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그 아이가 내 전생의 원수였다'
내가 죽여야 할 아기가 나를 보며 웃었다. 전생의 내 이름을 부르면서.태그 (15개)
#조선야담, #저승사자, #염라대왕, #도깨비이야기, #한국전래, #명부전설, #오디오드라마, #감동실화, #저승설화, #무속신화, #차사본풀이, #한국괴담, #전래동화, #수명전설, #염라야담
#조선야담 #저승사자 #염라대왕 #도깨비이야기 #한국전래 #명부전설 #오디오드라마 #감동실화 #저승설화 #무속신화 #차사본풀이 #한국괴담 #전래동화 #수명전설 #염라야담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A cinematic 16:9 realistic scene of a Korean Joseon-era grim reaper in traditional black robes and tall black hat, kneeling in a humble thatched-roof cottage at night, moonlight streaming through a paper window, looking down at a sleeping baby wrapped in white cloth who is smiling peacefully, the reaper's hand trembling as he reaches toward the child but stops mid-air, warm golden candlelight contrasting with the reaper's dark silhouette, photorealistic,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no text
후킹
저승사자가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명부 지하 가장 깊은 곳, 쇠사슬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죄명은 단 하나. 적패지 위조. 데려가야 할 영혼을 데려가지 않고, 명부에 '착오'라고 거짓 보고를 올린 죄였습니다. 천 년을 넘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던 저승사자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가 데려가야 했던 건, 태어난 지 겨우 백일 된 젖먹이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저승사자의 눈앞에서 웃었습니다. 이가 하나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합니다.
※ 1:
이승의 사람들은 저승을 어둡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명부의 관아에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고, 생사부를 보관하는 서고에는 푸른빛이 감돌며, 염라대왕이 앉는 전각의 천장에는 이승의 해와 달을 합친 것보다 밝은 구슬이 매달려 있습니다. 저승이라고 해서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명부의 지하만큼은 예외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흔아홉 개입니다.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빛이 한 줌씩 사라집니다. 열 계단째에서 촛불이 꺼지고, 서른 계단째에서 발밑이 보이지 않으며, 쉰 계단째에서 자기 손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아흔아홉 번째 계단을 밟으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도 줄어듭니다. 바깥의 소리가 물속에 가라앉듯 멀어지고, 남는 것은 자기 숨소리와 심장 소리뿐입니다. 저승의 관리가 죄를 지었을 때만 열리는 쇠문이 그 끝에 있습니다. 명부가 만들어진 이래 그 문이 열린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 문이 열렸습니다.
쇠로 된 문이 비명처럼 삐걱거리며 열렸고, 안쪽으로 하나의 그림자가 들어갔습니다. 검은 관복 차림. 하지만 관모는 벗겨진 채 감찰관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관복의 소매에서 적패지가 모두 압수된 뒤였기에, 두 소매가 텅 비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철그럭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렸습니다.
저승사자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
명부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은 그것이었습니다. 이름이라고 부르기엔 차가운 번호. 하지만 저승사자에게 이름은 필요 없었습니다. 이름이란 누군가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의미가 생기는 것인데,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번호를 다정하게 불러준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쇠문이 닫혔습니다. 빛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승사자는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바닥이 차가웠습니다. 축축한 돌바닥의 한기가 무릎을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등을 곧게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자세를 천 년 동안 해왔습니다. 명부의 배정소에서 적패지를 받을 때도 이 자세였고, 염라대왕의 전각에서 보고를 올릴 때도 이 자세였습니다. 다만 그때는 쇠사슬이 없었고, 관모가 있었고, 소매 안에 적패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관모도, 적패지도,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던 그의 완벽한 기록도.
명부 판관의 목소리가 쇠문 바깥에서 들려왔습니다. 멀고 낮은, 그러나 돌벽을 뚫고 들어오는 목소리.
"저승사자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 죄명, 적패지 위조 및 영혼 수거 거부. 배정된 영혼 김복동의 수거를 고의로 이행하지 않고, 명부에 '착오'라고 허위 보고를 제출한 죄. 이에 해당 사자를 구속하고, 내일 염라대왕 친심에 회부한다."
판관의 발소리가 멀어졌습니다. 다시 어둠과 침묵만 남았습니다.
천 년이었습니다. 이 저승사자가 명부에서 일한 시간. 천 년 동안 그가 거두어 간 영혼의 수는 십만을 넘습니다. 전쟁터에서 수백의 영혼을 한꺼번에 수거한 적도 있고, 역병이 돌 때 마을 전체의 영혼을 하룻밤 사이에 거둔 적도 있습니다.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이도. 그는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적패지에 이름이 적혀 있으면 가져오는 것.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적패지를 위조했습니다.
명부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명부의 역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적패지를 위조한다는 것은 생사의 법칙을 손으로 비트는 것과 같았습니다. 명부의 다른 저승사자들은 수군거렸습니다. "미쳤다." "천 년 공력을 스스로 내던졌다."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 영혼이길래."
맞습니다. 대체 어떤 영혼이었길래.
그가 데려가야 했던 것은, 이승에서 겨우 백일을 살았던 젖먹이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아이 앞에서 천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저승사자의 가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 2:
명부의 배정소는 저승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길고 좁은 복도의 끝에 창구가 하나 있고, 그 창구 뒤에 기록관이 앉아 있습니다. 기록관의 뒤로는 벽 전체를 채운 서가가 늘어서 있는데, 거기에 이승의 모든 사람의 이름과 수명이 적힌 생사부가 꽂혀 있습니다. 기록관은 매일 생사부에서 수명이 다한 이름을 골라내어 적패지를 씁니다. 얇은 종이 위에 먹으로 이름과 사는 곳과 수명을 적고, 그것을 저승사자에게 건네는 것이 기록관의 일입니다.
그날도 저승사자는 배정소에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앞에 서 있던 저승사자들이 하나씩 적패지를 받아 들고 이승으로 내려갔습니다. 표정이라고 할 것은 아무에게도 없었습니다. 저승사자에게 감정은 불필요한 것이고, 불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같은 검은 관복, 같은 검은 관모, 같은 무표정.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은 얼굴들이 줄지어 서서, 적패지를 받고, 돌아서고, 사라졌습니다.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의 차례가 왔습니다.
기록관이 적패지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두 손으로 받아 들었습니다. 늘 그랬듯 아무 감정 없이. 눈을 내려 적패지를 읽었습니다.
'김복동. 전라도 남원부 산내면. 수명 백일.'
수명 백일.
저승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이승에서 아이가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일은 흔했습니다. 너무 흔해서 조선의 백성들은 아이가 태어나도 한동안 이름을 짓지 않았습니다. '개똥이', '소똥이', '돌쇠'. 일부러 천한 이름을 붙여 귀신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이름을 곱게 지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이름에는 '복(福)' 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복동. 복을 가져올 아이.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두려움보다 간절함이 더 컸던 것입니다. 귀신이 데려갈까 두려워 이름을 숨기는 대신, 복을 담아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바람을 품었는지, 이름 석 자가 그것을 모두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적패지를 소매 안에 넣고, 이승으로 내려갔습니다.
전라도 남원.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은 동네. 늦가을의 바람이 논두렁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벼를 거둔 뒤의 논은 텅 비어 있었고, 허수아비 하나가 할 일을 잃은 채 서 있었습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초가집 대여섯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작은 집. 지붕의 이엉이 군데군데 뜯겨 있고, 담장 대신 낮은 돌담이 마당을 두르고 있는 집.
저승사자는 그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었습니다. 작은 배냇저고리 세 벌. 어른 것이 아닌, 아기 것이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배냇저고리가 나풀거렸습니다. 하얀 천이 석양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옆에 기저귀 몇 장이 함께 널려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장작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 집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집을 보면 알 수 있었지만, 마당만큼은 깨끗하게 쓸려 있었습니다. 가난해도 부지런한 사람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안에서 여인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자장가였습니다.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 음정이 흔들리는 것은 목이 잠겨서가 아니라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소절이 끝나면 다시 처음부터.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겨우 잠든 아이가 다시 눈을 뜨지 않도록.
저승사자는 문을 넘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니, 문을 열 필요가 없었습니다. 종이문을 통과하듯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방은 좁았습니다. 한 평 반쯤 될까. 벽 한쪽에 이불이 개켜져 있었고, 반대쪽 구석에 호롱불 하나가 가물가물 타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거의 바닥나 있었습니다. 불꽃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방 안에 그림자를 일렁이게 했습니다. 그 호롱불 옆에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스물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 무릎 위에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 밑에는 깊은 그늘이 져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얼굴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풀어져 볼에 달라붙어 있었고, 저고리 어깨에는 아이의 침이 마른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아이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얼굴. 주먹보다 작은 손. 코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납작한 코. 입술이 쪽쪽 움직이는 것은 잠결에도 젖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불 위에 뉘어놓으면 될 것을 여인은 굳이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깰 때 품 안이 비어 있으면 우니까.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느껴지면 다시 잠드니까.
저승사자는 아이 앞에 섰습니다. 소매 안에서 적패지를 꺼내려 손을 넣었습니다. 이 동작을 천 년 동안 십만 번은 했습니다. 오른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가고, 손가락이 종이의 모서리를 잡고, 꺼내어 영혼 앞에 펼치는 것. 한 치의 주저함 없이 해왔던 동작.
그때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잠결이었을 겁니다. 여인의 자장가 소리가 잠시 끊긴 틈이었을 수도 있고, 저승사자가 가져온 저승의 기운이 아이의 잠을 건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고, 그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저승사자의 얼굴 위에 멈추었습니다.
보통 이승의 사람은 저승사자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백일도 채 안 된 아이는 다릅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아직 완전히 넘지 못한 존재.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까지 저승과 이승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존재. 이 아이의 눈에는 저승사자가 보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웃었습니다.
이가 하나도 나지 않은 잇몸을 드러내며. 볼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며.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두 손이 허공을 향해 뻗으며. 까르르. 소리까지 냈습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여인이 잠결에 중얼거렸습니다. "우리 복동이 꿈꾸나 보네." 여인은 저승사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저승사자의 손이 소매 안에서 멈추었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3: [반전 정보 공개]
저승사자는 천 년을 살았습니다.
아니, 살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천 년을 일했습니다. 먹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쉰 적이 없습니다. 이승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일 따위는 저승사자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적패지를 받으면 이승에 내려가고, 영혼을 거두면 명부로 돌아오고, 다시 적패지를 받으면 이승에 내려가는 것. 그것만을 천 년 동안 반복한 것뿐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저승사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승의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그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감정이란 저승사자에게 불순물이었습니다. 명부에서 처음 임무를 받았을 때 선배 저승사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지 마라. 불쌍해하지 마라. 네가 데려가는 영혼을 바라보되, 느끼지는 마라. 느끼는 순간 네 손이 멈추고, 손이 멈추는 순간 명부의 법이 흔들린다." 그 말을 천 년 동안 지켰습니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노인의 영혼을 거둘 때. 노인은 대개 체념한 얼굴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저항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눈물을 보았지만 느끼지 않았습니다.
젊은이의 영혼을 거둘 때. 젊은이는 대개 분노했습니다. "왜 나인가."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분노를 보았지만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영혼을 거둘 때. 아이는 대개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왔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온 영혼이 저승사자의 손을 잡고, 처음 보는 길을 걸으며 두리번거렸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작은 손을 잡았지만 느끼지 않았습니다.
천 년 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누군가 웃어준 적이 있었을까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나타나면 이승의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수명이 다해 저승사자를 볼 수 있게 된 자들은 예외 없이 공포에 질렸습니다. 눈이 뒤집히도록 무서워했습니다.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어떤 이는 도망쳤고, 어떤 이는 주저앉았고, 어떤 이는 기절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보인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뜻이니까요. 두렵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 년 동안 그를 본 이승의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도 웃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소는커녕 눈을 맞춘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았습니다. 저승사자의 존재 자체가 공포였습니다. 그는 천 년 동안 공포의 대상으로만 존재해왔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는 웃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서워하기는커녕,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두 팔을 허공으로 뻗으며. 손가락을 오물거리며.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입에서 옹알옹알 소리를 내며.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저승사자의 귀에는 그것이 마치 '같이 놀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아니, '어서 와'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말보다 단순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눈앞에 누군가가 있으니까 웃은 것. 좋으니까 웃은 것. 이유 따위 없는 웃음. 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백일 된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반응.
저승사자의 손이 떨렸습니다.
오른손이 소매 안에서 멈춘 채 떨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끝이 적패지의 모서리에 닿아 있었지만, 그것을 잡아당길 수가 없었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떨린 적 없던 손이. 전쟁터에서 수백의 영혼을 거둘 때도,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져갈 때도, 이 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의 웃음 한 번에 멈추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저승사자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습니다. 호롱불 빛이 아이의 동그란 볼 위에서 따뜻하게 일렁였습니다. 아이의 까만 눈동자 속에 저승사자의 검은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눈동자 안에서 저승사자는,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무섭지 않은 존재.
그것이었습니다.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그저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 이 아이는 저승사자를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앞에 누군가가 서 있으니까, 웃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천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느껴졌습니다. 얼음이 녹을 때 갈라지는 것처럼. 혹은 꽁꽁 언 땅이 봄을 맞아 첫 번째 금이 가는 것처럼. 작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저승사자의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잠결에 아이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습니다.
"우리 복동아, 엄마가 지켜줄게."
나직한 목소리. 잠이 덜 깬 목소리. 하지만 그 한마디에 실린 무게는 저승사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눈 밑에 깊이 파인 그늘. 아이가 태어난 뒤 백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흔적. 젖이 잘 나오지 않아 이웃집에 가서 고개를 조아리며 젖을 얻어온 날들. 남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사이 혼자 아이를 돌보며 논밭까지 일구었던 날들. 그 모든 것이 여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품에 안긴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입술이 이마에 닿자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다시 잠들었습니다.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세상 모르게 평화로운 얼굴로.
이 여인에게서 아이를 데려가면 어떻게 되는가.
천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되는가. 백일 동안 잠도 못 자며 지켜온 이 아이가 갑자기 차갑게 식으면, 이 여인은 어떤 소리를 지를 것인가. 마당에 널린 저 배냇저고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아침 일어나 아이의 이불을 갤 때, 빈 이불에 코를 묻고 남아 있는 냄새를 맡으며 어떤 얼굴을 할 것인가.
저승사자는 적패지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소매 안에 넣은 손을 그대로 뺐습니다. 빈손이었습니다.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빈손으로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방을 나왔습니다. 마당을 지났습니다. 바람이 불어 배냇저고리가 나풀거렸습니다. 하얀 천이 어둠 속에서 펄럭이는 것이 마치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승사자는 명부로 돌아갔습니다.
배정소 옆에 있는 보고서 창구에 앉아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떨리지 않던 손으로, 천 년 만에 처음으로 거짓을 적었습니다.
'김복동 건. 착오 발생. 해당 영혼은 수거 대상에서 제외됨.'
붓이 종이 위에서 떨려 먹이 번졌습니다. 착오. 명부에서 착오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적패지는 저승의 법이고, 법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천 년 동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승사자가, 그 법을 자기 손으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돌아서는데, 복도 끝에서 감찰관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저승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들킬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명부의 기록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패지가 나갔는데 영혼이 수거되지 않으면 생사부에 오차가 생긴다는 것을. 오차가 생기면 감찰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발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아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까만 눈동자. 이 없는 잇몸.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 그리고 여인의 목소리. "우리 복동아, 엄마가 지켜줄게."
그것이 적패지보다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였습니다.
※ 4: [감정 폭발]
명부의 기록은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명부의 생사부는 살아 있는 장부입니다. 이승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생사부의 빈 페이지에 저절로 이름이 떠오릅니다. 먹으로 쓴 것처럼 선명하게. 이름 옆에는 태어난 곳과 수명이 함께 적힙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이름이 서서히 흐려지다가 사라집니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에서 먹이 번지듯, 글자의 윤곽이 무너지고, 흐릿해지고, 결국 빈 페이지만 남습니다. 이 과정은 저승사자가 영혼을 수거하는 순간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누가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 지우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적패지가 발행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이승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수거되지 않았습니다.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생사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명 백일이 지났는데도 글자는 선명한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생사부의 해당 페이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법의 질서에 어긋난 것이 생기면 생사부가 스스로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감찰관이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사흘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명부의 감찰관은 매일 아침 생사부를 순찰합니다. 수천 권의 장부를 하나하나 넘기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날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름이 뜨고, 이름이 사라지고, 법의 질서가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감찰관의 손이 한 페이지 위에서 멈추었습니다. 김복동. 전라도 남원부 산내면. 수명 백일. 글자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감찰관은 적패지 발행 기록을 대조했습니다. 적패지는 이틀 전에 발행되었고, 담당 저승사자는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였습니다. 보고서를 꺼내 확인했습니다. '김복동 건. 착오 발생. 해당 영혼은 수거 대상에서 제외됨.'
감찰관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착오. 명부에서 착오란 없습니다. 생사부는 틀리지 않습니다. 적패지는 생사부를 근거로 발행되므로 적패지도 틀리지 않습니다. 적패지가 나갔다는 것은 수명이 다했다는 뜻이고, 수명이 다했는데 영혼이 수거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착오가 아니라 불이행입니다. 고의적 불이행.
저승사자는 즉각 구속되었습니다.
감찰관이 직접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의 처소를 찾아갔습니다. 저승사자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감찰관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처소의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검은 관모를 벗기고, 소매 안의 적패지를 모두 압수하고,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동안에도 저승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보였으니까요. 아이의 얼굴이. 까르르 웃던 그 소리가 귓속에서 아직 울리고 있었으니까요.
명부 지하로 끌려 내려가는 아흔아홉 계단.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빛이 사라졌지만, 저승사자의 눈앞에서 아이의 웃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두워질수록 더 선명해졌습니다. 호롱불 아래에서 반짝이던 까만 눈동자. 이 없는 잇몸. 동그란 볼.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까르르 웃던 소리. 그것이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쇠문이 닫히고, 어둠이 그를 삼켰습니다.
저승사자는 차가운 돌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천 년의 시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십만이 넘는 영혼을 거두었습니다. 그중에 아이가 몇이나 있었을까요. 세지 않았습니다. 셀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부 같았으니까요. 적패지에 적힌 이름. 그 이름을 찾아가 영혼을 가져오는 것. 이름이 누구의 자식인지, 누구의 사랑인지, 그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둠 속에서 그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열병으로 죽은 세 살 아이의 얼굴. 그 아이의 어머니가 시신을 안고 울부짖던 소리. 굶어 죽은 다섯 살 아이의 얼굴. 뼈만 남은 작은 몸을 안고 산으로 올라가던 아버지의 뒷모습. 전쟁터에서 어머니를 잃고 혼자 남겨진 아이의 영혼이 저승사자의 손을 잡으며 물었던 말. "엄마는요? 엄마도 같이 가요?"
천 년 동안 느끼지 않았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독이 퍼지듯 가슴 안쪽에서 시작된 것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저승사자에게 숨이란 필요 없는 것이었는데, 지금 분명히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눈 언저리가 뻣뻣해졌습니다. 턱이 떨렸습니다. 무언가가 눈에서 흘러내렸습니다. 뺨을 타고, 턱 끝에서 떨어져, 차가운 돌바닥 위에 소리 없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저승사자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천 년을 살면서 한 번도 흘려본 적 없는 것. 이승의 사람들이 슬플 때, 아플 때, 기쁠 때 흘리는 것. 저승사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새로운 물이 차올랐습니다. 천 년치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명부의 가장 높은 전각에서 염라대왕의 친심이 열렸습니다.
전각은 넓었습니다. 이승의 어떤 궁궐보다 넓고, 어떤 사찰의 대웅전보다 높았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구슬이 전각 전체를 낮처럼 밝히고 있었고, 바닥은 검은 돌로 깔려 있었습니다. 양쪽 벽을 따라 명부의 관리들이 도열했습니다. 판관, 감찰관, 기록관. 그리고 수천의 저승사자들이 양옆에 줄지어 섰습니다. 모두 같은 검은 관복, 같은 검은 관모, 같은 무표정. 하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들 안쪽에서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명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심판이 열리는 것이었으니까요.
전각 한가운데로 쇠사슬에 묶인 저승사자가 끌려 나왔습니다.
관모가 없었습니다. 맨발이었습니다. 구겨진 관복에 돌바닥의 습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쇠사슬이 바닥에 질질 끌리며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가 조용한 전각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렸습니다. 저승사자는 전각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열 길 높이의 자리에서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내려왔습니다.
낮았습니다. 깊었습니다. 천장의 구슬이 그 목소리에 미세하게 진동했습니다. 명부의 모든 관리가 숨을 멈추었습니다.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 고개를 들어라."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이 부어 있었습니다. 천 년 만에 처음 흘린 눈물의 흔적이 뺨 위에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본 수천의 저승사자들 사이에서 미세한 술렁임이 일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운다. 저승사자의 눈이 부어 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적패지를 위조한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전각 안이 다시 술렁였습니다.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이라고, 한마디로 인정했습니다.
감찰관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습니다. "명부 율법 제삼조. 적패지를 위조하거나 영혼 수거를 고의로 거부한 자는, 천 년간 쌓은 공력을 박탈하고, 이승의 가장 낮은 존재로 환생시킨다."
천 년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천 년 동안 빈틈없이 해온 일. 십만이 넘는 영혼을 거두고, 한 치의 오차 없이 명부를 지켜온 공. 그 모든 것이 적패지 한 장의 거짓으로 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판관이 판결문을 준비하려 붓을 들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물었습니다.
"이유를 말하라."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 년 동안 보고서만 읽던 입이, 감정을 말로 바꾸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웃었다는 것을. 그 웃음이 가슴 한가운데를 뚫었다는 것을. 적패지를 꺼내려는 손이 제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을. 천 년 동안 한 번도 두려운 적 없었는데, 아이의 웃음 앞에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두려웠다는 것을. 그것이 두려움인지 슬픔인지 사랑인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을.
침묵이 전각을 눌렀습니다.
수천의 시선이 저승사자에게 꽂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전각도, 관리들도, 염라대왕의 자리도 사라지고, 눈앞에 아이의 얼굴만 떠올랐습니다. 호롱불 아래에서 까르르 웃던 얼굴. 이 없는 잇몸. 까만 눈동자. 두 팔을 뻗으며 옹알거리던 소리.
저승사자의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리고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보고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웃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전각 안을 울렸습니다. 높은 천장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마치 천 년의 시간을 되감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졌습니다. 숨이 끊기듯 말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천 년 동안…… 아무도, 저를 보고 웃은 적이 없었습니다."
전각이 조용해졌습니다. 수천의 저승사자가 숨을 멈추었습니다. 그들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자신들을 보고 웃어준 이승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비명과 절규와 애원. 그것만이 천 년 동안 그들이 받아온 전부였다는 것을. 삼만사천구백이십칠호의 말은, 그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저승사자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습니다. 지켜주겠다고."
고개가 더 깊이 숙여졌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저승사자는 바닥에 이마를 대었습니다. 어깨가 떨렸습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전각 안에 길고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감찰관도, 판관도, 수천의 저승사자들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오직 염라대왕만이, 열 길 높이의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저승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감히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염라대왕은 홀로 명부의 서재에 앉았습니다. 생사부를 펼쳤습니다. 수천 권의 장부 중에서 하나를 골라, 한 페이지를 넘기고, 김복동이라는 이름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글자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수명이 다했는데 살아 있는 이름. 법의 질서 바깥에 놓인 이름. 염라대왕의 손이 그 이름 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촛불 그림자가 장부 위에서 일렁였습니다. 만 년 동안 명부를 다스려온 존재가, 만 년 만에 처음으로 법이 아닌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손 아래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는지, 명부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 5: [카타르시스]
다음 날 아침, 전각이 다시 열렸습니다.
전날과 같은 자리였습니다. 같은 도열. 같은 검은 관복들이 양쪽 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기가 달랐습니다. 전날의 술렁임은 사라지고, 전각 안에는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무거운 정적만이 깔려 있었습니다. 판관의 손에 판결문 양식이 들려 있었고, 감찰관의 표정은 굳어 있었으며, 수천의 저승사자들은 고개를 낮춘 채 눈만 들어 전각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인 저승사자가 다시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전날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관복의 주름이 더 깊어졌고, 눈 밑의 그늘도 더 짙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습니다. 전날의 흔들림은 사라지고, 체념도 두려움도 아닌, 어떤 고요한 각오 같은 것이 그 눈 안에 있었습니다. 무슨 벌이든 받겠다는 얼굴이었습니다. 천 년의 공력이 사라지든, 이승의 가장 낮은 존재로 환생하든,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얼굴.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생사부를 가져오너라."
기록관이 두 손으로 무거운 장부를 받쳐 들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장부를 염라대왕 앞에 펼쳤습니다.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적힌 페이지. 글자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 페이지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명부에 착오는 없다. 이것은 만 년 동안 지켜온 법이다."
저승사자의 어깨가 움찔했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습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적패지를 위조한 것은, 생사의 법칙을 손으로 비튼 것과 같다. 명부의 근간을 흔드는 중죄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감찰관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판관이 붓을 들어 판결문에 첫 글자를 적으려 했습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오른손을 들어 판관을 멈추었습니다.
판관의 붓이 허공에서 멈추었습니다. 전각 안이 얼어붙었습니다. 수천의 저승사자들이 눈을 크게 떴습니다. 감찰관의 손에서 서류가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열 길 높이의 자리. 명부가 시작된 이래 염라대왕은 한 번도 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습니다. 심판을 할 때도, 법을 선포할 때도, 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심판이었고, 그 거리가 곧 법의 위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염라대왕이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검은 용포의 자락이 계단 위에 끌렸습니다. 전각 안의 모든 시선이 그 발걸음을 따라갔습니다. 아무도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세 걸음. 네 걸음. 다섯 걸음. 계단 하나를 내려올 때마다 전각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열 길의 계단을 모두 내려온 염라대왕이 저승사자 앞에 섰습니다.
바로 눈앞에 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저승사자의 정면에.
"고개를 들어라."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부은 눈.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 천 년 만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얼굴. 그 얼굴이 염라대왕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염라대왕의 눈은, 저승사자가 예상한 것과 달랐습니다. 분노가 없었습니다. 차가움도 없었습니다. 그 눈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저승사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 명부를 만 년 동안 다스려왔다."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전각 구석구석까지 닿았습니다. 천장의 구슬이 미세하게 진동했습니다.
"만 년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이승의 삶을 보았다. 태어남을 보았고, 죽음을 보았다. 만남을 보았고, 이별을 보았다. 기쁨을 보았고, 슬픔을 보았다. 그 모든 것을 이 자리에서 내려다보았다."
전각 안의 모든 숨소리가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나도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만 년 동안 흔들린 적 없던 그 목소리가. 수천의 저승사자들이 그 흔들림을 감지했습니다. 모두의 등줄기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거두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박자 쉬었습니다.
"그것이 적패지 위의 이름 석 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전부라는 것을."
저승사자의 눈에서 다시 물이 흘렀습니다.
"어머니가 백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며 지킨 것. 배냇저고리를 빨아 마당에 널며 기다린 것. 이마에 입을 맞추며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것. 그 모든 것이 그 이름 석 자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전각 안이 고요했습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염라대왕이 기록관을 돌아보았습니다.
"생사부를 고쳐라."
기록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대, 대왕마마, 생사부를 고치라 하시옵니까. 생사부는 만 년 동안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사옵니다."
"알고 있다."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담담했습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안에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김복동. 수명 백일을 지워라."
기록관의 손이 떨렸습니다.
"새로 적어라. 육십 년을 더하여라."
전각이 흔들렸습니다.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흔들렸습니다. 바닥의 검은 돌이 갈라지듯 진동했고, 천장의 구슬이 크게 흔들리며 빛이 요동쳤습니다. 명부의 법이 바뀌는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요동치는 것이었습니다. 수천의 저승사자들이 중심을 잡으려 발을 디뎠습니다.
육십 년.
겨우 백일밖에 살지 못할 아이에게, 염라대왕이 육십 년의 수명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이승에서 환갑을 맞이할 때까지. 이가 나고. 걸음마를 배우고. 첫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고.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그 모든 시간을, 만 년 동안 법만을 지켜온 명부의 주인이, 자기 손으로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감찰관이 더듬거리며 물었습니다. "그, 그러면 저승사자의 처벌은……."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가리켰습니다.
"풀어라."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쨍그렁. 차가운 쇠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소리가 사라진 뒤의 침묵이, 그 어떤 소리보다 컸습니다.
"적패지 위조는 중죄이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저승사자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떤 벌이든 받겠다는 각오가 이미 되어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달라졌습니다. 만 년 동안 법만을 말하던 입에서, 처음으로 법의 바깥에 있는 말이 나왔습니다.
"차마, 라는 말이 있다."
전각 안의 공기가 변했습니다.
"차마 할 수 없었다는 것. 그것은 이승의 말이다. 저승에는 없는 말이다. 하지만."
한 박자 쉬었습니다.
"없다고 해서,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천의 저승사자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차마 할 수 없었다는 것. 그것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은, 법보다 오래된 것이다."
저승사자의 어깨가 크게 떨렸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턱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네 죄는 묻지 않겠다."
저승사자의 이마가 바닥에 닿았습니다.
"다만 벌 대신 하나를 명한다."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눈물에 젖은 눈으로.
"앞으로 이승에서 아이의 영혼을 거두어야 할 때, 네가 가거라."
전각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가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그 아이를 바라보아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 깊이 울렸습니다.
"아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곁에 누가 있고, 누가 그 아이를 지키고 있는지. 그것을 눈에 담고 나서 거두어라. 그것이 네 벌이다."
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벌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잊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네가 거두어가는 것이 종이 위의 이름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것을. 그 생명 곁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손을 뻗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마를 바닥에 대었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숙이지 않았던 이마를, 차가운 명부의 돌바닥에 대었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이마가 돌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각 안에서, 수천의 저승사자 중 몇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는 이가 있었습니다. 천 년 동안 감정이란 것을 지워버린 존재들이, 그 순간만큼은, 자기 안에 남아 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 6: [여운과 확장]
그로부터 육십 년이 흘렀습니다.
이승의 시간으로 육십 년. 명부의 시간으로는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승에서는 세상이 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왕이 바뀌고, 전쟁이 일어나고, 마을이 없어지고 새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생사부에 이름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수만 번. 그 사이에 계절은 육십 번 봄여름가을겨울을 돌았습니다.
전라도 남원 산내면. 지리산 자락 아래 그 마을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초가지붕은 기와지붕으로 바뀌었고, 돌담은 더 높아졌지만,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육십 년 전과 같았습니다. 마을 한가운데에 제법 너른 기와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문 앞에 감나무가 서 있고, 마당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습니다. 배냇저고리가 아니라 어른의 옷과 아이들의 옷이 뒤섞여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습니다. 대가족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이 집의 주인 이름은 김복동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복동 영감'이라 불렀습니다. 올해 환갑. 자식 넷에 손주 일곱. 남원 일대에서 가장 이름난 훈장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서당을 열어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그 서당에서 배운 아이들 중 과거에 급제한 이가 셋이나 나왔습니다. 훈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복동 영감을 찾아왔습니다. 어른들의 다툼을 중재하고,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영감의 일상이었습니다.
복동 영감에게는 마을 사람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백일 무렵,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을 앓았습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 의원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머니가 밤새 아이를 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이마에 찬 수건을 올리고, 자장가를 부르고, 입술을 아이의 이마에 대며 살려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열이 거짓말처럼 뚝 떨어졌습니다. 의원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을 두고두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늘이 돌려보내준 아이." 어머니는 그렇게 믿었고, 복동 영감도 그렇게 믿으며 자랐습니다.
다만, 가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같은 꿈이었습니다. 어두운 방 안. 호롱불이 가물거리고. 누군가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습니다. 꿈속의 자기는 갓난아이인 것 같았고, 검은 옷의 그 사람을 보면 왠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깨면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 마치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 그 꿈의 의미를 영감은 평생 알지 못했습니다.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상을 차렸습니다. 자식 넷이 절을 올렸습니다. 손주 일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영감의 무릎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술과 떡을 가져왔습니다. 영감의 아내가 부엌에서 국밥을 퍼 나르며 연신 웃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잔칫날. 영감은 상 위에 놓인 수연떡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왜 우는지 자기도 몰랐습니다.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이 사람들 곁에 있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이 벅차서 눈물이 난 것이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가고, 가족이 모두 잠든 뒤.
복동 영감은 마당에 혼자 나와 앉았습니다.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환갑을 넘긴 노인의 주름진 얼굴 위로 달빛이 고요하게 내려앉았습니다. 감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마당에 널린 빨래가 나풀거렸습니다. 육십 년 전에도 이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배냇저고리 세 벌이었습니다.
그때, 달빛 사이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소리 없이. 바람보다 조용하게. 감나무 그늘 아래에 검은 관모, 검은 관복의 형체가 서 있었습니다.
복동 영감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환갑을 넘긴 노인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가르친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랐고, 자식들이 건강했고, 손주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영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오실 줄 알았소."
저승사자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달빛 아래에 서서, 영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래. 아주 오래.
영감이 고개를 들어 저승사자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기억나지 않는 아주 먼 옛날에. 가슴 안쪽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왔습니다.
"혹시…… 전에 만난 적이 있소?"
저승사자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영감을 바라보았습니다. 까만 눈동자. 주름 사이로 보이는 그 눈. 육십 년 전 호롱불 아래에서 본 그 눈과 같은 눈이었습니다. 눈의 크기가 달라지고, 주름이 생기고, 눈꺼풀이 처졌지만, 그 안에 있는 빛은 똑같았습니다.
저승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예. 한 번 만났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어디서?"
"이 마을에서. 이 집에서. 이 마당에서."
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저승사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목소리가 낮고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천 년이 넘는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때 어르신은…… 저를 보고 웃으셨습니다."
영감의 눈이 커졌습니다.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이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꾸던 그 꿈. 어두운 방 안. 호롱불. 검은 옷의 누군가. 무섭지 않았던 그 존재. 웃음이 나왔던 그 순간.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슴이 알고 있었습니다.
영감의 눈에 물이 고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웃음을 육십 년 동안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달빛 아래에서 저승사자의 눈이 빛났습니다. 천 년 넘게 얼어붙어 있다가 육십 년 전 그날 밤부터 녹기 시작한 눈이. 그 눈에도 물기가 어려 있었습니다.
복동 영감이 웃었습니다.
주름투성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가 몇 개 빠진 잇몸이 드러났습니다. 볼이 동그랗게 올라갔습니다.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습니다. 그것은 육십 년 전, 호롱불 아래에서 저승사자를 보고 까르르 웃던 그 아이의 웃음과 한 치의 다름도 없었습니다. 육십 년의 세월이 얼굴을 바꾸었지만, 웃음만큼은 바꾸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적패지를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웃음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노인의 웃음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두 웃음은 같은 웃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육십 년의 시간은, 저승사자가 지켜낸 것이었습니다.
"가시지요."
"그러지요."
복동 영감은 잠든 가족이 있는 방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옆방에서는 손주의 잠꼬대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영감은 그 소리를 귀에 담았습니다. 오래. 아주 오래.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저승사자를 보며 말했습니다.
"고맙소."
저승사자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육십 년…… 참 좋은 시간이었소."
저승사자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삼키느라 한참이 걸렸습니다.
둘은 나란히 걸었습니다. 마당을 지나고, 대문을 나서고, 마을길을 지나, 달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한 사람은 육십 년의 삶을 등 뒤에 두고, 한 사람은 천 년의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받은 웃음을 품에 안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에서 나란히 길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걸음이 멈추기 전, 복동 영감이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마을이 보였습니다.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이 섞인 작은 마을. 감나무가 있는 집. 마당에 빨래가 널린 집.
"저승이라는 곳이…… 어둡소?"
저승사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어르신이 가시면…… 조금 더 밝아질 겁니다."
복동 영감이 마지막으로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환한 것이었습니다.
■ 엔딩
백일밖에 살지 못할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야 할 저승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웃었고, 저승사자의 천 년이 무너졌습니다. 법을 어긴 것은 죄였지만, 염라대왕은 알고 있었습니다.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이승과 저승을 관통하는 가장 오래된 법이라는 것을. 하늘은 냉정하지만, 하늘도 마음이 있습니다. 웃음 한 번이 천 년을 녹이고, 눈물 한 줄기가 수명을 바꿉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 조선의 밤하늘에서 발견하는 지혜, 염라야담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