입술이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부사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마당의 자갈에 박혔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부사가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 칠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인이 거짓 증언했습니다. 만복 행수가 왕실 보물을 훔쳤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옵니다. 조대감이 소인의 노모를 볼모로 잡고 협박하여, 소인에게 꾸며댄 말을 시킨 것이옵니다." 관아 안이 술렁였다. 서기가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고, 포졸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부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물었다. "증거가 있느냐. 말만으로는 번복이 되지 않는다." 칠성은 품속에서 접힌 서찰 두 통을 꺼냈다. 손이 심하게 떨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하나는 조대감이 칠성에게 보낸 밀서로, 만복의 황금 항아리가 왕실 하사품이었다고 증언하라는 구체적 지시가 적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만복의 재산을 빼앗은 뒤 칠성에게 포목점 하나를 넘기겠다는 밀약서였다. 부사가 서찰을 받아 펼쳤다. 읽는 동안 그의 눈썹이 점점 치켜 올라갔다. 칠성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코끝이 빨갛게 부풀었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만복 형은 수표교 다리 밑에서 소인에게 숭늉 한 사발을 나눠준 사람이옵니다. 겨울밤 소인이 얼어 죽을 뻔했을 때 자기 저고리를 벗어 덮어준 사람이옵니다. 그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으니 소인은 죽어 마땅하오나, 진실만은 바로잡고 죽고 싶었습니다." 만복은 옥문 너머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쇠창살 사이로 칠성의 등이 보였다. 누더기를 입고 무릎 꿇은 그 뒷모습이 옛날 수표교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모습과 겹쳤다. 만복은 쇠창살을 잡았다. 주먹을 쥔 손등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칠성아, 고맙다. 네가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나온 것만으로도 네 빚은 갚아졌다.' 부사는 서찰의 필적과 인장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에서 무거운 명령이 떨어졌다. "즉시 조 참봉을 소환하라." 포졸 넷이 우르르 관아를 빠져나갔다. 마당에 남은 칠성은 이마를 바닥에 대고 소리 없이 울었다. 진실이 마침내 어둠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 13 – 조대감의 몰락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포졸 넷이 조대감을 양팔에 끼고 관아 마당으로 끌고 들어왔다. 비단 도포가 흙먼지에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오사모가 비뚤어져 반쯤 벗겨진 채 귀 옆에 걸려 있었다. 조대감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행패냐! 나는 삼품 당상관이오!" 하지만 부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서찰 두 통을 조대감의 코앞에 내밀었다. 조대감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이, 이것은 위조된 것이오! 누군가 나를 모함하려고 꾸민 것이란 말이오!" 부사가 차갑게 말했다. "필적 대조를 하겠다. 여기 붓과 벼루가 있으니 같은 문장을 써 보시오." 조대감의 손이 붓을 잡았지만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써 내려간 글씨는 서찰의 필체와 한 획 한 획 일치했다. 인장 역시 조대감의 사인과 어긋남이 없었다. 관아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정하게 선고했다. "조 참봉, 그대는 무고와 협박, 타인 재산 탈취 모의의 죄로 관직을 삭탈하고 전라도 진도에 유배를 명한다." 조대감이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울부짖었다. "한 번만 봐주시오! 소인이 잠시 눈이 멀었던 것이오!" 하지만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포졸이 그의 팔을 비틀어 일으켰고, 조대감은 끌려 나가면서 관아 마당을 돌아보았다. 그때 만복이 옥에서 풀려나 마당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만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먹을 쥐지도,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았다. 복수의 쾌감이 밀려올 줄 알았지만, 실제로 찾아온 것은 허탈함이었다. '탐욕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구나. 황금이 눈을 가리면 사람도 짐승이 되는 법인가.' 조대감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관아 문 밖에서 발소리가 달려왔다. 연화였다.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고, 저고리 소매가 찢어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만복은 두 팔을 벌렸고, 연화가 그 품으로 뛰어들었다. 연화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만복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오. 당신이 무사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오." 연화는 대답 대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봄바람이 관아 마당의 먼지를 쓸어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이 마침내 걷히고 있었다.
※ 14 – 다시 선 자리
만복은 재산을 되찾았다. 압수되었던 포목과 금은이 창고로 돌아왔고, 종로 거리의 상인들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첫날, 만복은 창고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관아 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칠성이가 관아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옷은 누더기였고, 맨발에는 먼지가 두텁게 앉아 있었다. 만복이 그 앞에 섰다. 칠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어나라, 칠성아." 만복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칠성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사람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형,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소인이 형의 은혜를 짓밟았소." 만복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옥에서 썩었다. 용서가 아니라 고마움이다. 손 잡아라." 칠성의 손이 올라와 만복의 손을 잡았다. 두 손 모두 거칠었다. 수표교 밑에서 함께 얼었던 손, 숭늉 사발을 나누던 손, 포승줄에 묶였던 손.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힐끗 쳐다보았지만 만복은 개의치 않았다. 그날 저녁, 만복은 연화와 함께 연화의 주막에 앉았다. 국밥 두 그릇을 시켜 마주 앉았다. 국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연화의 얼굴이 김 너머로 아른거렸다. 연화가 웃으며 말했다. "처음 당신에게 국밥 한 그릇 건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 주막의 주인과 손님이 뒤바뀌었구려." 만복이 따라 웃었다. "국밥 한 그릇이 사람 하나를 살렸소. 그때 당신이 모른 척했으면 나는 수표교 밑에서 얼어 죽었을 거요. 당신이 건넨 국밥은 밥이 아니라 목숨이었소." 연화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숟가락을 놓고 고개를 돌렸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만복은 상 너머로 연화의 손을 잡았다. 연화의 손은 국밥 김에 데워져 따뜻했다. '이 손을 놓지 않겠다. 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주막 밖으로 저녁노을이 붉게 번졌다. 노을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두 사람의 얼굴을 물들였다. 국밥 한 그릇에서 시작된 인연이 가장 깊은 사랑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만복은 국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짠맛이 혀끝에 번졌다. 눈물인지 소금인지 알 수 없었다.
※ 15 – 거상의 나눔, 그리고 해피엔딩
삼 년이 지났다. 만복은 한양 종로에 큰 포목점 두 곳과 국밥집 세 곳을 운영하는 거상이 되었다. 장부를 펼치면 숫자가 끝없이 이어졌고, 창고에는 명주와 모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복을 기억하는 이유는 재산이 아니었다. 그는 매년 겨울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수표교 다리 밑에 큰 솥을 걸었다. 장작을 넉넉히 때고 쌀죽을 끓였다. 추위에 떠는 거지와 떠돌이들이 줄을 서면 만복은 직접 국자를 들어 죽을 퍼 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보며 건넸다. 죽과 함께 짚신 한 켤레, 솜이 든 버선 한 짝을 얹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만복 행수라 불렀고, 한양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동요처럼 불렀다. "수표교 밑에 만복이가 살았네, 이제는 종로에 만복이가 서 있네." 연화는 만복의 곁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며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손님이 밥을 남기면 따로 모아 다리 밑으로 보냈고, 겨울이면 된장과 소금을 보따리에 싸서 직접 날랐다. 칠성이는 만복의 포목점에서 번두 관리를 맡아 성실하게 일했다. 사람들은 칠성을 "만복 행수의 오른팔"이라 불렀고, 칠성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 겨울 아침, 첫눈이 수표교 위에 소복이 쌓였다. 만복은 다리 난간에 기대어 다리 밑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자신이 웅크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던 바로 그 자리에,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무릎을 끌어안고 떨고 있었다. 만복은 죽 한 그릇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소년 앞에 쪼그려 앉아 그릇을 내밀었다. "먹어라. 따뜻할 거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코끝이 빨갛고, 손가락이 갈라져 피가 배어 있었다. 그 눈빛이 옛날 만복 자신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배고프고, 춥고, 무섭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는 눈. 만복은 미소 지었다. '하늘이 나에게 황금 항아리를 준 것은, 바로 이 아이에게 죽 한 그릇을 건네라는 뜻이었구나. 재물은 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다.' 소년이 죽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눈이 크게 떠졌고, 다시 한 모금, 또 한 모금. 빈 그릇을 내밀며 소년이 작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만복은 소년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연화가 다가와 소년의 어깨에 솜담요를 덮어주었다. 만복과 연화는 나란히 다리 밑을 걸어 나왔다. 수표교 위로 눈이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눈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혔다. 만복이 연화의 손을 잡았다. 연화가 그 손을 꽉 쥐었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한양에서 가장 추운 겨울에, 가장 따뜻한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수표교 밑 거지에서 한양 거상이 된 만복. 그가 진짜 얻은 것은 황금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삶이 진짜 부자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따뜻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