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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비가 조선을 돈으로 흔들다? 숨겨진 ‘최대 부자’의 충격 실화

    장사와 무역으로 양반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은 천민 출신 거상들. 돈은 있지만 신분은 살 수 없었던 시대, 그들이 선택한 놀라운 우회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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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양반은 돈이 없어도 양반이었고, 노비는 돈이 있어도 노비였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종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이름 석 자 대신 주인집 성을 빌려 써야 했던 남자. 그가 조선 팔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쌀이 아닌 소금으로, 땅이 아닌 바닷길로, 붓이 아닌 주판으로 세상을 뒤집었습니다. 양반들은 비웃었습니다. 천한 것이 돈을 만지면 더 천해진다고. 하지만 그 천한 사내의 돈이 없으면 양반의 제삿밥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돈은 넘쳐났지만 신분은 살 수 없었던 시대. 그들은 어떻게 양반의 벽을 넘었을까요. 오늘 만복야담에서는 조선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적 같은 반전의 역사입니다.

    ※ 1: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사내 복만이 주인집 곳간에서 장사의 원리를 깨우친다

    영조 치세 말년, 충청도 홍주 고을의 한 양반 대갓집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어미는 그 집의 비, 곧 여종이었다. 아비는 같은 집의 남종. 종과 종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종이었다. 조선의 법은 냉혹했다. 어미가 종이면 자식도 종이라 했다. 이것을 종모법이라 불렀는데, 이 법 한 줄이 수많은 아이들의 운명을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지어 버렸다.

    아이의 이름은 복만이라 지어졌다. 복이 가득하라는 뜻이었지만, 종의 자식에게 복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단어인지 아비도 어미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름에라도 담아 두면, 하늘이 한 줌쯤 보태주지 않겠느냐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복만이가 자란 곳은 양반 유 씨 대감 댁의 행랑채였다. 행랑채란 것이 별것 아니었다. 흙벽에 볏짚 지붕, 바람이 불면 벽 틈으로 칼바람이 들이닥치는 좁은 방이었다. 겨울이면 어미가 복만이를 꼭 껴안고 잤다. 이불이 얇아 체온으로 버텨야 했으니까. 그래도 어미의 품은 따뜻했다. 복만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가장 따뜻한 것은 아궁이의 불이 아니라 어미의 가슴팍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일을 했다. 마당을 쓸고, 신발을 정리하고, 대감 댁 도련님이 버린 먹다 남은 밥을 치우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곳간 열쇠를 맡았다. 곳간지기 종 삼돌이가 병이 나서 누웠는데, 다른 종들은 글을 모르니 물건 출납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복만이는 달랐다.

    대감 댁 도련님이 글공부를 할 때, 복만이는 마루 아래 쪼그려 앉아 귀를 기울이곤 했다. 천자문 읽는 소리가 들리면 입속으로 따라 읽었다. 도련님이 버린 연습 종이를 주워다가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씨를 따라 썼다. 그렇게 혼자서 글을 깨우친 것이었다.

    "이놈, 네가 글을 아느냐?"

    대감이 곳간 장부를 정리한 복만이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예, 대감마님. 조금 압니다."

    "허, 종놈이 글을 알아. 기특하기도 하고, 건방지기도 하구나."

    대감의 말투에 칭찬과 경계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종이 글을 안다는 것은 양반 입장에서 불편한 일이었다. 글은 양반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곳간 관리에 글 아는 종이 필요하기는 했으므로, 대감은 복만이를 곳간지기로 썼다.

    그것이 복만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곳간. 그곳은 복만이에게 학교였다. 쌀이 몇 섬 들어오고 몇 섬 나가는지, 베가 몇 필 쌓이고 몇 필 풀리는지, 소금이 언제 들어와서 언제 바닥나는지. 장부를 쓰면서 물건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에 쌀값이 내리고, 봄에 쌀값이 오른다. 겨울에 소금이 귀해지고, 여름에 소금이 넘친다. 물건이란 것은 많으면 싸지고, 적으면 비싸진다.'

    열 살배기 종의 아들이 깨달은 것은 장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 곧 수요와 공급이었다.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몸으로 터득한 것이기에 더 단단했다.

    복만이가 열두 살 되던 해, 대감 댁에 큰 잔치가 벌어졌다. 대감의 회갑연이었다. 온 고을 양반들이 모여들었고, 소와 돼지가 잡히고, 떡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복만이는 잔치 뒤편에서 그릇을 나르며 양반들의 대화를 들었다.

    "요즘 한양 시전 상인들이 큰돈을 번다더군. 인삼 장사가 대단하다 하네."

    "장사치가 아무리 돈을 벌어봐야 천한 것은 변하지 않지.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이야."

    양반들이 웃었다. 복만이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이라. 그렇다면 종은 종이란 말이냐. 평생 이 행랑채에서 대감 댁 그릇이나 나르다가 죽어야 한단 말이냐.'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지만, 복만이는 그것을 삼켰다. 분노를 드러내면 매를 맞을 뿐이었다. 대신 그 분노를 가슴 깊이 묻어 두었다. 언젠가 꺼내 쓸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그날 밤, 잔치가 끝나고 모두 잠든 뒤, 복만이는 행랑채 마당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쏟아질 듯 많았다. 어미가 옆에 와 앉았다.

    "복만아,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어머니, 저 별들은 양반 별이옵니까, 종놈 별이옵니까."

    "별에 무슨 신분이 있겠느냐. 별은 그냥 별이지."

    "그렇지요. 별은 그냥 별이지요. 사람도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미가 아무 말 없이 복만이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그 거칠고 갈라진 손이 복만이의 머리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복만이의 눈빛은 달랐다. 열두 살 종의 아들 눈에, 체념이 아닌 결심이 서려 있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곳간에서 배운 것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물건의 흐름, 값의 오르내림, 사람들의 욕심. 그것들이 훗날 어떤 힘이 될 것인지, 아직은 몰랐다. 다만 이 행랑채가 자신의 끝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 2: 시장 바닥에서 배운 물건의 흐름과 사람의 심리

    복만이가 열여섯 되던 해,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대감 댁에서 해마다 소금을 사들이는 일이 있었는데, 그해에는 소금값이 유난히 올랐다. 서해안 염전에 장마가 들이닥쳐 소금 생산이 반 토막 난 것이었다. 대감은 투덜거리며 복만이에게 명했다.

    "서산 포구까지 가서 소금을 사 와라. 은자 다섯 냥을 줄 터이니, 열 섬을 사 오너라."

    "대감마님, 은자 다섯 냥으로는 올해 열 섬을 사기 어렵사옵니다. 작년 시세의 갑절은 되옵니다."

    "그러면 다섯 섬이라도 사 와. 그리고 남는 돈은 고스란히 가져오너라."

    복만이는 은자 다섯 냥을 품에 안고 서산 포구로 향했다. 생전 처음으로 대감 댁 담장 밖을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홍주에서 서산까지 사십 리 길. 걸으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길을 걸으며 복만이의 눈이 바빠졌다. 마을마다 장터가 서 있었고, 장터마다 물건이 오갔다. 쌀을 파는 사람, 옷감을 파는 사람, 약초를 파는 사람. 그 사이사이에 흥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복만이는 걸음을 멈추고 장터를 구경했다. 곳간 안에서 장부로만 보던 물건의 흐름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는 쌀 한 말에 닷 푼인데, 홍주 장터에서는 여섯 푼이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값이 다르구나.'

    서산 포구에 도착했을 때, 바다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 보는 짠내였다. 갯벌 위로 석양이 붉게 번지고, 소금 가마니가 산처럼 쌓인 염전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포구에는 소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소금 한 섬에 은자 하나요! 한 푼도 깎지 못하오!"

    소금 상인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은자 하나에 한 섬이면, 다섯 냥으로 다섯 섬을 겨우 살 수 있었다. 대감의 명대로라면 그렇게 사서 돌아가면 됐다.

    하지만 복만이는 바로 사지 않았다.

    이틀을 포구에 머물며 소금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아침에 염전에서 나온 소금이 창고로 옮겨지고, 오후에 상인들이 와서 사 가고, 저녁에 다시 배로 실려 다른 포구로 떠나는 과정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특히 산골 마을에서는 소금값이 포구의 세 배까지 뛰었다. 운반이 어렵고 중간에 거간꾼이 이문을 붙이기 때문이었다. 소금이 포구를 떠나 산골까지 가는 동안, 값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었다.

    '포구에서 사서 산골로 가져가면, 같은 소금이 세 배의 값을 한다.'

    복만이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딸깍 맞았다.

    은자 다섯 냥으로 소금 다섯 섬을 샀다. 그중 두 섬만 대감 댁으로 보냈다.

    "대감마님, 소금값이 너무 올라 두 섬밖에 구하지 못했사옵니다. 은자도 모두 썼사옵니다."

    거짓말이었다. 남은 세 섬과 은자를 숨겨 두었다. 죽을 죄를 지은 것이었다. 종이 주인의 돈으로 장사를 벌이다니. 들키면 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복만이는 이를 악물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행랑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은 세 섬의 소금을 지게에 지고 내륙으로 향했다. 밤에 움직였다. 대감 댁에서 보낸 줄 알면 안 되니까. 사흘 밤을 걸어 충청도 내포 깊숙한 산골 마을에 닿았다.

    "소금 사시오! 귀한 서산 천일염이오!"

    산골 마을에서 소금은 금이나 다름없었다. 김장철이 코앞이었고, 소금 없이는 겨울을 날 수 없었다. 아낙네들이 달려와 소금을 샀다. 한 섬에 은자 세 냥을 받았다. 세 섬을 모두 팔자 은자 아홉 냥이 손에 쥐어졌다.

    처음 손에 쥔 은자 아홉 냥. 복만이의 손이 떨렸다. 평생 만져 본 적 없는 돈이었다. 대감 댁에서 종이 한 해 일하고 받는 것이 쌀 서 말과 삼베 한 필뿐인 세상에서, 은자 아홉 냥은 꿈같은 돈이었다.

    하지만 떨리는 것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두려움도 있었다. 이 돈이 발각되면 끝이었다.

    '숨겨야 한다. 이 돈을 불려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돈으로 내 삶을 살 것이다.'

    복만이는 은자를 행랑채 마루 밑에 묻었다. 그리고 다음 소금 심부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포구의 물가, 내륙의 물가, 계절별 소금 수요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장부 쓰는 법을 곳간에서 배웠듯이, 장사하는 법을 시장 바닥에서 배워 나갔다.

    두 번째 소금 장사에서 은자 열두 냥을 벌었다. 세 번째에는 스무 냥. 복만이는 소금뿐 아니라 건어물, 미역, 젓갈로 품목을 넓혀 갔다. 서산 포구에서 사서 내륙 산골에 파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장사였다.

    열여덟이 되자 복만이의 숨겨 둔 재산은 은자 백 냥을 넘었다. 양반가 일 년 살림이 은자 오십 냥이면 넉넉하다던 시절이었으니, 열여덟 살 종의 아들이 양반 이 년 치 살림을 마루 밑에 묻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만이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금으로 시작했지만, 소금으로는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더 큰 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판은 바다 건너에 있었다.

    ※ 3: 중국 상인과의 거래에서 조선 인삼의 가치를 발견한다

    복만이가 스물한 살 되던 해, 큰 결심을 했다. 대감 댁을 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감 댁에 있으면서 바깥 장사를 본격적으로 벌이겠다는 결심이었다. 종의 몸으로 대놓고 장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썼다. 얼굴마담, 오늘날로 치면 바지사장을 세운 것이다.

    서산 포구에서 소금 장사를 하며 알게 된 사내가 하나 있었다. 최덕수라는 이름의 상민이었다. 양반은 아니지만 천민도 아닌, 자유로운 몸이되 가진 것은 없는 사내였다. 입이 무겁고 의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복만이의 장사 머리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덕수 형, 내가 밑천을 댈 터이니, 형 이름으로 장사를 벌이자. 이문은 삼칠로 나누지. 내가 칠, 형이 삼."

    "네가 칠이라고? 밑천도 네가 대고, 머리도 네가 쓰는데 왜 내가 삼이나 받아야 하냐. 나는 이 할이면 된다."

    "아니, 삼을 가져가시오. 형은 얼굴을 내미는 것이니, 위험을 지는 값이오."

    복만이는 사람을 다루는 법도 곳간에서 배웠다. 대감이 종들에게 인색하면 종들이 몰래 곡식을 빼돌리고, 후하게 대하면 충성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사려면 이익을 나눠야 했다. 그것도 상대가 기대하는 것보다 조금 더.

    최덕수를 앞세우고, 복만이의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소금과 건어물을 내륙으로 올리고, 내륙의 곡식과 약초를 포구로 내리는 중간 무역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은자가 꾸준히 불어났지만, 복만이의 눈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중국이었다.

    서산 포구에는 간혹 중국 상선이 드나들었다.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었지만, 지방 관아가 눈을 감아주는 밀무역이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복만이는 포구의 객주집에서 중국 상인들을 관찰했다. 그들이 무엇을 사 가고, 무엇을 가져오는지를.

    중국 상인들이 가장 탐내는 조선의 물건은 인삼이었다. 조선 인삼은 중국에서 금값에 팔렸다. 하지만 인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성 상인들이 인삼 거래를 독점하고 있었고, 그 벽은 단단했다.

    복만이는 다른 길을 찾았다. 인삼 대신 조선의 특산물, 한지와 붓, 먹을 모았다. 조선의 한지는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다. 질기고 매끄러워 중국 문인들이 탐을 냈다. 붓과 먹도 마찬가지였다. 인삼만큼 값이 높지는 않았지만, 구하기가 훨씬 쉬웠고 경쟁자도 적었다.

    "덕수 형, 전주에 가서 한지 백 권을 사 오시오. 그리고 해남에서 붓 오십 자루, 먹 백 장을 구해 오시오."

    "한지와 붓을 어디에 쓸 셈이냐?"

    "바다 건너에 파는 거지."

    최덕수의 눈이 커졌다. 밀무역이라면 발각될 경우 목이 달아나는 일이었다.

    "걱정 마시오. 관아에 뒷돈을 대면 되오. 서산 포구 관리 김 주부가 돈 밝히는 것은 형도 알지 않소."

    복만이는 이미 관아의 구조도 파악하고 있었다. 지방 관리들 중 상당수가 녹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상인들에게 뒷돈을 받고 눈을 감아주었다. 부패한 구조였지만, 그 부패를 역으로 이용할 줄 아는 것이 장사꾼의 능력이었다.

    첫 번째 바다 장사가 성사되었다. 한지 백 권, 붓 오십 자루, 먹 백 장을 중국 상선에 실어 보냈다. 투자한 돈은 은자 오십 냥. 석 달 뒤 중국 상선이 돌아왔을 때, 대금으로 받은 것은 은자 이백 냥과 중국 비단 열 필이었다. 비단을 한양 시전에 넘기자 은자 백 냥이 더 생겼다. 은자 오십 냥이 삼백 냥으로 불어난 것이다. 여섯 배의 이문이었다.

    복만이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흥분을 다스렸다. 곳간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곡식이 많이 들어왔을 때 들뜨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들뜨면 주인이 살피고, 살피면 꼬투리가 잡힌다.

    두 번째, 세 번째 교역을 거치며 복만이는 품목을 넓혔다. 한지와 문방구에서 시작해, 조선 약재, 표고버섯, 전복까지. 중국에서는 비단, 차, 도자기, 약재를 들여왔다.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서산 포구 하나로는 부족해졌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 복만이는 태안 포구와 보령 포구까지 거점을 넓혔다. 세 개의 포구에서 동시에 교역이 이루어졌고, 각 포구마다 최덕수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한 명씩 배치했다. 일종의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은자가 천 냥을 넘었다. 이천 냥을 넘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오천 냥을 넘겼다. 충청도에서 이만한 재산을 가진 양반도 드물었다. 하지만 복만이는 여전히 유 대감 댁의 종이었다. 행랑채에서 자고, 곳간 장부를 쓰고, 대감의 부름에 달려가 절을 올리는 신세였다.

    은자 오천 냥을 가진 종. 이 기막힌 모순이 복만이의 가슴을 짓눌렀다.

    '돈은 모았다. 하지만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대감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진짜 벽은 돈이 아니라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 벽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정면으로는.

    ※ 4: 관아에서 모욕을 당하고, 양반 사회의 벽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서른두 살. 복만이의 재산은 은자 만 냥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충청도 일대 포구 무역의 상당 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갔고, 한양의 시전 상인들까지 그의 물건을 찾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최덕수와 다른 바지사장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복만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림자 속에 숨어도, 돈의 흐름에는 냄새가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장사를 잘하는 최덕수 뒤에 누군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이 홍주 관아의 귀에 닿았다.

    어느 날, 관아에서 사람이 왔다.

    "유 대감 댁 종 복만이를 데려오라는 사또의 명이시다."

    복만이는 마음을 다잡으며 관아로 향했다. 홍주 목사 박 사또는 관아 동헌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그 옆에 홍주 고을의 이름 있는 양반 대여섯 명이 배석해 있었다. 복만이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네놈이 유 대감 댁 종 복만이냐."

    "예, 사또."

    복만이는 동헌 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돌바닥이 무릎뼈를 파고들었다.

    "들리는 소문이 흉흉하다. 네놈이 서산 포구에서 몰래 장사를 벌여 큰돈을 만졌다며?"

    "소인은 대감마님의 심부름으로 소금을 사러 다닌 것뿐이옵니다."

    "거짓말을 해? 최덕수라는 놈이 네 돈으로 장사를 한다는 정보가 있다. 종의 몸으로 감히 장사를 벌이다니, 이것은 주인을 기만한 죄에 해당한다."

    박 사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배석한 양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복만이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사또, 소인이 만약 장사를 했다 한들, 그것이 누구에게 해를 끼쳤사옵니까. 소인은 포구에서 물건을 사서 내륙에 팔았을 뿐이옵니다. 관가의 세금도 빠뜨리지 않았사옵니다."

    "이놈이 말대꾸를 해!"

    곤장 열 대가 떨어졌다. 엉덩이가 터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복만이는 비명을 삼켰다. 이를 악물고 견뎠다. 열 대가 끝난 뒤에도 의연히 무릎 꿇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아픈 것은 곤장이 아니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이었다.

    배석한 양반 하나가 부채를 부치며 한마디 던졌다.

    "종놈이 돈을 만지면 기강이 무너지는 법이지.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하나, 관아에 끌려와 곤장 맞는 신세인 것을."

    웃음이 터졌다. 양반들이 일제히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복만이의 귓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스물다섯 해 전 대감 댁 잔치에서 들었던 그 웃음과 똑같은 웃음이었다. 양반은 양반이고 상놈은 상놈이라던 그 웃음.

    '이것이 이 나라의 법이란 말이냐. 돈이 있어도, 능력이 있어도, 태어난 것이 종이면 영원히 종이란 말이냐.'

    복만이는 돌바닥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서도, 주먹을 꽉 쥐었다. 곤장의 아픔은 사흘이면 가실 것이다. 하지만 이 치욕의 기억은 뼈에 새겨져 평생 갈 것이다.

    관아에서 풀려난 뒤, 복만이는 사흘 동안 행랑채에 누워 상처를 달래며 생각에 잠겼다. 천장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정면 돌파는 안 된다. 종의 몸으로 아무리 돈을 벌어도, 양반의 벽 앞에서는 곤장을 맞을 뿐이다. 돈으로 신분을 살 수 있는 공명첩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나라에서 재정이 궁할 때 돈을 받고 양반 신분을 파는 제도였다. 하지만 공명첩은 아무 때나 나오지 않았고, 나온다 해도 천민이 산다는 것은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었다.

    '정면이 안 되면 돌아가야 한다. 벽을 넘을 수 없으면, 벽을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복만이는 관아에서 맞은 곤장 자국이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양반의 벽을 정면으로 부수는 것이 아니라, 양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 돈으로 신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관계를 사는 전략이었다.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홍주 고을에 윤 진사라는 양반이 있었다. 이름은 윤학규. 명문가 출신이되 아버지 대에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가세가 기울어, 양반의 체통은 유지하되 살림은 쪼들리는 형편이었다. 빚이 쌓여 논밭을 하나둘 팔아 치우는 지경이었고, 급기야 사랑채 기와까지 빚쟁이에게 넘기겠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윤 진사. 바로 이 사람이다.'

    몰락 양반. 이름은 있되 돈이 없는 사람. 복만이에게는 돈은 있되 이름이 없었다. 이 둘이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줄 수 있었다. 퍼즐의 두 조각이 맞물리듯.

    복만이는 곤장 자국 위에 약을 바르며 중얼거렸다.

    "기다려라. 양반의 벽이고 뭐고, 반드시 넘어가겠다. 다만 부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물은 바위를 부수지 않고 돌아서 흐르지 않느냐. 나도 그리 하겠다."

    어미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복만아, 그만 장사 같은 것은 접어라. 네가 맞는 꼴을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진다."

    "어머니, 접을 수 없사옵니다. 접으면 여기서 끝이옵니다. 어머니도, 저도, 평생 종으로 사는 것이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옵소서. 반드시 어머니를 이 행랑채에서 꺼내 드리겠사옵니다."

    어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복만이가 그 눈물을 보며 다시 이를 악물었다. 곤장의 아픔보다, 양반의 비웃음보다, 어미의 눈물이 가장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이야말로 복만이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었다.

    상처가 다 아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복만이는 윤 진사 댁을 찾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양반의 벽을 돌아가는 우회 전략, 그 첫 번째 수를 놓기 위해.

    ※ 5: 복만이 몰락 양반가에 거액을 투자해 후원자가 된다

    곤장 자국이 채 아물기도 전이었다. 복만이는 행랑채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최덕수를 불렀다. 최덕수는 복만이의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놈이 어딜 가겠다는 거냐."

    "덕수 형, 윤학규 진사 댁을 좀 알아봐 주시오. 빚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어디에 지고 있는지, 논밭은 얼마나 남았는지. 자세히."

    "윤 진사? 그 몰락 양반을 왜?"

    "형은 알아만 오시오.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소."

    최덕수가 사흘 만에 가져온 정보는 상세했다. 윤학규 진사, 나이 쉰둘. 할아버지 대까지 홍주에서 손꼽히는 명문이었으나, 아버지가 당쟁에 휘말려 관직을 잃은 뒤 급격히 기울었다. 현재 남은 논이 열다섯 마지기, 빚이 은자 삼백 냥. 아들 셋 중 장남은 한양에서 과거 준비 중이나 번번이 낙방, 차남은 술로 세월을 보내고, 삼남은 아직 어렸다. 체면 때문에 빚 독촉도 못 하게 막고 있지만, 채권자들이 슬슬 인내심을 잃고 있는 상황이었다.

    '삼백 냥이면 내게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윤 진사에게는 가문의 존망이 걸린 돈이다.'

    복만이의 전략은 이러했다. 윤 진사의 빚을 갚아주되, 은혜를 파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는 것이다. 양반에게 종이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은 체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최덕수의 이름으로 접근한다. 최덕수가 사업 동반자로서 윤 진사 댁에 자금을 대고, 윤 진사는 양반의 이름과 인맥을 빌려주는 구조. 겉으로 보면 양반과 상인의 동업이지만, 실제로는 복만이가 양반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첫 걸음이었다.

    문제는 접근 방법이었다. 양반에게 직접 돈을 들이밀면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양반의 자존심이란 것이 논밭을 다 팔아도 상놈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복만이는 더 정교한 방법을 썼다.

    윤 진사의 장남 윤태호가 한양에서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복만이는 한양에 있는 거래처 상인에게 부탁해, 윤태호에게 접근하게 했다. 마치 우연히 같은 주막에 묵게 된 것처럼. 밥을 사 주고, 과거 시험 자료를 구해 주고, 한양의 인맥을 소개해 주며 은근히 신뢰를 쌓았다.

    석 달이 지나자 윤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은 아버지의 빚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형편이오. 과거 준비를 더 하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방법이 없소."

    한양의 거래처 상인이 대답했다.

    "충청도 홍주에 최덕수라는 상인이 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오. 도움을 청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그렇게 해서 윤태호가 먼저 최덕수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양반이 상인을 찾아온 것이지, 상인이 양반에게 들이댄 것이 아니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중요했다. 양반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관계를 맺는 방법이었다.

    최덕수가 윤태호를 만났고, 윤태호를 통해 윤학규 진사를 소개받았다. 최덕수는 복만이가 시킨 대로, 겸손하되 당당하게 제안했다.

    "진사 어른, 소인이 장사로 약간의 밑천을 마련했사옵니다. 헌데 장사치의 한계가 있어, 양반 어른의 이름과 도움이 필요하옵니다. 진사 어른의 빚 삼백 냥은 소인이 갚겠사옵니다. 그 대신 앞으로 소인의 장사에 진사 어른의 이름을 빌려 주십시오."

    윤 진사는 오래 고민했다. 양반이 상인과 손잡는 것은 체면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빚쟁이가 문 앞에 서 있고, 아들은 한양에서 굶고 있었다. 체면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좋다. 다만 이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

    "물론이옵니다."

    이렇게 해서 복만이의 우회 전략 첫 번째 수가 놓여졌다. 윤 진사의 빚 삼백 냥이 하루아침에 갚아졌다. 채권자들이 놀랐고, 고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윤 진사는 "먼 친척의 도움"이라며 넘겼다.

    하지만 복만이의 진짜 목적은 빚을 갚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윤 진사의 인맥이었다. 몰락했다 해도 윤 씨 가문은 충청도 일대 양반 사회에 뿌리가 깊었다. 진사의 동문, 친척, 학맥으로 연결된 양반들이 수십 명이었다. 그 인맥을 통해 복만이는 양반 사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나갔다.

    윤 진사의 이름으로 관아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고, 양반들의 모임에 최덕수를 보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관가의 조달 물품을 따낼 때 윤 진사의 이름이 있으면 훨씬 수월했다. 장사의 규모가 한 단계 더 커졌다.

    일 년 뒤, 윤태호가 드디어 과거에 급제했다. 복만이가 대 준 자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 진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최덕수, 아니 그 뒤의 복만이에 대한 고마움은 뼈에 사무치는 것이 되었다.

    '한 사람을 살렸다. 한 가문을 살렸다. 이제 이 가문이 나를 살릴 차례다.'

    복만이는 행랑채 마루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윤 진사 하나로는 부족했다. 더 많은 양반, 더 높은 관직의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작은 했다. 물이 바위를 돌아 흐르듯, 한 줄기 물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물길은 곧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하늘이 복만이에게 거대한 기회를 던져줄 준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6: 대흉년이 닥치자 복만이 사재를 털어 백성을 구휼한다

    정조 십 년, 그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듯한 가뭄이 충청도를 덮쳤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우물이 말랐다. 벼 이삭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 것을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뭄 뒤에 찾아온 것은 장마였다. 늦장마가 한 달을 쏟아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곡식마저 쓸어갔다.

    대흉년이었다. 충청도 전역이 기근에 시달렸다. 쌀값이 열 배로 뛰었다. 양반가에서조차 죽을 쑤어 먹는 형편이었고, 상민과 천민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다 쓰러져 갔다. 관아의 구휼 창고는 턱없이 부족했고, 한양의 지원은 더디기만 했다.

    복만이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행랑채 밖으로 나가면 굶주린 사람들이 길에 널려 있었다. 어린아이가 어미 젖을 물고 우는데, 어미에게는 젖이 나오지 않았다. 노인이 풀뿌리를 씹다가 쓰러졌다.

    '나에게 돈이 있다. 쌀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종의 몸으로 구휼을 벌이면, 돈의 출처를 추궁당한다. 모든 것이 들통난다.'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하는 사이에도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복만이의 어미도 먹을 것이 부족해 얼굴이 해쓱해져 갔다.

    "어머니, 잡수시오."

    복만이가 몰래 구한 쌀죽을 내밀자, 어미가 고개를 저었다.

    "밖에 굶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나만 먹을 수 있겠느냐. 이것을 밖에 내다 줘라."

    어미의 한마디가 복만이의 가슴에 쐐기를 박았다. 종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미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어미가, 자기 입에 들어갈 죽 한 그릇을 남에게 주라 한다. 이것이 사람이었다. 신분이 높고 낮음이 아니라, 마음이 넓고 좁음이 사람의 값을 정하는 것이었다.

    복만이는 결심했다. 들통나면 죽을 수도 있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덕수 형, 전라도에서 쌀을 사 오시오. 은자 삼천 냥을 풀겠소."

    "삼천 냥이라고? 미쳤냐? 그러다 네 정체가 드러나면 어쩔 셈이냐."

    "드러나도 좋소.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돈을 움켜쥐고 있을 수는 없소."

    전라도는 그해 충청도보다 사정이 나았다. 장마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최덕수가 전라도 나주까지 내려가 쌀 오백 섬을 사 왔다. 동시에 서산 포구를 통해 중국에서 잡곡 이백 섬을 들여왔다. 합하여 칠백 섬. 그 쌀과 잡곡이 홍주 고을에 풀렸다.

    윤학규 진사의 이름으로 구휼이 이루어졌다. 윤 진사 댁 마당에 큰 가마솥이 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죽이 끓여졌다. 굶주린 백성들이 줄을 서서 죽 한 그릇씩을 받아 먹었다. 양반도, 상민도, 천민도 같은 줄에 서서 같은 죽을 먹었다.

    "윤 진사 어른이 사재를 털어 구휼을 하신다!"

    소문이 퍼졌다. 윤 진사의 이름이 충청도 전역에 알려졌다. 하지만 진짜 돈을 댄 것은 복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최덕수와 윤 진사, 단 두 사람뿐이었다.

    구휼은 석 달 동안 계속되었다. 은자 삼천 냥에 더해 천 냥을 더 풀었다. 총 사천 냥. 복만이 재산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최덕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러다 네 밑천이 바닥난다."

    "밑천은 다시 모으면 되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소."

    구휼 덕분에 홍주 고을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인근 고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 사실이 한양 조정에까지 보고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홍주 목사 박 사또가 복만이에게 곤장을 때리던 바로 그 사또가 윤 진사를 찾아온 것이다.

    "윤 진사, 이번 구휼의 공이 지대하오. 조정에 보고를 올려 포상을 청하겠소."

    윤 진사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공은 자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복만이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복만이가 미리 당부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사 어른, 공은 어른이 가지시오. 대신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소. 때가 되면 소인의 신분 문제를 도와주시오."

    윤 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은 양반이고 천민이고 다를 바 없는 사람의 도리였다.

    관아에서 곤장을 맞던 그 동헌 마당을, 이번에는 박 사또가 직접 나와 윤 진사를 맞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복만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돈을 낸 것은 나인데, 절을 받는 것은 양반이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이것으로 된다. 때가 올 것이다.'

    구휼이 끝난 뒤, 복만이에 대한 소문이 은밀히 퍼지기 시작했다. 윤 진사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양반들이 있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고,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의 돈으로 자기네도 죽을 얻어먹고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은인의 정체를 추궁하지 않는 법이었다.

    복만이의 재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충청도 양반 사회 전체에 퍼진 보이지 않는 빚, 곧 인정과 의리의 빚이었다. 이 빚을 회수할 때가 오면, 그때야말로 복만이의 진짜 승부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 7: 종문서가 불에 타는 순간 수십 년 눌려왔던 한이 풀어진다

    구휼이 있은 지 이태 뒤의 일이었다. 복만이 나이 서른다섯. 윤태호가 과거 급제 후 한양에서 승정원 주서의 자리에 올랐다. 높은 벼슬은 아니었으나, 왕의 곁에서 문서를 다루는 자리였으므로 귀가 밝고 입이 넓은 자리였다. 복만이의 우회 전략이 예상보다 높은 곳까지 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가을, 조정에서 특별한 교서가 내려왔다. 흉년 때 사재를 털어 구휼에 힘쓴 자에게 포상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윤학규 진사에게는 통정대부의 품계가 내려졌고, 구휼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자들에 대한 추가 포상도 이루어졌다.

    윤태호가 한양에서 밀서를 보내왔다.

    "이번 포상에 면천의 기회가 있사옵니다. 구휼에 기여한 천인의 신분을 풀어주는 전례가 있으니, 아버지를 통해 복만이의 면천을 청하시오."

    면천. 종의 신분에서 풀려나는 것. 복만이가 평생을 꿈꾸어 온 두 글자였다.

    윤 진사가 움직였다. 홍주 목사 박 사또에게 찾아가, 구휼 당시 실제로 쌀을 확보하고 운반한 사람이 유 대감 댁의 종 복만이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박 사또는 놀랐다. 그리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종놈이 그런 일을 했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사재를 사천 냥이나 털었사옵니다. 사또께서도 기억하시지 않사옵니까. 그해 홍주 백성이 다른 고을보다 덜 굶은 것을."

    박 사또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관할 고을에서 아사자가 적었다는 공로로 자신도 포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공이 실은 자기가 곤장을 때린 그 종놈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니. 양심이 찔리는 것은 둘째치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 진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윤 진사는 이제 통정대부의 품계를 가진 양반이었고, 아들은 한양 승정원에 있었다. 여기서 윤 진사의 얼굴을 깎으면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알겠소. 면천 상소를 올리겠소."

    상소가 올라갔다. 한양에서 윤태호가 뒷바라지를 했다. 보름 뒤, 교지가 내려왔다. 유 대감 댁의 종 복만이, 구휼의 공으로 면천을 허한다.

    그 교지를 받아든 날, 복만이는 대감 댁 마당에 서 있었다. 유 대감은 이미 늙어 있었다. 예전의 위엄은 간 데 없고, 구부정한 등에 흰 수염만 바람에 날리는 노인이었다. 대감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복만이의 장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은, 복만이가 곳간을 잘 관리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늙어서 간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감마님, 은혜를 잊지 않겠사옵니다."

    복만이가 마지막으로 절을 올렸다. 유 대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은 처음부터 종의 그릇이 아니었다. 가거라."

    그 한마디가 의외였다. 복만이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종문서를 가져왔다. 복만이의 이름이 적힌 낡은 종이 한 장. 태어나면서부터 그를 종으로 묶어 두었던 그 문서. 삼십오 년 동안 그의 발목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과 같은 것이었다.

    마당에 화로를 놓았다. 어미가 옆에 서 있었다. 어미의 면천도 함께 이루어졌다. 모자가 나란히 서서 종문서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태우겠사옵니다."

    "태워라."

    어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복만이가 종문서를 화로에 넣었다. 불이 종이의 모서리를 물었다. 가장자리부터 갈색으로 변하며 오그라들었다. 복만이라는 글자 위로 불꽃이 번져 갔다. 종이가 타며 재가 되어 올라갔다. 바람에 날린 재가 하늘로 흩어졌다.

    어미가 울었다. 소리 없이, 하지만 온몸을 떨며 울었다. 복만이도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몸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어머니, 이제 자유입니다. 어머니도, 저도,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복만아, 네 아비가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네 아비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복만이의 아비는 십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을 때까지 종이었던 아비. 그 아비가 살아서 이 장면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복만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이 끝없이 높고 푸르렀다. 종문서의 재가 그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버지, 보고 계십니까. 아들이 해냈사옵니다.'

    면천 후, 복만이는 정식으로 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박씨 성을 택했다. 박복만. 어미의 성을 따른 것이었다. 어미가 원래 박씨였으나, 종이 되면서 성을 쓸 수 없었다.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겠사옵니다. 이제부터 저는 박복만이옵니다."

    어미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갈라진, 평생 남의 집 일만 하느라 못이 박힌 손이었다. 복만이가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어릴 적 행랑채에서 어미의 품에 안겨 겨울을 나던 그때의 온기와 같았다.

    종문서는 불에 탔지만, 어미의 온기는 타지 않았다. 그것만은 세상 어떤 법도, 어떤 신분제도 태울 수 없는 것이었다.

    ※ 8: 조선 거상 열전의 의미를 되짚으며 마무리

    면천 이후의 박복만은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지 않았다. 최덕수의 이름 뒤에서 줄을 당기던 인형사가, 마침내 무대 위에 올라선 것이다.

    박복만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상단을 열었다. 이름을 복만상단이라 지었다. 서산, 태안, 보령 세 곳의 포구를 거점으로 해상 무역을 이어가면서, 내륙으로는 공주, 청주, 한양까지 유통망을 넓혔다. 취급 품목도 소금과 해산물에서 인삼, 한지, 약재, 직물, 도자기까지 확대했다. 특히 인삼 무역에서 큰 이익을 거두었다. 개성 상인들이 독점하던 인삼 거래에 충청도 루트를 새로 뚫은 것이 주효했다.

    사십이 되던 해, 박복만의 재산은 은자 삼만 냥을 넘어섰다. 충청도에서 이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은 양반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니, 양반 중에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불과 십 년 전까지 종이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되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하지만 박복만은 돈을 쌓아 두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돈의 쓰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면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미를 위한 집을 지은 것이었다. 홍주 읍내에 기와집을 지었다. 크지 않되 단정하고, 따뜻한 온돌방이 있고,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집이었다.

    "어머니, 이제 행랑채가 아니옵니다. 어머니의 집이옵니다."

    어미가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 마당에 들어오는 햇살이 참 따시다. 행랑채에서는 담이 높아서 햇살이 마당까지 내려오지 못했는데."

    그 한마디에 복만이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미가 평생 원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마당에 햇살이 드는 집. 그것뿐이었다.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는 데 삼십오 년이 걸린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은 서당을 세운 것이었다. 홍주에 복만서당을 열고, 천민 자제들도 글을 배울 수 있게 했다. 양반들이 코웃음 쳤다. 종놈의 자식이 글을 배워 뭐에 쓰겠느냐고. 하지만 복만이는 알고 있었다. 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자신이 곳간에서 몰래 글을 배우지 않았다면, 장부를 쓸 줄 몰랐다면, 물건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배움에는 신분이 없다. 누구든 배우고 싶은 자는 오너라."

    복만서당의 문 앞에 내건 이 한마디가, 조선 팔도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박복만은 또한 충청도 일대의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데 사재를 투자했다. 상인이 이동하기 편해야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니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백성들의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길이 좋아지면 장터가 서고, 장터가 서면 물건이 돌고, 물건이 돌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었다.

    쉰이 되던 해, 박복만은 오래간만에 유 대감 댁 자리를 찾았다. 유 대감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았으나 살림이 크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행랑채는 비어 있었다. 복만이가 태어나고 자란 그 좁은 방. 흙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볏짚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복만이는 그 행랑채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시작했다. 이 좁은 방에서 어미 품에 안겨 자던 아이가, 곳간에서 장부를 쓰던 여섯 살 아이가, 소금 한 줌으로 세상에 나섰던 열여섯 살 소년이. 여기서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인지, 서러움의 눈물인지, 그것은 복만이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조선 후기, 박복만과 같은 천민 출신 거상들이 여럿 나타났다.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록하지 않았다. 양반이 쓴 역사에 천민의 이름이 오를 자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임상옥, 만석꾼 이야기, 보부상 전설 등 곳곳에 흩어진 기록과 야담 속에 그들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돈은 있지만 신분은 살 수 없었던 시대. 그들은 정면으로 벽을 부수는 대신 돌아가는 길을 찾았다. 관계를 쌓고, 은혜를 베풀고, 위기에서 손을 내밀어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그것이 그들의 우회 전략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 그들이 증명한 것은 단순히 돈의 힘이 아니었다. 사람의 의지와 지혜가 신분의 벽보다, 시대의 한계보다, 세상의 편견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복만이 말년에 남긴 한마디가 전해진다.

    "나는 종으로 태어났으되, 종으로 죽지는 않았다. 하늘이 정한 것은 신분이 아니라 뜻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기적은, 기적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의, 삼십오 년에 걸친 선택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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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에서 가장 부자가 된 남자.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분의 벽 앞에서, 그는 부수는 대신 돌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세상이 정해 준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그는 평생 행랑채에서 곳간 장부만 쓰다 눈을 감았을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이 있으신가요. 돌아가는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만복야담, 다음 이야기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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