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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떠미는 양보 소동 , 욕심 없는 사람의 따뜻한 최후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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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400자 내외)
"옆집 사람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 다들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여기, 땅속에서 황금이 쏟아져 나왔는데도 서로 '네 것이다' 하며 미루는 별난 마을이 있습니다."
평생 흙 파서 먹고살던 덕팔이가 남의 밭을 빌려 갈다가 금궤가 가득 든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눈 뒤집혀서 몰래 숨겼을 텐데, 이 양반은 오히려 밭 주인 만석이를 찾아가 항아리를 떠맡기려 합니다. "내 땅에서 나왔으니 네 것이다!", "아니다, 네가 발견했으니 네 복이다!" 이 기막힌 실랑이가 마을 전체로 번지면서 벌어지는 웃음과 감동의 대소동! 욕심 부리다 패가망신하는 요즘 세상에, 곰방대 연기처럼 구수한 정이 그리운 분들이라면 오늘 이야기 끝까지 들어보셔야 합니다. 자, 조선 시대판 '착한 사람들의 전쟁', 지금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시대 최고의 기문집 『어우야담』에 기록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재물 앞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 탐욕을 이겨낸 평범한 사람들의 정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해학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단순히 교훈적인 이야기를 넘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농익은 대화를 통해 오디오 드라마 특유의 듣는 재미를 극대화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그 비밀스러운 결말을 함께 확인해 보세요.
※ 쟁기 끝에 걸린 금빛 운명
자~ 어르신들, 오늘은 저기 강원도 산골짜기, 물 맑고 공기 좋은 ‘버드나무 마을’에서 일어난 기막힌 이야기 한 보따리 풀어볼까 합니다. 이 마을에는 이름만큼이나 성품이 무던하고 법 없이도 살 양반인 ‘덕팔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지요. 이 양반,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낡은 쟁기뿐이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직하게 흙을 파며 살아가는 고지식한 사내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아지랑이가 아지랑아지랑 피어오르고 뻐꾸기가 "뻐꾹 뻐꾹" 하며 게으른 농부를 꾸짖는 따스한 봄날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덕팔이는 이웃집 만석이한테 빌린 묵은 밭을 일구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랴, 누렁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이 밭만 다 갈면 내 너한테 맛난 콩깍지를 잔뜩 먹여주마!" 덕팔이는 땀방울이 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흙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쟁기 손잡이를 꽉 쥐고 소를 몰았습니다. 낡은 쟁기날이 흙을 파고들 때마다 구수한 흙내음이 올라오고, 덕팔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판에 가득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가던 쟁기가 무엇엔가 '콰직!' 하고 걸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허, 이놈의 땅은 돌덩이가 왜 이리도 많담?" 덕팔이는 쟁기를 멈추고 혀를 끌끌 차며 허리를 굽혔습니다. 소 엉덩이를 툭툭 쳐서 세워두고는, 걸려 있는 돌이라도 빼낼 요량으로 흙을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손끝에 닿는 감촉이 매끄러운 돌멩이가 아니었습니다. 덕팔이는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옆에 둔 삽을 가져와 조심조심 주변 흙을 걷어냈습니다. 한참을 파 내려가니 커다란 독의 주둥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덕팔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독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그 순간,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을 받은 항아리 속에서 눈을 찌를 듯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누런 금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은전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지요. 덕팔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이쿠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고 오직 누렁이 소만 껌벅껌벅 큰 눈을 뜨고 주인을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덕팔이의 가슴이 방앗간 공이질하듯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금이면 평생 아니, 삼대 자손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었지요. 덕팔이는 떨리는 손으로 금덩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아니지, 아니야. 이건 내 복이 아니다. 이 밭은 엄연히 만석이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인데, 그 땅속 깊이 묻힌 것이 어찌 나같이 밭 빌려 쓰는 사람의 것이 되겠는가? 내 만약 이걸 몰래 가져간다면, 내일 아침 내 자식놈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겠어?' 덕팔이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더니,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항아리 뚜껑을 다시 덮고는, 흙을 덮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정성스레 다져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쟁기를 팽개쳐둔 채 마을 아래 만석이네 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짚신 한 짝이 벗겨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헉헉" 소리를 내며 달리는 덕팔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보물을 하루빨리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다!' 참으로 요즘 세상엔 눈 씻고 봐도 없을 별난 농부의 소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 금 항아리를 배달합니다
덕팔이는 만석이네 대문을 부서져라 두드렸습니다. "만석아! 만석아! 안에 있느냐! 큰일 났다, 어서 나와봐라!" 안에서 낮잠을 자던 만석이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덕팔이 형님 아니오? 대낮에 밭 갈다 말고 웬 일로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흙투성이가 되어 달려오셨소? 어디 산돼지라도 만난 게요? 아니면 고을 사또라도 오셨답니까?" 만석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덕팔이의 헝클어진 옷 매무새를 살폈습니다. 덕팔이는 숨을 몰아쉬며 만석이의 어깨를 꽉 쥐고 마당 한복판으로 이끌었습니다.
"산돼지보다 더 무섭고, 사또보다 더 귀한 걸 봤네! 이보게 만석아, 자네 밭 있잖나, 내가 빌려 갈던 그 뒷산 너머 밭 말이야. 거기서 금항아리가 나왔네! 아주 눈이 부셔서 쳐다도 못 볼 황금이 가득 들었단 말이네! 내가 쟁기질을 하다가 콰직 하고 걸려서 파보니 그런 보물이 들어있지 뭐야. 어서 가서 자네가 챙기게나. 남이 볼까 무서워 내 얼른 흙으로 덮어두고 왔네!" 만석이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떴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은 탐욕에 눈이 먼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석이는 오히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덕팔이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형님, 참으로 진정이십니까? 금항아리가 나왔으면 그건 형님 복이지 왜 나한테 달려오십니까? 나는 그 밭을 형님한테 임대료 받고 빌려주지 않았습니까? 밭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 기간 동안 그 땅에서 나는 곡식이며 돌멩이며 다 형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형님이 땀 흘려 깊이 갈지 않았으면 그 항아리가 백 년이 지난들 세상 빛을 봤겠습니까? 이건 하늘이 형님의 성실함을 보고 내리신 선물이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서 가서 형님이 챙기십시오. 저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만석이의 말에 덕팔이는 기가 막혀 펄쩍 뛰었습니다.
"이 사람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밭 빌린 사람은 땅 위의 곡식을 가져가는 거지, 땅속에 묻힌 보물까지 내 것이라고 우기면 그게 도둑놈이지 농부냐? 그 밭은 자네 조상님이 물려주신 거니 그 밑에 든 것도 자네 조상님이 자네 주려고 묻어두신 걸세.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아서 한 조각도 못 가져가네. 어서 가서 자네가 가져오지 않으면 내 오늘 밤 자네 집 문턱에 앉아 밤을 새울 것이야!" 덕팔이가 삿대질을 하며 우기자, 만석이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키우며 마당 한가운데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형님, 참으로 고지식하십니다! 남들은 없는 금도 만들어서 제 것이라 우기는데, 눈앞에 굴러온 복을 발로 차시다니요! 나는 절대로 그 금을 내 집 문턱 안으로 들일 수 없소. 정 그러시면 우리 같이 가서 다시 깊이 묻어버립시다. 임자 없는 물건이니 땅속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겠소?"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자 어느덧 담장 너머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 담벼락에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야? 금항아리가 나왔는데 서로 안 가지겠다고 싸우고 있어?" 마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남들은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고 형제끼리도 칼부림하는 세상인데, 이 두 양반은 서로 황금을 떠넘기느라 안달이 난 겁니다. 덕팔이는 답답한 마음에 마당 바닥을 쾅쾅 치고, 만석이는 뒷짐을 지고 먼 산만 바라보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소문은 발이 없어도 만 리를 간다고 했던가요? 이 기묘한 '황금 배달' 소동은 이제 만석이네 집 마당을 넘어 온 버드나무 마을의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이 먼저냐, 욕심이 먼저냐! 버드나무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착한 사람들의 전쟁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 마을을 뒤흔든 '착한 도둑'
자~ 소문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고도 빠른 것입니다. 발도 없고 날개도 없는데, 담벼락을 타고 고샅길을 돌아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동네에 쫘악 퍼졌습니다. "이보게, 들었나? 덕팔이가 만석이네 밭 갈다가 금항아리를 캤는데, 지금 서로 안 가지겠다고 만석이네 마당에서 난리가 났다네!" 이 소리에 냇가에서 방망이질하던 아낙들은 빨래를 내팽개치고 달려오고, 서당에서 글 읽던 훈장님은 갓을 비뚤게 쓴 채 곰방대를 물고 뛰쳐나왔지요. 동네 꼬마들은 코흘리개 코를 훔치며 만석이네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으니, 어느덧 만석이네 집은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흙이 묻은 묵직한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 뚜껑 사이로 새어 나오는 누런 금빛이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구경도 못 할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덕팔이와 만석이는 서로의 손을 밀쳐내며 씩씩거리고 있었지요. 이때, 마을에서 가장 지혜롭고 덕망 높기로 소문난 이 씨 대감이 헛기침을 하며 대중 앞에 나섰습니다. "에헴! 이 사람들아, 도대체 무슨 일로 이리 소란스러운가? 황천길도 아닌데 왜들 그리 악을 쓰고 있어?" 이 씨 대감이 엄하게 묻자, 덕팔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달려가 대감의 도포 자락을 붙잡았습니다.
"대감님, 제 억울한 사정 좀 들어보십시오! 제가 만석이네 밭을 빌려 땀 흘려 갈다가 이 금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만석이 저놈이 절대로 자기 게 아니라고 우기지 뭡니까! 땅 주인 물건을 땅 주인이 가져가겠다는데, 이게 어찌 거절할 일입니까? 제가 이걸 가져가면 내일 아침 제 자식놈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이건 도둑질이나 다름없습니다!" 덕팔이가 가슴을 쾅쾅 치며 읍소하자, 만석이도 질세라 무릎을 꿇고 하소연을 시작했습니다. "대감님! 밭을 빌려줬을 때는 그 땅에서 나는 돌멩이 하나, 흙 한 줌까지 빌린 사람의 것입니다. 덕팔이 형님이 쟁기질을 안 했으면 그 금이 세상 빛을 봤겠습니까? 이건 하늘이 형님께 내리신 복이지, 제 것이 아닙니다! 제 땅에서 나왔다고 덥석 받으면, 저는 탐욕에 눈먼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는 죽어도 못 받습니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실랑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나 같으면 벌써 항아리 들고 야반도주했겠다!" "세상에, 금을 준다는데도 싫다는 사람은 내 평생 처음 보네그려." 어떤 이는 "그럼 반반씩 나누면 어떻겠소?" 하고 제안을 해봤지만, 덕팔이는 손사래를 치며 펄쩍 뜁니다. "내 것이 아닌데 반은 무슨 반입니까! 나는 정직하게 흙 파서 먹고사는 사람이지, 남의 땅에서 나온 금을 탐낼 사람은 아닙니다!" 만석이 역시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형님이 안 가지신다면, 저는 저 항아리를 다시 땅속 깊이 묻어버릴 겁니다! 아니, 차라리 저 시커먼 우물물 속에 던져버리겠소!"
이 씨 대감은 곰방대를 다시 입에 물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욕심쟁이들이 싸우는 건 수없이 봤어도, 이리 정직한 이들이 서로 양보하며 싸우는 건 참으로 기이하고도 고운 일이로다. 이들의 정이 재물 때문에 상하지 않게 하려면 관의 지혜가 필요하겠구나.' 대감은 마침내 결심한 듯 짚신을 고쳐 매고 일어섰습니다. "이보게들, 자네들 뜻이 이리 완강하니 내 지혜만으로는 부족하네. 마침 우리 고을 사또께서 인자하고 총명하시기로 소문이 자자하니, 우리 다 같이 관가로 가서 사또의 명판결을 들어봄이 어떻겠는가? 황금의 임자를 가리는 게 아니라, 너희의 고운 마음을 담을 그릇을 찾아보자는 것이네."
마을 사람들은 "그게 좋겠소! 사또님이라면 묘안을 내실 게요!" 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덕팔이는 금항아리를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서 지게에 지고, 만석이는 그 뒤를 따르며 서로 "자네가 지게를 내려놓게", "아니다 형님이 지셔라" 하며 관가로 향하는 고갯길을 올랐습니다. 길가에 핀 진달래가 그들의 고운 마음씨를 보고 웃는 듯 살랑거리고, 뒤따르는 마을 사람들의 행렬은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흥겨웠지요. 황금을 두고 싸우되 미움이 아닌 정이 넘치는 이 기묘한 행렬은 어느덧 고을 관아 정문 앞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 사또의 명판결
관아 마당에는 금항아리가 덩그러니 놓이고, 덕팔이와 만석이가 엎드려 사또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고을 백성들이 관아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숨을 죽였지요. 이방과 포졸들도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느냐"며 수군거렸습니다. 드디어 사또께서 위엄 있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동헌으로 나오셨습니다. 사또는 두 농부의 사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했습니다. 보통 이런 보물이 나오면 관가에서 몰수하거나,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다 피를 보기 마련인데, 이 두 농부는 서로 "내 것이 아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읍소를 하고 있으니 사또의 마음도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허허,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특한 일이로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재물 앞에서 이토록 청렴하고 서로를 위할 수 있다니, 너희는 진정 이 고을의 보배로구나. 하지만 이 황금이 갈 곳을 잃어 마당에 방치되어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또는 자리에서 일어나 항아리 주변을 천천히 돌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만약 사또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나라의 땅에서 나온 것이니 관가에서 환수하겠다" 하고 가로챘을지도 모르지만, 이 사또는 백성을 사랑하기로 소문난 명관이었지요. 그는 어떻게 하면 이 황금이 이들의 정을 해치지 않고 더 큰 복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사또는 이 씨 대감을 불러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저 두 사람에게 혹시 자식이 있는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저러하니, 가문끼리도 인연이 있을 법한데." 이 씨 대감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예, 사또나으리. 덕팔이는 심성이 고운 아들이 하나 있고, 만석이는 집안일 잘하기로 소문난 딸이 하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아이 다 혼기가 꽉 찼사옵니다." 사또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됐다! 바로 그것이로다! 하늘이 이들을 위해 미리 예비하신 것이야!" 사또는 무릎을 탁 치며 덕팔이와 만석이를 향해 호통 아닌 호통을 쳤습니다.
"너희 두 사람은 서로 황금을 거절하니, 이 황금은 임자를 잃은 고아와 같구나. 하지만 너희의 정이 이토록 깊으니, 내가 명쾌한 판결을 내리겠다. 덕팔이의 아들과 만석이의 딸을 혼인시키는 것이 어떠냐? 그러면 두 집안이 한 피를 나눈 가족이 될 것이요, 이 금항아리는 사돈 간의 귀한 예물이자 그 부부가 새살림을 차릴 밑천이 될 터이니, 누가 주인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너희가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이 자식들에게로 이어져 마을의 큰 복이 될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임자가 어디 있겠느냐!"
이 판결이 떨어지자마자 마당을 가득 메운 백성들이 "명판결이옵니다! 사또나으리 만세!" 하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덕팔이와 만석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비로소 활짝 웃었습니다. "만석아, 우리 사돈 되는 건가? 자네 딸이 우리 집으로 온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형님, 아니 사돈어른! 이 황금보다 형님과 가족이 되는 게 백배는 더 좋습니다!" 두 사람은 관아 마당에서 서로의 손을 꼭 맞잡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황금이 원수가 아닌 복덩이가 되어 두 집안을 끈끈하게 묶어준 것이지요.
사또는 껄껄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남은 금으로는 마을에 가뭄이 들어도 끄떡없는 커다란 저수지를 파고, 배고픈 이웃이 없도록 마을 창고를 채우도록 하라. 너희의 고운 심성이 마을 전체의 복으로 퍼져나가야 할 것이니라!" 덕팔이와 만석이는 사또에게 큰절을 올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황금을 탐내지 않았기에 더 큰 인연과 마을의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관아를 나서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황금을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가볍고 경쾌했습니다. 이제 버드나무 마을에는 황금보다 더 반짝이는 웃음꽃이 피어날 준비가 끝난 셈이었지요.
※ 탐욕스러운 외부인의 침입
자, 소문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담장을 넘고 고개를 넘어 이웃 고을까지 번지더니, 마침내 저 멀리 한양 땅에서 남의 등쳐먹기로 소문난 뜨내기 도둑놈 ‘칠복이’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칠복이는 소문을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콧방귀를 꼈지요. “에이그, 세상에 그런 얼간이들이 어디 있담? 황금을 두고 서로 가지라고 떠밀다니, 시골뜨기들이라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로군! 내가 가서 그 임자 없는 보물을 몽땅 털어와야겠다!” 칠복이는 그 길로 괴나리봇짐을 꾸려 버드나무 마을로 숨어들었습니다.
때는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칠복이는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발 끝을 질질 끌지 않도록 단단히 고쳐 맸습니다. 녀석의 가슴은 이미 황금을 다 가진 것처럼 방망이질을 쳤지요. “어디 보자, 만석이네 집이 이쪽이라 했지?” 칠복이는 고양이처럼 담장을 타고 넘어가 만석이네 안방 근처에 귀를 갖다 댔습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여보, 사또께서 판결을 잘 내려주셔서 정말 다행이지요? 그 무거운 황금을 우리만 가졌으면 밤마다 잠도 못 자고 벌벌 떨었을 텐데, 저수지를 만드는 데 쓴다니 이제야 발 뻗고 자겠소.” 만석이의 아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만석이도 껄껄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렇고말고. 황금 항아리 그까짓 거, 우리 덕팔이 형님네랑 사돈 맺어준 것만으로도 제 할 일 다 한 거지. 내일 마을 사람들이랑 다 같이 금을 관가로 옮기기로 했으니 오늘 밤만 잘 지키면 되오.”
칠복이는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이런 멍청한 것들! 그 귀한 걸 남 주겠다고 저리 좋아하다니!” 칠복이는 만석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살금살금 문을 열고 안방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장롱 밑에 숨겨두었다는 금항아리를 찾아 손을 뻗는 순간, 칠복이는 그만 발밑에 놓인 요강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챙그랑!’ 정적을 깨는 소리에 만석이가 벌떡 일어났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이 만석이는 역시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만석이는 어둠 속에서 복면을 쓴 칠복이를 보고는 허허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쿠, 손님께서 벌써 오셨구려. 황금 소문을 듣고 오신 모양인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 기왕 오셨으니 땀이나 좀 식히고 가시지요.” 칠복이는 칼을 빼 들려다 말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만석이는 오히려 칠복이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이 금은 내일이면 마을 사람들의 물줄기가 될 귀한 물건이라오. 하지만 손님께서 이리 절박하게 찾아오셨으니, 내 아내 몰래 금 한 조각을 내어드릴 테니 이거 가지고 가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사시구려.”
칠복이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남을 해치려 온 자신에게 오히려 손을 내미는 이 따뜻한 인심 앞에서, 평생 남의 것만 탐내던 칠복이의 마음속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지요. 칠복이는 금조각을 받아드는 대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짐승보다 못한 놈입니다! 이토록 고운 마음씨를 가진 분들의 보물을 탐내다니요!” 버드나무 마을의 정은 도둑놈의 칼날마저 녹여버릴 정도로 뜨겁고 농밀했던 것입니다.
※ 황금보다 귀한 마을 잔치
드디어 약속한 혼례 날이자 마을의 경사가 터진 날이 밝았습니다. 버드나무 마을 입구부터 덕팔이네 집까지 청사초롱이 줄지어 걸리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제일 고운 옷을 꺼내 입고 모여들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는 커다란 가마솥이 대여섯 개나 걸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요. 고소한 전 부치는 냄새와 구수한 고기 삶는 냄새가 온 동네 진동을 하니, 지나가던 산새들도 배가 고파 내려올 지경이었습니다.
덕팔이의 아들은 늠름한 사모관대를 차려입고 백마 대신 누렁이를 타고 만석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만석이의 딸은 연지곤지 예쁘게 찍고 수줍게 가마에 올랐지요. 사또의 판결대로 두 집안이 하나가 되는 순간, 마을 사람들은 제 일처럼 기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아이고, 우리 덕팔이 아들 장가 잘 가네!” “만석이 딸은 시집가서 복 터졌어, 저런 시아버지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덕팔이와 만석이는 나란히 서서 사돈끼리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신 싱글벙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장관은 잔치판 옆에 놓인 거대한 푯말이었습니다. 사또의 배려로 금항아리의 일부를 처분해 마련한 기금으로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비석이 세워졌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지요. [의리와 정이 황금보다 깊은 마을]. 마을 사람들은 잔치 국수를 한 그릇씩 받아 들고 그 비석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사또는 약속대로 마을 뒷산 계곡에 물을 가둘 커다란 저수지 공사를 시작하도록 명했습니다. 이제 이 마을은 가뭄이 들어도 논바닥이 갈라질 걱정이 없고, 보릿고개가 찾아와도 굶주릴 이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덕팔이가 비틀거리며 단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보쇼! 처음 그 항아리를 발견했을 때, 솔직히 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돈 만석이 손을 잡고, 우리 마을 식구들 배부르게 먹는 꼴을 보니 그때 금을 안 가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금은 써버리면 그만이지만, 여러분과 나누는 이 막걸리 한 잔의 정은 죽어서도 가져갈 제 재산입니다!” 덕팔이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옳소!"를 외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버드나무 마을은 해가 져도 어둡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등불이 되어 마을을 환하게 밝혔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황금 항아리 이야기를 들려주며 "욕심보다는 정이, 나보다는 우리가 먼저"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주었지요. 쟁기 끝에 걸렸던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사람들의 체온을 타고 흐르며, 마을 전체를 적시는 따뜻한 생명수로 변한 기적 같은 하루였습니다. 잔치판 구석에서는 어젯밤 몰래 들어왔던 도둑 칠복이조차 복면을 벗고 하인들 틈에 섞여 열심히 마당을 쓸고 있었으니, 진정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가 아니라 따뜻한 정이었음을 증명한 셈이었습니다.
※ 대를 잇는 정의 유산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버드나무 마을의 이름은 바뀌고 길의 모양도 달라졌지만, 그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저수지만은 여전히 푸른 물을 가득 머금고 마을 논밭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마을 노인들은 여전히 은행나무 아래 모여 앉아, 쟁기를 갈다 금항아리를 캔 덕팔이 할아버지와 고집스럽게 그 금을 거절했던 만석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려주곤 합니다.
“얘들아, 저 저수지 물이 왜 저리 맑은 줄 아느냐? 저건 그냥 물이 아니라, 옛날 우리 조상님들의 ‘욕심 없는 마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묻습니다. “할아버지, 진짜 금이 나오면 나 같으면 과자 사 먹었을 텐데, 왜 안 가졌어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금으로 산 과자는 금방 먹어 없어지지만, 이웃과 나눈 마음은 저 저수지처럼 대대손손 남아서 우리를 지켜주는 법이란다.”
실제로 『어우야담』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재물 앞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실화입니다. 덕팔이와 만석이의 후손들은 지금도 그 고장의 명문가로 불리며 인망을 얻고 있다지요. 돈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소송을 벌이고, 이웃집 담벼락에 못을 박는 요즘 세상에서 보면 참으로 바보 같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를 마지막까지 웃게 만드는 것은 통장 속의 숫자보다는, 힘들 때 손 잡아주는 이웃의 따뜻한 눈빛이라는 것을요.
황금 항아리가 발견된 그 자리는 이제 울창한 숲이 되었지만, 그날 두 사람이 나눴던 뜨거운 우정과 정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덕팔이가 휘둘렀던 낡은 쟁기 끝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금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선한 본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나, 사람의 정은 한 번 심어놓으면 저절로 자라나 숲을 이루는 법이지요. 버드나무 마을 사람들은 금을 버림으로써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라는 보물을 얻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어르신들, 오늘 밤 꿈속에는 여러분의 쟁기 끝에도 묵직한 무언가가 걸리길 바랍니다. 그것이 황금이라면 더 좋겠지만, 황금이 아니더라도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한 번 더 꽉 잡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걸려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버드나무 마을의 그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사람 사는 냄새가 여러분의 방 안 가득 퍼져나가길 바라며, 이 이야기꾼은 이만 물러갑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자, 여러분. 금항아리를 서로 가지라고 미루던 덕팔이와 만석이 이야기, 참으로 속이 다 시원하고 훈훈하시지요?
요즘 뉴스를 보면 돈 때문에 싸우고 서로 미워하는 이야기들뿐이라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이토록 멋진 해학과 인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황금보다 사람이 먼저고, 욕심보다 정이 먼저였던 그분들의 마음씨가 오늘날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밤, 옆에 계신 배우자나 오랜 친구에게 "네가 내 인생의 황금 항아리다"라고 쑥스럽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그 고운 말 한마디가 세상을 버드나무 마을처럼 밝게 비출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이야기꾼의 곰방대에 힘이 나도록 구독과 좋아요 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저에게는 황금보다 더 귀한 보물입니다. 저는 다음에 더 신명 나고 찰진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밤도 편안하고 포근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