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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인의 딸 선택한 올곧은 선비」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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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들은 신의 하나로 평생을 살았다고 하지요. 그러나 막상 출세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잘못 한 발 디디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 앞에 서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신의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만복야담」이 들려드릴 이야기는, 한때 자신을 거두어 주었던 은인의 가엾은 딸을, 출세길이 막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외면하지 않은 한 가난한 선비의 사연입니다. 그 신의 하나가 어떻게 하늘을 움직였는지, 그리고 그 한 번의 선택이 그의 평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기문총화』의 한 페이지에 적혀 있던 그 따뜻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들어 보시지요.

    ※ 1: 가난한 선비, 한양에서 쫓기듯 내려오다

    조선 어느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한양 도성 한 귀퉁이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서, 한 젊은 선비가 짐을 꾸리고 있었지요. 이 선비의 성은 김씨, 나이는 이제 막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명색이 양반의 후손이라 하나, 그 살림은 도성의 어느 가난한 백성보다도 못한 형편이었지요. 부모는 일찍 여의었고, 변변한 친척 하나 없이, 오로지 책 한 권을 의지하여 글공부에만 매달려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봄에 본 과거에서, 또다시 낙방을 하고 만 것이지요. 벌써 세 번째 낙방이었습니다. 하루 한 끼를 굶어 가며 책을 읽고, 종이가 없어 마룻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익혀 온 그였습니다. 그러나 한양의 과거장에는, 이 가난한 시골 선비가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지요. 권문세가의 자제들은 시험을 보기도 전에 이미 답안지가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도성 안에 파다했습니다.

    김 선비는 마지막 남은 한 권의 책을 보따리에 정성껏 싸 넣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허허, 이렇게 또 시골로 내려가는구나. 부모님 산소 앞에 무슨 면목으로 절을 올릴꼬."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아 내고는, 보따리를 등에 짊어졌지요. 한양에서 그가 살던 그 초가집의 주인은, 지난달부터 밀린 방세를 갚으라며 매일같이 와서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나 갚을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김 선비가 결국 결심한 것은, 한양을 떠나 충청도 시골 마을의 먼 친척 댁으로 몸을 의탁하러 가는 것이었지요.

    그가 한양 도성 문을 나설 때, 마침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산도 도롱이도 없는 그였지요. 그저 갓 하나로 머리만 가린 채, 짚신을 신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한양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내 평생 그토록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그 어느 곳도 결국 내 자리는 아니었던 게야.'

    김 선비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지요. 한양에서 충청도까지는 족히 사흘 길이었습니다. 가진 돈이라고는 동전 몇 닢이 전부였지요. 그 돈으로는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 사 먹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습니다.

    첫째 날은 어찌어찌 견뎌 냈습니다. 길가의 어느 폐가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다시 길을 떠났지요. 그러나 둘째 날 오후, 비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가, 어느새 장대 같은 소나기로 바뀌어 있었지요.

    김 선비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어느 산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발은 부르터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고, 배는 등가죽에 붙은 지 오래였지요. 게다가 갓이 비에 젖어 무겁게 머리를 짓눌렀습니다. 그가 마침내 한 그루 큰 소나무 아래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지요.

    '아아, 이대로 여기서 죽어도 좋겠구나. 어차피 내 한 몸 어디 가서 누구에게 폐를 끼칠 처지도 못 되고. 하늘이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이라면,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가 그렇게 체념하고 눈을 감으려 할 때였습니다. 멀리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비단 도포에 큼직한 갈모를 쓴 한 중년의 양반 어른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짐을 진 종복이 한 사람 따르고 있었지요. 그 양반 어른은 빗속에서 쓰러져 있는 김 선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다가왔습니다.

    "여보시오, 젊은이! 정신을 차리시오!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김 선비가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떴습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어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지요. 풍채가 좋고, 인상이 후덕한, 누가 보아도 점잖은 양반이었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그저 잠시 비를 피하려 한 것뿐이옵니다."

    "허허, 무슨 말씀이오. 입술이 새파래져서는. 이대로 두면 큰일 나시겠소. 마침 내 사는 마을이 이 고개만 넘으면 바로 있소이다. 어서 일어나시오. 내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시지요."

    김 선비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신세를 진다는 것은, 가난해도 양반의 자존심을 지켜온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그 양반 어른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아니오, 거절하지 마시오. 사람의 목숨이 풍전등화인데, 어찌 양반의 체면을 따진단 말이오. 자, 이리 부축하거라. 어서 모셔 가자꾸나."

    종복이 김 선비를 부축하여 일으켰습니다. 김 선비는 더 이상 거절할 힘도 없었지요. 그렇게 그는 빗속에서 한 어른을 만나, 그 댁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평생을 바꿀 인연의 시작이었지요.

    ※ 2: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만난 그 어른

    그 양반 어른의 댁은 고개 너머 작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와집 한 채와 사랑채, 그리고 너른 마당이 딸린, 시골에서는 제법 풍족해 보이는 집이었지요. 그러나 이 어른의 살림은 결코 부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대대로 물려받은 작은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그저 굶지 않고 사는 정도의 형편이었지요. 그럼에도 이 어른은 자신의 살림을 늘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이 어른의 성은 박씨, 나이는 마흔이 갓 넘은 분이셨습니다. 일찍이 향시에는 합격하셨으나, 더 큰 과거에는 오르지 못하시고 시골에서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고 계셨지요. 박 어르신은 김 선비를 사랑채로 모시고, 종복을 시켜 마른 옷을 내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끈한 미음 한 그릇과 약주 한 잔을 직접 가져오셨지요.

    "자, 우선 이것부터 드시오. 그래야 몸이 좀 풀리실 게요."

    김 선비는 떨리는 손으로 미음 그릇을 받아 들었습니다. 며칠을 굶주린 끝에 받은 따뜻한 미음 한 그릇이었지요. 그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 순간,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습니다.

    "어르신, 이 은혜를…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허허, 이 사람아. 사람이 사람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거늘, 어찌 은혜라 하시오. 그런 말씀 마시고, 어서 드시기나 하시오."

    박 어르신은 김 선비가 미음을 다 비울 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으셨지요.

    "실례지만, 어디로 가시는 길이셨소? 보아하니 양반의 후예이신 듯한데, 어찌 그리 행색이 험하셨소?"

    김 선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글공부만 매달려 온 일. 한양에 올라가 세 번이나 과거를 보았으나 모두 낙방한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청도의 먼 친척 댁으로 몸을 의탁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까지, 모두 솔직하게 아뢰었지요.

    박 어르신은 한참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지요.

    "허허, 가엾으신 일이오. 그러나 김 선비, 한 가지만 묻겠소. 그대는 글공부를 그만두실 생각이시오?"

    "어르신, 그것은 아니옵니다. 다만 한양에서는 더 이상 버틸 형편이 못 되어, 시골로 내려가 다시 힘을 모은 뒤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옵니다."

    박 어르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충청도까지 그 험한 길을 어찌 걸어가시려 하오. 내 한 가지 청을 드리겠소. 부디 거절치 마시오. 우리 집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머물다 가시오. 마침 내 사랑채가 비어 있고, 나도 시골에서 글동무가 없어 적적하던 차였소. 그대와 함께 글을 논하고 싶소."

    김 선비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습니다.

    "어르신, 그것은 너무 과한 호의이옵니다. 일면식도 없는 자에게 어찌 그리하시려 하옵니까."

    "허허,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시오. 사람의 인연이란 본래 그러한 것이오. 게다가 내 그대를 보니, 그 눈빛이 보통이 아니오. 학문에 깊이가 있고, 마음에 곧은 절개가 있는 사람이오. 내 비록 시골 늙은이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있소이다. 그대는 분명 훗날 큰 인물이 될 게요."

    그 말씀에 김 선비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평생 그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그였지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는 그에게, 한낱 길에서 만난 어른이 이렇게 정성껏 마음을 내어 주신다는 것이, 그의 메마른 가슴을 깊이 적셨습니다.

    그렇게 김 선비는 박 어르신 댁에서 하루 이틀 묵게 되었고, 그 하루 이틀이 어느덧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었지요. 박 어르신은 김 선비를 마치 친아우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함께 글을 읽고, 낮에는 마당에서 함께 시를 지었으며, 저녁이면 약주 한 잔을 나누며 천하의 일을 논하셨지요.

    박 어르신께는 가족이 단출했습니다. 부인을 일찍 여의시고, 슬하에는 외동딸 하나만을 두고 계셨지요. 그 따님은 그때 열다섯 살의 어린 처녀였습니다. 어머니 없이 자란 탓인지 매우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지요. 김 선비가 그 댁에 머무는 동안, 그 따님과 직접 마주친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가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나,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보았을 뿐이지요. 그래도 김 선비는 그 어린 처녀가 매일 자기와 박 어르신의 식사를 정성껏 차려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박 어르신께서 약주를 한 잔 드시며 김 선비에게 말씀하셨지요.

    "김 선비, 내 이제 그대가 떠나야 할 때가 가까웠음을 아오. 그러나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시오. 훗날 그대가 큰 사람이 되거든, 부디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를 잊지 마시오. 그것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단 하나의 보답이오."

    김 선비는 무릎을 꿇고 깊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어르신, 신이 평생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나이다. 만약 신이 출세하여 작은 자리라도 얻게 된다면, 어르신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나이다. 천지신명께 맹세하겠나이다."

    "허허, 맹세까지 할 일이 무엇이오. 그저 사람이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키면 그뿐이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약주 한 잔을 나누어 마셨습니다. 그 한 잔의 약주가,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신의를 맺어 주었지요. 그리고 며칠 뒤, 김 선비는 박 어르신 댁을 떠나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박 어르신께서는 김 선비의 손에 작은 노자 꾸러미를 쥐여 주시며, 도성으로 다시 올라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과거에 도전해 보라 하셨지요. 김 선비는 그 노자를 받아 들고, 깊이 절을 올리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박 어르신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지요.

    ※ 3: 삼 년 만에 들려온 은인의 죽음

    박 어르신과 헤어진 뒤, 김 선비는 충청도 친척 댁에 잠시 의탁하지 않고, 곧장 한양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박 어르신께서 주신 노자 덕분에 작은 셋방을 하나 얻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죽기 살기로 글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박 어르신의 그 말씀이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있었거든요.

    "그대는 분명 훗날 큰 인물이 될 게요."

    그 한마디가, 평생 누구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살아온 그에게는 등불 같은 말씀이었지요. 그는 잠을 줄여 가며, 끼니를 줄여 가며, 오로지 책 속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다시 봄이 돌아왔지요. 마침내 그는 네 번째로 과거에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침내 합격하였지요. 그것도 갑과의 높은 등수로 말입니다.

    방이 붙던 날, 김 선비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박 어르신이셨지요. 그가 한양에서 정식으로 벼슬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박 어르신께 편지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어르신, 신이 마침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을 받게 되었나이다. 모두 어르신의 은혜이오니, 어찌 잊을 수 있겠나이까. 짬이 나는 대로 어르신을 뵈러 내려가겠나이다."

    김 선비는 그 편지에 답례로 비단 한 필과 약간의 돈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박 어르신께로부터는 답장이 오지 않았지요. 김 선비는 처음에는 그저 어르신께서 바쁘신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자 그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지요.

    벼슬살이 첫해는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는 사간원의 한 자리를 받아, 매일같이 새로운 일들을 익히느라 바빴거든요. 그 와중에도 그는 박 어르신을 뵈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짬을 내려 하면, 또 다른 일이 밀려와 발목을 잡았지요.

    그렇게 어느덧 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 선비는 어느덧 사간원의 정언 자리에까지 올라, 한양에서 제법 이름 있는 젊은 관리가 되어 있었지요. 살림도 차차 안정되어, 작은 집 한 채를 사서 단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좋은 혼처도 여러 곳에서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사양하고 있었지요. 박 어르신을 뵙고, 인사를 드린 뒤에 결혼을 결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선비의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충청도 박 어르신 댁이 있던 그 마을에서 보낸 편지였지요. 그러나 박 어르신의 필체가 아니었습니다. 김 선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채, 그 편지를 펼쳤지요.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김 선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편지는 박 어르신의 부고였던 것이지요. 박 어르신께서는 사실 김 선비가 떠나신 그해 가을부터 환후가 깊어지셨다고 했습니다. 김 선비가 보낸 편지와 비단도 받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지요. 그 편지는 박 어르신 댁의 먼 친척이 보낸 것이었는데, 그 안에는 더 가슴 아픈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박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뒤, 외동따님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홀로 남게 되셨다는 것이었지요. 박 어르신께서 돌아가시며 남기신 약간의 토지마저, 어떤 욕심 많은 친척이 가로채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따님은 결국 그 마을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지셨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지요.

    김 선비는 그 편지를 손에 쥔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지요.

    '어르신… 어르신, 이 못난 놈을 용서하옵소서. 신이 어찌 이리 어리석었나이까. 어르신의 마지막 길에 신이 옆을 지키지 못하였나이다. 신이 보낸 편지조차 받지 못하시고 가시다니. 그리고 그 따님은… 그 어린 따님은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김 선비는 그날 밤 한숨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삼 년 전 박 어르신 댁 마당을 분주히 가로지르던 그 수줍은 어린 처녀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지요. 그때 열다섯 살이었으니, 지금은 열여덟이 되었을 그 따님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김 선비는 즉시 휴가를 청하고 충청도 그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박 어르신의 산소를 찾아 절을 올리고, 한참을 그 앞에서 흐느꼈지요. 그러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따님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정확한 행방을 알지 못했지요. 다만 한 늙은 노파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가엾은 처녀가 한양 어디로 가서 남의 집 일이라도 하며 산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친정 일가친척도 다 외면하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한양으로 갔다는 게지요. 허나 그 큰 한양에서 어찌 찾을 수 있겠습니까."

    김 선비는 한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찾아내겠다. 어르신의 따님을 반드시 찾아, 내가 거두리라. 어르신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그 따님께 갚으리라.'

    그러나 한양은 너무나 크고 넓은 도성이었지요. 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김 선비는 쉬는 날이면 도성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박 어르신 따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었지만, 어디에서도 그 행방을 알 수 없었지요. 그렇게 또 일 년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갔습니다.

    ※ 4: 거지꼴이 된 은인의 딸을 마주한 날

    김 선비가 박 어르신의 부고를 받은 지도 어느덧 일 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무렵 사간원에서 더 높은 자리로 천거되어 있었지요. 다름 아닌, 임금의 측근에서 일하는 옥당, 즉 홍문관의 한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젊은 관리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 중 하나였지요. 게다가 그의 혼처로, 어느 권세가의 따님이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그 댁의 영감께서 김 선비의 인품과 학문을 높이 사시어, 자신의 외동딸과 혼사를 맺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그 댁은 다름 아닌, 당시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한 정승 댁이었습니다. 만약 그 혼사가 성사된다면, 김 선비의 출세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셈이었지요. 김 선비는 그 혼담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한낱 가난한 시골 선비 출신이 정승 댁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꿈꾸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박 어르신의 따님에 대한 마음의 빚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지요.

    '그 따님을 일 년 동안이나 찾았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니, 이는 어쩌면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르신의 산소를 평생 정성껏 모시고, 매년 제사를 거르지 않으면 그것으로 도리는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김 선비가 입궐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지요. 그날따라 늦가을 찬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길가에는 마른 낙엽들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집 앞 골목으로 막 접어들었을 때였지요.

    대문 앞에 한 여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여, 얼핏 보면 거지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지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입고 있는 치마저고리는 이미 색이 다 바래어 너덜너덜했습니다. 발에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그저 헝겊 조각으로 발을 감싼 채 떨고 있었지요.

    김 선비는 처음에는 그저 길 잃은 거지 여인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복에게 일러,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약간의 돈을 내어 주라 하려 했지요. 그런데 그 여인이 김 선비의 발걸음 소리를 듣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김 선비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지요. 어둠 속에서, 그 여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야위고 핏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 눈매와 콧날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박 어르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이, 그 가엾은 여인의 얼굴 위에 그대로 겹쳐 보였던 것이지요.

    김 선비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혹시… 혹시 그대가… 박 어르신의 따님이 아니시오?"

    그 여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엎드려 흐느꼈지요.

    "나으리… 나으리, 송구하옵니다. 이런 모습으로 찾아뵈어 송구하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정말로 갈 곳이 없어서…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늘 나으리 말씀을 하셨던 것이 떠올라… 차마 다른 곳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습니다. 김 선비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지요. 그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신이 그동안 어디 있었나이까. 어르신의 따님이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신이 어디 있었나이까. 한양 도성 안에서 신은 따뜻한 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고 있을 때, 이 따님은 거리에서 이런 신세였단 말입니까.'

    김 선비는 즉시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켰습니다.

    "낭자, 어서 들어오시지요. 이 무슨 모습이란 말입니까. 어서 들어오시오. 어서."

    그는 그녀를 자신의 집 안으로 모셨습니다. 그러고는 종복을 시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게 하고, 깨끗한 옷을 한 벌 내어 주게 하였지요. 그리고 부엌의 식모에게 따끈한 미음과 죽을 정성껏 끓여 내오게 했습니다. 그녀가 따뜻한 미음 한 그릇을 들이키는 동안, 김 선비는 그 옆에 앉아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지요.

    미음을 다 비운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욕심 많은 친척이 토지를 가로채 갔다는 것. 의지할 곳이 없어 한양으로 올라와, 어느 부잣집에 들어가 침모로 일했다는 것. 그러나 그 댁의 주인이 자신을 첩으로 들이려 하여, 도망쳐 나왔다는 것. 그 후로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빨래와 바느질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며칠 전, 우연히 시장에서 나으리의 함자를 듣게 되었사옵니다. 사간원 정언으로 계시다가 옥당으로 천거되셨다는 그 말씀을 듣고… 며칠을 망설였사옵니다. 차마 이런 모습으로 나으리를 찾아뵙는 것이, 죽은 아버지께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여… 그러나 더는 갈 곳이 없어… 결국 이 댁 앞까지 오고 말았나이다. 송구하옵니다, 나으리. 송구하옵니다."

    김 선비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그 거친 손에서, 그가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손이 떠올랐지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낭자, 그런 말씀 마시오. 신이 오히려 죄인이오.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줄도 일 년이나 늦게 알았고, 알고 난 뒤에도 낭자를 찾지 못했으니. 낭자, 이제 이 집에서 머무시오. 신이 어떻게든 낭자를 거두어 모시리다. 어르신께 진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게 해 주시오."

    그녀는 다시 한 번 흐느끼며 깊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날 밤, 김 선비는 그녀를 자신의 집 사랑채에 모셨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침소로 돌아와 한참을 잠 못 이루었지요. 왜냐하면 그는 알고 있었거든요. 자신이 지금 한 이 결정이, 곧 자신의 출세길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 5: 출세길과 신의 사이에서

    박 어르신의 따님을 자신의 집 사랑채에 모신 그날 밤, 김 선비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온갖 생각으로 어지러웠지요.

    '어르신의 따님을 거두어 드리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다. 그러나… 그러나 한양 도성의 입은 무서운 법이다. 한 집안에 젊은 처녀와 젊은 사내가 함께 산다는 것이, 어찌 추문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 정승 댁과 혼담이 오가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김 선비의 가슴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입궐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마자, 골목 어귀에서 동료 관리 한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지요.

    "이보시오, 김 정언. 어제저녁에 자네 집 앞에서 웬 여인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문이 벌써 도성 안에 자자하네. 이거 큰일이 아닌가. 자네는 곧 정승 댁 사위가 될 사람이거늘, 어찌 그런 여인을 집에 들였단 말인가."

    김 선비의 얼굴이 일순 굳었습니다. 한양의 입소문이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단 하룻밤 사이에 이미 도성 안에 소문이 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여보게, 그 여인은 그런 여인이 아닐세. 내가 일찍이 빚을 진 어른의 따님이시네. 갈 곳이 없어 신세를 지러 오신 것뿐이지."

    "허허, 자네가 그렇다 한들, 누가 그것을 믿어 주겠는가.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법이지. 정승 댁의 귀에 이 소문이 들어가면, 그 혼담이 어찌 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자네가 옥당의 자리에 천거된 것도 위태로워질 수 있네. 옥당이 어떤 자리인가. 임금의 곁에서 학문을 강론하는 자리가 아닌가. 행실에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법이지."

    김 선비의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날 입궐하여 일을 보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한 가지 생각뿐이었지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박 어르신의 따님을 거두자니 자신의 모든 출세길이 막힐 것이고, 그렇다고 따님을 다시 거리로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날 저녁,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승 댁에서 사람이 와 있었던 것이지요. 그 사람은 정승 어른의 측근 가신이었습니다. 사랑채에 마주 앉자마자, 그 가신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지요.

    "김 정언, 한 가지 여쭐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듣자 하니, 어제저녁에 댁의 사랑채에 웬 젊은 여인 한 사람을 들이셨다 하더이다. 그것이 사실이오?"

    김 선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사실이옵니다. 다만 그 여인은 신이 일찍이 큰 빚을 진 은인의 따님이시며, 갈 곳이 없어 며칠 동안 사랑채에 머물고 계시는 것이옵니다. 결코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가신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요.

    "김 정언, 사정은 알겠소이다. 허나 정승 어르신의 입장도 한번 헤아려 주시오. 우리 댁 따님과의 혼담이 곧 결정되려는 이때에, 이런 소문이 도성에 퍼진다면 어찌 되겠소. 우리 댁의 체면이 어찌 되며, 김 정언의 앞날은 또 어찌 되겠소. 정승 어르신께서 한 말씀 전해 달라 하셨소. 부디 그 여인을 오늘 밤 안으로 댁에서 내보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혼담은 없던 일로 하셔야 할 게요. 또한 옥당의 자리도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할 게고."

    김 선비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지요. 정승 어르신의 한마디면, 그가 그토록 어렵게 얻은 옥당의 자리도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승 댁 따님과의 혼담은, 그가 가난한 시골 선비 출신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지요.

    가신이 돌아간 뒤, 김 선비는 사랑채에 홀로 앉아 한참을 고뇌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동료가 보낸 편지 한 통이 들려 있었지요. 그 편지에도 비슷한 충고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게, 자네 평생을 좌우할 일일세. 그 여인을 어디 적당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약간의 돈을 쥐여 주어 멀리 보내게. 그것이 그 여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세. 자네 곁에 있으면 그 여인의 신세도 평생 추문으로 따라다닐 것이 아닌가."

    김 선비는 그 편지를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말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요. 그가 따님께 약간의 토지와 집 한 채를 마련해 드리고, 어디 먼 곳으로 가서 조용히 사시도록 한다면, 그것은 어찌 보면 따님을 위한 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곁에 두는 것보다, 오히려 따님의 평판을 위해서도 그것이 나은 길일 수도 있었지요.

    '그래, 그렇게 하자. 약간의 토지와 집 한 채를 마련해 드리고, 멀리 보내 드리자. 그러면 어르신께 진 은혜도 어느 정도는 갚는 것이고, 내 출세길도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그의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콱 막히고 말았습니다. 박 어르신의 그 따뜻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거든요.

    "김 선비, 훗날 그대가 큰 사람이 되거든, 부디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를 잊지 마시오. 그것이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단 하나의 보답이오."

    그리고 자신이 무릎을 꿇고 맹세하던 그날의 모습도 떠올랐지요.

    "어르신, 신이 평생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나이다. 천지신명께 맹세하겠나이다."

    김 선비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어찌 내가 이리 어리석은가. 어찌 내가 그 신의를 저울에 올린단 말인가. 토지 한 자락과 집 한 채로 어르신의 따님을 멀리 보내는 것은, 결국 따님을 외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것은 어르신의 은혜를 돈으로 환산하는 짓이 아닌가.'

    그날 밤, 김 선비는 사랑채의 등불 앞에 홀로 앉아 밤이 깊도록 고뇌했습니다. 출세길과 신의, 그 두 갈래의 길 앞에서 그는 평생 가장 무거운 선택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 6: 한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

    새벽이 밝아 올 무렵, 김 선비는 마침내 한 가지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는 사랑채를 나서, 박 어르신의 따님이 머물고 계신 별채로 향했지요. 따님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단정히 앉아 있었습니다. 어제저녁의 행색과는 달리,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곱게 빗어 내린 모습이었지요. 비록 야위었지만, 그 단아한 자태에서 분명 박 어르신의 곧은 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김 선비는 마루에 앉아,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낭자, 이른 시각에 이렇게 찾아뵈어 송구합니다. 신이 한 가지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따님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지요.

    "나으리, 무엇이든 분부해 주시옵소서. 신은 어찌 되어도 좋사옵니다. 다만 어제 베풀어 주신 은혜만으로도, 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김 선비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낭자, 신이 어제 밤새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하였지요. 만약 낭자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신이 낭자를 신의 정실 아내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따님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큰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요.

    "나으리, 그것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신은 한낱 거지꼴로 이 댁을 찾아온 신세이옵니다. 게다가 들으니, 나으리께서는 정승 댁의 따님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 하옵니다. 어찌 신이 감히 나으리의 정실이 될 수 있겠나이까. 차라리 신을 어디 시골의 작은 절에라도 보내 주시옵소서. 신은 머리를 깎고 평생 아버지의 명복이나 빌며 살겠나이다."

    "낭자, 그런 말씀 마시오. 신이 어찌 어르신의 따님을 절에 보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어르신께서 살아 계셨다면 가장 슬퍼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이미 결심하였습니다. 정승 댁과의 혼담은 거절할 것이며, 옥당의 자리도 내려놓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신이 청하는 것은, 낭자께서 신의 정실로서 이 집을 지켜 주십사 하는 것뿐입니다."

    따님은 한참을 흐느끼며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지요.

    "나으리… 신은 그저 며칠 신세만 지고 떠나려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말씀까지 하시옵니까. 신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게다가 지금은 거지꼴이옵니다. 신이 어찌 옥당의 부인이 될 수 있겠나이까. 나으리의 앞길에 누가 될 뿐이옵니다."

    "낭자, 신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은 일찍이 어르신께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은 토지나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신의로만 갚을 수 있는 빚입니다. 신이 만약 출세를 위해 낭자를 외면한다면, 신은 평생 떳떳한 사람으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가 옥당에 앉아 임금께 학문을 논한들, 그것이 어찌 옳은 일이 되겠습니까. 차라리 신은 그 자리를 잃고, 어르신의 따님을 정실로 맞이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것이 신이 한 사람의 선비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김 선비의 그 말씀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따님은 그 말씀을 듣고는, 결국 그 자리에 엎드려 흐느꼈지요.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일생일대의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날, 김 선비는 즉시 정승 댁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정중한 말씀으로 혼담을 거절하는 편지였지요.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신은 어르신의 큰 은혜를 잊을 수 없으나, 한 가지 일로 인하여 이번 혼담은 받들 수 없게 되었사옵니다. 신은 일찍이 큰 신세를 진 어른의 따님을 정실로 맞이하기로 결심하였사옵니다. 그것은 신의 평생의 신의가 걸린 일이오니, 부디 통촉해 주시옵소서. 신의 무례를 용서하옵소서."

    이 편지가 정승 댁에 도착하자, 정승 어르신은 격노하셨다고 합니다. 정승 댁 따님과의 혼담을 거절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거늘, 그 거절의 사유가 한낱 시골 어른의 따님 때문이라니. 정승 어르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이지요.

    며칠 뒤, 김 선비에게 뜻밖의 통보가 내려왔습니다. 옥당의 자리에 천거되었던 것이 취소된다는 통보였지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간원 정언 자리도 어떤 사소한 이유를 들어, 외직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한양에서 먼 강원도의 작은 고을의 현감 자리였지요. 그것은 사실상 좌천이었습니다.

    김 선비는 그 통보를 받고도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지요. 그는 즉시 박 어르신의 따님과의 혼례를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비록 친척 한 사람 변변히 오지 않은 쓸쓸한 혼례였지만, 두 사람의 표정만은 더없이 평온했지요.

    혼례를 마친 그날 밤, 새색시가 된 따님이 김 선비에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으리, 신 때문에 옥당의 자리를 잃으시고, 또 외직으로 좌천까지 되시게 되어… 신의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옵니다. 신이 어찌 이 죄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김 선비는 새색시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미소를 지었지요.

    "부인, 그런 말씀 마시오. 옥당의 자리를 잃은 것은 신의 출세길이 막힌 것이지만, 부인을 얻은 것은 신의 평생을 얻은 것이오. 신은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은 셈입니다. 강원도 작은 고을이면 어떻습니까. 부인과 함께라면, 그곳이 신에게는 한양 도성보다 더 귀한 곳이 될 것입니다."

    그 말씀에 새색시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에는, 처음으로 평생의 안식처를 찾은 한 여인의 깊은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지요. 며칠 뒤, 두 사람은 단출한 짐을 꾸려 강원도 그 작은 고을로 떠났습니다. 그들의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그때는 누구도 알지 못했지요.

    ※ 7: 하늘이 내린 또 한 번의 갈림길

    강원도의 그 작은 고을은, 한양에서 천 리도 더 떨어진 산속의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인구라야 몇백 호밖에 되지 않았고, 관아라고 해야 다 쓰러져 가는 작은 기와집 한 채에 불과했지요. 김 선비, 아니 이제는 김 현감이 부임한 그날, 마을 사람들은 새 현감을 보고 모두 의아해했습니다. 한양에서 옥당으로 천거되었던 젊은 관리가, 어찌 이런 산골 고을로 좌천되어 왔단 말인가.

    그러나 김 현감은 그런 시선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부임 첫날부터 마을 곳곳을 직접 돌아보았지요.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고,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일일이 물었습니다. 새 부인은 관아의 안채를 정성껏 정리하고, 남편의 일을 묵묵히 뒷바라지하셨지요. 가난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이었기에, 작은 살림에도 결코 불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부임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지요. 김 현감은 그 고을에 큰 문제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산적의 문제였습니다. 그 고을에서 약간 떨어진 깊은 산속에, 수십 명의 산적 떼가 자리 잡고 있어, 매년 가을 추수 때만 되면 마을로 내려와 곡식을 약탈해 갔던 것이지요. 백성들은 그 두려움에 떨며, 매년 추수의 절반을 산적들에게 바쳐 왔습니다.

    김 현감은 이 문제를 듣고 격분하였습니다. 즉시 그는 인근 고을의 현감들과 연락을 취하고, 약간의 군졸을 모았지요. 그러나 군졸이래야 채 서른 명도 되지 않는 빈약한 병력이었습니다. 산적들은 백 명이 넘는다는 소문이었지요. 부하 관리들은 모두 김 현감을 만류했습니다.

    "현감 어르신, 이는 무모한 일이옵니다. 차라리 본관 감영에 보고하여 정식으로 군대를 청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군졸 수십으로 어찌 그 산적들을 토벌할 수 있겠습니까."

    김 현감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감영에 청한들, 그 군대가 언제 오겠는가. 그동안에도 백성들은 매일같이 산적의 그림자에 떨고 있다. 군졸이 적다 한들,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다. 산적들은 도적의 무리일 뿐이다. 내 직접 산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설득해 보겠다."

    "어르신, 그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일이옵니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자들입니다. 어찌 직접 들어가시려 하옵니까!"

    그러나 김 현감의 결심은 이미 굳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새 부인 앞에 앉아 자신의 결심을 알렸지요. 부인은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으리, 신은 나으리를 막을 수 없음을 아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나이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옵소서. 살아만 돌아오시면, 신은 그것으로 족하옵니다."

    "부인, 신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오. 부인을 두고 어찌 함부로 죽을 수 있겠소."

    다음 날 아침, 김 현감은 단지 종복 한 사람만을 데리고, 산적들이 있는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무기도 들지 않고, 그저 평소 입던 단정한 도포 차림이었지요. 산적들이 김 현감을 발견하자마자 우르르 몰려나와 칼을 겨누었습니다.

    "네 이놈! 어디서 굴러먹은 자가 감히 우리 산채로 들어오느냐!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돌아가거라!"

    김 현감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지요.

    "나는 이 고을의 새 현감이다. 너희 두목을 만나러 왔다. 안내하라."

    산적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무기도 없이 홀로 산채에 들어온 현감을, 처음 보았던 것이지요. 그들은 김 현감을 두목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두목은 거대한 체구의 험상궂은 사내였지요.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사내의 얼굴 한구석에 어딘가 슬픔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김 현감은 그 두목을 마주 앉아,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요.

    "두목, 내 한 가지 묻겠다. 그대는 본래 산적이었는가? 아니면 무슨 사연이 있어 이 산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두목은 잠시 흠칫하더니, 거친 목소리로 답했지요.

    "네놈이 무엇을 알고 그런 것을 묻느냐."

    "나는 그저 알고 싶을 뿐이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에는, 반드시 그만한 사연이 있는 법이거늘."

    두목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이러했지요. 그 두목은 본래 인근 고을의 한 양민이었으나, 십여 년 전 어느 흉년에 굶주린 가족을 살리고자 부잣집 곡식을 훔쳤다가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가족들은 모두 굶어 죽었고, 자신은 옥에서 도망쳐 나와 산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지요. 그 후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이 산채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현감은 그 사연을 다 듣고는,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었지요.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두목, 내 한 가지 약속하겠소. 만약 그대들이 산을 내려와 다시 양민의 신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직접 본관 감영에 청하여 그대들의 죄를 사하게 해 드리겠소. 또한 내가 가진 약간의 봉록이라도 털어, 그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작은 토지를 마련해 드리겠소. 어떠시오?"

    두목과 산적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한 고을의 현감이 자기 봉록을 털어 산적들의 갱생을 돕겠다니, 이런 일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었지요. 두목은 한참을 김 현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눈에서 진심을 보았지요. 마침내 두목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현감 어르신, 우리는 이미 사람의 길을 벗어난 자들이옵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리도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돌아가고자 하옵니다. 어르신을 따르겠나이다."

    그날, 김 현감은 단신으로 산속으로 들어가, 백 명이 넘는 산적들을 모두 산 아래로 내려오게 만들었습니다. 한양에서 군대를 청해도 토벌하지 못했을 산적들을, 칼 한 자루 빼지 않고 신의 하나로 데리고 내려온 것이었지요. 이 일이 인근 고을은 물론, 강원도 감영을 거쳐 마침내 한양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8: 신의 하나로 얻은 세 가지 복

    김 현감의 그 놀라운 일이 한양 조정에 알려지자, 임금께서도 크게 감탄하셨다고 합니다. 그 무렵 조정에서는 마침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을 찾고 있던 때였지요. 임금께서는 직접 김 현감의 행적을 조사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조사 결과가 올라왔을 때, 임금께서는 더욱 감동하셨지요.

    조사관이 보고한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김 현감은 부임한 지 일 년 만에 그 고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었지요. 산적을 갱생시키고, 백성들의 묵은 송사를 모두 공정하게 판결하였으며, 자신의 봉록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을 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부인되는 분도 마찬가지로, 관아의 안채에서 매일같이 마을 부녀자들에게 바느질과 글을 가르쳐, 마을의 풍속을 한결 어질게 만드셨다는 것이었지요.

    조사관은 마지막에 한 가지 일을 덧붙여 보고하였습니다. 그것은 김 현감의 부인이 되신 분의 사연이었지요. 일찍이 한 가난한 선비가 어느 시골 어른의 도움으로 한양에 다시 올라가 과거에 합격하였다는 것. 그러나 그 어른이 돌아가신 뒤, 외동따님이 의지할 곳을 잃고 거지꼴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선비가 정승 댁과의 혼담과 옥당 자리까지 모두 포기하고, 그 따님을 정실로 맞이하였다는 것. 그 일로 인하여 강원도 작은 고을로 좌천되었다는 것까지, 모두 상세하게 보고된 것이었지요.

    이 보고를 받으신 임금께서는 한참을 말씀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지요.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선비로다. 출세길과 신의 사이에서 신의를 택한 자가 어찌 흔하랴.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짐의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로다. 즉시 김 아무개를 한양으로 부르라. 옥당의 자리를 다시 내릴 것이로다."

    이 어명이 강원도 그 작은 고을에 전해진 날, 김 현감은 마침 백성들과 함께 마을 어귀의 다리를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어명을 받든 신하가 도착하여 임금의 뜻을 전하자, 김 현감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흐느꼈지요. 새 부인도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김 현감은 한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일을 먼저 마무리해야 한다고 청하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산적들에게 약속한 토지를 마련해 주고, 그들이 다시 양민으로서 자리 잡을 때까지 곁을 지키겠다는 것이었지요. 임금께서는 이 청을 들으시고는, 더욱 크게 감탄하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김 현감이 그 일을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임금께서 친히 내려 주셨지요.

    그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한양으로 돌아온 김 현감, 아니 이제는 다시 김 옥당이 된 그를, 한양 도성의 백성들은 큰 환호로 맞이했습니다. 일찍이 정승 댁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가난한 은인의 따님을 외면하지 않은 그 신의의 이야기가 도성 안에 자자하게 퍼져 있었거든요. 한때 그를 비웃던 동료 관리들도, 이제는 그를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김 옥당과의 혼담을 깬 그 정승 어르신께서도, 어느 날 직접 김 옥당의 집을 찾아오셨다고 하지요. 그러고는 정중하게 사과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김 옥당, 내 그동안 자네를 오해하였소. 자네야말로 진정한 선비요. 내 딸이 자네의 부인이 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내 딸의 복이 부족했던 탓이지, 자네의 흠은 결코 아니었소. 부디 지난 일을 마음에 두지 마시오."

    김 옥당은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받아들였지요. 그 후로 두 사람은 오히려 가까운 동료가 되어, 조정의 일에 함께 힘을 모으셨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김 옥당은 마침내 정이품 판서의 자리에까지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높은 자리에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으셨지요.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박 어르신의 산소를 찾아 정성껏 제사를 올리셨고, 매년 봄이면 강원도 그 작은 고을을 찾아 옛 백성들과 산적이었던 이들의 안부를 살피셨습니다.

    그분의 부인이 되신 박씨 따님은, 평생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내신 적이 없으셨다고 하지요. 그저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며, 가난한 이웃을 보살피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우셨습니다. 슬하에 두 아드님을 두셨는데, 두 분 모두 훗날 큰 학자가 되어, 가문의 이름을 더욱 빛내셨다고 하지요.

    훗날 김 판서께서 일흔의 나이로 벼슬에서 물러나실 때, 임금께서 친히 그분께 한 가지를 물으셨다고 합니다.

    "경의 평생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어라 하시겠소?"

    김 판서께서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차분하게 답하셨지요.

    "전하, 신의 평생은 그저 한 가지뿐이옵니다. 신이 일찍이 비 오는 산 고개에서 한 어른의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그 어른의 따님을 외면하지 않은 것, 그 한 가지뿐이옵니다. 그 한 가지로 신은 옥당을 얻었고, 평생의 반려를 얻었으며, 또한 임금의 은혜까지 입게 되었사옵니다. 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다만 사람이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킨 것뿐이옵니다."

    임금께서는 그 말씀을 들으시고는,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경들도 들으셨소? 신의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출세길이 막힐 줄 알면서도 은인의 따님을 거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비의 도리가 아니겠소."

    이것이 바로 『기문총화』의 한 페이지에 적혀 있던, 가난한 선비 김 아무개의 사연이었습니다. 한 번의 신의가 어떻게 세 가지 복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그 신의가 어떻게 한 가문의 영광으로까지 이어졌는지. 옛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말이지요. 그 한 가지 도리가, 결국 하늘마저 감동시킨다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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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만복야담」, 은인의 따님을 외면하지 않은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출세길과 신의 사이에서 신의를 택한 그 한 번의 결심이, 결국 평생의 복으로 돌아왔다는 이 옛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으신가요.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야담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만복야담」이었습니다.

    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문,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photorealistic 16:9 scene set in Joseon-era Korea at twilight. In the foreground, a young scholar in his late twenties wearing a simple white hanbok and a black horsehair hat (gat), his face thoughtful and resolute, stands at the threshold of a humble thatched-roof country house. Beside him, a young woman in her early twenties in a worn pale blue hanbok kneels with her head bowed, holding a small bundle wrapped in faded cloth, tears glistening on her cheek. Between them on the wooden veranda, a single oil lamp glows warmly, casting golden light on their faces against the deep blue dusk sky. In the background, distant misty mountains and a winding dirt path lined with autumn maple trees. Soft cinematic lighting with deep blues, warm ambers, and earth tones. Ultra-detailed fabric textures, realistic skin, shallow depth of field, melancholic yet hopeful atmosphere. No text, no logo, no watermark. Shot on a medium-format camera, 85mm lens, f/1.8, hyperrealistic, museum-quality Korean historical drama st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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