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왕이 사랑한 여자는 관노비였다, 그녀가 바꾼 조선의 법 '종모법'
태그 (15개)
#만복야담, #숙빈최씨, #영조의어머니, #신분역전, #조선야담, #무수리에서후궁으로, #숙종의사랑, #장희빈, #조선왕실비사, #관노비의운명, #궁궐암투, #영조즉위, #조선신분제, #왕의여인, #역사를바꾼여인
#만복야담 #숙빈최씨 #영조의어머니 #신분역전 #조선야담 #무수리에서후궁으로 #숙종의사랑 #장희빈 #조선왕실비사 #관노비의운명 #궁궐암투 #영조즉위 #조선신분제 #왕의여인 #역사를바꾼여인
후킹멘트
조선의 궁궐에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이 오기도 전에 일어나 빨래를 하고, 물을 긷고, 재를 치우는 여인들. 이름조차 불려지지 않던 존재들, 바로 무수리였습니다. 그중에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최씨. 아비의 죄로 관노비가 된 집안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궁궐로 끌려온 계집아이. 아무도 이 아이가 훗날 왕의 심장을 뒤흔들 줄 몰랐고, 아무도 이 아이의 뱃속에서 조선의 역사를 뒤집어 놓을 임금이 태어나리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수리에서 왕의 어머니로. 조선 오백 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신분 역전의 주인공, 숙빈 최씨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씬 1: 관노비의 딸, 궁궐 담장 안으로 던져지다
숙종 치세 초년, 조선 팔도에 흉년이 겹치던 해였다. 한양의 하늘은 유독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성 밖 초가집 골목마다 굶주린 사람들의 신음이 바람결에 실려 다녔다. 그 골목 중에서도 가장 깊고 어두운 구석,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 한 채에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훗날 역사가 그녀를 숙빈 최씨라 부르게 되지만, 이때의 그녀에게는 이름 대신 불리는 호칭이 따로 있었다. 관노비의 딸. 종의 자식. 그것이 이 아이의 전부였다.
아이의 아비는 본래 양인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빚을 갚지 못해 관아에 끌려간 뒤 노비 문서에 이름이 올랐고, 노비의 자식은 노비라는 조선의 철칙에 따라 갓 태어난 아이까지 종의 신분을 물려받았다. 종모법이라 불리는 그 잔인한 법은 어미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라고 못 박았지만, 실상은 아비가 노비여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노비의 피가 섞이면 대대손손 그 굴레를 벗을 수 없는 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질서였다. 아이의 어미는 딸의 얼굴을 보고 채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아비는 관아의 허드렛일을 하며 어린 딸을 겨우 먹여 살렸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비마저 굶주림과 병에 쓰러진 것은 아이가 겨우 다섯 살 되던 해였다.
고아가 된 아이를 거둬준 것은 먼 친척뻘 되는 늙은 아낙이었다. 하지만 거둬주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그 집에서도 부엌 구석에서 잠을 자며 물 긷는 일과 빨래하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다섯 살, 여섯 살,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아이는 울음을 잊었다. 배가 고파도, 손이 트고 갈라져 피가 나도, 이 아이는 울지 않았다. 울어봤자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아이였다.
일곱 살 되던 해, 아이의 운명이 한 번 더 뒤집어졌다. 궁궐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이 돌았다. 궁녀가 아니었다. 궁녀는 양인 이상의 집안에서만 뽑았다. 궁궐에서 뽑는 것은 빨래하고 물 긷고 재를 치우는 하녀, 즉 무수리였다. 관노비의 아이들 가운데 건강하고 말 잘 듣는 계집아이를 골라 궁으로 보내는 것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늙은 아낙은 군말 없이 아이를 내보냈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것은 낡은 보퉁이 하나뿐이었다. 그 안에는 어미가 남긴 것이라며 건네받은 작은 은비녀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아이가 가진 전 재산이었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누군가의 딸이었음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궁궐의 담장은 높았다. 일곱 살 아이의 눈에 비친 경복궁의 담장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모든 소리가 끊어졌다. 하지만 담장 안이라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더 혹독했다. 무수리는 궁궐 안에서 가장 낮은 존재였다. 궁녀도 아니고, 내인도 아니고, 비자도 아니었다. 이름 없는 몸종. 새벽 인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 각 전각의 빨래를 걷어오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나르고, 부엌에서 쓸 땔감을 마당 한켠에 쌓아두는 것이 무수리의 하루였다.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우물물에 손을 담가 빨래를 빨았고, 여름이면 쉬파리가 윙윙거리는 찬간에서 음식 찌꺼기를 치웠다. 궁녀들은 무수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무수리는 사람이 아니라 궁궐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 가까운 존재였다.
어린 최씨는 그 안에서 숨을 죽이고 살았다.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했고, 먹을 것은 다른 무수리들이 먹다 남긴 것으로 배를 채웠다. 밤이면 무수리들이 모여 자는 행랑채 구석에 웅크려 누워 보퉁이 속 은비녀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어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비의 목소리도 희미했다. 하지만 이 차가운 은비녀만은 손끝에 닿을 때마다 자신이 어딘가에서 왔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궁궐 담장 안으로 던져진 관노비의 딸은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 아이가 훗날 왕의 침전에 오르고, 조선의 임금을 낳고, 죽어서까지 이 나라의 역사를 뒤흔들게 될 줄은 그때 그 궁궐 안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역사라는 것은 때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씨앗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씬 2: 무수리의 새벽,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 품격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 궁궐 안의 어린 계집아이는 어느새 처녀 티를 벗고 여인의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무수리 최씨는 궁궐의 가장 깊은 그늘 속에서 소리 없이 자라났다. 키가 훤칠하게 올랐고, 이목구비는 수수하되 어딘가 사람의 시선을 잡아두는 맑은 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무수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아니,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최씨의 하루는 변함없이 인시 전에 시작되었다. 사방이 캄캄한 새벽, 행랑채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뜨는 것은 언제나 최씨였다. 몸을 일으키면 뼈마디가 쑤시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했지만, 최씨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물가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리고, 빨래터로 향했다. 궁궐 빨래터의 새벽은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겨울이면 빨래방망이를 내리칠 때마다 얼음물이 튀어 저고리를 적셨고, 손가락 끝은 감각을 잃어 갈라진 살갗 사이로 선혈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최씨의 빨래는 궁궐 안에서도 소문이 났다. 다른 무수리들이 빤 빨래는 구김이 남고 냄새가 가시지 않기 일쑤였는데, 최씨의 손을 거친 빨래는 마치 새 옷처럼 뽀송하고 단정했다.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았지만 최씨는 언제나 빨래 한 장 한 장을 정성 들여 폈다. 궁녀들의 속적삼이든 상궁 마마의 버선이든, 최씨의 손에서는 차별이 없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최씨는 믿고 있었다.
그런 최씨에게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글이었다. 최씨는 무수리 중에서 드물게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궁궐 한쪽에 서당을 차려놓고 어린 내관들을 가르치는 늙은 내시가 있었는데, 최씨가 열 살이 되던 해 그 서당 마루 아래에서 바닥을 닦다가 내시의 글 읽는 소리를 엿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천자문의 낭랑한 소리가 어린 최씨의 귀에 꽂혔고, 아이는 그날부터 매일 서당 마루 밑에서 귀를 기울였다. 내시가 읽는 대로 따라 읽었고,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자를 그렸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 글자들이 아이의 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겨졌다. 그렇게 몇 해가 흐르자 최씨는 궁궐 서고에서 흘러나온 헌 책들을 주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무수리가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최씨는 언제나 밤이 깊어지고 다른 무수리들이 잠든 뒤에야 행랑채 구석에서 달빛에 의지해 책장을 넘겼다. 소학의 구절을 더듬더듬 읽다 보면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글귀들이 최씨의 가슴에 한 자 한 자 아로새겨졌다. 종의 몸이라 할지라도 마음만은 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최씨는 책 속에서 배웠다.
그리고 하나 더. 최씨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입이 무거웠다는 것이다. 궁궐이라는 곳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곳이었다. 궁녀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소문이 돌았고, 누가 누구의 편이며, 어느 전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씨는 어떤 소문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다른 무수리가 수다를 걸어와도 웃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 제 입으로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법이 없었다. 상궁들의 뒷담화를 들어도, 궁녀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엿듣게 되어도, 최씨의 입은 바위처럼 닫혀 있었다. 그것이 처세술이어서가 아니었다. 남의 말로 제 입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최씨는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이 소문 없는 무수리의 존재가 슬슬 상궁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최씨가 스무 살을 넘긴 무렵이었다. 빨래는 언제나 흠잡을 데가 없고, 시키지 않아도 각 전각의 마루를 반들반들하게 닦아놓으며, 입은 무겁고, 어디에도 적을 만들지 않는 여인. 내명부의 지밀상궁이 최씨를 눈여겨본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지밀상궁은 왕의 침전을 관리하는 가장 측근의 상궁으로, 침전 출입이 허락되는 인원을 직접 선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지밀상궁은 조용히 최씨를 불러 물었다. 대전 마마의 침전 수발을 들 수 있겠느냐고. 최씨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분부대로 하겠다고만 대답했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한마디라는 것을, 그 순간의 최씨는 알지 못했다. 다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겠다는, 평생을 관통해 온 그 한 가지 믿음만을 품고 있었을 뿐이다.
씬 3: 숙종의 눈에 비친 달빛 같은 여인
숙종은 잠이 없는 왕이었다. 밤마다 뒤척이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있었고,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침전을 나서 후원을 거닐었다. 신하들은 그것을 용의 고뇌라 미화했지만, 실상 숙종의 불면은 왕이라는 자리가 짊어진 무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인과 남인의 치열한 당쟁이 매일같이 조정을 뒤흔들었고, 왕비 인현왕후 민씨와 후궁 장희빈 사이의 기 싸움은 궁궐 안의 공기까지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숙종은 스물아홉, 왕위에 오른 지 이미 십수 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이 왕은 여전히 외로웠다. 왕의 곁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있었으나, 그중 왕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씨가 대전 침전의 수발을 들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무수리로서 침전에 들어온 최씨의 역할은 지극히 단순했다. 왕의 잠자리를 깔고, 촛불을 밝히고, 새벽녘 왕이 일어나기 전에 세수물을 떠놓는 것. 왕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금기였고, 말을 거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씨는 그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왕이 침전에 있을 때면 방 구석에서 숨소리마저 죽였고, 왕이 나서면 그제야 소리 없이 움직여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무수리의 본분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하지 않는 듯한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숙종의 감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 알아챈 것은 향이었다. 최씨가 정돈한 이부자리에서는 묘하게 깨끗한 냄새가 났다. 향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정성 들여 빤 빨래에서 나는, 햇볕과 바람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소박한 냄새. 숙종은 그 이부자리 위에 누울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편안함이었다. 그다음으로 알아챈 것은 소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리의 부재였다. 최씨는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른 무수리들은 걸을 때 발소리가 났고, 이부자리를 펼 때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최씨의 동작은 물이 흐르듯 고요했다. 숙종은 어느 새벽, 잠에서 깨어 침전 안을 둘러보다가 구석에서 세수물을 떠놓고 조용히 물러나는 최씨의 뒷모습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달빛이 창호지 문을 통과하여 여인의 옆모습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장희빈의 눈부신 미모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 담담하고 고요한 모습에서 숙종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숙종은 최씨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침전에 돌아올 때마다 방 안의 정돈 상태가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숙종이 즐겨 읽는 서책이 손이 닿기 좋은 곳에 놓여 있었고, 촛불의 위치가 숙종의 독서 습관에 맞추어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었다. 숙종이 감기 기운이 있어 기침을 하던 날에는 머리맡에 꿀물이 놓여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지시 한 번 없이, 최씨는 왕의 습관과 필요를 조용히 읽어내고 있었다. 숙종은 감탄했다. 궁궐 안의 수많은 상궁과 내인들이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어떤 노력보다 이 이름 없는 무수리의 무언의 배려가 숙종의 마음을 더 깊이 건드렸다.
운명의 밤은 가을이 깊어지던 어느 날 찾아왔다. 그날 숙종은 조정에서 극심한 당쟁을 겪고 돌아왔다. 서인과 남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대신들의 아첨과 배신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침전에 들어선 숙종은 평소와 달리 의관을 벗어던지지도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때 최씨가 차 한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왕 앞에 차를 내려놓고 물러나려는 찰나, 숙종이 불렀다. 잠깐, 하고. 최씨가 멈추었다.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꿼어앉았다. 숙종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최씨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왕이 무수리의 이름을 묻는 것은 궁궐의 관례에 없는 일이었다. 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 같은 것은 없사옵고, 다만 성이 최씨이옵니다, 라고.
숙종은 한참 동안 최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라고. 최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가을 달빛이 최씨의 눈동자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 눈 속에 두려움과 공경과 그리고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어려 있는 것을 숙종은 보았다. 장희빈의 눈에서는 야망이 타올랐고, 인현왕후의 눈에서는 체념이 흘렀다. 하지만 이 여인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숙종은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하나가 가슴 안쪽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놓이는 것.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안식에 가까운 것이었고, 왕관을 쓴 남자에게 그 안식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었다.
그 밤, 숙종은 최씨에게 물러가지 말라고 했다. 최씨의 무릎이 떨렸다.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왕의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외로웠던 사람이 마침내 쉴 곳을 찾은 자의 목소리, 그것은 간청에 가까운 것이었다. 최씨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그 자리에 머물렀다.
숙종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최씨에게 다가갔다. 거친 용포 소매 끝으로 최씨의 떨리는 손을 감싸 쥐었다. 차가운 손이었다. 평생을 찬물에 담가온 손. 갈라지고 거칠어진 손마디 하나하나가 이 여인이 걸어온 삶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었다. 숙종은 그 손을 한참 동안 말없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 밤은 과인의 곁에 있어다오, 라고.
촛불이 꺼졌다. 가을 달빛만이 창호지 문을 타고 침전 안으로 스며들었다. 비단 이불이 펼쳐졌고, 숙종의 손이 최씨의 떨리는 어깨를 감쌌다. 최씨는 눈을 감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안겨본 적 없는 여인이었다. 어미의 품도 기억나지 않고, 아비의 손길도 잊은 지 오래인 여인. 그런 여인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남자의 품에 안긴 것이다. 숙종의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왕의 심장도 사람의 심장이었다. 따뜻했다. 최씨의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려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기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인의 눈물이었다.
달이 기울고, 밤이 깊어지고, 침전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이 비단 병풍 사이를 떠돌았다. 숙종은 이 여인의 품에서 왕관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고, 최씨는 이 남자의 품에서 종의 굴레를 잠시 잊었다. 신분도, 당쟁도, 궁궐의 법도도 그 밤만큼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다. 다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녹이는 밤이었다. 창밖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아득하게 울려 퍼졌고, 가을바람이 처마 끝 풍경을 가만히 흔들었다.
날이 밝았을 때, 침전의 이부자리 위에는 붉은 빛이 번져 있었다. 숙종은 잠든 최씨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이었다. 장희빈의 눈부신 자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수수했다. 하지만 잠든 최씨의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는 그 순간, 숙종은 확신했다. 이 여인은 과인에게 천하보다 귀한 안식을 주었다고. 이 여인을 놓지 않겠다고.
성은을 입었다. 무수리가 왕의 승은을 입은 것이다. 이 소식은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궁궐 전체를 파도처럼 휩쓸었다. 궁녀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숨죽여 수군거렸고, 상궁들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천한 무수리가 감히 용상의 주인과 이불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궁궐 오백 년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이 장희빈의 귀에 닿는 순간, 궁궐의 바람이 방향을 바꾸었다. 관노비의 딸이 왕의 잠자리에 올랐다. 그 하룻밤이 조선의 역사를 뒤집어 놓을 폭풍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그 새벽의 궁궐 안에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씬 4: 천한 것이 감히, 벼랑 위의 후궁
성은을 입은 다음 날부터 최씨의 세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어제까지 빨래터에서 함께 방망이를 두드리던 무수리들이 최씨의 눈을 피했다. 행랑채에서 나란히 잠을 자던 동료들이 최씨의 이부자리를 슬그머니 멀리 옮겼다. 누구 하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공기가 달라졌다. 시선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투명인간이던 여인이 하룻밤 사이에 궁궐 전체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목은 축하가 아니었다. 경계였고, 질시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였다.
가장 먼저 칼을 갈기 시작한 것은 내명부의 상궁들이었다. 궁궐의 상궁이란 수십 년을 궁 안에서 바늘에 실 꿰듯 규율을 지키며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에게 신분 질서는 하늘이 정한 법도였고, 무수리가 왕의 승은을 입었다는 사실은 그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 수군거림은 노골적이었다. 빨래하던 것이 어찌 감히 용안을 우러러보느냐. 종년의 피가 어찌 왕손을 잉태할 수 있겠느냐. 궁궐의 법도가 무너지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상궁들의 수근거림은 곧 궁녀들 사이로 퍼져나갔고, 궁녀들의 수근거림은 내관들의 입을 타고 외전으로까지 흘러갔다.
조정 대신들의 반응은 더욱 거셌다.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 세력은 인현왕후 민씨를 지지하고 있었고, 남인 세력은 장희빈을 등에 업고 있었다. 두 세력 모두에게 출신 미상의 무수리는 안중에도 없는 존재였지만, 왕의 총애가 새로운 여인에게 향한다는 것은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있었기에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사간원에서는 왕의 사생활에 대한 간언이 올라왔다. 직접적으로 최씨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내명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상소의 행간에는 무수리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최씨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조정의 대신도, 상궁들의 시기도 아니었다. 진짜 적은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장희빈 장씨. 숙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궁궐 안에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여인이었다. 장희빈은 아름다웠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야심이 깊었고, 야심만큼이나 잔인했다. 왕의 총애란 자신만의 것이어야 했다. 그것을 나눠 가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고, 하물며 그 상대가 천한 무수리라는 사실은 장희빈의 자존심을 산산이 부수는 모욕이었다.
장희빈이 최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날, 그녀의 눈빛이 어떠했는지를 곁에서 목격한 궁녀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고 전해진다. 빙산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장희빈은 겉으로는 웃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부채를 흔들며 무수리 하나에 무슨 신경을 쓰겠느냐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그날 밤 장희빈의 처소에서는 찻잔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수발을 들던 궁녀 하나가 뺨이 부어 나왔다. 장희빈의 분노는 소리 없이, 하지만 확실하게 최씨를 향해 조준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최씨는 묵묵했다. 무수리에서 하루아침에 왕의 여인이 되었지만, 최씨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지기를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숙종이 최씨에게 별도의 처소를 내리려 했으나, 최씨는 사양했다. 자신은 아직 아무런 직첩도 받지 못한 몸이니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을 수 없다고 조용히 사뢰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숙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최씨에 대한 신뢰를 더 깊이 하였다. 장희빈이 처음 숙종의 눈에 들었을 때 온갖 치장과 아양으로 왕의 환심을 사려 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였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여인. 아무것도 탐하지 않는 여인. 그것이 역설적으로 숙종을 더욱 깊이 끌어당겼다.
최씨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적의를 모르지 않았다. 밤이면 행랑채 구석에서 보퉁이 속 은비녀를 꺼내 쥐고 홀로 떨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궁궐이라는 곳에서 왕의 여인이 된다는 것은 꽃밭에 서는 것이 아니라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최씨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곳도 없었다. 궁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없는 여인이었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벼랑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앞으로 가자고, 최씨는 이를 악물었다. 어미가 남긴 은비녀를 저고리 깊숙이 품고, 이 어둠을 견뎌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궁궐의 밤은 깊고 길었지만, 최씨는 그 어둠 속에서도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살아남겠다고.
씬 5: 장희빈의 그림자, 궁궐을 삼키는 암투
장희빈의 공격은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이 장희빈의 무서운 점이었다. 이 여인은 분노를 곧장 칼로 바꾸는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았다. 독을 천천히 퍼뜨렸다. 물이 스며들듯, 안개가 내려앉듯, 보이지 않게.
첫 번째 수는 소문이었다. 장희빈의 측근 궁녀들이 입을 맞추어 내명부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최씨가 원래 무수리가 아니라 궁 밖에서 몸을 팔던 천기였다는 이야기. 관노비 출신이라 아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여인이라는 이야기. 심지어 최씨가 궁 안에서 무당을 불러 왕에게 미혹의 주술을 걸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소문이란 것은 불씨와 같아서, 한번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궁녀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내관들을 거쳐 외전으로 흘러갔고, 외전의 관리들 사이에서 다시 가공되어 조정 대신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최씨가 요녀라는 소문, 최씨가 왕을 현혹하여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문. 누구 하나 그 소문의 진위를 따지지 않았다. 천한 무수리가 왕의 잠자리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수는 고립이었다. 장희빈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상궁들을 움직여 최씨에 대한 일체의 지원을 끊었다. 최씨에게 배정되었어야 할 식사가 늦게 도착하거나 아예 빠지는 일이 잦아졌고, 빨래감이 일부러 최씨에게 몰아져 새벽부터 밤까지 허리를 펼 수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무수리들 사이에서도 최씨를 돕거나 말을 섞는 자가 사라졌다. 장희빈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하루하루 궁궐 안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갔다. 말을 걸어주는 이 하나 없고, 웃어주는 이 하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외로움은 칼보다 무서운 법이다. 사람은 칼에는 버틸 수 있어도 외로움에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장희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수는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어느 날 밤, 최씨가 거처하는 행랑채 문 앞에 죽은 까마귀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머리가 잘린 채. 그 옆에 작은 종이쪽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최씨는 그 쪽지를 펼쳐 들고 숨을 멈추었다. '분수를 알아라. 네 목도 이와 같으리라.' 최씨의 손이 떨렸다. 쪽지를 움켜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누가 보냈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궁궐 안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최씨는 그 쪽지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불에 태워 버렸다. 숙종에게 고하면 장희빈에게 벌이 내려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라는 것을 최씨는 알고 있었다. 궁궐의 암투에서 살아남는 법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었다. 바람에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최씨는 몸을 낮추고 버텼다.
그러나 장희빈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역설적으로 숙종의 마음은 최씨에게 더 깊이 기울었다. 숙종은 어리석은 왕이 아니었다. 궁궐 안에서 돌아가는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최씨를 향한 위협의 배후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었다. 숙종은 최씨를 불러 직접 물었다. 힘든 일이 있느냐고. 누가 괴롭히느냐고. 최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다고, 모든 것이 황송한 은혜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한마디의 하소연도, 한마디의 고자질도 하지 않았다. 숙종의 눈에 최씨의 입술이 마른 것이 보였고, 손등에 새로운 상처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 여인은 끝내 고통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숙종은 이를 악물었다. 이 여인을 지켜야 한다고. 이 여인만큼은 이 궁궐의 독 속에서 지켜내야 한다고.
그리하여 숙종은 결단을 내렸다. 최씨에게 정식 직첩을 내린 것이다. 숙원 최씨. 종4품 후궁의 직첩이었다. 무수리에서 후궁으로. 그것은 조선 궁궐의 역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신분 상승이었다.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에서 왕의 정식 여인이 된 것이다. 이 소식이 궁궐에 퍼진 날, 장희빈의 처소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찻잔이 깨지는 소리도, 궁녀의 비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 고요함이 무서웠다고, 훗날 장희빈의 시녀가 회고했다. 장희빈은 웃고 있었다고. 입술 끝만 올라간,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그것은 분노가 극에 달한 자의 표정이었다. 폭풍 전의 고요. 궁궐 안의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씬 6: 연잉군, 무수리의 아들이 태어나다
숙원이 된 최씨에게 찾아온 것은 기쁨이자 공포였다. 몸에 변화가 온 것이다. 아침마다 속이 뒤집어지고, 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의가 진맥한 뒤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경사가 있으시옵니다, 라고. 최씨의 뱃속에 왕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소식은 궁궐을 다시 한번 발칵 뒤집어 놓았다. 숙종의 얼굴에는 환한 기쁨이 피어올랐다. 이미 장희빈 소생의 세자가 있었지만, 새로운 왕자의 탄생은 왕실의 경사였고 숙종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기뻐한 것은 숙종뿐이었다. 장희빈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최씨가 왕자를 낳는다는 것은 자신의 아들인 세자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변수가 된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조정의 서인 세력은 장희빈의 세자를 내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기에, 새로운 왕자의 탄생은 정치적 지형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다.
장희빈의 위협은 한층 더 집요하고 교묘해졌다. 최씨의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적인 독을 넣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다만 최씨에게 보내지는 음식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임산부에게 해로운 찬 음식이 수시로 올라왔고, 영양가 있는 반찬은 사라지고 간이 맞지 않는 죽만 내려오는 날이 잦아졌다. 어의의 진맥 일정이 자꾸만 미뤄졌고, 최씨의 처소에 배정된 나인의 수가 하나둘 줄어들었다. 모두 장희빈의 영향력 아래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일이었다. 최씨는 이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지만, 역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밤마다 기도했다. 이 아이만은 무사히 태어나게 해달라고. 이 아이만은 이 궁궐의 어둠에 삼켜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이 최씨의 기도를 들은 것일까. 아이는 건강하게 뱃속에서 자라났다. 임신 기간 내내 최씨는 극도의 긴장과 고립 속에서도 아이를 지켜냈다. 밥이 오지 않으면 물이라도 마시며 버텼고, 이부자리가 축축해도 아이의 배를 어루만지며 새벽을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숙종 20년, 음력 9월, 가을바람이 궁궐 처마 끝을 스치던 밤이었다. 산기를 느낀 최씨가 이를 악물고 산실에 들어갔다. 궁궐의 산실은 엄격한 절차 아래 운영되었지만, 최씨의 출산에 배정된 의녀의 수는 장희빈 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마저도 장희빈 측의 압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산실 안에서 최씨의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한 시진, 두 시진, 시간이 흘러갔다. 궁녀들이 뜨거운 물과 수건을 나르며 분주히 오갔다. 그리고 자시가 막 지난 시각, 산실 안에서 한 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의 울음이었다. 크고 우렁찬 울음이었다. 산파가 아이를 받아 들고 외쳤다. 옥동자이옵니다, 라고. 왕자가 태어난 것이다. 훗날 연잉군이라는 이름을 받게 될, 그리고 더 먼 훗날 영조라는 묘호로 조선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 아이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린 순간이었다.
숙종은 급히 산실로 달려왔다. 왕이 후궁의 산실에 직접 달려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숙종은 예법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산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숙종의 눈에 들어온 것은 땀에 절은 채 아이를 가슴에 안고 누워 있는 최씨의 모습이었다. 창백한 얼굴. 갈라진 입술. 하지만 아이를 내려다보는 두 눈에는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빛이 어려 있었다. 숙종이 최씨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작고 붉은 얼굴. 꼭 쥔 주먹. 힘차게 울어대는 목청. 숙종의 눈가가 젖었다. 이 아이를 반드시 지키겠다고, 숙종은 최씨의 손을 잡으며 나직하게 맹세했다.
하지만 왕자의 탄생은 곧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연잉군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궁 밖으로 퍼지자, 조정은 또다시 요동쳤다. 서인 세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왕자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남인 세력은 위기감에 떨었다. 장희빈은 이를 갈았다. 천한 무수리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 감히 내 아들의 자리를 넘보게 둘 수 없다고. 궁궐 안의 칼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최씨는 아이를 품에 안고 흔들리지 않았다. 이 아이가 있는 한 자신은 죽어도 무너지지 않겠다고. 이 아이를 세상의 빛으로 키워내겠다고. 관노비의 딸은 어머니가 되었고, 어머니가 된 여인은 비로소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지킬 것을 가지게 되었다.
씬 7: 어머니의 유언, 절대 원망하지 마라
연잉군이 태어난 뒤, 숙종은 최씨의 직첩을 올려 숙빈으로 삼았다. 종4품 숙원에서 정1품 빈으로.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숙빈 최씨. 이제 그녀의 이름 앞에는 정식 품계가 붙었고, 독립된 처소가 하사되었으며, 나인과 무수리가 배정되었다. 관노비의 딸이 왕의 정1품 후궁이 된 것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를 통틀어 이보다 극적인 신분 상승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신분이 올랐다고 해서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궁궐 안에서 숙빈의 위치가 높아질수록 그녀를 향한 견제와 감시도 비례하여 강해졌다. 장희빈과 숙빈의 관계는 갈수록 날카로운 대치 상태에 빠졌다. 겉으로는 내명부의 예법에 따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체면을 유지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었다. 장희빈은 세자의 어머니로서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고, 숙빈은 오로지 아들 연잉군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몸을 낮추었다.
숙빈이 취한 전략은 철저한 은인자중이었다. 숙종의 총애를 무기로 삼아 권력을 탐하는 대신, 숙빈은 오히려 왕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왕이 부르지 않으면 나서지 않았고,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장희빈이 아무리 도발을 해도 맞받아치지 않았다. 그것은 유약함이 아니라 지혜였다. 궁궐에서 오래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점은 칼을 잘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칼을 피하는 법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숙빈은 무수리 시절부터 몸으로 익혀왔다.
세월은 숙빈의 편이 아니었다. 궁궐의 정치적 지형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장희빈이 폐비가 되었다가 복위되었다가 다시 사약을 받는 격변이 이어졌고, 인현왕후가 복위되었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잇따랐다. 그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숙빈은 아들 연잉군의 손을 놓지 않았다. 장희빈이 사사된 뒤에도 숙빈은 기뻐하거나 통쾌해하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몸을 사리며 아들에게 가르쳤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네가 비록 왕자이나 어머니는 천한 무수리 출신이라고. 그것을 잊지 말라고. 교만하지 말라고.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더 낮은 곳을 살피는 사람이 되라고.
숙빈은 연잉군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았다. 직접 글을 가르치고, 소학의 구절을 외우게 하고, 밤마다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무수리 시절 서당 마루 밑에서 몰래 익힌 그 글자들을 아들에게 전해주는 밤이 이어졌다. 연잉군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총명하고 예의 바른 왕자로 성장해갔다. 숙빈의 눈에 아들의 성장은 세상의 어떤 영예보다 큰 보상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숙빈의 몸도 가만두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찬물에 손을 담그고, 굶주리고, 잠을 줄여가며 혹사한 몸은 서른을 넘기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침이 잦아졌고, 몸이 부쩍 여위었다. 가을이면 각혈을 하는 날이 늘어났다. 어의는 고개를 저었다. 폐에 병이 깊이 든 것이었다. 숙종은 어의를 닦달하며 최고의 약재를 구해오라 명했지만, 숙빈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숙종 44년, 봄꽃이 피기 직전의 이른 아침이었다. 숙빈은 자신의 처소에서 열다섯 살이 된 연잉군을 곁에 불러 앉혔다. 숙빈의 얼굴은 백지처럼 하얬고, 입술에는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두 눈만은 여전히 맑았다. 숙빈은 떨리는 손으로 저고리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고 빛바랜 작은 은비녀였다. 수십 년 전, 일곱 살 아이의 보퉁이 속에 들어 있던 바로 그 은비녀. 어미가 남긴 유일한 유품. 숙빈은 그 은비녀를 연잉군의 손에 쥐어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것은 네 외할머니의 것이란다. 어미가 이 세상에서 가진 유일한 것이었고, 어미를 살게 한 유일한 것이었다. 이제 이것을 너에게 준다. 네가 앞으로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가더라도 이 비녀를 보며 기억하거라. 너의 어미는 종이었고, 빨래를 하던 무수리였다는 것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하지만 그것을 잊지도 마라.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어미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마.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이 어미를 천대한 세상도, 이 어미를 괴롭힌 사람들도 원망하지 마라. 원망은 독이 되어 너를 삼킬 것이다. 네가 할 일은 원망이 아니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란다.
연잉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의 마른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오열했다. 숙빈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아들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관노비의 딸이, 무수리가, 왕의 후궁이, 그리고 한 아들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지은 미소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숙빈 최씨는 눈을 감았다. 향년 마흔아홉이었다. 궁궐의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랐으되, 끝내 교만하지 않았고, 끝내 원망하지 않았던 한 여인의 생이 그렇게 저물었다.
씬 8: 왕위에 오르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왕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연잉군의 삶은 더욱 험난한 길로 접어들었다. 궁궐 안에서 연잉군의 처지는 묘했다. 왕의 아들이되 천한 무수리의 소생이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다. 장희빈 소생의 세자, 즉 경종이 왕위 계승의 정통 서열에 있었고, 연잉군은 그 뒤에 서 있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숙종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보호 아래 그나마 안전했지만, 연잉군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남긴 은비녀를 품속에서 만질 때마다,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가 귓전에 울렸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연잉군은 이를 악물고 그 가르침을 지켰다. 형인 세자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고, 조정 대신들 앞에서는 몸을 한껏 낮추었다. 학문에 몰두하여 경서를 밤낮으로 읽었고, 무예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잉군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이었다. 천한 피가 섞인 왕자. 무수리의 아들. 그 낙인은 씻겨지지 않았다.
숙종이 승하한 뒤, 경종이 왕위에 올랐다. 연잉군은 왕세제, 즉 왕위를 이을 수 있는 다음 후보로 책봉되었지만, 그것은 영예가 아니라 독이 든 잔과 다름없었다.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 세력은 연잉군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칼을 갈았다. 연잉군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는 모함이 조정에서 공공연히 나돌았고, 왕세제의 지위를 폐하자는 상소가 빗발쳤다. 경종 치세의 4년은 연잉군에게 매일이 사지와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언제 사약이 내려질지, 언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나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고, 식사를 할 때마다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 의심해야 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유훈이었다. 연잉군은 밤마다 은비녀를 꺼내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그 작고 초라한 은비녀가 연잉군의 유일한 부적이었다. 원망하지 마라, 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릴 때마다 연잉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원망하지 않겠다고. 대신 살아남겠다고. 살아남아서 어머니가 말한 대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갑자기 승하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독살설이 나돌았고, 소론은 연잉군이 경종을 시해했다는 혐의를 씌우려 했지만, 결국 왕위는 왕세제인 연잉군에게로 돌아갔다. 경종 4년, 서기 1724년. 연잉군은 경복궁의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 무수리의 아들이 마침내 용상에 올랐다. 면류관의 구슬이 흔들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났고, 조정 대신들이 일제히 엎드려 만세를 불렀다. 그 순간 영조의 손은 용포 안쪽을 더듬고 있었다. 어머니의 은비녀가 심장 위에서 차갑게 닿았다. 영조의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울 수는 없었다. 왕은 울어서는 안 되었다.
즉위 후 영조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에게 합당한 이름을 올려드리는 것이었다. 숙빈이라는 직첩 대신, 왕의 어머니에 걸맞은 존호를 추존하는 것. 하지만 조정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이며, 정비가 아닌 후궁에 불과하다는 이유였다. 후궁에게 왕비에 준하는 존호를 올리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는 논리가 조정을 지배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조정 전체의 반발을 무시하고 독단할 수는 없었다. 영조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온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되었으되, 자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조차 없는 현실이 영조의 가슴을 찢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조의 치세 내내 적대 세력들은 영조의 출신을 공격 무기로 삼았다.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조롱은 공개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조정의 이면에서는 쉴 새 없이 속삭여졌다. 영조가 아무리 현명한 정치를 펼쳐도, 아무리 백성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도, 그 뒤에는 언제나 출신에 대한 비아냥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영조에게 왕관은 영광이면서 동시에 고통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랐으되 가장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왕. 그것이 영조였다. 그리고 바로 그 상처가, 그 고통이, 훗날 영조를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만들어가는 불씨가 되고 있었다.
씬 9: 영조의 눈물,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왕위에 오른 뒤에도 영조는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행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 숙빈 최씨의 무덤, 소령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소령원은 경기도 파주 광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왕릉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묘였다. 후궁의 묘는 왕비의 능에 비해 규모도 작았고, 석물도 간소했다. 하지만 영조에게 그곳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었다.
해마다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오면 영조는 어김없이 행차를 준비했다. 대신들은 매번 만류했다. 왕이 후궁의 묘에 직접 행차하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다고, 대리 제사를 보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영조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소를 물리치고, 간언을 듣지 않고, 매년 어김없이 소령원으로 향했다. 영조에게 그 행차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었다. 한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령원을 찾아가는 길에 영조는 언제나 가마의 문을 열어두었다. 신하들이 먼지가 들어온다고, 바람이 차다고 만류해도 영조는 듣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았던 세상의 바람을 맞고 싶다고, 어머니가 걸었을 길의 흙냄새를 맡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신하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마가 파주 땅에 접어들면 영조는 가마에서 내려 걸었다. 왕의 체면도, 용포의 위엄도 내려놓고 그냥 걸었다. 흙길 위로 용포 자락이 질질 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의 무덤이 보이기 시작하면 영조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무덤 앞에 도착하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영조의 소령원 행차 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재위 초반에 있었던 한 번의 방문이었다. 그날도 영조는 소령원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왕이 직접 술잔을 따르고, 왕이 직접 제문을 읽었다. 주변에는 수행 신하들과 호위 군사들이 도열해 있었지만, 영조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봉분 하나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그 앞에 엎드려 있었다. 제문을 읽는 영조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중반부에 이르러서였다.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구절에서 목소리가 갈라졌고, 불초한 아들이 왕위에 올라 어머니의 뜻을 받들고자 한다는 대목에서 결국 읽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영조는 울었다. 조선의 왕이, 용상의 주인이, 천하를 호령하는 군주가 어머니의 작은 무덤 앞에 엎드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소리를 죽이려 했지만 통곡이 터져 나왔다. 어마마마, 라는 부르짖음이 파주의 하늘 아래 울려 퍼졌다. 수행하던 신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관은 붓을 잠시 멈추었다가 기록했다. 상이 소령원에 이르러 통곡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시니 좌우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라고.
영조가 울음을 그친 뒤, 한참 동안 무덤 앞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어 용포 자락을 흩날렸다. 영조는 품속에서 낡은 은비녀를 꺼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쥐여준, 외할머니의 유품. 수십 년 세월에 닳고 닳아 은빛이 거의 사라진 초라한 비녀. 영조는 그 비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니, 소자가 아직 어머니께 합당한 이름을 올려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머니를 천하다 하고, 종이었다 하고, 무수리였다 합니다. 하지만 소자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어머니의 이름을 높여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소자를 지켜봐 주십시오.
영조는 은비녀를 다시 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용포의 먼지를 털지 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신하들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영조의 눈은 이미 말라 있었다. 더 이상 눈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른 눈 안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나라를 바꾸겠다는 불꽃. 어머니처럼 태어남이 천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짓밟히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불꽃. 영조는 가마에 오르며 수행 대신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한양으로 돌아가면 즉시 비국당상을 소집하라고. 논의할 것이 있다고. 그 한마디가 조선의 신분 제도를 뿌리째 흔들 역사적 개혁의 서막이었다는 것을 그 자리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씬 10: 천민의 아들이 바꾼 조선의 법,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
소령원에서 돌아온 영조는 달라져 있었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흘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영조는 조정에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바람이 바로 탕평책이었다. 서인과 남인, 소론과 노론. 수십 년간 서로를 물어뜯으며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온 당쟁의 늪에서 조선을 건져 올리겠다는 선언이었다. 영조는 어느 당파에도 기울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인재는 당색이 아니라 능력으로 뽑겠다고 못 박았다. 대신들은 반발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당파 정치의 관성은 왕 한 사람의 의지로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조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가 궁궐의 칼바람 속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듯, 영조도 조정의 거센 반발 속에서 이를 악물고 밀어붙였다. 탕평비를 성균관 앞에 세우고, 당파를 초월한 인사를 단행하며, 조선 정치의 판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조의 진짜 혁명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분 제도의 개혁이었다.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천민이었다는 사실을 평생의 상처로 안고 살았지만, 그 상처를 원한이 아닌 개혁의 동력으로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훈이 그를 이끌었다. 원망하지 말라. 대신 세상을 바꾸라. 영조는 그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영조가 단행한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종모법의 폐지였다. 종모법. 어미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라는 그 잔인한 법.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를 태어나는 순간부터 종의 굴레에 가둔 바로 그 법이었다. 영조는 이 법을 뒤집었다. 어미의 신분이 아니라 아비의 신분을 따르게 하는 종부법을 시행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 파격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양인 남자와 노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더 이상 노비가 아니었다. 한 줄의 법 조문이 바뀐 것에 불과했지만, 그 한 줄이 수만 명의 노비와 그 후손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조선 개국 이래 수백 년 동안 철벽처럼 유지되어 온 신분 질서에 최초로 균열을 낸 것이다.
조정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양반 사대부 세력은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노비는 양반 경제의 근간이었다. 종모법이 폐지되면 노비의 수가 줄어들고, 노비가 줄어들면 양반들의 재산이 줄어들며, 재산이 줄어들면 권력의 토대가 흔들린다. 기득권층의 저항은 맹렬했다. 상소가 빗발쳤고, 조정 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전하, 이는 나라의 근본을 흔드는 처사이옵니다. 신분 질서는 하늘이 정한 것이옵니다. 천한 것은 천한 것이고 귀한 것은 귀한 것이옵니다. 이를 뒤섞으시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옵니다.
그 말을 듣는 영조의 가슴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천한 것은 천한 것이라는 그 한마디가 어머니의 평생을 짓밟은 칼이었다. 일곱 살에 궁궐로 끌려와 빨래를 하고 물을 긷고 재를 치우며 이름도 없이 살아야 했던 어린 소녀. 왕의 사랑을 받고도 천하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위협을 견뎌야 했던 여인. 죽어서까지 합당한 이름 하나 받지 못한 어머니. 그 모든 고통의 근원에 바로 이 법이, 이 신분 질서가 있었다.
영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용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신하들을 쏘아보며 영조가 입을 열었다. 과인의 어머니는 무수리였다. 종이었다. 빨래를 하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 여인이 과인을 낳았고, 과인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으며, 과인을 왕으로 만들었다. 그 여인이 천한가. 과인의 어머니가 천한가. 대답하라. 조정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영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사람의 귀천은 태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실에 있는 것이다. 종모법은 폐한다. 이것은 과인의 명이자 과인 어머니의 유지이다. 더 이상의 논의는 없다.
조정이 얼어붙었다. 영조의 눈빛에는 일체의 타협이 없었다. 그것은 왕의 명령이기 이전에, 한 아들이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겠다는 맹세였다. 신하들은 고개를 숙였다. 종모법은 폐지되었다.
영조의 개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균역법을 시행하여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절반으로 줄였고, 신문고 제도를 활성화하여 천민도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얼 차별을 완화하여 첩의 아들도 관직에 오를 수 있게 했다. 영조의 재위 52년은 조선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이었고, 그 긴 시간 동안 영조는 쉬지 않고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그 모든 개혁의 밑바닥에는 어머니 숙빈 최씨의 삶이 있었다. 천한 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 했던 한 여인의 생이,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되어 역사를 움직인 것이다.
영조의 말년, 이미 팔순을 바라보는 노왕은 마지막으로 소령원을 찾았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 몸이었지만 가마에서 내려 지팡이에 의지한 채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섰다. 품에서 은비녀를 꺼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그 작고 초라한 은비녀. 영조는 비녀를 봉분 앞에 내려놓으며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소자가 해냈습니다. 종모법을 폐했습니다. 어머니처럼 태어남이 천하다는 이유만으로 종의 굴레를 쓰는 아이들이 이제는 줄어들 것입니다. 어머니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자는 어머니의 아들인 것이 이 세상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봉분 위의 잔디가 일렁였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영조는 미소를 지었다.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지만, 그 미소는 평온했다. 관노비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딸의 아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무수리의 품에서 태어난 아이가 왕이 되어 이 나라의 신분 제도를 뒤흔들었다. 역사는 그 여인의 이름을 기억한다. 숙빈 최씨. 관노비의 딸. 무수리. 왕의 여인. 왕의 어머니. 그리고 조선의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의 어머니. 가을바람이 소령원의 소나무 사이를 지나며 길게 울었고, 그 소리는 마치 오백 년 묵은 한이 비로소 풀려나는 소리처럼 하늘 끝까지 퍼져나갔다.
유튜브 엔딩멘트
관노비의 딸로 태어나 궁궐의 가장 낮은 곳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 그 여인이 왕의 마음을 얻고, 왕의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마침내 조선의 법을 바꾸었습니다.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오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태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다고.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만복야담은 다음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