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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였으면 망했을 운명 , 마을 사람들의 의리 있는 반전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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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400자 내외)
"어이구,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혼자 울고만 계셨습니까? 여기, 조선 시대 어느 이름 없는 마을에서는 한 사람의 불행을 막기 위해 마을 전체가 '미친 척' 연기를 했다는 기막힌 실화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도깨비 작전'! 탐관오리의 수탈 앞에 선 선량한 이웃을 위해, 아기부터 할멈까지 온 마을이 발을 벗고 나섰다는데... 과연 그들은 어떻게 그 서슬 퍼런 관원의 눈을 속이고 웃음꽃을 피웠을까요? 『청구야담』에 기록된, 가슴 뭉클하고도 배꼽 잡는 이웃 사촌들의 필살기! 지금 그 기가 막힌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청구야담』에 전해지는 기록으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구하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하나로 뭉친 감동적이고도 유쾌한 야담입니다. 이기주의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진정한 '우리'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이 이야기는 시니어 여러분께 따뜻한 위로와 통쾌한 웃음을 동시에 선사할 것입니다. 옛이야기 특유의 맛깔나는 서사와 농밀한 인간미를 느껴보세요.
※ 평화로운 달빛마을의 비보
자, 때는 바야흐로 조선 중기, 산세가 수려하고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경상도 어느 깊은 골짜기에 ‘달빛마을’이라 불리는 고즈넉한 동네가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이름처럼 참으로 평화롭고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마을 한가운데에는 수령이 오백 년은 족히 됨직한 거대한 은행나무가 든든하게 버티고 서서 동네 아이들에게는 시원한 그늘을, 노인들에게는 아늑한 쉼터를 내어주곤 했지요. 이 마을에는 박 선비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이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 성인(聖人)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도 길 가던 나그네의 짚신이 닳아 있으면 제 신발을 벗어주고, 이웃집 장독이 깨지면 제 집 장독을 머리에 이고 달려가던 그런 속 깊은 선비였더랬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달빛마을의 살아있는 심장'이라 부르며 존경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평온하기만 하던 마을에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고을에 새로 부임한 사또의 아들이라는 놈이 아주 지독하고 고약한 악질이었는데, 이놈이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박 선비네 문전옥답을 보게 된 게지요. 비록 집은 초라해도 그 땅만큼은 기름진 황금빛을 띠고 있으니, 이 탐욕스러운 놈의 눈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겁니다. "아니, 저렇게 비옥한 땅이 왜 저 꾀죄죄한 선비 놈의 것이란 말이냐?" 하고는, 없는 죄를 억지로 뒤집어씌운 겁니다. 박 선비가 나라의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빼돌리고 임금님께 바칠 햅쌀을 가로챘다는, 그야말로 개가 웃을 누명을 씌워버렸지요. 그리고는 열흘 뒤에 관원들을 보내 박 선비를 하옥하고 그 땅을 몰수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전갈이 마을에 당도했습니다.
박 선비는 그 전갈을 전해 듣고는 툇마루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낡고 해진 갓을 고쳐 쓸 힘조차 없이, 평생을 손때 묻게 읽어온 책장을 넘기던 손을 파들파들 떨었지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박 선비의 아내는 부엌 한구석에서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눈물을 훔치며, 불기 없는 아궁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여보, 우리가 평생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하늘은 우리에게 이런 모진 시련을 주신단 말이오?" 박 선비는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아내의 거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법이니 너무 상심 말게나. 내 목숨이 다해도 자네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족하네." 말은 그렇게 의연하게 했지만, 박 선비의 눈동자에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습니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담장을 넘고 골목을 지나 동네 사람들 귀에 들어갔습니다. 아침에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던 김 할멈도, 냇가에서 방망이질을 하던 이 씨 댁 아낙도, 밭에서 낫질을 하던 머슴 돌쇠도 일손을 멈췄습니다. 마을 사람들 가슴에는 뜨거운 불덩이가 하나씩 들어앉은 듯 속이 타들어 갔지요. "아니, 우리 박 선비님이 어떤 분인데! 그 천하의 잡놈이 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어찌 그런 모함을 한단 말이냐!" 돌쇠는 낫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주먹으로 바위를 쾅쾅 쳤습니다. 김 할멈은 바구니에 담긴 쑥을 다 쏟아버리고는 박 선비네 집 쪽을 바라보며 연신 혀를 찼지요. 하지만 관의 명령을 어찌 힘없는 백성들이 거역하겠습니까. 박 선비를 구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졸이는 것뿐인 것 같았습니다. 마을의 평화는 깨졌고, 은행나무 잎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일찍 누렇게 말라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달빛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제 혈육의 아픔처럼 여기는 이들의 정이, 저 깊은 곳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 은행나무 아래의 밀사들
그날 밤이었습니다. 달빛조차 구름 뒤에 숨어 마을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을 때, 마을 어귀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로 그림자들이 하나둘 은밀하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신발 소리를 죽이느라 버선발로 살금살금 걸어온 이 씨 대감부터, 쇠도 씹어 먹을 듯한 기세의 청년 돌쇠, 그리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마을 최고 어른인 최 노인까지 말입니다. 최 노인은 곰방대를 탁탁 털며 주위를 살폈습니다. "다들 모였는가? 박 선비 그 양반, 지금 집에서 찬물로 배를 채우며 억울함에 눈물 흘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내 잠이 오질 않아서 불렀네." 최 노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서슬 퍼런 결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 뿌리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무릎을 맞댔습니다. 돌쇠가 주먹을 불끈 쥐며 낮은 목소리로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어르신, 그냥 내일 아침에 낫이랑 곡괭이 들고 관가로 쳐들어가서 한판 붙어버릴까요? 제 힘이라면 포졸 서넛은 거뜬히 메치고 박 선비님을 모셔올 수 있습니다!" 최 노인이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아, 무식하게 힘으로만 될 일이냐? 그랬다간 마을 전체가 역적으로 몰려 씨가 마를 게야. 관원들을 막으려면, 그들이 우리 마을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 '기상천외한 구실'이 필요하단 말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습니다. "구실이라니요? 관청의 명령을 뒤집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최 노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모여 앉은 사람들의 귀에 대고 아주 낮고 은밀하게, 마치 비밀 지령을 내리듯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최 노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참으로 황당하고도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열흘 뒤 관원들이 올 때, 우리 마을 전체가 도깨비에 홀린 척하는 걸세.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실성한 연기를 하는 거지. 마을 전체가 미친 동네인 줄 알면, 그 겁 많은 관원 놈들이 오줌을 지리며 도망치지 않고 배기겠나?" 돌쇠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예? 마을 전체가 미친 척을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이 씨 댁 아낙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습니다. "왜 안 되겠어요! 우리 남편 술 취했을 때 개가 되는 것만 따라 해도 관원 놈들 혼비백산할걸요? 제가 동네 아낙들 다 모아서 제대로 판을 짜보겠습니다. 여인네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제격이지요."
작전은 치밀하고도 방대하게 세워졌습니다. 누구는 지붕 위에서 닭소리를 내고, 누구는 갑자기 옷을 벗고 춤을 추며, 누구는 관원이 묻는 말에 엉뚱한 개소리만 늘어놓기로 말입니다. 심지어 마을의 개와 소까지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 논의가 이어졌지요. "박 선비님께는 절대 알리지 말게. 그 고지식한 양반 성격에 우리 고생하는 거 알면 당장 관가로 자수하러 갈 분이야. 우리끼리 비밀리에 움직여야 하네." 최 노인의 엄한 당부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웃을 구하기 위해 평생 해본 적 없는 '집단 광기 연극'을 하기로 결심한 이들의 눈에는, 비장함과 함께 묘한 설렘까지 감돌았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모일 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습니다. "돌쇠야, 너는 내일부터 뒷산에 가서 도깨비 가면 만들 나무 좀 구해오너라. 아주 꿈에 나올까 무서운 놈으로 깎아야 한다." "예, 어르신! 제 손재주를 다해 관원 놈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누는 그들의 은밀한 약속은 달빛마을을 감싸는 안개보다 진하고 묵직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처럼, 아니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이웃을 챙기는 그 마음들이 모여, 조선 천지를 뒤흔들 대작전이 서서히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억울한 눈물 대신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기 위한, 달빛마을 사람들의 위대한 합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 연극의 시작
자, 드디어 약속한 열흘째 되는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 멀리 고갯마루 너머로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더니, 말 탄 관원 하나와 포졸 대여섯 명이 위세를 부리며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사또 아들의 명을 받고 박 선비를 압송하러 온 그 관원은, 빳빳하게 풀을 먹인 관복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며 채찍을 휘둘러댔지요. "에헴! 여기가 박 씨 성을 가진 죄인이 산다는 달빛마을이냐? 당장 그놈을 끌어내어라!" 관원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우는데, 마을 분위기가 영 이상합니다.
보통 관원이 들이닥치면 백성들은 겁을 먹고 집 안으로 숨거나 엎드려 절을 해야 맞거늘, 이 마을 사람들은 관원을 보고도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마을 입구 냇가에서는 김 할멈이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물도 없는 마른 바위 위에서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퍽, 퍽!" 소리를 내며 돌덩이를 두들기던 김 할멈은 관원이 다가가자 "아이고, 이 놈의 고기가 왜 이리 질기냐! 소금에 절여도 꿈쩍을 안 하네!" 하며 돌멩이를 향해 호통을 칩니다. 관원이 기가 차서 말을 멈췄습니다. "여보시오 할멈! 지금 제정신이오? 물도 없는 데서 뭘 하는 거요?" 김 할멈은 그제야 관원을 쓱 쳐다보더니, 퀭한 눈으로 대답합니다. "물이라니? 이게 다 술인데 무슨 소리여. 나으리도 술 한 잔 하실라오?" 하며 흙바닥에 고인 먼지를 손으로 떠서 건넵니다.
관원이 눈을 부라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청년 돌쇠가 보입니다. 돌쇠는 멀쩡한 길바닥에 소를 몰고 나와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길바닥 돌덩이가 쟁기에 걸려 '드르륵' 소리를 내는데도 돌쇠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 엉덩이를 갈깁니다. "이랴! 이놈의 소야! 어서 밭을 갈아야 구름을 심지! 그래야 내일 아침에 별을 따다 국을 끓일 게 아니냐!" 관원이 말이 안 통해 답답한 듯 소리를 지릅니다. "네 이놈! 길바닥에서 쟁기질이 웬 말이냐! 여기 박 선비 집이 어디냐 묻질 않느냐!" 돌쇠는 쟁기를 멈추고 관원의 말 안장을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장군님! 우리 집 돼지가 왜 저기 올라타 있습니까! 내 돼지 내놓으쇼!" 하며 관원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관원의 부하 포졸들이 돌쇠를 떼어놓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마을 안쪽에서 풍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최 노인이 이끄는 노인들이 냄비 뚜껑과 바가지를 들고 나와 춤을 추며 관원을 에워싸기 시작한 거지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우리 집에 떡 먹으러 와라!" 가사는 엉망이고 춤사위는 제멋대로인데, 노인들의 표정은 어찌나 진지한지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관원은 말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리며 비명을 지릅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짓들이냐! 고을 전체가 실성을 한 게냐?" 관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을 아이들이 관원 주위를 뱅뱅 돌며 "개굴개굴" 소리를 냈습니다.
최 노인이 능청스럽게 관원 앞으로 다가가 갓을 삐딱하게 고쳐 쓰고 절을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장군님! 우리 마을 도깨비 시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금 박 선비님은 구름을 타러 하늘로 올라가셨으니, 좀 기다리셔야겠습니다." 관원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빨래하는 할멈, 길가는 청년, 춤추는 노인까지... 하나같이 눈동자가 풀려 있고 엉뚱한 소리만 해대니, 서슬 퍼런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뒷덜미가 서늘해졌습니다. "이, 이거 원... 마을 전체가 도깨비에 홀린 게 틀림없구나." 관원은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었기에, 우선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길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 안방까지 들어온 도깨비 소동
밤이 되자 달빛마을은 더욱 기묘한 기운에 휩싸였습니다. 관원은 마을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최 노인의 집 안방을 차지하고 누웠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휘이이~ 툭, 툭." 바람 소리인지 짐승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창호지를 건드리고, 마당에서는 무거운 돌덩이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관원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부하 포졸들을 불렀습니다. "얘들아, 밖이 왜 이리 시끄러우냐! 당장 나가서 요사스러운 것들을 쫓아내라!" 포졸들도 겁에 질려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겨우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그 순간, 포졸들의 비명이 천장을 찔렀습니다. "아악! 도깨비다!" 관원이 깜짝 놀라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세상에나! 숯검댕이를 얼굴에 시커멓게 칠하고 머리에는 삐죽삐죽한 털가죽을 쓴 괴상한 형체들이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박 선비 내놔라! 우리 대장 박 선비 어디 있느냐!"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만 보니 낮에 봤던 돌쇠와 청년들이 최 노인이 깎아준 가면을 쓰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겁에 질린 관원 눈에는 영락없는 산도깨비 떼였습니다.
도깨비 중 하나가 관원의 방 창문 앞으로 쑥 다가왔습니다. 커다란 눈알 그림이 붙은 가면이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데, 관원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지요. "이 방에 고기 냄새가 나는구나! 관복 입은 고기가 아주 맛있어 보인다!" 도깨비가 창살을 긁으며 굵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습니다. 관원은 방구석으로 기어 들어가며 벌벌 떨었습니다. "사, 사람 살려! 나는 박 선비를 잡으러 온 게 아니라, 그냥 구경 온 것이요! 제발 살려주시오!" 그때, 다른 도깨비가 지붕 위에서 기와장을 '덜컹' 소리 내어 움직였습니다. "박 선비는 우리 도깨비들의 형님이다! 그분을 해치러 온 놈은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겠다!"
방 안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천장에서 갑자기 밧줄이 스르륵 내려오더니, 관원의 갓을 낚아채 위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 어! 내 갓!" 관원이 갓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갓은 어느새 천장 서까래 사이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지붕 위에서 청년들이 낚싯줄을 드리워 장난을 치는 것이었지만, 공포에 질린 관원은 그것이 귀신의 장난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관원의 신발은 어느새 마당 한가운데 있는 감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었고, 포졸들의 창은 죄다 꺾여 우물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마당에 모인 '도깨비'들은 횃불을 휘두르며 기괴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박 선비님 괴롭히면 눈알을 쑥 빼가지! 도깨비불로 엉덩이를 지져버리지!" 노래 가사가 험악해질수록 관원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관원은 옆에 쓰러진 포졸을 발로 차며 애원했습니다. "야, 야! 당장 말 한 마리 챙겨와라! 여기 있다간 제명에 못 죽겠다!" 하지만 말들도 이미 청년들이 먹인 콩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지요. 관원은 어두컴컴한 안방에서 덜덜 떨며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달빛마을의 밤은 그렇게 도깨비들의 웃음소리와 관원의 신음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준비한 연극이, 서슬 퍼런 관원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 여인들의 은밀하고 농밀한 기지
어젯밤 도깨비 소동에 넋이 나간 관원이 퀭한 눈으로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밤새 갓도 잃어버리고 신발까지 감나무 꼭대기에 걸려 흔들리는 처지니, 위엄은커녕 지나가던 동네 개가 봐도 혀를 찰 꼴이었지요. 밤새 공포에 떨며 요강을 붙들고 씨름한 탓에 얼굴은 누렇게 떴고, 관복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누더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향긋한 들기름 냄새와 함께 마을 아낙들이 소반을 들고 하나둘 최 노인의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 댁 아낙을 필두로 김 씨 댁, 박 씨 댁 할 것 없이 모두가 분을 칠하고 입술을 쥐 잡은 듯 붉게 물들인 채, 평소에는 입지도 않던 화사한 치마저고리를 차려입고 말입니다.
이 씨 댁 아낙이 관원 곁으로 다가가 엉덩이를 슬쩍 들이밀며 툭 붙어 앉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간밤에 잠자리는 편안하셨소? 우리 마을 도깨비들이 나으리가 너무 잘생겨서 같이 놀자고 밤새도록 문고리를 흔들어댄 모양인데, 몸 어디 상한 데는 없으신가 모르겠네. 얼굴을 보니 꼭 엊그제 죽은 망자처럼 뽀얗게 질린 것이, 아주 귀티가 흐르십니다그려." 관원은 여인들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당황하여 헛기침을 해대며 몸을 뒤로 뺐지만, 아낙들의 공세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아낙들은 관원 주위를 에워싸고는 찰진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지요. "나으리, 이 술 한 잔 받아보셔. 이건 그냥 술이 아니라, 우리 동네 우물가에 사는 처녀 귀신이 밤새도록 엉덩이로 빚어낸 보석 같은 이슬이라오. 이걸 마셔야 오늘 밤 도깨비들하고 신명 나게 한판 놀지 않겠소?"
관원이 기겁을 하며 술잔을 밀어내자, 옆에 있던 김 씨 댁 아낙이 관원의 팔뚝을 슬쩍 쓰다듬으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어머나, 나으리 팔뚝이 아주 무쇠 같네그려. 이런 기운찬 양반이 왜 그리 겁을 먹으셨을까? 혹시 밤에 도깨비 색시가 찾아와서 옷자락이라도 잡아당길까 봐 그러셔? 걱정 마쇼, 우리 마을 아낙들이 밤새도록 나으리를 위해 치맛바람이라도 일으켜 드릴 테니." 하며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는 능청스럽게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아낙들은 관원에게 음식을 권하는데, 그 모양새가 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밥그릇에는 하얀 이밥 대신 검은 숯가루를 섞어 거무튀튀하게 만든 보리밥을 산더미처럼 쌓아오고, 국그릇에는 미꾸라지가 살아 움직여 흙탕물을 튀기는 추어탕을 가져온 겁니다.
"자, 나으리. 이 숯밥을 드셔야 뱃속에 든 나쁜 관재수(官災數)가 싹 씻겨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 꿈틀대는 놈들을 산 채로 삼키셔야 오늘 밤 도깨비들한테 잡아먹히지 않을 기운이 생기지요!" 관원은 음식을 보며 구역질을 참느라 얼굴이 노랗다 못해 파랗게 질렸습니다. 아낙들은 그런 관원을 보며 낄낄대며 자기들끼리 농익은 야담을 주고받습니다. "얘, 순이 엄마. 저번에 우리 마을에 왔던 포졸 놈도 저렇게 겁쟁이더니, 결국 밤에 도깨비한테 홀려서 바지춤을 내리고 온 산천을 뛰어다녔다지?" "아이고, 말도 마. 저 나으리도 오늘 밤엔 도깨비 색시한테 홀려서 가마솥 안에 들어가 노래를 부를지도 몰라. 어쩌면 엉덩이에 도깨비 뿔이 돋아날지도 모르지!" 아낙들의 이야기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관원의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아낙들의 웃음소리는 집안을 가득 채우고, 관원의 부하 포졸들은 아낙들의 기세에 눌려 부엌 구석에서 밥알만 세며 덜덜 떨고 있었지요. 이 농밀하고도 대담한 여인들의 연기는 관원에게 '이 마을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요괴의 소굴이다'라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낙들의 치마폭에 싸인 관원의 권위는 이미 누더기보다 더 처참하게 찢겨 나가고 있었습니다.
※ 항복을 받아내다
해는 중천에 떴지만, 달빛마을의 요괴스러운 분위기는 가라앉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원은 이제 박 선비를 잡아가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해서 이 지옥 같은 마을을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 되었습니다. 갓은 천장 서까래에 매달려 조롱하듯 흔들리고, 신발은 감나무 꼭대기에서 까치밥처럼 매달려 있으니, 관원은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최 노인을 붙잡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보시오, 최 어르신! 내 사또 아드님의 명을 받고 기세등등하게 왔으나, 이 마을은 도저히 사람이 머물 곳이 못 되는구려. 제발 내 신발과 갓만 돌려주면, 내 평생 이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을 터이니 제발 길을 열어주시오!"
최 노인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곰방대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하얀 연기를 관원의 얼굴에 '훅' 하고 길게 내뿜었습니다. "아이고, 장군님. 우리 마을 도깨비들이 장군님을 너무 좋아해서 보내주질 않는데 어쩌겠소? 특히 저기 저 감나무 도깨비는 장군님 신발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라오. 게다가 박 선비라는 양반이 우리 마을 도깨비들의 대장인데, 그분을 죄인이라며 잡아가려 하니 도깨비들이 노발대발해서 오늘 밤에는 장군님의 코를 베어가겠다고 벼르고 있소이다." 관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무릎을 팍 치며 바닥을 기었습니다. '그래, 역시 박 선비가 이 요물들의 두목이었구나! 그를 건드렸다간 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어!'
관원은 떨리는 손으로 소맷동에서 잉어 꼬리처럼 흔들리는 종이와 붓을 꺼냈습니다. "내, 내 오늘 박 선비의 누명을 낱낱이 씻어주는 문서를 써주겠소! 그 양반은 결백하고, 오히려 이 마을을 지키는 하늘이 내린 성인(聖人)이라고 사또께 목숨 걸고 보고할 터이니, 제발 그 도깨비들 좀 진정시켜 주시오!" 관원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판결문을 써 내려갔습니다. 글씨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삐뚤빼둘하고 먹물은 종이 여기저기에 튀었지만, 그 내용은 박 선비의 이름을 깨끗이 씻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본 관원이 직접 조사한바, 박 선비는 나라의 곡식을 훔친 적이 추호도 없으며, 이는 시기하는 무리의 모함이라. 이 마을은 신령한 기운이 보호하는 곳이니 앞으로 관의 간섭을 금하노라...'
최 노인이 그 문서를 받아 들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자,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돌쇠와 청년들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자, 장군님! 신발 여기 있습니다!" 돌쇠가 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신발을 툭 던졌고,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갓도 낚싯줄에 풀려 스르륵 내려왔습니다. 관원은 신발을 왼쪽 오른쪽 거꾸로 신은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말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부하 포졸들은 창도 방패도 버려둔 채 관원의 말 꼬리를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을 어귀까지 쫓아 나오며 기괴한 배웅을 했습니다. 김 할멈은 마른 바위에 방망이질을 하며 "나으리, 다음에 오실 땐 구름으로 빚은 떡국 끓여놓을게! 꼭 다시 오셔!" 하고 소리를 질렀고, 아이들은 "개굴개굴" 소리를 내며 말 엉덩이를 쫓아갔습니다.
관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넘어가며 절규하듯 소리쳤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 미친 도깨비 마을에 발을 들이나 봐라! 내 아들이 사또 아비라 해도 여긴 못 온다!" 관원의 먼지 구름이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미친 척 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서슬 퍼런 관직의 위세와 권력이, 보잘것없는 백성들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낸 '집단 광기 연극'에 완전히 무릎을 꿇은 순간이었습니다. 박 선비의 억울한 누명은 그렇게 씻겨 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드디어 참아왔던 진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 다시 찾은 웃음꽃
관원이 고개를 완전히 넘어갔다는 돌쇠의 전갈이 오자마자, 달빛마을은 마법처럼 순식간에 평소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른 바위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방망이질을 하던 김 할멈은 허리를 '으드득' 소리 나게 쭉 펴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삭신이야. 내 평생 돌덩이를 고기인 줄 알고 이리 열심히 두들겨보긴 처음이네. 방망이가 다 닳아버렸어!" 길바닥에서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하던 돌쇠도 소를 끌고 와 냇가에서 발을 씻으며 껄껄 웃었습니다. "나으리 옷자락 붙잡고 우리 집 돼지가 왜 저기 올라타 있느냐고 떼를 쓸 때, 웃음 참느라 아랫배에 경련이 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나으리 낯빛이 똥물 뒤집어쓴 사람 같더군요!"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안방 구석에서 '나 때문에 마을이 망하는구나' 하며 가슴만 졸이던 박 선비가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엄청난 연극을 벌였다는 사실과 최 노인이 받아낸 면죄부 문서를 전해 들은 박 선비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늙은 선비를 위해 마을 전체가 관가와 맞서 위험을 무릅쓰다니... 제가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최 노인은 곰방대를 들고 박 선비의 어깨를 든든하게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선비님, 우리가 선비님을 도운 게 아니라 우리 마을의 '심장'을 지킨 것뿐이라오. 선비님이 우리 곁에 없으면 우리 마을이 어찌 정 많은 달빛마을이겠소? 선비님은 그저 평소처럼 우리 곁에서 책 읽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주면 그게 보답이오."
그날 저녁, 마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박 선비가 곳간에 아껴두었던 곡식과 마을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술, 고기, 나물들이 어우러져 은행나무 아래에는 풍성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낮에는 미친 척 실성한 연기를 하던 아낙들은 이제 인자하고 정 많은 이웃사촌으로 돌아와 정성껏 음식을 날랐고, 청년들은 횃불을 밝혀 마을 입구부터 은행나무까지 환하게 밝혔습니다. 박 선비는 마을 사람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으며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더니, 우리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정이 저 서슬 퍼런 관직의 칼날도 이겼구려. 역시 사람이 제일 귀한 법입니다."
잔치는 달빛이 은행나무 가지에 걸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최 노인은 곰방대를 물고 하늘의 밝은 달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습니다. "사람이 사람 대접받고 사는 게 뭐 거창한 거 있나? 이렇게 이웃이 어려울 때 내 일처럼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는 거, 그거 하나면 족한 게지. 관아의 법보다 무서운 게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의리 아니겠나?" 달빛마을의 은행나무는 평소보다 더 푸르고 생기 있게 빛나는 듯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산 너머 관가까지 들릴 기세로 퍼져 나갔습니다. 탐관오리의 수탈과 누명도, 이웃의 끈끈한 정과 지혜 앞에서는 한낱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단단해졌고, 훗날 이 기막힌 이야기는 『청구야담』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함께 웃으며 위기를 넘기는 지혜'의 본보기가 되었더랬습니다. 이웃의 정이 메말라가고 담장 하나 너머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세상에, 달빛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그 찰지고 농밀한 합심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래요, 우리 어르신들도 기억하시지요? 옛날엔 다 이랬답니다. 어려울 때 손 내밀어주는 이웃 하나만 있어도 세상 살만했던 그 시절의 정 말입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옆집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달빛마을 사람들처럼 웃으며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유튜브 엔딩 멘트
자, 오늘 준비한 달빛마을의 통쾌한 도깨비 작전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억울한 누명을 쓴 이웃을 위해 온 마을이 '미친 척' 발 벗고 나선 그 마음이 참으로 뜨겁고도 유쾌하지 않습니까?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어르신들 젊으셨을 적만 해도 이런 이웃의 정이 살아있었지요. 위기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지혜를 모았던 우리 조상님들의 해학! 오늘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가슴에 작은 온기와 웃음을 전해드렸길 바랍니다. 혼자 끙끙 앓는 고민도 이웃과 나누면 반이 되고, 함께 웃으면 배가 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복채 듬뿍 주시고, 주변 소중한 분들께도 이 따뜻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저는 다음에 더 신명 나고 편안한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밤도 편안하고 포근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