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종놈 백 냥보다 귀한 걸 택하다 『기문총화』
당장 배를 채울 돈 대신 늙은 주인의 마지막 부탁을 지킨 종이, 세월 끝에 그 의리 하나로 자유와 재산, 혼인까지 얻는 벅찬 역전극.
태그 (15개)
#만복야담, #야담, #조선야담, #기문총화, #옛날이야기, #전래동화, #오디오드라마, #조선시대, #의리, #인과응보, #권선징악, #인생역전, #감동사연, #라디오드라마, #시니어
#만복야담 #야담 #조선야담 #기문총화 #옛날이야기 #전래동화 #오디오드라마 #조선시대 #의리 #인과응보 #권선징악 #인생역전 #감동사연 #라디오드라마 #시니어
후킹멘트 (224자)
은자 백 냥이면 종놈 신세 면하고 평생 배불리 살 큰돈이지요. 그런데 밥만 축낸다 구박받던 미련한 종놈이, 그 백 냥을 마다하고 죽어가는 늙은 주인의 마지막 부탁 하나를 택했더랍니다. 어린 도련님과 봉서 한 장을 품고 야반도주한 종놈. 팔 년 모진 세월 끝에 그 봉서가 열리던 날, 천지가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으니... 의리 하나로 자유와 재산, 혼인까지 거머쥔 조선 최고의 역전극, 지금 시작합니다.
※ 1: 천덕꾸러기 돌쇠
옛날 충청도 청주 고을에 유 진사라 불리는 늙은 선비가 살았더랍니다. 젊어서는 글재주로 이름깨나 날렸다지만 벼슬길과는 인연이 닿지 않아, 향리에서 조용히 늙어가는 처지였지요. 그래도 물려받은 전답이 제법 있어 살림만은 넉넉한 편이었고, 인심이 후해 흉년이면 곳간을 열어 이웃을 구휼하니 고을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지요. 그런데 이 유 진사 댁에는 온 동네가 다 아는 천덕꾸러기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종놈 돌쇠였습니다.
돌쇠는 나이 스물다섯에 몸집은 황소만 했는데, 어찌나 굼뜨고 어눌한지 말 한마디를 하려면 한참을 더듬거렸더랍니다. 셈에도 어두워서 장에 심부름을 보내면 거스름돈을 못 챙겨 오기가 일쑤였지요. 한번은 무명 한 필 값을 치르고 남은 엽전을 몽땅 두고 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같은 종들끼리도 돌쇠를 사람 취급을 안 했지요.
"야, 이 미련한 곰탱이야! 물 길어 오랬더니 반나절이 걸리냐?"
"저, 저기... 두레박 줄이 끊어져서... 새로 꼬느라 그만..."
"핑계는! 에이, 밥만 축내는 놈 같으니."
잔칫날 손님상을 나르다 발이 꼬여 국그릇을 엎기라도 하면, 온 집안이 배꼽을 잡고 웃어댔지요. 아이들까지 돌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곰탱이, 곰탱이 하고 놀려댔습니다. 마당쇠며 부엌어멈이며 너나없이 돌쇠를 구박했습니다. 심지어 안방마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저 미련한 놈을 내다 팔자는 말까지 나왔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쇠는 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업둥이였거든요. 갓난쟁이 적 어느 눈 오는 새벽, 유 진사 댁 대문 앞에 강보에 싸여 버려진 것을 젊은 유 진사가 거두어 부엌어멈 젖을 얻어 먹여 키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미련하다는 돌쇠에게 남다른 구석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 맡은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끝을 보는 것이었지요. 남들이 꾀를 부려 반만 하고 마는 일도 돌쇠는 밤을 새워서라도 기어이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언젠가 송아지 한 마리가 고삐를 끊고 달아났을 때는, 온 산을 이틀 밤낮 뒤져 기어이 찾아 업고 내려온 일도 있었더랍니다. 거짓말이라고는 아예 할 줄을 몰라서, 제게 손해가 되는 일도 곧이곧대로 고했지요. 한번은 장에서 포목전 주인이 거스름돈을 곱절로 잘못 내준 일이 있었는데, 돌쇠는 그 밤으로 삼십 리 길을 되짚어 가서 돈을 돌려주고 왔더랍니다. 포목전 주인이 하도 기특해서 엿 한 가락을 쥐여주니, 그것도 저 혼자 안 먹고 품에 넣어 와 어린 도련님 손에 올려놓는 위인이었지요.
유 진사는 그런 돌쇠를 눈여겨보았더랍니다. 하루는 사랑 마당을 쓸던 돌쇠를 불러 이렇게 일렀지요.
"돌쇠야, 남들이 널 미련하다 해도 서러워 마라. 미련한 것과 우직한 것은 다른 법이다. 사람의 진짜 값어치는 머리가 아니라 심지에 있느니라."
"지, 진사님... 쇤네 같은 놈한테 그런 과분한 말씀을..."
돌쇠는 그 말뜻을 반은 알고 반은 몰랐지만, 주인어른이 저를 사람으로 봐준다는 것만은 가슴 깊이 새겼더랍니다.
'이 댁에서 나를 사람이라 불러주시는 분은 진사님 한 분뿐이여... 이 은혜를 어찌 갚나...'
세월은 물처럼 흘렀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던가요. 유 진사의 아들 내외가 돌림병으로 한날한시에 세상을 뜨는 참척을 겪고, 안방마님마저 그 화병으로 이듬해 눈을 감으니, 그 넓은 집에 남은 혈육이라고는 일곱 살 난 손자 한이 하나뿐이었지요. 칠순을 바라보는 유 진사는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밤마다 긴 한숨을 쉬었더랍니다.
부모 잃은 어린 한이가 그나마 웃는 것은 돌쇠 곁에서였습니다. 돌쇠는 도련님을 무동 태워 감나무 홍시를 따주고, 여름밤이면 부채질을 해가며 잠자리를 잡아다 주었지요. 제 밥에 얹힌 생선 토막은 늘 슬그머니 도련님 숟가락 위로 건너갔습니다.
"돌쇠야, 너는 어째서 나한테만 잘해주느냐?"
"도, 도련님이 웃으시면... 쇤네도 좋아서유. 그냥 그래유."
말주변이 없어 그리 대답했지만, 돌쇠의 진심은 어린 한이도 다 느꼈던 게지요. 저녁이면 돌쇠 등에 업혀 별을 세다 잠드는 것이 한이의 낙이었더랍니다.
그 무렵부터 집안 살림이 눈에 띄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진사가 상심으로 자리보전을 하는 사이, 사돈의 팔촌까지 드나들며 곳간을 야금야금 축냈거든요. 그중에서도 제일 극성인 자가 조카뻘 되는 유몽득이었습니다. 몽득은 읍내 투전판이나 기웃거리며 가산을 다 날린 한량이었는데, 숙부의 병세가 깊어지자 아예 사랑채에 눌러앉다시피 했지요.
"숙부님, 소질이 곁에서 밤낮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린 한이는 제가 친자식처럼 거두지요."
말은 꿀처럼 달았지만, 그 눈은 늘 곳간 열쇠와 문갑 속 땅문서를 향해 번들거렸습니다. 황당하죠. 병문안을 온다는 자가 약탕관은 거들떠도 안 보고 세간살이만 눈으로 세고 있으니 말입니다. 몽득은 숙부 병구완에 쓴다며 곳간 쌀을 몇 섬씩 실어내 제 노름빚을 갚았고, 안팎으로 드나드는 장사치들과 수상한 셈을 주고받았습니다. 곳간지기가 머뭇거리면 곧 이 집 주인이 될 사람 말을 거역하겠느냐며 눈을 부라렸지요. 눈치 빠른 종들은 벌써 몽득에게 붙어 아부를 떨었지요. 오직 돌쇠만이 변함없이 진사의 약탕관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십 리 밖 약방에 다녀오고, 밤이면 진사의 방 앞 툇마루에서 새우잠을 잤더랍니다.
"저 미련한 놈은 줄을 서도 하필 다 망해가는 늙은이한테 서는구나. 쯧쯧."
"그러게 말이야. 눈치가 저리 없으니 평생 천덕꾸러기 신세지."
다른 종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도 돌쇠는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진사가 쓴 약을 삼키고 이맛살을 찌푸리면 제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미음 한 술이라도 넘기는 날이면 저 혼자 싱글벙글 좋아했지요.
'주인어른이 편찮으신데 줄이고 뭐고가 어딨어. 나는 그런 거 몰라. 몰라도 돼. 진사님만 자리 털고 일어나시면 그만이여.'
가을이 깊어 마당에 낙엽이 수북이 쌓이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진사의 병세가 부쩍 나빠져 미음 한 술도 못 넘기게 되었지요. 의원이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돌아가고, 몽득이 거짓 눈물을 훔치는 척하며 제 패거리와 헛간 뒤에서 수군거리던 그 밤. 진사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사람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그가 부른 이름은 조카도 집사도 아니었습니다.
"돌쇠... 돌쇠를 들라 하라..."
방 안팎의 모든 눈이 화등잔만 해졌지요. 몽득의 낯빛은 흙빛이 되었고요. 죽음을 앞둔 주인이 조카도 집사도 아닌, 하필이면 천덕꾸러기 종놈을 머리맡에 부르다니요. 대체 이 깊은 가을밤, 유 진사 댁 안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요.
※ 2: 임종의 밤, 두 갈래 길
돌쇠가 흙 묻은 발을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방 문 앞에 넙죽 엎드리니, 방 안에서 가느다란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들어오너라..."
방에는 몽득이 진작부터 버티고 앉아 있었지요. 진사가 앙상한 손을 내저었습니다.
"다들... 물러가 있거라. 돌쇠만 남고."
"숙부님, 어찌 종놈 따위와 단둘이 계시려 하십니까. 소질이 곁을 지키겠습니다."
"물러가라 하지 않았느냐!"
죽어가는 노인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벼락같은 호통에 몽득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문밖 댓돌 아래서 귀를 세우고 있을 것이 뻔했지요. 진사는 돌쇠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하더니, 모기만 한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돌쇠야... 내가 며칠이나 더 살 것 같으냐."
"지, 진사님, 그런 말씀 마셔유. 낼 아침엔 미음이라도 꼭 자시고..."
"쉿. 시간이 없다. 내 말을 명심해 들어라."
진사는 떨리는 손으로 요 밑을 더듬더니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기름 먹인 종이로 겹겹이 싸고 붉은 인장으로 단단히 봉한 봉서 한 장과, 묵직한 비단 주머니 하나였지요.
"이 주머니에는 은자 백 냥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 네 종문서도 함께 있느니라."
돌쇠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습니다. 은자 백 냥이라니요. 기와집을 사고도 남을 큰돈이지요. 게다가 종문서라니요. 그 문서 한 장만 불에 넣으면 돌쇠는 그 길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오늘 밤 안으로 이 집을 떠나거라. 백 냥이면 어디 가서든 논 사고 장가들어 떵떵거리며 살 게다. 미련하다 구박받던 네 서러운 세월... 늙은이가 이걸로나마 갚아주고 싶구나."
"지, 진사님... 어, 어째서 쇤네한테 이런..."
"내 죽고 나면 이 집은 몽득의 것이 된다. 땅문서며 곳간 열쇠며, 그놈이 벌써 반은 삼켰어. 늙고 병든 내가 그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느니라. 허나..."
진사의 움푹 꺼진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이... 우리 한이가 걱정이다. 그놈이 어린것을 곱게 둘 리가 없어. 재산에 눈이 먼 자에게 어린 상속자란 눈엣가시일 뿐이니... 무슨 짓을 꾸밀지 생각만 해도 뼈가 저리는구나."
'아이고, 진사님... 그럼 우리 도련님은 어찌 되는 거여...'
돌쇠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진사는 봉서를 들어 보였지요.
"그래서 네게 두 가지 길을 주마. 하나는 방금 말한 대로 백 냥과 종문서를 들고 떠나 네 팔자를 고치는 길이다. 누구도 너를 탓하지 않아. 너는 그럴 자격이 차고 넘치느니라. 그리고 또 하나는..."
진사가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짧은 사이가 돌쇠에게는 한나절처럼 길었습니다.
"한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길이다.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가서, 그 아이가 열다섯이 될 때까지 친혈육처럼 키워다오. 그리고 열다섯 생일이 되는 날, 이 봉서를 열어라. 그 전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열어서는 아니 된다. 헌데 이 길에는... 백 냥을 줄 수가 없구나. 종놈이 큰돈을 지니고 다니면 열 걸음도 못 가 도둑으로 몰릴 것이요, 몽득이 기어이 은자 냄새를 맡고 끝까지 뒤쫓을 테니. 내가 줄 수 있는 건 노잣돈 엽전 몇 꿰미와... 기약 없는 고생길뿐이다."
방 안에는 등잔불 심지 타는 소리만 자글자글했습니다. 한쪽에는 은자 백 냥에 자유까지, 다른 쪽에는 엽전 몇 꿰미에 고생길.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물어도 답이 뻔한 물음이었지요. 돌쇠라고 어찌 사람인데 마음이 아주 안 흔들렸겠습니까. 백 냥이면 논이 스무 마지기요, 초가삼간에 색시까지... 그 생각이 눈앞을 스치는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돌쇠 등에 업혀 별을 세다 잠들던 어린 도련님의 얼굴이 떠올랐지 뭡니까.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속 저울이 쿵, 하고 한쪽으로 기울어버렸더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사님."
돌쇠가 방바닥에 이마가 닿도록 넙죽 엎드렸습니다.
"쇤네는... 쇤네는 그 백 냥이 무섭습니다요. 그 돈 들고 혼자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산들, 도련님 생각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유. 밤마다 진사님이 꿈에 나오실 텐디유... 쇤네, 도련님 모시고 가겠습니다. 열다섯이 아니라 스물다섯까지라도 지고 업고 키우겠습니다요."
"돌쇠야..."
"쇤네는 미련해서 셈은 못 해도, 은혜는 압니다. 눈 오는 새벽 대문 앞에 버려진 핏덩이를 거두어 주신 게 누구신디유. 개돼지 취급받던 놈을 사람이라 불러주신 게 누구신디유. 그 은혜에 대면 백 냥이 아니라 천 냥도 검불 같은 것이지유."
진사는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뼈만 남은 손으로 돌쇠의 소나무 껍질 같은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지요.
"내 평생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있노라 자부했다만... 오늘에야 그 눈이 옳았음을 알겠구나. 돌쇠야, 부디 잊지 마라. 봉서는 한이가 열다섯 되는 생일날 아침이다. 그 전에는 절대로, 절대로 열지 마라. 그리고 이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느니라.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궁한 때라도..."
"예, 진사님. 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겠습니다요."
"내가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너를 택했는지 아느냐. 꾀 많은 자는 제 잇속 앞에서 반드시 흔들리는 법이다. 허나 너는... 너는 한번 옳다고 믿은 길에서는 소도 못 끌어낼 놈이지. 그 우직함이 우리 한이의 목숨줄이니라."
진사는 이어서 신신당부를 보탰습니다. 청주 땅을 벗어나거든 이름을 바꾸고 숙질간이라 하여라, 큰길과 나루는 피하고, 한이의 신분은 그 아이 입에서도 나오지 않게 하여라, 하나하나가 피를 토하듯 간절한 당부였지요.
진사는 봉서를 돌쇠의 품속 깊이 넣어주고, 엽전 몇 꿰미를 쥐여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맡 문갑에서 작은 은가락지 한 쌍을 꺼냈지요. 한이 어미가 남긴 유품이었습니다.
"이건 한이 것이다. 훗날 그 아이 장가들 때... 신부 손에 끼워주라고 전해다오."
그날 밤이 이슥하도록 진사는 돌쇠에게 피해 갈 길목이며 조심할 일들을 하나하나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닭이 홰를 치기도 전에, 유 진사는 돌쇠의 손을 잡은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더랍니다. 일흔 평생 마지막 눈길이 머문 곳은 재산도 문서도 아닌, 미련하다 천대받던 종놈의 얼굴이었지요.
문밖에서는 벌써 몽득의 발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곡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눈은 벌써 문갑과 곳간 쪽을 더듬고 있었지요.
'진사님... 걱정 붙들어 매셔유. 쇤네가 목숨을 걸고라도 도련님을 지킬 테니께유...'
돌쇠는 품속의 봉서를 옷섶 위로 꾹 눌러보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제 이 넓은 집에서 저 어린 도련님 편은 저 하나뿐이라는 것을, 미련한 돌쇠도 똑똑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 3: 야반도주
유 진사의 초상이 치러지는 닷새 동안, 청주 유 진사 댁은 겉보기에는 참으로 번듯했습니다. 조카 몽득이 상주 자리에 서서 어찌나 서럽게 곡을 하는지, 조문객들이 다들 혀를 내둘렀지요.
"숙부님! 소질을 두고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아! 아이고, 아이고!"
그런데 말입니다. 곡소리가 끊긴 밤이면 사랑채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착착, 착착. 주판알 튕기는 소리였지요. 몽득은 초상 사흘 만에 벌써 곳간마다 제 이름으로 봉인을 붙이고, 전답 문서를 죄다 제 문갑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눈치 빠른 종들은 앞다투어 새 주인에게 허리를 굽혔고요.
정작 상제 노릇을 해야 할 어린 한이는 뒷방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상복도 몽득의 아들놈이 입다 버린 것을 걸쳤고, 밥상이라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식은 보리밥에 간장 종지 하나가 전부였지요. 기가 막히죠. 어린것이 할아버지 영전에 엎드려 우는데, 그 등을 쓸어주는 이 하나가 없었습니다. 돌쇠는 제 몫의 밥을 몰래 덜어다 도련님 입에 넣어주며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더랍니다.
'조금만 참으셔유, 도련님. 조금만...'
발인을 마치고 사흘째 되던 밤이었습니다. 돌쇠가 헛간에서 여물을 썰고 있는데,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뒤꼍에서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몽득과 집사 최가의 목소리였지요.
"나리, 그래도 어린 도련님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훗날 장성하여 제 몫을 찾겠다 나서면 그때는..."
"그러니 하는 말 아닌가. 마침 강진 땅에 먼 일가가 있으니, 어린것 공부를 시킨다 하고 배에 태워 보내는 게야. 헌데 최가... 뱃길이란 게 원래 험하지 않은가. 풍랑이라도 만나면... 흐흐, 그거야 하늘의 뜻이지."
"과연 나리십니다. 흐흐흐."
돌쇠는 여물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뛰쳐나갈 뻔했지만, 진사님의 마지막 당부가 귓전을 때렸지요.
'참어라, 돌쇠야. 지금 나서면 다 죽어. 오늘 밤이다. 오늘 밤에 떠나야 혀.'
자정이 넘어 온 집이 잠들자, 돌쇠는 소리 없이 뒷방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곤히 잠든 한이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지요.
"도련님, 쉿. 소리 내면 안 되어유."
"돌쇠야... 이 밤중에 어딜..."
"할아버님께서 쇤네한테 남기신 심부름이 있어유. 나쁜 사람들이 도련님을 해치려 하니, 멀리 피하라 하셨구먼유. 쇤네만 믿으셔유."
일곱 살 어린것이 무엇을 다 알겠습니까마는, 한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이 커다란 집에서 저를 따뜻하게 보아주는 눈은 돌쇠뿐이라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던 게지요.
돌쇠는 한이를 포대기로 들쳐 업고 개구멍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등에는 도련님, 품에는 봉서, 허리춤에는 엽전 몇 꿰미. 그것이 전부였지요. 컹컹, 뒷집 개가 짖는 소리에 간이 콩알만 해져서, 두 사람은 달빛도 없는 뒷산 소나무 숲으로 내달렸습니다.
새벽녘에는 소나기까지 퍼부었습니다. 돌쇠는 길가 상엿집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지요. 송장 메는 상여가 시커멓게 놓인 곳이라 어른도 꺼리는 데였지만, 도리어 그래서 뒤쫓는 눈을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돌쇠야... 나 무서워..."
"쇤네가 있잖어유. 쇤네는 도련님 곁에서 한 발짝도 안 떨어져유. 하늘이 무너져도유."
한이는 돌쇠의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그제야 잠이 들었습니다. 돌쇠는 젖은 저고리를 벗어 도련님을 덮어주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요.
날이 밝자 청주 고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몽득이 관가에 달려가 고한 것이지요. 종놈 돌쇠가 은수저를 훔치고 어린 도련님까지 납치해 달아났다고요. 장터마다 방이 나붙었습니다. 돌쇠를 잡아 오는 자에게 상금 쉰 냥을 준다는 방이었지요. 참말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련님을 해치려던 자가 도리어 구해낸 사람을 도둑으로 몰다니요.
그날부터 두 사람은 낮에는 숲에 숨고 밤에만 걸었습니다. 큰길과 장터는 얼씬도 못 하고, 산나물에 칡뿌리로 주린 배를 달랬지요. 짚신이 다 해져 돌쇠의 발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등에 업힌 도련님이 깰까 봐 끙 소리 한 번을 안 냈더랍니다.
한번은 강을 건너지 않고는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나루터에 내려섰는데, 아뿔싸, 포졸 둘이 방문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 얼굴을 살피고 있지 뭡니까. 돌쇠는 재빨리 아궁이 재를 한 줌 집어 제 얼굴과 한이 얼굴에 문질렀습니다. 그러고는 도련님을 등에 늘어지게 업고 일부러 다리를 절며 나아갔지요.
"웬 놈이냐. 그 등에 업힌 아이는 뭐고."
"예예, 숯쟁이올시다유. 조카놈이 염병을 앓아서... 콜록콜록, 용한 의원을 찾아가는 길인디유..."
염병이라는 말에 포졸들이 기겁을 하고 열 걸음은 물러났습니다. 어서 지나가라고 손사래까지 쳤지요. 배에 오르고 나서야 돌쇠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강물처럼 흘렀더랍니다.
'진사님이 도우셨구먼... 진사님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거여.'
열흘쯤 헤맸을까요.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 두 사람은 조그만 산사의 불빛을 만났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스님이 주먹밥과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주었지요. 조카를 데리고 외가를 찾아가는 길이라 둘러댔지만, 노스님은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사연이야 부처님만 아시면 되지요. 허나 보아하니 인연 깊은 길이구려. 여기서 동쪽으로 사흘 길, 강원도 정선 땅에 화암골이라는 숯 굽는 마을이 있소. 산이 깊어 관가 발길도 뜸하니, 몸 숨기고 살기에는 그만한 데가 없을 게요."
노스님은 새 짚신 두 켤레와 주먹밥까지 싸주며 합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흘을 더 걸어 당도한 정선 화암골. 첩첩산중에 숯가마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할 만한 곳이었지요. 돌쇠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는 돌삼촌, 도련님은 조카 한돌이라 둘러대고, 다 쓰러져가는 빈 움막 하나를 얻어 들었습니다. 무너진 벽에는 흙을 개어 바르고, 뚫린 지붕에는 굴피를 얹었지요. 세간이라고는 이 빠진 솥단지 하나에 깨진 바가지 둘. 그래도 쫓기는 몸에 지붕 있는 잠자리가 어딥니까.
첫날 밤, 한이가 돌쇠의 팔을 베고 누워 물었습니다.
"돌쇠야... 아니, 삼촌. 우리 인제 집에는 못 가? 할아버지 산소에도 못 가는 거야?"
"가지유. 언젠가는 꼭 가지유. 도련님이 어른이 되시면... 그때는 쇤네가 앞장서서 모시고 갈 거구먼유. 산소에 큰절도 올리고, 잃어버린 것도 다 되찾고유."
돌쇠는 품속 봉서를 가만히 쓸어보았습니다. 열다섯. 아직도 팔 년이나 남은 그 약속의 날을 헤아리면서요.
※ 4: 팔 년의 약속
정선 화암골의 세월은 숯가마 연기처럼 매캐하고 더디게 흘렀습니다. 돌쇠는 숯쟁이가 되었지요. 참나무를 베어 지고, 가마에 불을 넣고, 사흘 밤낮 불길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손바닥은 갈라져 소나무 등걸 같아지고, 얼굴은 그을음에 절어 새까매졌지요. 그래도 돌쇠는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숯 한 섬을 지고 삼십 리 장에 다녀오면 한돌이 입에 쌀밥 한 그릇 들어가는 것이, 그저 그것이 낙이었으니까요.
'도련님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네. 참 이상한 일이여.'
돌쇠는 마을 서당 훈장님을 찾아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습니다.
"훈장님, 쇤네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놈입니다만, 우리 조카놈은 꼭 글을 배워야 합니다요. 속수는 못 드려도 땔나무와 숯은 평생 대드리겠습니다유."
"허허, 삼촌이 조카 글공부에 이리 정성인 집은 내 처음 보네."
훈장님은 그 정성에 감복해 한돌이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돌이가 어찌나 총명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쳤더랍니다. 천자문을 석 달 만에 떼고, 이태 만에 사서를 줄줄 외니 훈장님이 무릎을 쳤지요.
"이 아이는 산골에 묻힐 재목이 아니야. 필시 뼈대 있는 집 자손일 터인데..."
그럴 때마다 돌쇠는 가슴이 철렁해서 얼른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밤이면 움막 벽 틈에 기름종이로 싸서 숨겨둔 봉서를 꺼내 만져보는 것이 돌쇠의 일과였지요. 좀이 슬까 비가 샐까, 제 목숨보다 더 애지중지했더랍니다.
세월은 그렇게 숯섬과 함께 쌓여갔습니다. 여름 장마에 애써 쌓은 숯가마가 무너지면 맨손으로 돌을 져다 다시 쌓았고, 가을이면 새벽 이슬을 맞으며 송이버섯을 따다 장에 내어 한 푼 두 푼을 모았지요. 겨울 산판에서 아름드리 참나무에 깔려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돌쇠는 장날마다 잊지 않고 한돌이의 붓과 먹을 챙겨 왔지요. 저는 평생 짚신이면서, 도련님 발에는 철마다 새 미투리를 신겼더랍니다.
고생이야 이루 말로 다 못 하지요. 한돌이 열두 살 되던 해 겨울에는 큰 흉년까지 겹쳤습니다. 돌쇠가 무리하게 숯가마를 돌리다 그만 몸살로 몸져누웠는데, 열이 펄펄 끓어 사흘을 헛소리를 했지요. 어린 한돌이가 눈길 삼십 리를 걸어 의원을 데려오고, 서툰 솜씨로 미음을 쑤어 떠 넣었습니다.
"삼촌, 죽으면 안 돼. 흑흑... 삼촌마저 없으면 나는 이 세상에 혼자란 말이야... 제발 눈 좀 떠봐, 응?"
"안 죽어유... 도련님 장가드는 것까지 보고 죽을 거구먼유..."
앓는 중에도 헛소리처럼 도련님 소리가 나오니, 한돌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죽여 울었더랍니다.
그 겨울, 두 사람을 살린 것은 장터 주막의 과부 순덕이었습니다. 서른 줄의 순덕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주막을 꾸리는 여인이었는데, 마음씨가 어찌나 고운지 굶는 사람을 그냥 못 보는 성미였지요. 국밥을 말아도 돌쇠네 뚝배기에는 고기 한 점을 슬쩍 더 얹어주고, 한돌이의 해진 저고리를 말없이 기워다 주곤 했습니다.
"삼촌이 조카를 위해 저리 제 뼈를 갈아 넣는 사람은 내 생전 처음 보오. 친아비도 저리는 못 할 거요."
"벼, 별말씀을유... 지가 워낙 미련해서 그런 것뿐인디유."
순덕이 웃으면 돌쇠는 괜히 뒤통수만 긁적였지요. 대박이죠, 그 무뚝뚝한 돌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한돌이는 다 보았답니다. 돌쇠도 빈손으로는 안 갔습니다. 장작을 한 짐 패어다 주막 부엌에 부려놓거나, 산에서 딴 머루며 다래를 슬그머니 툇마루에 놓고 가곤 했지요. 두 사람 다 말은 없어도, 오가는 정은 국밥 김처럼 따뜻하게 피어올랐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화암골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장돌뱅이 소금장수가 주막에서 청주 소식을 풀어놓은 것이지요.
"청주 유 진사 댁 말이오, 조카라는 자가 재산을 몽땅 차지했는데, 아직도 도망친 종놈과 어린 상전을 찾는다지 뭐요. 팔 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오. 현상금이 자그마치 백 냥으로 올랐답디다, 백 냥! 그 종놈 하나만 잡으면 팔자 고치는 거지."
하필 그 자리에 마을 노름꾼 억보가 있었습니다. 억보는 며칠을 곰곰 생각하더니, 밤중에 돌쇠의 움막을 찾아와 음흉하게 웃었지요.
"돌삼촌, 아니지... 청주서 오셨다지? 조카님 상판이 아무리 봐도 숯쟁이 핏줄이 아니거든. 현상금이 백 냥이라는데, 내 입 하나 막는 셈치고... 그 품에 늘 지니고 다니는 봉서 말이야. 필시 보물지도 아닌가? 그거 열어서 나눠 갖세. 그럼 나도 입을 봉하지."
돌쇠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지만, 이내 바위처럼 버티고 서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 봉서는 내 목숨과도 못 바꾸는 것이여. 백 냥이 아니라 만 냥을 준대도 안 되어. 열고 싶으면 내 목을 먼저 치고 가져가."
"허, 이 미련한 놈이! 관가에 고하면 네놈은 끝장이야!"
소란에 이웃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돌쇠 앞을 막아섰지요. 팔 년 동안 궂은일 마다않고, 남의 숯가마 불까지 밤새 지켜주던 돌쇠의 인심이 담이 되어준 것입니다. 훈장님까지 지팡이를 짚고 나와 억보를 꾸짖었지요.
"이 사람의 십 년 행실을 온 마을이 아는데, 뜨내기 말만 믿고 생사람을 잡겠다는 게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억보는 무안해서 그길로 마을을 떠났고, 위기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적선이 쌓이면 담이 된다더니, 옛말 하나 그른 게 없지요.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한돌이, 아니 한이의 열다섯 생일 전날 밤. 돌쇠는 벽 틈에서 봉서를 꺼내 소반 위에 올려놓고, 도련님 앞에 넙죽 엎드려 팔 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청주 유 진사 댁 이야기, 할아버님의 마지막 밤, 은자 백 냥과 봉서 이야기까지 남김없이요.
"쇤네가 그동안 기망한 죄,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유. 허나 이제 도련님은 어엿한 유 진사 댁 장손이시구먼유."
한이는 한참을 말없이 울었습니다. 실은 한이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요. 잠결에 저를 도련님이라 부르던 삼촌의 헛소리며, 청주라는 말만 나오면 굳어지던 그 얼굴이며. 다만 삼촌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뿐입니다. 한이는 돌쇠의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진 두 손을 끌어다 제 이마에 대었습니다.
"죄라니요. 아저씨가... 아저씨가 팔 년 동안 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소. 아저씨는 종이 아니라 내 은인이오. 봉서에 무엇이 들었든, 내 반드시 세상이 다 알게 할 거요."
그리고 날이 밝았습니다. 열다섯 생일 아침, 두 사람의 떨리는 손이 마침내 붉은 인장 위에 얹혔으니... 과연 봉서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 5: 봉서의 비밀
열다섯 생일 아침, 움막 안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소반 위에는 팔 년 세월을 견딘 봉서 한 장이 놓여 있었지요. 기름종이가 누렇게 삭고 붉은 인장은 빛이 바랬지만, 봉인만은 여태 온전했습니다. 그 세월 동안 굶주려도, 협박을 당해도, 병들어 죽을 고비를 넘겨도 돌쇠는 이 봉인에 손톱 하나 대지 않았던 것이지요.
"도련님이 뜯으셔유. 이건 도련님 것이니께유."
한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조심조심 인장을 뜯고 겹겹의 기름종이를 벗기니, 안에서 빳빳한 한지 세 장이 나왔지요. 첫 장은 유 진사의 친필 유언장이었습니다. 관인이 찍힌 정식 문서였지요.
한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습니다.
"나 유가 성익은, 죽음을 앞두고 이 글을 남기노라. 내 손자 한이가 열다섯이 되는 날 이 문서를 열 것이며, 이는 청주 관아와 한양 호조에 각기 사본을 맡겨두었으니 그 효력이 하늘의 해와 같으니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첫째, 내 소유의 전답과 가옥, 노비 문서 일체는 손자 유한에게 상속한다. 조카 유몽득에게는 단 한 뙈기도 남기지 아니한다. 그가 내 생전에 이미 곳간 쌀 삼백 섬과 밭 열 마지기를 제 마음대로 축냈은즉, 그것으로 몫을 다한 줄로 알라."
"삼촌! 삼촌, 이거 보시오! 할아버님께서 다 알고 계셨소!"
돌쇠는 무슨 말인지 절반도 못 알아들었지만, 도련님이 웃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인 줄은 알았지요.
"그것뿐이 아니오, 삼촌. 사본을 관아와 호조에 미리 맡겨두셨다지 않소. 몽득이 문서를 백 장 위조한대도 소용없다는 뜻이오!"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한이의 목소리가 뚝 끊겼습니다.
"둘째... 둘째, 내 진짜 재산은 집에 없느니라."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래유?"
한이가 두 번째 장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문서 목록이었지요. 유 진사가 죽기 삼 년 전부터 몰래 준비해둔 것이었습니다.
"공주 목사로 있는 벗 김 대감께 논 이백 마지기 문서를 맡겨두었고, 한양 육의전 포목 도가에 은자 이천 냥을 예치해 두었으며, 청주 남쪽 백곡리 선산 아래 감나무 밑에 은괴 스무 덩이를 묻어두었노라. 이 모두는 한이의 것이니, 이 문서와 신표를 가진 자에게만 내어주도록 각처에 단단히 일러두었느니라."
돌쇠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논 이백 마지기에 은자 이천 냥이라니요. 몽득이 삼킨 재산은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유 진사는 조카의 검은 속을 진작에 꿰뚫어 보고, 알짜 재산은 죄다 밖으로 빼돌려 놓았던 게지요. 병석에 누워 아무것도 못 하는 늙은이인 척, 조카가 곳간 쌀을 퍼가도 못 본 척 눈을 감아주면서 말입니다. 무서운 노인이 아니라, 자식 잃은 아비의 절박함이었겠지요.
"그러니께... 몽득이 그놈은 빈 껍데기를 껴안고 팔 년을 좋아라 했다는 거구먼유?"
"그렇소, 삼촌! 대박이지 뭐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 번째 장을 펼치던 한이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지지 뭡니까.
"도, 도련님? 왜 그러셔유? 나쁜 말이라도 적혔대유?"
한이는 목이 메어 한참을 못 읽다가, 겨우겨우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셋째. 이 글을 읽는 자가 만일 내 종 돌쇠라면, 그는 은자 백 냥을 마다하고 어린것을 택한 사람이니라. 사람의 마음이 저울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나는 그 밤에 알았느니라."
돌쇠의 어깨가 흠칫 떨렸습니다.
"돌쇠의 종문서는 이 유언장이 열리는 즉시 소각한 것으로 하며, 그를 양민으로 면천하노라. 관아에 이미 면천 문서를 접수해 두었으니, 누구도 그를 다시 종이라 부르지 못하리라."
"...예?"
"또한 내 재산의 삼분의 일, 논 예순 마지기와 은자 오백 냥을 돌쇠에게 준다. 이는 삯이 아니라 빚이니라. 늙은이가 갚아야 할 빚이니, 사양하지 마라."
돌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무릎이 꺾여버린 것이지요.
"진사님... 진사님이 어떻게 이런 걸 미리..."
"마지막으로 돌쇠에게 이르노라. 네가 만일 백 냥을 들고 떠났다면, 너는 백 냥을 얻었을 것이다. 허나 네가 한이를 택하였기에, 너는 사람을 얻었느니라. 세상 이치가 그러하니, 재물을 좇는 자는 재물을 잃고 사람을 좇는 자는 재물까지 얻느니라. 부디 한이의 곁에서 오래오래 복 받고 살거라."
낭독이 끝나자 움막 안에는 울음소리만 가득했습니다. 팔 년 동안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밤에 진사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다. 돌쇠가 백 냥을 마다하리라는 것을요. 그래서 미리 저 셋째 조항을 적어두신 것이지요. 만약 돌쇠가 백 냥을 들고 떠났다면, 저 문서는 영영 아무도 못 읽는 종이가 되었을 겁니다. 진사님의 마지막 시험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지요.
돌쇠는 문서를 붙들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쇤네는... 쇤네는 그저 진사님이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인디유...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디유... 도련님만 무사하면 그만이었는디유..."
"삼촌, 그러니까 받으실 자격이 있는 거요. 바라고 한 게 아니니까!"
한이가 돌쇠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열다섯 소년이 마흔이 다 된 사내를 어르고 달래는 진풍경이었지요.
그런데 감격에 젖어 있을 새가 없었습니다. 유언장 끝에 붉은 글씨로 다급하게 덧붙인 한 줄이 있었거든요.
"단, 이 문서는 손자가 열다섯이 되는 해 안에 관아에 제출해야 효력이 있으니, 그 해를 넘기면 재산은 모두 관에 귀속되느니라."
"열다섯 되는 해 안이라... 삼촌, 시간이 없소. 올해를 넘기면 다 물거품이오!"
유 진사가 왜 하필 그런 기한을 걸었을까요. 미련한 돌쇠도 이내 그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아하... 진사님은 우리가 영영 안 돌아오고 숨어 살까 봐 겁내셨구먼. 기한을 걸어야 도련님이 제 것을 찾으러 나설 테니께...'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것도 당장. 하지만 청주에는 아직도 현상금 백 냥이 걸린 방이 붙어 있고, 몽득은 여전히 그 집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요. 종놈 하나와 열다섯 소년이 관가 문턱을 넘기도 전에 잡혀 죽을 판이었습니다.
"삼촌, 어찌하면 좋겠소."
돌쇠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문득 무릎을 탁 쳤습니다.
"도련님, 유언장에 공주 목사 김 대감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유. 그분이 진사님 벗이라면... 우리가 먼저 청주로 갈 게 아니라, 공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게유?"
한이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삼촌! 미련하다더니, 그건 누가 한 소리요! 그것이 바로 정답이오!"
그 길로 두 사람은 봇짐을 꾸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노잣돈을 모아주고, 주막 순덕은 열흘 치 주먹밥을 싸주며 옷고름으로 눈가를 훔쳤지요.
"꼭 돌아오시오. 나는...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예. 꼭 돌아올 거구먼유."
돌쇠는 그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팔 년 만에 산을 내려갔습니다. 이번에는 도망이 아니라, 되찾으러 가는 길이었지요.
※ 6: 인과응보
공주 감영에 당도한 두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숯검정이 밴 손에 해진 짚신, 누가 봐도 산골 숯쟁이 숙질이었지요. 문지기 군졸들이 육모방망이로 앞을 막았습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썩 물러가지 못할까!"
"쇤네는 청주 유 진사 댁 종 돌쇠라 하는디유. 목사 나리께 유 진사님 유서를 전하러 왔습니다유."
"유서? 이 미친놈이 어디서 수작이야!"
문전박대를 당하기를 사흘. 그래도 돌쇠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감영 앞 땅바닥에 한이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비가 오나 볕이 드나 꼼짝을 안 했지요. 우직한 것으로 치면 조선 팔도에 당할 자가 없는 돌쇠 아닙니까. 군졸들이 물세례를 퍼붓고 발길질을 해도, 돌쇠는 도련님을 제 등 뒤로 감싸며 그저 버텼습니다.
"삼촌, 이러다 삼촌 몸 상하시오. 다른 수를 찾읍시다."
"다른 수가 어딨어유. 여기서 물러나면 팔 년이 헛일인디유. 지는 미련해서 딴 길은 몰라유.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것밖에는유."
나흘째 되던 아침, 마침내 김 대감이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청주 유 진사라 했느냐? 성익이... 성익이의 유서라고?"
김 대감이 버선발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한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더니, 그만 목이 메었지요.
"이 눈매... 이 이마... 성익이를 빼다 박았구나. 네가 정녕 한이란 말이냐! 살아 있었구나! 아이고, 이 사람아, 자네 손자가 살아 있었네!"
김 대감은 유언장을 받아 들고 손을 떨었습니다. 팔 년 전 벗이 찾아와 이 논문서를 맡기며 한 말이 있었거든요. 만일 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거든, 이 재산은 절에 시주하라고요. 그런데 그 손자가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헌데 이 아이를 여태 누가 키웠단 말이냐."
"쇤네가... 아니, 지가 데리고 있었습니다유."
김 대감이 돌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갈라진 손, 그을린 얼굴, 그리고 여덟 해를 품고도 봉인 하나 안 뜯은 그 봉서.
"백 냥을 마다하고 이 고생을 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종이 아니라 의인일세. 조선 팔도에 자네 같은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김 대감은 그 자리에서 붓을 들었습니다. 충청 감사에게 보내는 서찰과, 청주 목사에게 보내는 공문이었지요. 유 진사 댁 상속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유몽득의 재산 편취와 무고를 낱낱이 밝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한편 그 무렵 청주의 몽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말로 인과응보라는 말이 이래서 있는 겁니다. 팔 년 동안 몽득은 유 진사 댁 재산을 야금야금 다 말아먹었더랍니다. 투전판에 앉아 밤을 새우고, 기생집에 논 마지기를 안겨주고, 사기꾼들 말에 속아 없는 광산에 돈을 쏟아부었지요.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유 진사 흉내를 내며 갓 쓰고 사랑채에 앉아 있더니, 두어 해 지나자 본색이 나온 것입니다. 제 손으로 한 푼도 벌어본 적 없는 자가 곳간을 물려받으면 어찌 되는지, 온 고을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요.
남은 것이라고는 저당 잡힌 기와집 한 채와 산더미 같은 빚뿐이었습니다. 곳간은 텅 비어 쥐도 안 살고, 그 많던 종들도 하나둘 도망쳤지요. 집사 최가마저 몰래 남은 은수저를 챙겨 달아난 뒤였습니다. 빚쟁이들이 대문을 두드리면 몽득은 뒷간에 숨었더랍니다. 한때 조문객이 줄을 서던 그 대문 앞에, 이제는 빚 문서를 든 자들만 진을 쳤지요.
"에이, 그놈의 어린것만 확실히 처리했어도... 아니지, 그때 그 종놈이 데려간 게 차라리 잘된 일이지. 어차피 다 죽었을 테니."
몽득은 밤마다 술에 절어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청주 관아에서 나졸들이 들이닥쳤지 뭡니까.
"유몽득은 오라를 받으라! 감사또의 명이시다!"
동헌 뜰에 끌려 나온 몽득의 눈앞에, 잊고 지냈던 두 얼굴이 서 있었습니다. 어엿한 도포 차림의 열다섯 소년과, 바위 같은 사내 하나.
"네, 네놈은... 돌쇠? 도, 돌쇠 그 미련한 놈이 아니냐! 그럼 저 아이는..."
"조부님 유언장이오, 아저씨."
한이가 문서를 펼쳐 들자, 청주 목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관인이 선명한 정식 유언장, 그리고 한양 호조와 청주 관아 문서고 깊숙이 보관되어 있던 사본까지 나란히 놓고 대조하니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지요. 몽득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습니다. 팔 년 동안 제 것인 줄로만 알고 흥청망청 써댄 그 재산이, 애초에 단 한 뙈기도 제 몫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안 것이지요. 구경 나온 고을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아니, 그럼 재산은 애초부터 손자 것이었단 말이여?"
"저 종놈이 도련님을 훔쳐 간 게 아니라 구해낸 거였구먼!"
목사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유몽득은 백부의 재산을 편취하고, 무고한 종을 도둑으로 몰아 관을 속였으며, 어린 상속자를 해하려 모의한 죄가 명백하다. 남은 가산을 모두 몰수하여 유한에게 돌려주고, 유몽득은 장 백 대를 친 후 절도로 유배 보내라!"
"아이고! 살려주십시오! 조카님, 아니 도련님! 제가 눈이 멀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를!"
몽득이 땅바닥을 기며 한이의 도포 자락을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이는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목사에게 이렇게 청했지요.
"사또, 저자의 장형만은 감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좌중이 술렁였습니다. 몽득조차 어리둥절해서 입을 벌렸지요.
"제 조부께서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여덟 해 동안 저를 키운 이 사람에게서 저는 미워하는 법이 아니라 참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자는 이미 제 손으로 제 인생을 다 태워먹었으니, 그것으로 벌은 충분한 줄 압니다."
목사가 감탄하여 수염을 쓸었습니다.
"열다섯에 이만한 도량이라니. 유 진사의 손자답구나! 좋다, 장형은 스무 대로 감하고 유배는 그대로 행하라."
몽득은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그 눈에서 비로소 진짜 눈물이 흘렀지요. 뒤늦은 뉘우침이란 늘 그렇게 쓴 법입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백곡리 선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유 진사의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돌쇠는 이마가 흙에 닿도록 절을 했지요.
"진사님... 쇤네가 약속을 지켰습니다유. 도련님, 이렇게 훤칠하게 크셨구먼유. 글도 잘하시고, 마음도 넓으시고... 진사님 손자답지유?"
한이도 무덤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할아버님, 왜 그 밤에 하필 돌쇠 삼촌이었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할아버님은 사람을 보셨던 겁니다."
그리고 무덤가 감나무 밑을 파보니, 과연 항아리 속에 은괴 스무 덩이가 팔 년 세월을 견디고 그대로 묻혀 있었더랍니다. 유 진사의 마지막 신표였지요.
※ 7: 만복의 결말
유 진사 댁 대문에 다시 솟을대문 빗장이 걸리던 날, 청주 고을이 온통 잔치판이었습니다. 한이는 되찾은 재산으로 제일 먼저 흉년에 굶주린 이웃들에게 곳간을 열었지요. 할아버지가 하시던 그대로였습니다. 팔 년 전 몽득에게 붙어 아부하던 종들도 죄다 불러들여 다시 거두었더랍니다. 사람들이 어찌 저런 배신자들을 다시 쓰느냐 물으니, 한이는 이렇게 답했지요.
"배가 고프면 사람은 아무 데나 붙는 법이오. 저들이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면, 다시는 배신할 일도 없을 거요."
열다섯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놀랍도록 어른스러웠지요. 그런데 정작 온 고을의 화젯거리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미련하다던 종놈 돌쇠 말이여, 면천이 되었다지 뭐여."
"면천만인가? 논 예순 마지기에 은자 오백 냥을 받았대여!"
"세상에! 그러니께 백 냥 마다하고 오백 냥에 논까지 얻은 거 아녀. 대박이지 뭐여."
관아에서 정식으로 면천 문서가 내려오던 날, 돌쇠는 그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마흔 평생 처음으로, 그는 누구의 것도 아닌 제 몸의 주인이 된 것이지요.
'아부지 어무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버려진 놈이... 이제 성도 갖고 이름도 갖는구먼...'
한이가 직접 붓을 들어 성을 지어주었습니다. 굳을 견에 돌 석, 견석이라 하였지요. 바위처럼 굳은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온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돌쇠 아저씨, 돌쇠 어르신 하고 불렀더랍니다. 그 이름에 이미 의리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까요.
한이는 새 집을 지어 돌쇠에게 안겼습니다. 유 진사 댁 바로 옆, 볕 잘 드는 남향집이었지요. 돌쇠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지 같은 놈이 무슨 기와집이래유. 지는 행랑채면 족한디유."
"삼촌, 이제 삼촌은 종이 아니오. 그리고... 혼자 사실 것도 아니지 않소?"
"예? 그, 그게 무슨..."
한이가 씩 웃더니 마당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거기 낯익은 여인 하나가 봇짐을 인 채 쭈뼛쭈뼛 서 있지 뭡니까. 정선 화암골 주막의 순덕이었습니다. 한이가 사람을 보내 모셔 온 것이지요.
"도, 돌쇠 어르신..."
"수, 순덕이 아니여? 자, 자네가 여긴 어떻게..."
"약속하지 않았소. 돌아온다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시길래... 내가 왔소."
돌쇠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습니다. 마흔이 다 된 사내가 스무 살 총각처럼 뒤통수를 긁적이니,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 웃음을 터뜨렸지요.
"삼촌, 저 사람이 흉년에 삼촌 국밥에 고기 얹어준 것을 내가 다 기억하오. 삼촌이 나를 거두었듯, 저 사람은 우리 둘을 거두었소. 그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
혼례는 그해 가을에 치러졌습니다. 신랑은 마흔, 신부는 서른여덟. 늦어도 한참 늦은 혼례였지만, 온 고을이 몰려와 구경하는 성대한 잔치였지요. 사모관대를 쓴 돌쇠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절을 하다 발이 꼬여 자빠질 뻔했고, 그 바람에 잔칫상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더랍니다. 여전히 굼뜬 곰탱이였지만, 이제 아무도 그를 미련하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한이가 신부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끼워주었습니다. 은가락지 한 쌍이었지요. 팔 년 전 그 밤, 유 진사가 돌쇠 손에 쥐여주며 훗날 손자며느리에게 전하라 했던 바로 그 유품이었습니다.
"도, 도련님! 이건 도련님 어머님 유품이 아닙니까유! 이건 안 되어유!"
"할아버님께서는 이 가락지를 우리 집안의 안주인 될 사람에게 주라 하셨소. 삼촌 내외가 이 집안의 어른이니, 이보다 마땅한 주인이 어디 있겠소."
순덕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가락지를 받았습니다. 하객들 사이에서도 여기저기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났지요. 참으로 벅찬 광경이었습니다. 팔 년 전 그 밤, 죽어가던 노인이 종놈 손에 쥐여준 가락지가 이렇게 돌고 돌아 제 임자를 찾은 것이니까요.
혼례가 끝나고, 한이는 정선 화암골에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팔 년 동안 돌쇠 내외를 품어준 마을 사람들에게 쌀 백 섬과 무명 백 필을 보냈고, 서당 훈장님께는 따로 사례를 올리고 서당을 새로 지어드렸지요. 은혜를 받았으면 반드시 갚는 것, 그것이 그 집안의 가풍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이는 스물둘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급제 방이 붙던 날, 한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어디였을까요. 대궐도 아니고 잔칫상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옆집, 돌쇠의 집이었지요.
"삼촌! 삼촌! 내가 급제했소!"
"아이고, 우리 도련님이... 우리 도련님이..."
돌쇠는 그저 그 말만 되풀이하며 마당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순덕이 등을 쓸어주고, 마당에서 놀던 돌쇠의 어린 아들딸이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 곁으로 모여들었지요. 늦게 얻은 아이들이 어찌나 예쁘던지요.
한이는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해마다 청주로 내려와 돌쇠 내외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사람들이 뭐라 수군거려도 한 번을 거른 적이 없었지요. 누가 이유를 물으면 한이는 늘 이렇게 답했더랍니다.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유씨의 것이나, 내 사람됨은 저분에게서 온 것이오. 은자 백 냥과 나를 저울에 놓고, 나를 택해준 분이니까."
돌쇠는 예순이 넘도록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논 예순 마지기를 받았어도 놀고먹는 법이 없었지요. 새벽이면 어김없이 지게를 지고 나가 제 손으로 밭을 갈았고, 흉년이면 제일 먼저 곳간을 열어 이웃을 먹였습니다. 부리는 아랫사람들에게는 절대 반말을 하지 않았더랍니다.
"어르신, 어찌 아랫것들한테까지 존대를 하십니까."
"내가 그 자리에 있어 봐서 알어유. 사람 소리를 못 들으면 사람 노릇도 못 하게 되는 법이지유."
이 말이 청주 고을에 퍼져, 훗날 사람 대접이 곧 사람 만든다는 속담이 되었다지요. 참말인지 아닌지야 모르겠지만,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돌쇠는 손자들을 무릎에 앉히고는 늘 이 말을 들려주었더랍니다.
"얘들아, 할애비는 미련해서 셈을 못 했다. 백 냥이 큰지 사람이 큰지도 몰랐지. 근데 말이여, 셈을 못 해서 오히려 잘된 일도 있더구나. 사람은 저울에 못 올리는 법이거든."
훗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재물을 좇은 자는 재물마저 잃었고, 사람을 좇은 자는 재물까지 얻었다고요. 미련한 종놈이 은자 백 냥보다 귀한 것을 알아본 그날 밤, 하늘이 그 마음을 저울에 달아보고는 만복을 쏟아부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 살다 보면 눈앞의 백 냥이 커 보일 때가 참 많지요. 그러나 그 백 냥을 내려놓고 사람을 붙든 손이야말로, 결국 만복을 거머쥐는 손이더랍니다. 우리네 인생도 다르지 않겠지요.
유튜브 엔딩멘트 (253자)
오늘 이야기, 어떻게 보셨는지요. 눈앞의 은자 백 냥보다 사람의 도리를 택한 돌쇠의 우직함이, 세월 끝에 만복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저울에 못 올린다던 그 말,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여러분 곁에도 그런 고마운 인연 한 분쯤 계시지요. 오늘 안부 한번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재미있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댓글로 마음을 나눠주세요. 만복야담은 더 따뜻하고 벅찬 이야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