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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시절을 다시 깨우는 이야기 , 기와지붕에 떨어지던 빗소리

    📌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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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킹멘트 (400자 내외)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빗소리가 기와지붕을 두드리던 그 밤을.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잠이 들었던 어린 시절을. 오늘은 그 옛날, 한옥 마을에서 비 오는 날을 맞이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 평화로운 시간들, 할머니의 손맛 가득한 빗날 음식, 그리고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나누던 정겨운 이야기들. 비가 내리면 더욱 포근해지던 한옥의 정취 속으로, 지금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마음 편히 앉아, 옛 추억을 되새기며 함께 떠나보시지요."

    📝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장마철 한옥 마을의 평화로운 하루를 담은 향수 어린 이야기입니다. 빗소리가 기와지붕을 적시고, 가족들이 마루에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던 그 시절.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비 오는 날의 특별한 음식, 그리고 처마 밑에서 바라보던 빗줄기의 아름다움까지. 편안하게 듣기 좋은 옛날 이야기로, 시니어 세대의 따뜻한 추억을 되살려 드립니다.

    ※ 장마가 시작되던 날

    그해 유월도 중순을 지나갈 무렵이었지요. 아침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더랍니다. 맑디맑던 푸른 하늘이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가고, 동네 어귀 느티나무 잎사귀들도 바람에 뒤집히며 하얀 뒷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장마가 올라오나 보구만."
    대문간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중얼거리셨지요.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신 분이라 하늘빛만 봐도 날씨를 훤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게를 메고 산에 나무하러 가시려던 참이었는데, 이내 지게를 벗어 사랑채 처마 밑에 기대어 두시고는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마당 한가운데서 빨래를 너시던 어머니도 하늘을 쳐다보시곤, 서둘러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들을 거두기 시작하셨습니다. "애들아, 빨리 나와서 빨래 좀 도와라!"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큰언니와 마루에 앉아 책을 보던 오빠가 후다닥 뛰어나왔지요. 저도 마당 한쪽에서 놀던 손을 멈추고 빨래 광주리를 들고 어머니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 비 많이 오려나요?"
    "그럼, 이 하늘빛 좀 봐라. 장마가 제대로 들려나 보다."
    어머니는 재빨리 빨래를 거두시면서도 자꾸만 하늘을 살피셨어요. 멀리 북쪽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산등성이를 넘어 서서히 마을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번갯불도 보였지요. 천둥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지만, 곧 쏟아질 비의 기척이 온 마을에 가득했습니다.
    빨래를 다 거두고 나자, 어머니는 마당에 놓인 독 뚜껑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하셨어요. 장독대의 간장독, 된장독, 고추장독 뚜껑이 제대로 덮여 있는지, 빗물이 스며들 틈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셨지요. 마당 한쪽 배수로도 낙엽과 흙이 막혀 있지 않은지 확인하시고, 큰언니더러 비질을 시키셨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나오셔서 장작더미에 가마니를 덮고 계셨어요. "요 장작이 비 맞으면 불 붙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여."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며 가마니 끝을 돌로 꾹꾹 눌러 놓으셨지요. 사랑채에 계시던 할아버지도 마루에 앉아 담뱃대를 입에 물고 태연히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대문 앞 버드나무 가지들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담장 너머 이웃집 개가 낑낑거리며 짖어댔어요. 어디선가 닭들 소리도 요란했지요. 온 동네가 다 장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똑. 마당 한가운데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흙바닥에 동그란 자국을 남겼어요. 곧이어 똑, 똑똑. 두어 개씩 더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우수수수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와라, 애들아!"
    어머니의 외침에 우리는 허겁지겁 안채 마루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기와지붕 위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처마 끝에서는 빗물이 줄줄이 흘러내렸지요. 장마가 시작된 겁니다.

    ※ 기와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가족의 모임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습니다. 처음엔 똑똑똑 기와를 건드리는 소리였는데, 이내 우르르르 쏟아지는 소리로 바뀌었지요. 기와지붕 위를 타고 흐르는 빗물 소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마당 흙바닥을 때리는 빗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장대한 합주를 이루었습니다.
    안채 마루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어요. 바깥은 온통 빗줄기로 뒤덮여 있는데, 이 기와지붕 아래는 너무나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오빠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손으로 받아보기도 하고, 큰언니는 안방 문턱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고 있었지요.
    "야, 손 집어넣어. 감기 들겠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시며 오빠를 나무라셨습니다.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계셨어요. "아버님, 한 잔 하시지요." 사랑채에 계시던 할아버지께 막걸리를 권하시자, 할아버지께서도 "그래야겠구만" 하시며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이미 안방에서 소반을 꺼내 마루에 펼쳐 놓고 계셨어요. 부침개를 부치는 냄새가 부엌에서 솔솔 풍겨왔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표 파전이었지요. 밀가루 반죽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 집된장으로 간을 맞춰 노릇노릇 지져내시면, 그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습니다.
    "할머니, 부침개 언제 나와요?"
    제가 부엌 문턱에 걸터앉아 물으니까,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이 조무래기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네" 하셨어요. 솥뚜껑을 열어 보이시며 "묵은지도 쪄 놨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하셨지요. 비 오는 날이면 찐 김치를 상에 올리시는 게 할머니 스타일이셨습니다.
    곧 상이 차려졌습니다. 노릇노릇한 파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묵은지, 막걸리 한 주전자에 막걸리잔 몇 개. 어머니는 또 부엌에서 동동주를 데워 오셨고요. 할아버지께서 먼저 막걸리 한 잔을 받아 드시고는 "크으" 하고 감탄하셨습니다.
    "역시 비 오는 날엔 막걸리가 제격이여."
    "그래도 너무 많이는 마시지 마시구려. 어제도 드셨잖습니까."
    어머니가 살짝 핀잔을 주시자, 할아버지께서는 "아이고, 이게 술이가 약이가" 하시며 웃으셨어요. 할머니도 작은 잔에 막걸리를 한 모금 따라 드시며 "요 늙은것들이 뭘 안다꼬" 하고 맞장구를 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파전을 집어 먹기 바빴어요. 할머니가 지져 주신 파전은 바깥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습니다. 집된장의 구수한 맛이 밀가루 반죽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퍼졌지요. 큰언니가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하니까, 할머니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며 "많이 먹어라, 많이" 하셨습니다.
    밖에선 여전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마당은 어느새 물웅덩이가 되어 있었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마치 은빛 줄을 늘어뜨린 것 같았어요. 천둥소리도 가끔씩 쿵쿵 울렸지만, 이 기와지붕 아래 가족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막걸리를 한 잔 더 드시며 말씀하셨어요. "이 비가 한 사흘은 가겠구만.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 오빠가 "할아버지, 그럼 학교 못 가는 거예요?"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시며 "학교는 무슨, 비 오나 눈 오나 가야지" 하셨습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 할머니의 빗날 음식과 마루에서의 정담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인데도 온 세상이 어스름했습니다. 빗줄기가 워낙 굵다 보니 해가 구름 뒤에 꼭꼭 숨어버린 거지요. 마루에 앉아 있으니 서늘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안방에서 이불 한 채를 꺼내 우리 남매 무릎에 덮어 주셨어요.
    "얘들아, 감기 들면 안 되니까 이거 덮고 있거라."
    할머니께서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까 파전을 다 먹고 나니 뭔가 허전하셨나 봐요. 부엌에서 또 뭔가를 하시는 소리가 들렸어요. 솥뚜껑 여는 소리, 국자로 젓는 소리, 그릇 부딪치는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한 냄새가 또 솔솔 풍겨왔습니다.
    "할머니가 또 뭘 만드시나 보네."
    큰언니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어요. 저도 따라서 냄새를 맡아봤는데, 이건 콩비지 끓이는 냄새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전날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항아리에 넣어 두셨거든요. 비 오는 날이면 그 비지를 꺼내 김치 넣고, 들기름 두르고, 된장 풀어서 보글보글 끓이시곤 했지요.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막걸리잔을 내려놓으시고 담뱃대를 꺼내 드셨습니다. 부싯돌을 탁탁 쳐서 불을 붙이시고,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셨어요. 그 연기가 처마 밑으로 천천히 흘러나가는데, 빗줄기에 금방 흩어져 버렸습니다.
    "아부지, 그 담배 좀 줄이시지요. 기침도 하시면서."
    어머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이게 내 낙이여, 낙" 하시며 씨익 웃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쪽을 보시며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얘들아,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 이야기 해줄까?"
    "네! 해주세요!"
    우리는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 곁으로 바짝 붙어 앉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었거든요. 할아버지께서 담뱃대를 입에 문 채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오빠 나이 때 말이여. 그때도 이렇게 장마가 한창이었는디, 동네 개울이 범람을 해부렀어. 물이 콸콸 넘쳐서 징검다리가 다 잠겨불고, 나무다리도 떠내려갈 지경이었지."
    오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때 우리 동네 총각들이 다 모였제. 나무다리가 떠내려가면 큰일이니까 말이여. 그래서 밤새도록 다리를 지켰어.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디, 물은 계속 불어나고. 다들 멍석 하나씩 뒤집어쓰고 다리 양쪽에서 버티고 섰지."
    할머니께서 부엌에서 비지찌개를 담아 오시며 거들었어요. "맞어. 그때 요 영감이 감기 걸려서 한 달을 앓아누웠제. 내가 약 달여 먹이고 죽 쑤어 먹이고 난리가 아니었어."
    "그래도 다리는 지켜냈지 않았소?"
    할아버지께서 으쓱하시며 말씀하시자, 할머니께서 "지키긴 뭘 지켜. 결국 떠내려갔잖소" 하시며 웃으셨어요. 우리는 깔깔 웃었습니다.
    비지찌개가 상에 올라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어요. 할머니께서 숟가락을 하나씩 나눠 주시며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 먹어라" 하셨습니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구수하고 걸쭉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요. 묵은지의 시원한 맛과 들기름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할머니,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제가 엄지를 치켜들자, 할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많이 먹어, 많이. 비 오는 날엔 따끈한 거 먹어야 탈이 안 나는 기여."
    어머니도 한 숟가락 드시고는 "어머니, 솜씨가 여전하시네유" 하셨습니다. 마루에 둘러앉아 비지찌개를 나눠 먹는 우리 가족. 밖에선 빗소리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안에선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습니다.

    ※ 처마 밑 빗줄기를 바라보며 나눈 옛이야기

    비지찌개까지 다 먹고 나니 배가 든든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막걸리를 한 잔 더 드시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러 부엌으로 가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안방에서 바느질감을 꺼내 오셨습니다. 오빠 바지에 구멍이 났던 게 생각나셨나 봐요.
    큰언니와 저는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봤습니다. 빗방울이 처마 끝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마당에 떨어질 때마다 물튀기는 소리가 났어요. 마당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에서는 동그란 물결이 퍼져 나갔지요.
    "언니, 저 빗줄기 봐. 마치 은실 같지 않아?"
    "그러게. 정말 예쁘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빗줄기를 구경했습니다. 가끔씩 바람이 불면 빗줄기가 비스듬히 휘어지기도 하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우리 발등에 튀기도 했어요. 차가운 빗물이 발등에 닿으면 살짝 시원했지만, 그것도 금방 따뜻해졌습니다.
    할머니께서 바느질을 하시다 말고 우리를 보시며 말씀하셨어요. "얘들아, 할매가 어렸을 적엔 말이제, 비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서 빗물받이 놀이를 했단다."
    "빗물받이 놀이요? 그게 뭐예요, 할머니?"
    제가 물으니까, 할머니께서 바느질 손을 잠시 멈추시고 설명해 주셨어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가지로 받는 거여. 누가 더 많이 받나 시합을 하는 기제. 그러다 옷이 다 젖어도 까짓것 상관없었어. 그땐 입을 옷도 한두 벌밖에 없었으니까."
    "재미있었겠다, 할머니."
    큰언니가 말하자, 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그럼, 재미있었지. 비만 오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어. 그러고는 처마 밑에서 놀다가, 어른들한테 혼나고 그랬제."
    할아버지께서도 거들었습니다. "맞아. 그때는 비 오는 날이 신났어. 농사일 안 해도 되니까 말이여. 어른들도 사랑방에 모여 앉아 화투도 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지. 물론 어른들이 화투 치면 우리 꼬맹이들은 구경도 못하게 했지만."
    오빠가 "할아버지도 화투 치셨어요?"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께서 "그럼, 쳤지. 근데 내가 워낙 못 쳐서 맨날 졌어" 하시며 허허 웃으셨습니다.
    그때 천둥소리가 쿵 하고 크게 울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언니 팔을 붙들었어요. 언니도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괜찮아, 천둥은 소리만 크지 별거 아니야" 하며 저를 다독여 줬습니다.
    할머니께서 "천둥 칠 땐 배꼽 가려야 한다" 하시며 당신 배를 손으로 가리는 시늉을 하셨어요. 우리는 따라서 배를 가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건 옛날 미신이여, 미신" 하시며 웃으셨지만, 할머니께서는 "미신이라도 조심하는 게 좋제" 하시며 진지하셨어요.
    번개가 번쩍 하고 쳤습니다. 잠깐 온 세상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어요. 이어서 천둥소리가 또 쿵쿵 울렸습니다. 빗소리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기와지붕 위로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지요.
    "이 비가 밤새 오겠구만."
    할아버지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시며 "저녁은 뭘 해드릴까요?" 하고 물으셨어요. 할머니께서 "아직 한참 남았는디 뭘. 조금 이따 생각하지 뭐"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처마 밑 빗줄기를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가끔씩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참 평화로웠어요. 세상 그 어떤 것도 이 기와지붕 아래 우리 가족의 평온함을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 밤이 깊어가고 빗소리에 잠들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빗소리는 여전했지요. 오후 내내 쉬지 않고 내린 비 때문에 마당은 완전히 물바다가 되어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호롱불을 켜시니, 마루에 은은한 불빛이 퍼졌습니다. 요즘 같으면 전깃불을 켜면 되지만, 그때는 호롱불이나 등잔불이 전부였으니까요.
    어머니께서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도 부엌으로 들어가 도와주셨어요.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먹기로 하셨나 봅니다. 낮에 남은 비지찌개를 다시 데우시고, 밥을 새로 지으시고, 김치며 장아찌 몇 가지를 꺼내셨지요. 거기에 구운 김까지 한 접시 올라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자, 밥 먹어라."
    온 가족이 안방 아랫목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밖에선 빗소리가 창호지 문을 두드리고, 안에선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정겹게 울렸어요. 할아버지께서 "오늘 하루 종일 비만 봤네" 하시자, 할머니께서 "그래도 집안 식구들 다 모여 있으니 좋잖소" 하셨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배가 든든했습니다. 큰언니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었는데도 왠지 피곤했나 봅니다. 저도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어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거든요.
    어머니께서 "애들아, 씻고 자거라" 하시며 우리를 재촉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따뜻한 물을 길어 오셨어요. 그 시절엔 목욕탕이 따로 없었으니까, 대야에 물을 받아 방 한쪽에서 몸을 씻었지요. 어머니께서 수건을 적셔 우리 얼굴과 손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는데 푹 자거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참 다정했습니다. 큰언니와 저는 이불 속으로 폭 파고들었어요. 아랫목이 따끈따끈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저녁 짓기 전에 아궁이에 불을 때셨거든요. 그 따뜻함이 구들장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감싸는 게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채로 가셨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안방에서 마저 바느질을 하셨어요. 바늘이 천을 뚫고 지나가는 소리, 실을 잡아당기는 소리가 작게 들렸습니다. 그 소리마저도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오빠는 벌써 코를 골며 잠들었습니다. 큰언니도 스르르 잠이 든 것 같았어요. 저만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빗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기와지붕을 타고 흐르는 빗물 소리,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마당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소리. 그 모든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멜로디를 만들어 냈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니, 빗소리가 마치 누군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불러주시던 자장가보다 더 부드럽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보다 더 평화로웠어요. 빗소리만 들으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애들 다 잤나?"
    할머니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머니께서 "네, 다 잤어유"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요 비가 내일까지 가겠네. 장마가 제대로 들었어." 할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집안 식구들 다 건강하고 무탈하니 감사하지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빗소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니, 제가 잠 속으로 빠져드는 거였지요. 따뜻한 아랫목, 포근한 이불,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빗소리. 이보다 더 평화로운 밤이 또 있을까요.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건 할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으니까요.

    ※ 새벽녘 빗소리와 평화로운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새벽이었습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어요. 밖에선 여전히 빗소리가 들렸지만, 어젯밤보다는 한결 잔잔해진 것 같았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줄기가 이제는 부드럽게 내리는 가랑비로 바뀌어 있었지요.
    이불 속은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옆에서 자고 있는 큰언니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어요. 오빠도 저쪽 구석에서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자고 있었고요. 저는 살며시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문 쪽으로 갔습니다.
    창호지 문을 살짝 열었더니,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스쳤어요. 마당을 보니 어젯밤 물웅덩이가 그대로였지만, 빗줄기가 약해져서 물결은 잔잔했습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도 똑똑똑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지요.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아직 어두웠지만, 먹구름 사이로 조금씩 밝아오는 기운이 보였어요. 장마가 끝나가는 건지, 아니면 잠시 쉬어 가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비는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났구나."
    뒤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할머니께서 언제 일어나셨는지 마루에 앉아 계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시는 분이셨거든요.
    "할머니, 비가 조금 약해진 것 같아요."
    "그러게. 어젯밤엔 하도 세차게 와서 걱정했는디, 다행이네."
    할머니께서 마루로 나오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셨습니다. 그러고는 부엌 쪽으로 가시더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셨어요. 나무가 타는 소리,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새벽 정적을 깨웠습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다, 넌 들어가서 더 자거라. 아직 이른디."
    하지만 저는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따뜻한 열기가 좋았거든요. 할머니께서는 장작을 한 개씩 집어넣으시며 불을 키우셨어요. 불빛이 할머니 얼굴을 비추니, 주름진 얼굴이 더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할머니, 비 오는 날 좋아하세요?"
    제가 물으니까, 할머니께서 잠시 생각하시더니 대답하셨어요. "좋지. 비가 와야 곡식이 자라고, 우물에 물도 차고 그러니까. 옛날엔 가뭄이 들면 먹을 것이 없어서 큰일이었단다. 그러니 비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제."
    "근데 너무 많이 오면 안 좋잖아요."
    "그렇지. 뭐든 적당해야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좋은 게여."
    할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때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께서 아침 죽을 쓰고 계셨던 겁니다. 쌀을 씻어 솥에 넣으시고, 물을 부으시고, 천천히 저으시는 모습이 참 정성스러워 보였어요.
    "할머니는 평생 이렇게 밥을 지으셨어요?"
    "그럼. 시집온 날부터 지금까지. 육십 년도 넘었구만."
    육십 년.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저는 잘 몰랐지만, 아주 오래된 세월이라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육십 년 동안 매일매일 이렇게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가족을 먹이셨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비치려는 것 같았어요. 빗소리는 더욱 잔잔해졌습니다. 이제 정말 보슬보슬 내리는 가랑비였지요.
    "날이 밝으면 비도 그칠 거다."
    할머니께서 하늘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곧 해가 뜨고, 비가 그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거였습니다.

    ※ 비 갠 후의 한옥 마을과 여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약했지만, 그래도 빛이었어요.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쳤습니다. 마지막 몇 방울이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그것마저 멈추니 온 세상이 고요해졌지요.
    온 가족이 하나둘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채에서 나오시며 기지개를 크게 켜셨어요. "아, 잘 잤구만. 빗소리 들으며 자니까 꿀잠이었어." 어머니와 큰언니, 오빠도 차례로 나와 마당을 내다봤습니다.
    마당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흙바닥은 질척거렸고, 장독대 주변에는 물이 고여 있었어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더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빗물에 씻겨 더 깨끗해 보였지요. 담장 너머 나뭇잎들도 초록빛이 더 선명해졌고, 기와지붕도 빗물에 젖어 반들반들 빛났습니다.
    "이제 날이 풀리겠구만."
    할아버지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씀하셨어요.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지요. 햇살도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어머니께서 마당으로 내려가 빗자루를 들고 물을 쓸어내기 시작하셨어요. 큰언니도 따라 내려가 도왔습니다. 마당에 고인 물을 배수로 쪽으로 쓸어내니, 물이 졸졸졸 흘러나갔지요. 할머니께서는 장독대로 가서 독 뚜껑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셨습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았는지 확인하시는 거였어요.
    "다행이네. 하나도 안 샜어."
    할머니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간장독, 된장독, 고추장독 모두 무사했던 겁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채 처마 밑에 두었던 지게를 꺼내시며 "이제 일하러 가야겠구만" 하셨어요.
    동네 어귀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웃집 개도 멍멍 짖었어요. 온 동네가 하나둘 깨어나는 소리였습니다. 어디선가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도 들렸지요. 장마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저는 마루 끝에 앉아 마당을 내다봤습니다. 햇살이 젖은 땅을 비추니, 수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아지랑이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이 참 신기했습니다. 빗물에 젖었던 나뭇잎에서도 물방울이 반짝반짝 빛났지요.
    "애들아, 밥 먹어라!"
    할머니께서 아침상을 차려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따끈한 죽과 김치, 간장에 참기름 두른 장국이 상에 올라왔어요. 어젯밤 빗소리 들으며 잠들었던 우리는 오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밥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구만."
    할아버지께서 밥을 드시며 말씀하셨어요. 할머니께서도 "그러게. 빨래도 좀 해야겠어"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애들 학교 보내고 나서 장 보러 가야겠어유" 하셨고요.
    밥을 다 먹고 나니, 오빠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갈 준비를 했습니다. 큰언니도 머리를 빗으며 옷을 갈아입었어요. 저도 따라 나설 준비를 했지요.
    대문을 나서니, 온 동네가 빗물에 씻긴 듯 깨끗했습니다. 골목길 돌바닥도 반들반들했고, 담장 너머 보이는 기와지붕들도 햇살에 반짝였어요. 어제까지 내리던 그 굵은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뒤돌아보니 우리 집 기와지붕이 보였어요. 햇살을 받아 빛나는 기와, 처마 끝에서 마지막 빗방울 한두 개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 오는 날의 평화로움,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시간, 기와지붕 아래서 들었던 그 빗소리. 그 모든 것이 가슴속 깊이 남았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이 한옥에서 계절을 맞이하고 또 보낼 거였지요.

    ###🎙️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빗소리가 기와지붕을 두드리던 그 날의 평화로움, 가족과 함께 마루에 둘러앉아 나눴던 따뜻한 시간들.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면 마음이 포근해지실 겁니다.
    오늘도 저희 채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시고요,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부탁드립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비 오던 날 추억도 들려주세요. 함께 나누면 더 따뜻해지니까요.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또 뵙겠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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